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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기준치 이상의 유해물질어 검출돼 출입을 중지한 한 고등학교 운동장.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듯 자동차만 빼곡했다.
 기준치 이상의 유해물질어 검출돼 출입을 중지한 한 고등학교 운동장.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듯 자동차만 빼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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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레탄이 깔린 농구장, 포장재로 덮어 놓았다.
 우레탄이 깔린 농구장, 포장재로 덮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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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장 우레탄 트랙에서 뇌 발달에 나쁜 영향을 주며 아이큐를 낮추는 물질로 알려진 납이 검출됐어도, 학교에서 원한 것은 흙(마사토)이나 천연잔디가 아닌 우레탄(탄성 포장재)이었다.

경기도교육청은 최근 KS(한국산업표준) 기준치인 납 90㎎/㎏가 초과해 검출돼 사용 중지 명령이 내려진 학교 운동장 우레탄 트랙을 걷어내고, 흙이나 천연잔디로 교체하는 방침을 세웠다. 우레탄을 걷어 내고 다시 우레탄을 깔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체 대상 초·중·고 569개 학교 중 흙으로 교체를 원한 학교는 73개 학교(13%), 천연잔디는 1개 학교뿐이었다. 이보다 훨씬 많은 488(86%)개 학교가 우레탄으로 재시공 하기를 원했다.

이유는, 흙보다 깨끗하며 교체도 간편하다는 것 등이었는데, 그 바탕에는 납 같은 유해 중금속이 기준치보다 적으면 괜찮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이 사실은, 일부 언론이 중금속이 검출된 해로운 우레탄의 반대 개념으로, '친환경 우레탄'이란 말을 사용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레탄에 '친환경'이란 말을 붙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우레탄 자체가 친환경과 거리가 먼 화공 약품이기 때문이다. 이미 납을 비롯한 중금속이 검출돼 우레탄을 걷어 내자고 하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라 생뚱맞기도 하다.

'KS 기준만 통과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친환경 하고는 거리가 멀다. KS 기준이 너무 느슨하다. 이 기준은 지난 2011년에 만들어졌는데, 검사 항목이 납, 수은, 카드뮴, 육가크롬 4가지뿐이다.

정자 수를 감소시키는 독성 물질로 알려진 '프탈레이트'는 현재 검사 항목에 추가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유럽 등에서는 50여 가지 기준을 마련해 엄격하게 검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교육청을 비롯해 전북, 서울, 대구, 충남 등의 교육청이 우레탄 재시공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검사 항목이 추가되는 등 'KS 기준 강화'가 예상되니, 아예 유해성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우레탄을 다시 깔지 말기로 한 것이다.

우레탄이 장점이 전혀 없지는 않다. 흙보다 배수가 양호하고 깨끗하며 칠감만 잘 입히면 보기에도 좋다. 그러나 흙보다 약 19% 정도 시공비용이 더 들고 보수·교체 비용까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해 물질 문제를 빼더라도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다.

우레탄보다 인조 잔디가 더 위험해

인조 잔디에서 축구시합을 하는 학생들.
 인조 잔디에서 축구시합을 하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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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있는 공원에도 우레탄이 갈려 있다.
 마을에 있는 공원에도 우레탄이 갈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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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레탄보다 더 위험한 것은 인조잔디다. 운동장의 많은 부분을 인조잔디가 차지하고 있고, 유해성 논란도 더 크기 때문이다. 학교 운동장 인조 잔디에서 기준치 90㎎/㎏의 40배인 4000㎎/㎏ 정도의 납이 검출 되는 등 이미 여러 차례 폭풍이 지나가듯 인조 잔디 유해성 문제가 불거졌다.

경기도 부천의 한 초등학교는 환경단체와 교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약 6억 원을 들여 인조 잔디를 조성했다가 유해 물질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돼 약 1억 3천만 원을 들여 흙으로 교체했다. 이 학교를 포함해 작년에 경기도 13개 학교가 인조 잔디를 걷어내고 흙 운동장으로 다시 조성했다.

이처럼 인조 잔디 운동장을 조성하려면 흙 운동장보다 비용이 약 5배 정도 더 필요하다. 그뿐인가, 때때로 보수를 해야 하고 수명이 다하면 재시공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돈 먹는 하마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인조 잔디 수명은 약 7년 정도다.

그런데, 어째서 이처럼 위험하고 비용도 많이 드는 인조 잔디와 우레탄을 대책 없이 학교에 조성한 것일까?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원 화학물질센터 소장은 지난해 녹색당에서 개최한 '학교 인조 잔디,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마치 좋은 것인 양 학교에 전파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윤국재 유해물질 없는 학교를 위한 학생용품 교사 연구회 선임 연구원은 "국회의원 등의 정치인이나 교장의 업적이 됐다"고 지적했다. 업적을 만들기 위해 인조잔디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인조 잔디 운동장 조성을 중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 소장은 "인조 잔디에서 발암물질과 불임, 유산을 일으킬 수 있는 생식 독성 물질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교사는 "인조잔디가 열을 흡수하지 못해 한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도저히 사용할 없으며, 냄새 또한 지독하다"며 "흙보다 실효성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레탄과 인조 잔디는 놀이터, 체육공원, 자전거도로 등 우리 생활 곳곳에 이미 침투해 있다. 안전하게 살려면 이 많은 곳을 정부나 지자체가 철저하게 감시해야 하는데, 과연 이게 가능할까?

우레탄 철거를 위해 경기도교육청은 학교 설득 작업에 나섰다. 지난 18일과 19일 학교장과 체육부장 등을 대상으로 '우레탄 시설 개보수사업 설명회'를 열었다. 오는 9월 5일까지 학교 의견을 다시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그때는 대부분 학교가 흙이나 천연잔디를 원할 것이라 본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친환경 도시 조성은 정치인들의 단골 공약이다. 그런데, 어째서 아직도 친환경 도시는 고사하고 툭 하면 유해물질 논란만 이는 것일까! 잔소리 같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다. 어려운 약속도 아닌데 말이다.

친환경 도시 첫걸음은 생명 같은 흙이 숨 쉬는 것을 방해하는 우레탄과 인조 잔디를 걷어내는 일이다. 그 흙냄새를 맡으며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으면, 그게 친환경 도시다. 친환경 도시 만들기 참 쉽지 않은가?

내친김에 납 성분 등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된 학교뿐만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학교, 그리고 마을 놀이터 등에 있는 우레탄과 인조 잔디까지 모두 흙이나 천연 잔디로 교체하면 좋겠는데, 너무 큰 바람일까?


태그:#우레탄, #인조 잔디, #경기도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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