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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이 혁신의 현장으로 단 하루, 출근합니다. 첫 순서로 인간적이고 따뜻한 기술, '적정기술'이라는 뜻으로 한 공간에 모인 혁신가들을 만나기 위해 혁신파크 제작동 2층 적정기술랩으로 출근했습니다. 지난 8월 4일 하루 동안 직접 체험하며 느낀 혁신가의 일상과 생각을 전합니다. - 기자 말

[오전 10시] 직접,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노동

땀이 맺힌다. 볕이 따갑다. 벌써부터 이러는 것을 보니, 오늘 날씨도 만만치 않을 듯하다. 지척에 있는 건물 앞으로 몇 걸음을 옮기는데도 숨이 턱턱 막힌다. 건물 앞에 상자 모양의 화분이 줄지어 놓여있고, 화분 아래로 물이 흐른다.

물 속에는 잉어와 우렁이, 미꾸라지가 같이 산다. '물고기 가든'이라는 이름의 이 텃밭(?)을 관리하는 것이 오늘의 첫 작업 일정이다. 화분을 하나하나 들춰가며 썩은 잎을 떼어냈다. 혁신파크의 입주단체들이 몇 칸씩을 분양받아 직접 심은 것들이다.

태양광 에너지로 가동되는 햇빛분수. 볕이 강할수록 물줄기를 더 높게 쏘아 올린다. 적정기술랩에 입주해있는 마을기술센터 핸즈의 작품이다.
▲ 햇빛분수 태양광 에너지로 가동되는 햇빛분수. 볕이 강할수록 물줄기를 더 높게 쏘아 올린다. 적정기술랩에 입주해있는 마을기술센터 핸즈의 작품이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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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에너지로 가동되는 햇빛분수. 볕이 강할수록 물줄기를 더 높게 쏘아 올린다. 적정기술랩에 입주해있는 마을기술센터 '핸즈'의 작품이다.

상자를 분양받은 주인들이 관리를 하지만 항상 챙길 수는 없으니, 일상 관리는 사업 주체인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 기나영 연구원의 몫이다.

"매일 아침마다 가장 먼저 여기에 들러서 관리를 해요. 상한 잎은 없는지도 살펴보고, 배수가 되지 않는 곳에 직접 물도 주고…."

기 연구원이 물고기 먹이를 몇 줌 집어 물 위로 던지니 잉어가 모여든다.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는 이 독특한 텃밭을 통해 '아쿠아포닉스'라는 시스템을 실험 중이다. 아쿠아포닉스는 기본적으로 수경재배를 의미하는 것인데, 단순히 흙 없이 식물을 기르는 것뿐만이 아니라 물고기가 배출하는 유기물을 양분으로 삼아 기른다는 점이 특이하다. 물고기가 살고 있는, 텃밭 상자 아래 수로에 흐르는 물을 공급하면 따로 비료를 쓰지 않아도 되니 이만큼 절묘한 것이 또 없다.

청년청 앞 물고기가든
▲ 물고기가든 청년청 앞 물고기가든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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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파크 청년청 앞 화단이 있던 곳에 자리 잡은 물고기가든. 텃밭 상자에는 흙 대신 뿌리만 잡아줄 수 있는 난석이 채워져 있다. 물을 주면 난석을 통과한 물이 다시 수로를 채운다.
▲ 텃밭상자 혁신파크 청년청 앞 화단이 있던 곳에 자리 잡은 물고기가든. 텃밭 상자에는 흙 대신 뿌리만 잡아줄 수 있는 난석이 채워져 있다. 물을 주면 난석을 통과한 물이 다시 수로를 채운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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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물을 공급하기 위한 관수로가 상자마다 연결돼 있다. 물을 끌어올리는 데 전기는 쓰지 않는다. 물이 계속 순환되게 하려면 시동(?)을 걸어줘야 한다. 시동을 거는 데는 시골 논에서나 볼 수 있는 작두 펌프가 필요하다. 마중물을 부어 넣은 후 재빨리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체중을 실어 누른다. 무더운 날씨에 만만치 않은 작업임에는 분명하다.

중앙 수로가 닿지 않는 곳에는 작은 관을 상자마다 옮겨가며 직접 물을 줘야 한다.
▲ 텃밭상자에 물주기 중앙 수로가 닿지 않는 곳에는 작은 관을 상자마다 옮겨가며 직접 물을 줘야 한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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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매일 아침 물고기 가든을 관리하는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의 기나영 연구원은 서울혁신파크의 19동 2층, 적정기술랩에서 일하고 있다.

뜻을 같이 하는 입주단체인 마을기술센터 핸즈, 적정기술공방과 함께다. '적정기술'은 지역에서 손쉽게 지속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지역의 환경과 상황을 고려해 고안된 인간적이고 따뜻한 기술이다.

그 기저에는 기존 과학기술이 만든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좀 더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인 해법을 고민하자는 의식이 있다. 작업장을 둘러보면 사방에 공구들이 즐비하고, 무섭게 생긴 절단기와 잘려진 파이프, 전선들이 놓여있다. 3D 프린터, 플로터 등 비교적 첨단 기술이 접목된 기계들이 놓인 같은 건물의 1층 '서울이노베이션팹랩'과 그 풍경이 대조적이다. 활동도 서로 다르다. 주로 나무와 파이프를 직접 잘라 용접해 붙이고 전선을 연결하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몸을 쓰지 않는 일이 없다.

세 단체는 작업장과 사무실을 공유해 쓰고 있다. 전문 장비는 혁신파크의 모두와 멤버십 형태로 공유한다.
▲ 적정기술랩 내부 세 단체는 작업장과 사무실을 공유해 쓰고 있다. 전문 장비는 혁신파크의 모두와 멤버십 형태로 공유한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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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시] 0.49와 0.5의 사이에서

"어, 현장엔 별일 없고? 날씨가 너무 덥네. 그냥 차라리 한 3일 쉬어. 작업하고 참 먹을 때 신경 많이 써 줘. 몸조심 하고."

연이은 폭염에 적정기술공방 함승호 대표는 전화를 돌리느라 바쁘다. 통영, 강릉, 포항 등에서 황토를 이용해 생태 주택을 짓는 지방 현장을 챙기는 일이다. 그 외에도 자재며, 부지며 챙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전 내내 통화가 끊이지 않는 사무실 공기가 후끈하다. 적정기술랩은 웬만큼 더운 날이 아니면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32℃ 이상, 3명 이상이 모이면 논의해 에어컨을 튼다. 조금의 에너지도 쉬이 쓰지 않겠다는 의미다.

어쩌면 미련해 보일 만큼 고집스러운 이 사람들의 공간은 주인을 닮아 대체로 소박하고, 과한 것이 없다. 서로 다른 색깔의 오래된 집기들이 조그만 사무실에 옹기종기 놓였다. 구석에 붙은 작은 싱크대와 테이블에는 밥솥이며 냄비며 주방기구가 구비돼 있다. 점심은 보통 중앙 테이블에 앉아 함께 도시락을 먹는다. 한 번씩 더 손이 가야만 하는 이 불편함이 적정기술랩의 사람들에게는 일상인 듯 자연스럽다.

사무실은 작업장과 구분되어 있지만, 대체로 문서작업도 작업장 테이블에 노트북을 펴고 하는 경우가 많다.
▲ 사무실 내부 사무실은 작업장과 구분되어 있지만, 대체로 문서작업도 작업장 테이블에 노트북을 펴고 하는 경우가 많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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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교육이나 자문 등의 일도 많지만, 요즘은 작업장마저 분주하다. 기계 모터소리나 뚝딱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건 에너지 절약을 주제로 한 서울시 공모전에 참가한 학생들이 이곳에서 공모 작품을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작 과정 중간 중간 마을기술센터 핸즈의 정해원 대표와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 강신호 소장이 곁에서 조언을 더한다. 아이디어는 떠올렸을지라도 직접 손으로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을 텐데, 직접 자르고 붙이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이 조금 생소하다. 이곳에서는 모두 스스로가 필요한 것을 상상하고, 직접 만든다.

작업이 한창인 학생들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조그만 사포 조각을 잡았다.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는 태양광 패널 휴대전화 충전기를 만드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이를 위한 재료를 준비하는 일이다. 아랫면이 양극, 윗면이 음극인 손가락 두 개 크기의 솔라셀 옆면을 잘 갈아내 합선이 없도록 만든다. 조금만 힘을 주면 부러져 못쓰게 되고, 너무 많이 갈면 적정한 전압이 나오지 않는 섬세한 작업. 연구원들과 둘러앉아 사포질을 하고 전압기로 체크를 하고, 적정 전압이 나오지 않으면 또 갈아내고, 갈아내고…, 이런 작업의 반복이다.

5분만 작업을 해도 두 손이 새카매진다. 사포를 잡은 손가락에 힘을 빼고, 살짝 닿게만 해서 갈아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사포질을 한 지 두 시간 째 되어서였다.
▲ 작업중인 모습 5분만 작업을 해도 두 손이 새카매진다. 사포를 잡은 손가락에 힘을 빼고, 살짝 닿게만 해서 갈아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사포질을 한 지 두 시간 째 되어서였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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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갈아낸 뒤에는 전등을 켜고 위아래 전극에 측정 기구를 갖다 댄다. 0.5V를 넘겨야 재료로 쓰기에 적합하다.
▲ 사포질 작업 중의 손 어느 정도 갈아낸 뒤에는 전등을 켜고 위아래 전극에 측정 기구를 갖다 댄다. 0.5V를 넘겨야 재료로 쓰기에 적합하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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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이 대학생 팀은 집을 오래 비울 때 대기전력을 쓰는 기구의 전기만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하고 있단다. 강신호 소장의 역할은 만드는 법을 지시하기보다 막힐 때 마다 조언을 해주는 역할이다.
▲ 작업 중의 모습 2 이 대학생 팀은 집을 오래 비울 때 대기전력을 쓰는 기구의 전기만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하고 있단다. 강신호 소장의 역할은 만드는 법을 지시하기보다 막힐 때 마다 조언을 해주는 역할이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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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님, 혹시 기운 빠지거나 야속할 때는 없으세요? 변화라는 게 사실 즉각 나타나는 게 아니잖아요."

"크리킨디라는 아주 작은 새 이야기 들어본 적 있어요? 산에 큰 불이 나서 모든 동물들이 도망치고 있는데, 이 새만이 도망치지 않고 불 위로 작은 물방울 하나씩을 계속 물어 나르더랍니다. 동물들이 웃으며 너는 왜 그러고 있느냐고 물으니 크리킨디가 대답하기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죠." 

'적정기술'이라는 개념 자체는 아직 일반 사람들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교육이나 워크숍 수요가 많아졌다고. 적정기술을 연구하거나 실행하는 단체가 국내에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부 교육을 나가거나, 교육 준비를 하거나, 자문을 하다보면 낮 시간이 금세 지나가 버린다. 작업하던 학생들이 돌아가자 강신호 소장이 개인 작업을 시작한다. 최근에는 혁신파크 입주단체인 금자동이의 의뢰로 특별한 시소를 만들고 있다. 직접 파이프를 자르고 용접해 붙인다. 곧 금자동이 앞마당에 놓일 이 시소펌프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혁신파크로 불러 모을 것이다.

한쪽에서 용접을 하고 있는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의 강신호 소장. 양쪽에 번갈아 무게를 실으면 위로 물을 퍼 올릴 수 있는 시소펌프다.
▲ 용접 작업 중인 모습 3 한쪽에서 용접을 하고 있는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의 강신호 소장. 양쪽에 번갈아 무게를 실으면 위로 물을 퍼 올릴 수 있는 시소펌프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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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계속 걸어 나아가게 만드는 어떤 힘

적정기술랩 식구들은 커피를 나눠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지척에 카페가 널린 세상인데 냉장고에 얼려 저장해 둔 얼음을 주전자에 담고, 원두를 갈고, 물을 끓여 직접 내려마신다. 커피잔을 앞에 두고 사무실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이렇게 오셨는데 오늘 대청소라도 해야 되겠다며 함 대표가 너스레를 떤다.

자연스럽게 흩어져 누군가는 책상에 앉고, 누군가는 작업장에서 뚝딱거린다. 기꺼이 불편함을 감당하게 하는 원동력이 개인의 거창한 신념에만 있지는 않을 터다. 어쩌면 편리가 제일 쉬운 시대에 이 고집스러운 불편이 지치는 순간도 분명 있지 않을까. 멈추고 싶을 때마다 뒤에서 등을 떠밀어주는 것들이 있을까.

"저는 오히려 이쪽이 맞더라고요. 요즘이야 첨단 기술이 많지만요. 고루한 분위기더라도 오히려 전 여기가 친근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전 직장에서는 주로 사무 일을 했었는데, 여기서는 매일 무언가 배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맞아요. 확실히 내가 배운다, 성장한다는 느낌이 없으면 계속 가기 어려운 것 같아요."

"배우면서 얻는 작은 성취가 계속 가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제가 언제 용접을 해보겠어요. 물론 엉망이긴 했지만(웃음) 그동안 생각만 하는 일을 했다면 여기서는 그 생각을 실제로 구현해볼 수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작업장에 앉아 사포질을 하면서 오랫동안 이 곳에서 일했던 것 같은 자연스러움을 느꼈다. 에어컨 바람 덕에 오히려 서늘한 사무실 책상에 앉아 거북이 마냥 목을 빼가며 모니터에 집중했던 시간이 아득해진다.

이 단순하고도 섬세한 작업에 집중하게 하는, 손노동에는 분명 어떤 묘한 매력이 있다. 10분째 갈아내던 전지판의 전압이 0.52V를 가리켰다. 퇴근할 때 다 돼서야 요령이 생긴 것 같다며 투덜거리자 두 연구원이 "이게 '작은 성취'가 아니겠냐"며 축하의 박수를 쳐주었다. 다시, 자리를 고쳐 앉는다.

* 적정기술랩 : 서울혁신파크 제작동(19동) 2층

▲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 www.altenergylab.co.kr
= 기후변화, 피크오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적정기술의 철학과 가치를 바탕으로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인 해법을 제시합니다.
▲ 마을기술센터핸즈 www.handz.or.kr
= 적정기술을 연구·교육·컨설팅하는 곳으로, 마을과 공동체를 살리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기술을 추구합니다. 
▲ 적정기술공방 www.atworkshop.or.kr
= 적정기술을 기반으로 건축과 에너지, 난방관련 교육은 물론 사람들과 함께 연구와 시공을 지속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서울혁신파크 공식 뉴스레터 <채널서울혁신파크>에 게재되는 글입니다.



태그:#적정기술, #대안에너지, #메이커, #친환경,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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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혁신파크는 도시의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국내 최초의 사회혁신 플랫폼입니다. 은평구 녹번동에 위치한 곳으로 250여 혁신 그룹, 1300여 명의 혁신가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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