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끔은 뜻하지 않게 인생의 방향이 약간 틀어지기도 한다. 지난 3월 말 충남 홍성으로 이사 오면서 여러 가지 사건을 겪었다.

시골에 내려와 며칠간 아무 생각 없이 쉬면서 지역 신문사에 면접을 봤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모 유통회사와도 함께 일할지를 놓고 의사를 타진하고 있었다. 사실 신문사 면접은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본 것이다.

어쨌든 신문사 면접은 대표와의 면담 과정에서 '생각의 차이'를 발견하고, 소득 없이 면접장을 나서야 했다. 그리고 곧바로 모 유통회사와 출근일자를 조율했다. 그런데 별안간 병원을 다녀온 아내는 '큰 병원에 가보라'는 의사의 진단이 나왔다고 전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출근보다는 아내의 수술이 우선이었다. 적어도 아내가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회복할 때까지는 회사에 출근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회사 입사도 그렇게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아내의 수술 전까지 남은 시간 동안 나는 이런 저런 수필 같은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무료했다. 솔직히 그 당시에는 글을 쓰는 일 외에는 별다르게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다시 시작된 취재

시민기자. 당분간은 이 상태를 유지하며, 살고 싶은 대로 살아 볼 생각이다.
 시민기자. 당분간은 이 상태를 유지하며, 살고 싶은 대로 살아 볼 생각이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바로 이 무렵, 필자의 어머니가 입원해 있던 내포요양병원에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한국전력 홍성지사 관계자의 소개로, 내포요양병원장으로부터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을 하나둘 만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전력 홍성지사는 내포요양병원의 상습적인 전기요금 체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내포요양병원 사건을 계기로, 본의 아니게 취재활동이 시작됐다. 솔직히 내포요양병원 사태가 마무리 되면 일단 취재는 접으려고 했었다. 직업도 아닌 일에 시간을 쪼개며 살아가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성문화연대 사람들과 홍동마을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 그런 생각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소속된 사람들은 참 자유로워 보였다. 물론 이 분들은 물밑에서는 치열한 삶을 꾸리며 살고 있다. 이들은 취미 활동과 각종 시민사회단체 활동 등 생업 외에도 1인 3역 이상을 거뜬히 해낸다.

물론 잠이 많고 게으른 필자에게 그런 삶은 절대 무리다. 하지만 이분들의 삶을 보면서 나도 1인 2역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용기를 갖게 됐다. 당분간은 이 생활을 즐기고, 조만간 취재활동과 병행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볼 생각이다.

어쨌든 홍성지역에서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몇몇 신문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손을 내밀어 주신 분들의 손길은 참으로 고맙고 소중하다. 하지만 나는 선뜻 그들이 내민 손을 잡을 수가 없다. 나라는 존재는 마감에 맞춰 기사를 써야 하는 지면 신문의 시스템과 맞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더 이상 '지면 막는 기계'이고 싶지 않다

사실 예전에 한 주간지에 근무하면서 지면 부담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달은 적이 있다. 그 신문사에서는 하루에 기사를 8개 이상 쓰기도 했는데, 당연히 기사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면 부담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매너리즘으로 이어졌다. 이러다 결국 기자가 아닌 '지면 막는 기계'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실제로 오랫동안 지역신문사에서 일하다 최근에 인터넷신문으로 자리를 옮긴 한 선배는 "지면 막느라 애먼 기사를 안 쓰니 참 편하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작은 신문사 기자들에게 지면은 알차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막는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지금은 주말이면 시골집에 가 아버지의 농사일을 돕고 있다. 평일에는 취재를 하고 기사도 쓰며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은 이미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것이기도 하다.

예전에 기사를 마감한 직후 나는 마치 통과의례처럼 이어폰을 꼽고 그룹 천지인의 노래 <청계천 8가>를 듣곤 했다. 그때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언젠가는 내 마음대로 마감 시간을 정하고, 내가 쓰고 싶은 기사를 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물론 공공기관이나 특정 단체의 입장이 아닌 시민의 시각에서 좀 더 자유롭게 기사를 쓰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일정부분 그 꿈대로 살고 있다.

비록 상황에 떠밀린 측면도 있지만, 살고 싶은 대로 살았더니 꿈꾸던 삶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 할 본업을 찾아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이 상태를 유지하며, 살고 싶은 대로 살아 볼 생각이다.


태그:#신문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