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특산품 초록빛 '닥공'을 상하이 앞마당에 잔뜩 펼쳐서 자랑하고 싶었겠지만 축구장의 베테랑들은 끝까지 밸런스를 잃지 않고 그 다음 기회를 생각했다. 한 순간 일을 그르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정 팀 전북이 시원한 골로 이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별 것 아닐 수 있어도 덤까지 얻어왔다. 그것은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슈틸리케 감독에게 조용히 건네는 작은 선물이 아닐까?

봉동이장 최강희 감독이 이끌고 있는 전북 현대(한국)가 23일 오후 8시 30분(한국 시각) 중국 상하이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6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상하이 상강(중국)과의 원정 경기에서 득점 없이 0-0으로 비기고 2차전 홈 경기에서 결판을 내기로 했다.

전북 특산품 '닥공', 그리고 밸런스 유지 고민

 23일 중국 상하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전북 현대와 중국 상하이 상강의 경기에서 전북 현대 에두가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

23일 중국 상하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전북 현대와 중국 상하이 상강의 경기에서 전북 현대 에두가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 ⓒ 연합뉴스


10년 만에 아시아 최고의 클럽 자리를 노리고 있는 K리그 클래식 챔피언 전북 현대는 예상보다 강하게 공격적인 선택을 펼쳤다. 다음에 또 만회할 기회가 있는 조별리그도 아니고 토너먼트 시스템 속에서 원정 경기라는 까다로운 조건을 감안하면 공격적인 선택보다는 안정된 경기 운영을 선택할 법도 하지만 봉동이장 최강희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아무리 베테랑이라고 하지만 수비형 미드필더 이호에게 혼자서 수비 라인 앞을 지키라는 무거운 임무를 주면서 4-1-4-1 포메이션을 내세운 것이다. 중앙 미드필더 김보경과 이재성이 이호의 까다로운 임무를 도와주기는 했지만 외형상으로는 모험 그 자체였다. 전북 특산품 '닥공'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위해 공격에 비중을  더 두었다가 수비 라인과의 간격이 어설프게 벌어지거나 커버 플레이가 부실할 때 뒤통수를 한 방 크게 얻어맞을 수도 있는 포메이션이었던 것이다.

실점하지 않았다는 결과만으로도 전북 선수들은 최강희 감독이 주문한 밸런스 유지의 중요성을 잘 이해했고 비교적 잘 실천했다. 왼쪽 측면의 공격형 미드필더 레오나르도와 반대편의 로페즈가 어려운 일이었지만 수비 가담 임무까지 헌신적으로 해낸 덕분이었다. 가운데 미드필더 이재성과 김보경도 무리하게 공을 끌고 올라가지 않고 공격-수비의 전환, 포메이션 자체의 밸런스를 비교적 잘 유지했다.

홈팀 상하이 상강의 감독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까지 이끌며 국내 축구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스벤 예란 에릭손(스웨덴)이었지만 전북 선수들은 그들의 품에 안고 간 특산품 초록빛 '닥공' 비단을 상하이 앞마당에 조금씩 펼치기 시작했다.

경기 시작 후 37분 만에 가장 아찔한 장면이 만들어졌다. 상하이 수비수가 걷어내는 공 방향을 예측한 전북 미드필더 레오나르도가 감각적인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직접 골을 노렸지만 얀쥔링 골키퍼가 지키고 있는 상하이 골문 오른쪽 기둥 상단을 강하게 때리고 나갔다.

후반전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도 로페즈의 발끝에서 시작된 역습 과정에서 풀백 최철순의 기습적인 오른발 중거리슛이 오른쪽으로 몸 날린 얀쥔링 골키퍼의 슈퍼 세이브에 걸리고 말았다.

전북 최강희 감독은 그렇게 원하던 골이 안 터지자 후반전에 보다 과감한 선수 교체를 통해 그들만의 '닥공'을 더욱 강력하게 주문했다. 50분에 수비형 미드필더 이호가 오른쪽 무릎 부상을 당해 쓰러지자 미련 없이 키다리 골잡이 김신욱을 들여보냈다. 원정 경기에서 이 결정은 정말 놀라운 공격적인 주문이었다.

비록 더블 플레이 메이커 역할을 맡은 김보경과 이재성을 나란히 수비형 미드필더로, 임무를 약간 변형시키기는 했지만 반드시 1골을 터뜨리고 말겠다는 공격적 판단과 그래도 실점 없이 전주성으로 돌아가야한다는 당위 사이에서 고민했으리라.

여기서 최강희 감독과 전북 선수들은 밸런스 유지를 최우선 과제로 인식했다. 비록 68분에 아찔한 실점 위기를 넘기기는 했지만 대체로 4-2-3-1 포메이션의 밸런스를 잘 유지하며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골이 급한 쪽은 이 경기 홈 팀 상하이 상강이었기 때문에 이 선택은 매우 중대한 포인트가 된 셈이다. 골 욕심을 부려 무리하게 공격에만 치중하다가 결정적 한방을 얻어맞은 사례를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전북은 다음 달 13일 오후 7시 수많은 홈팬들의 함성이 울려퍼지는 전주성으로 상하이 상강을 불러서 8강 2차전 승부를 겨룬다.

경기를 지켜본 슈틸리케 감독, 중국전 해법 찾았을까

 23일 중국 상하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전북 현대와 중국 상하이 상강의 경기에서 전북 현대 로페스가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23일 중국 상하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전북 현대와 중국 상하이 상강의 경기에서 전북 현대 로페스가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이 경기장 관중석에는 한국 축구대표팀을 지휘하고 있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앉아 있었다. 국가대표 평가전도 아닌 클럽 간 대결이었지만 상하이 상강에는 중국 대표팀 가오홍보 감독이 선택한 공격형 미드필더 유하이, 우레이, 수비형 미드필더 차이후이캉 이렇게 세 명의 선수들이 뛰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중에서 1~2명은 다음 달 1일 맞붙는 월드컵 최종 예선 홈 경기에서 중국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뛸 인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출장 이유가 충분했다.

그 중에서도 유하이와 우레이의 공격적 능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하이는 체격 조건이 뛰어난 공격형 미드필더 혹은 공격수로 기용될 가능성이 높은 선수다. 전북 골문을 지킨 골키퍼 권순태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지는 못했지만 위험 지역으로 빠져들어가서 상대 수비 라인을 크게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요주의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현장의 슈틸리케 감독이 가장 주목할 만한 선수는 역시 우레이다. 유하이에 비해 체구는 작지만 날개 공격수로서 상대 수비수들의 뒤쪽 공간을 노리는 안목이 탁월한 선수다. 비록 68분에 기습적으로 빠져들어가며 얻은 결정적 슛 기회에서 타이밍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드러내며 전북 센터백 김형일에게 막혔지만 누가 봐도 상하이 상강이 얻은 공격 기회에서 가장 좋은 장면을 만들어낸 장본인이었다.

우레이는 경기 끝무렵에도 장웨이가 왼쪽에서 오른발로 감아올린 크로스를 받아서 머리로 방향을 바꾸는 슛을 날려 전북 골키퍼 권순태를 뒷걸음질치도록 만들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뛴 차이후이캉은 그 역할 그대로 수비 라인 바로 앞에서 상대 공격을 1차로 저지하는 임무를 맡아서 풀 타임을 소화했다. 전북의 역습이 마음대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득점 없이 경기를 끝낸 것도 차이후이캉의 거친 압박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북에도 슈틸리케호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미드필더 이재성이 풀 타임을 뛰면서 중국 대표팀으로 9월 1일에 만날 가능성이 높은 세 선수들과 직접 부딪치며 만만치 않은 실력을 느꼈을 것이다.

봉동이장 최강희 감독이 이들을 상대로 밸런스를 유지하며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은 앞으로 중국과의 대결에서 시사점이 될 수 있다. 또 전북의 로페즈가 보여준 빠른 역습 장면들은 슈틸리케 감독이 과감하게 뽑은 스무 살 황희찬(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게 중국 수비수들의 뒷공간 공략법 교과서가 될 수 있다. 물론, 이 경기에서는 상하이 센터백 쉬커와 김주영에게 아쉽게 막히고 말았지만 황희찬과 손흥민 등 한국 국가대표 공격 자원들이 눈여겨볼 순간들이 제법 많았다.

어쩌면 역으로 9월 1일 중국과의 월드컵 최종 예선 경기를 통해 전북의 최강희 감독과 선수들이 상하이 상강 수비라인을 더 쉽게 무너뜨리는 요령을 터득할지도 모른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2016 AFC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결과(23일 오후 8시 30분, 상하이 스타디움)

★ 상하이 상강 0-0 전북 현대

◎ 전북 현대 선수들
FW : 이동국(64분↔에두)
AMF : 레오나르도(72분↔고무열), 김보경, 이재성, 로페즈
DMF : 이호(50분↔김신욱)
DF : 박원재, 조성환, 김형일, 최철순
GK : 권순태

◇ 8강 2차전 일정
9월 13일 오후 7시(전주성) ☆ 전북 현대 vs 상하이 상강
축구 전북 현대 최강희 슈틸리케 중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