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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아내가 결국 일을 냈다. 책장의 흔적은 물론 내가 애지중지하던 수천 권의 책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20여 년간 소장해온 책은 물론 책장 위에 모셔둔 학위패와 감사패까지. 범인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직장 문제로 주말부부 생활을 하는 남편의 느슨한 감시를 틈 타, 아내가 '사고'를 친 것이다.

대학원 전공 서적은 물론 업무에 필요한 전문서적에 각종 논문집, 문학 전집, 시집과 소설책까지 뭐 하나 남은 게 없었다. 아, 집안일에 잠깐 소홀히 하는 사이에 대형사고를 친 아내, 이제 어찌해야 하나? 몇 년 동안 아내와 싸운 적이 거의 없었는데, 결국 이 문제로 말다툼이 이어져 부부싸움까지 벌어졌다.

마음을 추스르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아내가 수천 권의 책을 하루아침에 정리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명분이야 정하기 나름이지만, 듣고 보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그 책들은 마지막 남은 내 자존심이야. 내 자존심을 이렇게까지 무너뜨려야 했어?"
"이제는 열세 자가 넘는 책장 2개를 가득 채웠어. 이제 더는 꽂을 곳이 없어. 그래서 그 책들 중에서 최근 2~3년간 손 한 번 안 댄 것만 우선 버렸어."
"버리기 전에 좀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어?"

"내가 버린다고 하면 당신은 항상 '보는 책'이라며 고이 모셔두기만 하니, 당신에게 양해나 동의를 구하고 버리는 것은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들어갈 수고와 이사 비용 등을 생각하면 지체할 수가 없었어."

그리고 8개월이 지난 지금 책장이 있던 자리는 아름다운 작품 사진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그 많던 소장품과 이별한 나는 지금까지 아무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다는 이 불편한 진실이 나를 더 슬프게 한다.

<도요타정리술>(OJT솔루션즈 펴냄)
 <도요타정리술>(OJT솔루션즈 펴냄)
ⓒ OJT솔루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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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혹시 언젠가는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버리면 후회할까 봐, 정리할 시간이 없어서, 좋아하던 물건이라, 추억이 담겨 있어서. 살다 보면 10년이 지나도 단 한 번 쓰지 않던 것들이지만 아까워서 쟁여놓던 것들이 이젠 집 안 구석구석을 점령하고 있다. 그래놓고 집은 항상 비좁다.

미련 없이 버리는 게 인위적으로 넓혀가는 것보다 경제적 효용성이 더 크다는 사실을 항상 놓치고 있었다. 내가 항상 '언젠가는 쓰겠지'라며 붙들고 있던 노력이 실은 아집에 불과했다. 반면 아내는 '아깝다'고 그냥 놔두지 않고, '버리는' 작업에 의해 물건의 가치를 재검토하는 모험을 시도한 것이었다.

TV에 나오는 수납·정리 전문가의 조언대로 열심히 정리해봤자 버리는 것을 먼저 실천하지 않으면 효과는 일주일도 못 간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엄선된 것을 집에 잘 두겠다는 정리법이 아니라 '버리는 법'이다. 단순한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저 '정렬'에 불과하다. 그만큼 버리는 것이 힘들다는 방증이리라.

당신도 혹시 직장에서 정리정돈이 잘되지 않아 심리적 압박이 생기고 업무 공간이 제 역할을 못 하게 되어 오히려 압도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당신 책상의 주변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필요한 서류를 찾으려면 10초 이상 걸린다.
-일주일 이상 쓴 적이 없는 사무용품이 있다.
-서랍의 가장 깊숙한 곳에 무엇이 있는지 바로 대답하지 못한다.
-책상 위에 한 달 이상 건드린 적이 없는 책이나 서류가 있다.

이 가운데 한가지라도 해당한다면 당신은 비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 당장 '정리·정돈'이 필요해 고민하는 이 시대의 직장인이라면 <도요타정리술>(OJT솔류션즈 펴냄) 를 권한다. 이 책은 세계 최고 기업인 도요타의 정리습관을 통해 낭비와 스트레스가 없는 환경을 조성해야만 최상의 업무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버리는 기술'의 정리 원칙은 다음 세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필요 없는 것'은 버려라.
▲'필요한 것'은 정돈하라.
▲가지런히 놓는 것은 단지 '정렬'에 불과하다.

이 책에서는 '정리한다'는 말은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필요 없는 것'은 버린다는 의미이다. 또, '정돈한다'는 말은 '필요한 것'을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꺼낼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다. 반면, '정렬한다'는 말은 단순히 물건의 배치만 가지런히 바꾸는 뜻으로 정의한다. 결국 '가지런히 놓는 것'은 단지 '정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흔히 정리·정돈을 한다면서 물건을 이리저리 옮기기만 하고 끝마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무엇을 위해 정리·정돈을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단순히 물건의 배치만 바꾸는 것은 '정렬', 즉 가지런히 놓기에 불과하다. 가령 책장을 정리·정돈할 때, 많은 사람이 책을 크기별로 모아서 수납한다.

서류 파일의 경우도 크기나 색깔별로 보기 좋게 나열한다. 그리고 이것으로 정리를 다 했다며 만족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깔끔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요타에서는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지 않고 단순히 물건의 위치만 이리저리 옮겨서 겉보기에 깔끔해진 것을 정리·정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정리·정돈은 '버리는 기술'인 동시에 '필요한 것을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꺼낼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인 것이다. - 본문 47쪽

예컨대 일본의 유명한 컨설턴트인 이와쓰키 쓰네히사에게 '버리기'와 '정리' '정돈'에 대해 조언을 얻은 한 기업이 있다. 이 회사는 철저한 정리 정돈으로 공장과 사무실에 있던 물건의 80% 정도를 버렸다.

말이 80%이지, 그 정도의 비율이라면 책상과 PC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버린 셈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직원들의 작업 시간은 무려 45%나 감소했다. 특히 정리·정돈을 하기 전 공장 내부에는 소형지게차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통로밖에 없었지만, 버리기를 감행한 후에는 대형 버스가 들어올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이 생겼다.

이젠 당신의 사무실을 한번 둘러볼 차례다. 집과 사무실에서 차곡차곡 쌓아두고 수년간 쳐다보지도 않았던 책이나 더는 읽을 필요가 없는 책부터 단호하게 처분해야 한다. 주기적으로 읽는 책, 정말 좋아하는 책만 남기고 우선 정리하라. 캐런 킹스틴은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 되면 책도 떠나보낼 줄 알아야 한다. 우선 전혀 사용하지 않는 요리책부터 시작해보자. (제발, 지금 책장을 들춰 요리법을 읽으려 들진 말라!) 다음은 교과서나 참고 서적처럼 최근 몇 년 동안 손에 댄 적도 없는 책들로 옮겨 가자. 나, 혹은 자녀들이 더는 읽지 않는 어린이용 그림책과 동화책, 애초부터 읽고 싶지 않았거나 끝까지 읽고 싶지 않은 소설책, 별로 공감할 수 없는 논리를 담고 있는 인문학책이나 사회과학 책 등으로 차례차례 필요 없는 책을 버려 나가자. (중략) 마음으로 깊이 사랑하는 책, 나와 함께 있어 주기를 바라는 책 몇 권만 남기자.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나로부터 떠나보내자. 언젠가 이미 버린 책들이 다시 그리워질 것 같다면, 가까운 도서관에 기증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 '캐런 킹스틴'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중에서

혹시 지금 당신 핸드백은 온갖 잡동사니 백화점은 아닌가? 옷을 세탁하듯 가방 속도 과감히 세탁하라. 선물 받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침울한 에너지를 돌게 한다면 감사의 마음만 잘 간직하고 과감히 처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점원이 유난히도 친절해서 쓸데없이 샀던 물건도 이제는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다. 그 다음은 모아둔 명함 중 1년 동안 쓰지 않은 것은 즉시 정리할 차례다. 이메일도 필요 없어진 대용량의 메일은 즉시 삭제한다. 반년이 지난 서류와 자료집도 과감하게 처분한다.

자, 새로운 에너지가 당신의 인생에 등장할 수 있도록 이제는 진짜로 비워보자. 몰라보게 가벼워진 삶과 업무공간이 당신에게 선물처럼 찾아올 것이다. 감정이든 물건이든 버려야 건강해진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정리법'이 아니라 바로 '버리는 법'이다.


도요타 정리술 - 버리고 정돈하는 초일류의 습관

OJT 솔루션즈 지음, 김정환 옮김, 예인(플루토북)(2016)


태그:#도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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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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