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프로야구 정규시즌도 어느덧 막바지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팀간 약 30여 경기만을 남겨놓은 가운데 가을야구를 향한 각 팀의 순위 경쟁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이 시기가 되면 이미 100게임 이상을 소화하며 강행군을 한 선수들이 조금씩 누적된 피로감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선수들의 부상 위험도 높아진다. 하지만 가을야구를 노리는 팀들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 시기인 만큼 잠시 숨 고를 여유가 없다.

야수도 힘들지만 더 힘든 것은 투수들이다. 최근 몇 년간 프로야구가 극단적 타고투저 현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올해는 기록적인 폭염까지 겹치며, 일구마다 전력투구를 해야하는 투수들의 체력적 부담도 크게 늘었다.

여기에 시즌 후반기 중요한 경기들이 쉴 틈 없이 이어지며 각 구단들은 자연스럽게 믿을 수 있는 투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감독들 역시 선수들에게 무리가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성적을 위하여 암묵적으로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성근 감독의 혹사 논란, 계속되는 투수들의 줄부상

 지난 15일 오후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에서 한화 선발투수 김민우가 역투하고 있다.

지난해 무리한 등판의 여파가 어깨 부상으로 이어져 최근 재활 중인 것으로 알려진 한화 투수 김민우. ⓒ 연합뉴스


'혹사계의 시조새' 김성근 감독이 버티고 있는 한화는 굳이 올 여름만이 아니라 시즌 내내 한국시리즈급 마운드 운영을 고수해 왔던 팀이다. 한화 최다 이닝 투수 1, 2위는 송창식(96.1이닝)과 권혁(95.1이닝)이다. 문제는 두 선수가 모두 선발이 아닌 불펜 요원이라는 점이다. 10개 구단 중 불펜투수가 팀 이닝 1위를 기록한 팀은 한화 뿐이다.

권혁-송창식 두 투수는 올 시즌 내 100이닝을 돌파할 것이 유력하다. 권혁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이며 송창식도 지난해 이미 96.1이닝으로 거의 100이닝에 육박한 바 있다. 같은 기간 중 불펜투수로서 이보다 많은 이닝을 소화한 투수는 리그 전체를 통틀어도 한 명도 없다. 한화 불펜 중 그나마 관리 받았다고 평가받는 정우람(64.1이닝)만 해도 마무리 투수 중에서는 최다 이닝 1위다. 스윙맨 심수창은 지난주 17일 두산전부터 21일 kt전까지 무려 5연투를 소화하는 강행군을 이어가기도 했다.

현재 전문 불펜투수로서 60이닝 이상을 소화한 투수는 각 팀들에 많아야 1~2명 남짓인데 유독 한화만 벌써 6명(송창식, 권혁, 박정진, 장민재, 정우람, 심수창)이나 된다. 권혁과 정우람을 제외하면 이들 대부분은 몇 차례 땜빵 선발로 나섰던 경험도 있다. 불규칙한  등판 일정과 기용 방식 속에 한화 마운드에는 필승조-추격조 같은 보직 구분은 없고 오직 '살려조'만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한화는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벌써 1년 반사이에만 에스밀 로저스, 미치 탈보트, 안영명, 배영수, 장민재, 김민우, 송은범 등 수많은 투수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나가떨어지는 악재를 맞이했다. 물론 다른  팀도 부상 선수는 있었지만 유독 한화의 주력 투수들이 잦은 부상에 시달리는 데는 기형적인 마운드 운영으로 인한 혹사 후유증을 무시할 수 없다.

선수 영입에만 수백 억이 넘게 투자한 한화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김성근 감독은 올 시즌 내내 '투수가 없다.'는 핑계를 달고 살았다. 그러나 '왜 투수가 없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나 자기 반성은 단 한 번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김성근 빙의? 전염병처럼 번진 불펜 투수들의 연투

 쌍방울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김기태 감독과 김성근 감독. 지난 시즌 이후 포스트시즌 진출을 두고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쌍방울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김기태 감독과 김성근 감독. 지난 시즌 이후 포스트시즌 진출을 두고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 KIA 타이거즈/한화 이글스


한편으로 김성근 감독 덕분에 다른 팀 사령탑들은 일부 수혜를 입었다. 바로 김성근 감독이 혹사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며 세간의 모든 관심을 쓸어가는 '욕받이' 역할을 해준 덕분에, 다른 팀 감독들의 무리한 마운드 운영은 혹사처럼 느껴지지 않는 착시효과가 생긴 것이다.

감히 김성근 감독의 아성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최근 혹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프로 감독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8월 들어 불펜투수들의 잦은 등판과 연투가 부쩍 늘었다.

롯데는 지난주만 해도 불펜투수 이정민과 김유영이 각각 4연투를 기록했고, 윤길현도 3연투를 기록했다. 기아는 이달 들어 임창용과 김광수가 4연투, 최영필이 3연투를 기록한 바 있다. 이들은 각각 30대 중반과 40대를 넘긴 노장투수들이기도 하다.

특히 기아 박준표는 12일부터 4연투와 3연투를 각각 한 차례씩 포함해 팀이 치른 9경기 중 무려 8경기에 나서는 강행군을 이어가기도 했다. 같은 기간만 놓고보면 김성근 감독이 빙의했다고 해도 믿을 만큼의 혹사였다.

한화, 기아, 롯데 등은 모두 올 시즌 프로야구 5강 막차 티켓을 놓고 경쟁 중인 팀들이다. 이들 모두 몇 년간 가을야구와 인연을 맺지 못해 성적에 대한 강박이 큰 팀들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자연히 조금 무리수를 두더라도 결과를 끌어내야 한다는 조급증이 커질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치열한 승부 속, 투수들의 어깨를 보호하라

반면 상대적으로 혹사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로운 구단들은 오히려 재평가를 받고 있다. 시즌 초반 꼴찌 후보로 거론되던 넥센은 젊은 선수들로 세대교체를 단행했음에도 안정적인 마운드 운용으로 큰 기복 없이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LG와 SK는 치열한 5강 경쟁을 펼치고 있으나 마운드 운용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한 휴식일 관리와 분업화 원칙을 고수하며 아직까지는 혹사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물론 이 팀들도 한때는 투수운영으로 비난받던 시기가 있었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과거 한현희-조상우를 혹사시켜 부상을 초래했다는 지적을 들은 바 있다. 혹사는 아니지만, 양상문 LG 감독은 올 6~7월까지는 진해수와 김지용 등의 활용법을 놓고 도마에 올랐다. 김용희 감독은 오히려 투수 관리가 지나쳐서 승부사 기질이 떨어진다고 욕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감독들은 과거의 시행착오에서 교훈을 얻고 대안을 모색하려했다는 점이 달랐다.

시즌이 후반기로 갈수록 각 팀들이 투수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이럴 때일수록 눈앞의 한 경기에만 연연하기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팀 운영이 절실하다. 가을야구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 평정심을 지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속에서 소모품으로 전락하기 쉬운 투수의 어깨는 누구도 보상해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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