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가 나날이 급증하고 있는 요즘, 여전히 3대가 어울려 살아가는 대가족을 그린 SBS <그래, 그런거야>는 신기하고도 놀라운 드라마였다. 비록 드라마 중반, 집안의 가장이자 큰 어른인 유종철(이순재 분)과 김숙자(강부자 분)가 분가를 선언하며 집을 나갔지만, 이후에도 손자와 손자며느리는 그들의 시어머니인 한혜경(김해숙 분)과 함께 살기를 고집하며 그들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혹자는 <그래, 그런거야>를 두고 이제는 이뤄질 수 없는 노년층의 판타지를 대변한다고 말했다. 요즘처럼 힘든 시대, 먹고 사는 데 아무런 걱정없는 탄탄한 자산가 노부부가 모두 제 앞가림 잘하고 있고 효성스럽기까지 한 자식, 며느리, 손주들과 함께 오손도손 살고 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은 없을 터. 하지만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더니, 이 가족은 한시도 조용할 틈이 없다.

김수현 작가의 시대 감각, 이젠 통하지 않았다

 1인 가구가 나날이 급증하고 있는 요즘, 여전히 3대가 어울려 살아가는 대가족을 그린 SBS <그래, 그런거야>는 신기하고도 놀라운 드라마였다.면

1인 가구가 나날이 급증하고 있는 요즘, 여전히 3대가 어울려 살아가는 대가족을 그린 SBS <그래, 그런거야>는 신기하고도 놀라운 드라마였다.면 ⓒ SBS


언제나 그랬듯이, 김수현 작가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어디 가도 말로 지는 법이 없다. 그래서 김수현 드라마의 인물들은 항상 피곤하다. 본인들도 피곤하고, 그걸 보고 있는 시청자들도 지친다. 그래도 한동안은 김수현 특유의 따발총 대사가 김수현 드라마의 큰 매력으로 각광받던 시절도 있었다. 김수현 작가에게 늘 붙는 수식어는 '언어의 마법사'. 김수현 작가만큼 일상적인 드라마 대사를 시적으로 승화시키는 필력은 드물었다.

그리고 김수현 드라마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예리한 감각과 섬세한 묘사가 있었다. 2014년 초 종영한 <세 번 결혼하는 여자>가 평균 10% 중후반 안정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30~40대 여성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포착하는 70대 노 작가의 탁월한 시대 감각에 있었다.

<그래, 그런거야>에도 시대에 발맞추어 나가려는 김수현 작가의 노력이 있었다. 이전 김수현 드라마 같았으면 집에서 자식들의 봉양을 받으며 편하게 여생을 보냈을 유종철 부부가 자식들에게 짐이 된다면서 스스로 집에서 나갔다. 하지만 그 외 달라진 것은 크게 없었다. 40년 가까이 시부모를 극진히 부양하는 며느리, 남편이 죽은 후 홀로 남은 시아버지와 함께 사는 젊은 며느리, 남편이 전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의 존재를 뒤늦게 알게 된 딸의 이야기는 21세기 아니라, 60년대 신파극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더욱 당혹스럽게 다가오는 캐릭터는 유종철의 셋째 아들 유재호(홍요섭 분)와 한혜경 사이에서 낳은 막내아들 유세준(정해인 분)이다. 사회적으로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있는 형, 누나와 달리 조직에서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원한 유세준은 부모님이 극구 원하는 취업활동을 일절 거절해왔다. 그런데 사돈처녀인 이나영(남규리 분)과 눈이 맞은 유세준은 집안의 반대에 맞서 집을 나간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던가. 결국 유세준과 이나영은 결혼을 하게 되고, 그들의 가족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편의점을 차려준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원했지만, 이 또한 넉넉한 자산을 가진 할아버지, 의사 아버지, 의사 형이 있었기에 가능한 배짱이었다. 결혼 이후 유세준과 이나영의 강한 생활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래도 재력 있는 부모의 그늘 밑에서 살고있는 그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하는 요즘 세대들의 모습을 대변하면서도, 헬조선·흙수저로 대표되는 보통 청년들의 삶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보통 청년들은 공감하지 못했다 

 <그래, 그런거야>는 지난 21일, 애초 계획했던 60부작에서 축소된 54회로 종영했다.

<그래, 그런거야>는 지난 21일, 애초 계획했던 60부작에서 축소된 54회로 종영했다. ⓒ SBS



김수현의 가족 드라마가 굳이 JTBC <청춘시대>처럼 짠내나는 청년들의 일상을 리얼하게 보여줄 필요는 없다. 청년들의 어려운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대다수 드라마에서 해당하는 고질적인 문제다. 처음에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밝은 청년의 모습을 보여주겠다 하면서도, 결국은 숨겨진 돈 많은 친부모를 찾아 신분상승이라는 로또를 맞는 것으로 결말을 내는 드라마도 부지기수다. 그래서 적당히 돈 있는 부모 밑에서 자라, 그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열심히 사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렇게 사는 청년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래, 그런거야>의 등장인물들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요즘 가정불화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경제적 문제에서 한층 자유로운 이들은 서로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방식 때문에 종종 충돌을 벌이긴 하지만,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화기애애한 가족으로 돌아간다. 적어도 돈 때문에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 제목 그대로 '그래, 그런거야'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에 일일이 토를 달고, 목소리 높여 싸우기를 일삼는 김수현 속 드라마 인물들이 더 피곤하게 다가온다.

그래도, 어떤 사건이든 이치적으로는 맞아떨어지는 김수현 드라마를 '졸작'으로 폄하할 수는 없다. 비록 평균 한 자릿수를 기록한 시청률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 그런거야>는 자극적인 설정으로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드라마들과 달리, 인생을 반추할 수 있는 잔잔하면서도 깊은 맛이 배어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드라마 방영 내내 시청자들의 불평, 불만이 끊이지 않았던 MBC <가화만사성>에 밀리는 형국이었다. 막장 논란에 휩싸이긴 했지만, 김소연과 이필모, 이상우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가화만사성>의 높은 시청률에 큰 견인차를 했던 반면, <그래,그런거야>는 김수현 가족 드라마 재탕이라는 비판 외엔 이렇다 할 논란도, 화제도 없었다.

거장 김수현의 드라마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별다른 반응을 끌어내지 못한 <그래, 그런거야>는 애초 계획했던 60부작에서 축소된 54회로 종영했다. '언어의 마술사' 이전에 '시청률의 여왕'이었던 김수현 작가의 가족 드라마는 언제나 성공한다는 공식도 더는 먹히지 않는 시대. 혼자 밥 먹고, 혼자 사는 것이 더 편하다는 시대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20년 전 <목욕탕집 남자들>에서나 통했던 대가족을 앞세운 김수현 작가의 '무한도전'은 깊은 물음표만 남겼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 미디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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