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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줄을 착용하고 외출한 반려견"/그림-권순지
 "목줄을 착용하고 외출한 반려견"/그림-권순지
ⓒ 권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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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왈대는 두 마리의 개들, 괴물의 탈을 쓴 듯 집요했다

늦도록 더위가 식혀지지 않던 밤에 산책나간 공원의 한 자락에서 여자의 비명과 놀란 아이의 울음소리가 일순간 하늘을 찔렀다. 겹쳐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에 눈에서 불이 번쩍 일었다.

곧 까무러칠 듯한 아이의 울음소리에 지지 않겠다는 듯 아이 발치까지 와 날카롭고 반들거리는 이빨을 드러내며 왈왈대는 두 마리의 개들. 그것들의 미친 듯한 흥분은 흡사 영화 속에나 등장하는 괴물의 탈을 쓴 듯 집요했다.

밤 9시가 다 되어가던 그 시각, 그 밤에 있었던 두 마리 강아지 난동사건의 피해자는 바로 우리 가족이다. 저녁식사 이후 더위까지 뻥 뚫리는 듯한 분수쇼 관람을 위해 찾았던 그 공원에서 목줄 풀린 두 마리의 강아지들에게 습격당할 뻔한 것이다.

부부는 조금 떨어진 거리로 아이들을 살피며 걷고 있었고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피해 뛰기도 하고 다시 돌아오기도 하며 일주일동안 쌓였던 피로를 다 풀듯 그렇게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산책로 일부를 지나 잔디밭이 등장하는 지점의 코너에서 난데없이 강아지 두 마리가 맹렬하게 짖으며 아이들을 공격하려는 듯 다가왔다. 아이가 놀라서 도망치려 반대편으로 뛰어도 고막이 찢어질듯 짖어대며 따라왔다.

처음엔 목줄이 목에 달려 있어서 끝까지 따라오진 않겠거니 안심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집요한 공격에 자세히 보니 목줄은 달려있지만 개 주인들은 목줄 손잡이를 잡고 있지 않았고, 그들은 잔디밭에 깔아둔 돗자리에 편한 자세로 앉아있거나 누워있던 것이다. 얽매임과 통제를 탈피한 강아지 두 마리는 고삐 풀린 망아지나 마찬가지였다.

"목줄 안 하셨어요? 목줄을 하셔야죠!"

악에 받친 심정으로 소리 질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 때문만이 아니라 낯선 개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던 나 역시 심장이 조여드는 것처럼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강아지들을 어서 빨리 통제하길 바라는 눈으로 그들 주인을 쫓았다.

뒤늦게 각자의 주인에게 목줄을 잡힌 강아지들이 어설프게 끌려가고 있었지만 많이 놀라 다리까지 풀린 아이는 급기야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네 발 달린 짐승의 움직임이 되어 버렸다. 눈물범벅이 되어 엄마 아빠가 안아주려 해도 보질 못하고 자꾸만 어딘가로 도망치려 안간힘을 다해 기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는 사람들이 괘씸해 강아지들을 데리고 몇 발자국 물러나 자신들이 차지한 영역에 다시 자리한 그들을 향해 목청을 또 높였다. 목소리만 컸지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놀라 가슴이 떨렸다.

"목줄을 하셔야죠!!!" 

밤에 개들을 데리고 산책 나온 이들이 그제야 주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그들은 나의 고함이 꼭 자신들을 향한 건 아닌지 착각한 것처럼 서둘러 그들 강아지의 목줄을 확인하고 손잡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더욱 꽉 움켜쥐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목줄 손잡이를 잡은 상태에서 강아지를 안기까지 했다. 마치 이곳은 강아지들의 전용 산책로인데 우리 가족이 그들을 위협하러 나온 것처럼 반사적인 행동으로 자신 소유의 강아지들을 챙기는 모습에 기가 차기도 했다. 그만큼 그 곳은 산책을 위해 데리고 나온 강아지들이 많았다.

사람들 이목이 신경 쓰였던 건지 두 번의 신경질적인 고함에 늦게서야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문제의 강아지 주인들은 우리가 가고 난 후 다시 목줄 손잡이를 놓아버렸을까.

그 뒤로 집에 돌아가는 주차장에 가기까지 무심히 지나가는 강아지만 봐도 사색이 되어 "무서워" 울먹거리는 아이를 품에서 놓지 못했다. 아이가 꼭 나를 닮았기 때문에 내가 가진 트라우마까지 닮아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내 비명과 고함소리, 그리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개 짖는 소리에 뒤덮인 그 날은 한 인간의 트라우마가 그 자식에게 되물림된 슬프고도 착잡한 날이었다.

목줄 풀린 개에 관한 아물지 않은 상처

18년 전, 어릴 적 살았던 시골 동네 초입엔 우리 집으로 가는 골목이 있었고 운 없게도 우리 집 골목 입구 30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 엄청나게 큰 개들을 키우는 아줌마네 집이 있었다.

동네 주민들과 친밀한 교류를 하지 않는, 뜨내기같이 곁을 주지 않는 아줌마네 이야기는 소문이 많았다. 그 소문들 중 그 집 개들에 관한 소문은 이러했다. '돈 많은 아줌마가 일본에서 개들을 수입해 와서 기른다.' '자식이 없어 외로우니 저렇게 큰 개들을 자식처럼 기른다더라' 등의 이야기였다.

그 소문 일부가 사실인 것을 증명하듯 아줌마의 흰색 SUV차량이 외출하는 날 차량 뒷좌석은 늘씬하고 날카롭게 생긴 덩치 큰 생명체 세 마리의 차지였다.

살던 동네엔 작은 슈퍼 하나도 없었다. 동네에서 500미터나 넘게 걸어가야 없는 게 없는 옆 동네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다. 어느 날은 동생과 함께 과자 사먹으러 슈퍼에 다녀오던 길에 그 아줌마네 집 개 한 마리가 자유로이 대문 밖을 나와 서성이는 것을 멀리서부터 목격했다.

관대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으며 혈통도 있다는 그 개가 설마 그럴 줄은 몰랐다. 동생과 나보다 한 열 발자국 앞서서 자분자분한 걸음으로 걷던 어떤 할머니의 뒤꽁무니를 꽉 물어버린 아줌마네 개의 도발에 놀라 엉겹결에 동생 손을 잡고 집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미처 얼굴도 보지 못한 할머니의 안위가 걱정되었던 것은 아주 잠시였다. '우리 할머니도 아닌데 뭘.'

18년 전에 예기치 못하게 발견한 나란 인간의 자기 안위에 따른 이기심과 아무리 혈통 있는 개라도 '개는 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오래도록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자유로이 활보하는 개에 대한 트라우마는 그 때부터였다고 확신한다.

사과 한 마디 없던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

결혼을 하고 새로운 동네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한지 1년이 조금 지난 때였다. 그 때의 나는 지금의 큰 아이를 배 속에 품고 있은 지 얼마 안 되었던 몸이었다. 재활용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어둠이 내린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아파트 공동현관문이 열리고 바깥공기를 들이 마신지 채 얼마 되지 않아 마주한 어둠의 낯빛은 꽤 무거웠다. 그 와중에 덮치는 어둠 말고도 날 기다렸다는 듯 덮치려 했던 생명체가 있었다.

어둠 속 농회색 대형견은 꽤 위협적으로 겅중겅중 내게 달려와 몸을 날리려 했는데 예상대로 목줄이 풀려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왜 내게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는 건가'에 대해서 잠깐 고민했다. 높고 긴 비명소리에 놀라 다가온 젊은 주인은 내게 자신의 개가 벌인 소동에 대해 미안하단 사과 한 마디 없이 딱 한마디만 뱉고 개를 끌며 사라졌다.

"안 물어요!"

모든 개가 그 날의 위협적인 동네 개처럼 물 수 있다고 가정하며 살고 있진 않다. 제대로 된 인간의 반려견이라면 평범한 인간을 물지 않도록 자연스레 교육되리라는 것도 믿고 있다. 그러나 위협을 느낀다고 생각되는 순간엔 내가 믿는 사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생명체 모두가 소중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소중한 것을 지킬 권리는 있지만 다른 사람의 소중한 것을 해칠 염려에 이르기까지 소중히 대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그 때 내 안에도 작은 생명체가 있었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겪고 싶지 않은 소동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공원에서의 사건 말고도 또 있었던 것이다. 피서 차 찾은 휴양림에서 돗자리 깔고 책을 보다가 난데없이 달려든 목줄 없는 낯선 강아지에게 놀라 진정되지 않은 가슴을 쓸어내리느라 애를 썼던 일이다.

뒤늦게 다가와 그들만의 '아이'를 안고 그냥 가버린 개 주인 가족과 시비가 붙고, 휴양림 관리사무소에 전화해 항의했던 후일담까지 더해 써 내려가다 보니 '목줄 없는 개들'과의 사연이 이젠 지겹기까지 하다.

큰 고민 없이 목줄을 잡았다 놓았다 하는 그들처럼 개들을 끔찍이 사랑할 순 없어도 두려움과 적대감을 느끼고 싶진 않다. 자신의 개는 절대 물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자부하는 그 굳은 심지로 세상에 나올 땐 목줄을 놓지 않았으면 한다.

"반려견의 목줄을 잘 부탁합니다." 

법으로도 지정되어 있는 그 일에 대해 설령 실수할지라도 그 실수로 인해 남에게 피해를 끼쳤다면, 사람의 말을 할 줄 모르는 개 대신 정중하게 사과할 줄 아는 자세도 부탁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rnjstnswl3 중복게재



태그:#반려견, #목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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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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