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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주우리옷 주인 김영리씨(뒷모습)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 강제집행 과정에서 간판이 철거되는 걸 보며 울먹이고 있다.
 장남주우리옷 주인 김영리씨(뒷모습)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 강제집행 과정에서 간판이 철거되는 걸 보며 울먹이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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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뜯지 마!"

지난 6~7년 함께 북촌을 지켰던 '장남주우리옷'과 '씨앗' 간판이 떼어지는 순간. 아들뻘 되는 철거용역들의 거친 입질에도 꿈쩍 않던 가게 주인 김영리씨가 끝내 눈물을 훔쳤다. 옆 가게 김유하씨는 '씨앗'이 떨어지는 순간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7년 전 아버지 퇴직금으로 일군 가게를 이어받았지만 그동안 억대 빚을 갚느라 허덕여야 했다.

"그 와중에 건물주는 월세를 두세 배씩 올리고. 그래도 부모님이 오픈한 가게여서, 7년 동안 2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거 아끼면서..."

인터뷰 도중 울컥한 김유하씨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도대체 이곳에선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명도소송 도중 새마을금고가 매입... '예고' 두 달 만에 강제집행

두 가게가 입주한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로 2층짜리 건물주인 삼청새마을금고는 22일 오전 7시쯤 철거용역 40여 명을 동원해 강제집행(철거)했다. 월요일 아침 주인들이 가게를 비운 사이 들이닥친 용역들은 진열장에 있던 물건과 내부 집기를 모두 들어내 컨테이너 차량에 옮겨 실은 뒤, 가게 입구를 합판으로 못질해 막았다.

뒤늦게 달려온 가게 주인과 맘상모(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회원들이 가게 진입을 시도했지만, 용역들이 겹겹이 친 인의장벽을 뚫진 못했다. 실랑이 과정에서 맘상모 회원과 용역이 쓰러져 119 구급차까지 출동했지만 경찰은 멀찍이 지켜볼 뿐이었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뜨는 동네' 북촌한옥마을 한복판에서 벌어진, '젠트리피케이션' 한 장면이었다.
 
지난달 18일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우장창창에 이어 지난 18일 마포구 아현동 포장마차거리, 이날 종로구 가회동 북촌에 이르기까지 최근 서울 곳곳에서 강제 집행이 이어지고 있다. 재산권을 앞세워 쫓아내려는 건물주와 행정기관, 철거용역, 생존권을 걸고 버티는 임차상인과 노점상들. 모두 법을 앞세우지만 정작 철거 현장에서 이들의 인권을 지켜줄 '법'은 없다. '심각한' 폭력 사태만 아니면 공권력도 눈을 감는다.

북촌 건물주는 공교롭게 대표적인 '서민금융기관'인 새마을금고여서 논란이 커졌다. 종로구 삼청동 본점과 가회동, 안국동에 지점 두 곳을 둔 삼청새마을금고(이사장 천상욱)는 지난해 9월 이 건물을 매입했다. 현재 임차해 쓰고 있는 가회동 지점을 이곳으로 옮길 계획이다. 하지만 매입 당시 이 건물은 이미 두 임차인과 명도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수공예품점 '씨앗'과 옷가게 '장남주우리옷'은 지난 2009년 4월과 2010년 2월 각각 장사를 시작했지만 그사이 건물주가 세 차례나 바뀌었다. 특히 이전 건물주인 남아무개씨는 지난해 5월 임차인들에게 가게를 비우라고 요구했고 이를 따르지 않자 명도 소송을 제기했다.

문제는 권리금이었다. 두 임차인은 이곳에서 계속 장사하게 해주거나 자신들이 들어왔을 때 냈던 권리금과 시설비 수준인 7천만 원씩 각각 보장해 달라고 건물주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대기업 프랜차이즈 커피점에 자리를 내줄 생각이었던 당시 건물주는 이를 거부했다. 지난 2015년 5월 13일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돼 계약기간 5년이 지나도 권리금을 보호받을 수 있었지만, 이들은 그해 4월 15일 계약기간이 끝나, 겨우 한 달 차이로 바뀐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이 와중에 삼청새마을금고가 명도 소송을 승계하면서까지 이 건물을 매입한 것도 이처럼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제 법원은 지난 2월 건물주 손을 들어줬고, 삼청새마을금고는 지난 6월 2일 강제집행 계고장, 지난 달 28일 강제집행 통고서, 지난 16일 강제집행 견적서를 잇달아 보내 임차인들을 압박했다.   

시세보다 싸게 산 새마을금고 "임차인 요구는 불법 부당"

'장남주우리옷' 김영리씨(왼쪽 두번째)와 수공예품점 '씨앗' 김유하씨(왼쪽 세번째)가 22일 오전 건물주 삼청새마을금고에서 강제집행된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 가게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장남주우리옷' 김영리씨(왼쪽 두번째)와 수공예품점 '씨앗' 김유하씨(왼쪽 세번째)가 22일 오전 건물주 삼청새마을금고에서 강제집행된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 가게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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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맞서 임차인들은 맘상모, 전국을살리기국민운동본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들과 손잡고 삼청새마을금고에 저항했다. 지난 6월 10일 삼청새마을금고 가회지점 앞에서 열린 투쟁선포식을 전후로 전국 새마을금고 지점 앞에서 동시다발적인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삼청새마을금고는 지난 6월 건물 입구에 붙인 설명서에서 "본 건 임차인들은 권리금으로 7천만 원씩 1억 4천만 원을 요구했고 당 금고는 법률상 허용되지 않는 자금 집행을 임의로 할 수 없어 이에 응할 도리가 없었다"면서 "당 금고는 서민금융기관으로서 엄격한 법률을 수행해야 하므로 불법 부당한 요구를 수용할 방법이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임차인들은 삼청새마을금고가 당시 명도 소송 때문에 유리한 조건으로 건물을 매입했고 세금 감면 혜택까지 받았다고 지적했다. 김영리씨는 "삼청새마을금고는 전 건물주가 매입한 23억 7500만 원보다 3억 7500만 원이나 싼 20억 원 정도에 매입했고, 금융기관이라고 7천만 원 정도인 취득세도 감면받았다"고 밝혔다. 김유하씨도 "북촌이 뜨면서 건물 시세가 매년 2억 원씩 오른 걸 감안하면 8억~9억 원은 싸게 산 셈"이라고 주장했다.

삼청새마을금고 관계자는 이날 강제 집행에 대해 "새마을금고 업무용 부동산은 취득세를 감면받지만 1년 안에 업무용으로 쓰지 않으면 감면 받은 취득세를 물어내야 한다"면서 "마침 가회동 지점 임대 기간도 끝나가고 있어 강제 집행을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삼청새마을금고가 시세 차익을 봤다는 임차인 주장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그 지역 상권이 예전보다 죽어서 매입 가격이 그만큼 떨어진 것이지 명도 소송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면서 "명도 소송 사실도 건물 매매 계약 이후에야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공시지가 2억 원 올랐는데 매매가는 4억 원 하락?

서울 대학로에서 이어 북촌에서 두번째로 쫓겨나게 된 '장남주우리옷' 주인 김영리씨가 22일 강제집행 현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 대학로에서 이어 북촌에서 두번째로 쫓겨나게 된 '장남주우리옷' 주인 김영리씨가 22일 강제집행 현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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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해당 건물과 토지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면 2010년 6월 첫 번째 매매 당시 22억 원이었던 거래가는 지난 2011년 3월 23억 7500만 원으로 2억 원 가까이 올랐지만 4년 뒤인 2015년 9월 거래 때는 오히려 20억 원으로 16% 정도 떨어졌다.

그런데 그사이 북촌로에 접한 105.8제곱미터 토지의 개별공지지가는 크게 올랐다. 2010년 1월 기준 제곱미터당 692만 원(7억 3213만 원)에서 2011년 1월 710만 원(7억 5118만 원) 2% 정도 올랐지만, 4년 뒤인 2015년 1월엔 888만 원(9억 3950만 원)으로 25%나 뛰었다. 4년 사이 개별공시지가만 2억 원 가까이 올랐는데, 정작 건물과 토지 매매가는 오히려 3억 7500만 원이나 떨어진 것이다. 2016년 1월 현재 개별공시지가만 해도 922만 원(9억 7547만 원)으로 1년 사이 4% 가까이 올랐다. 실거래가보다 보수적인 개별공시지가가 크게 올랐는데도 지역 상권이 죽어 매매가가 떨어졌다는 새마을금고쪽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삼청새마을금고는 임차인들의 협상 요구를 거부하면서도 법무대리인을 통해 합의금으로 임차인 요구에서 1억 원 모자란 4천만 원을 제안하기도 했다.

김유하씨는 "처음엔 이사비로 수백만 원 얘기하더니, 법무법인을 통해 언론 보도 직후 일방적으로 통보했을 뿐 대화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 "우리가 바란 건 협상을 통해 서로 견해 차이를 좁혀보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서민의 금융기관인 새마을금고는 언제나 상부상조정신에 입각하여 회원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위 향상과 지역 사회 개발을 통한 건전한 국민정신의 함양과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삼청새마을금고 설명서 중에서)

김영리씨는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에서 7년 동안 장사하다 권리금과 시설비 2억 5000만 원도 못 받고 쫓겨난 뒤 값싼 임대료를 찾아 이곳으로 왔다. 자신도 새마을금고 조합원이라는 김씨는 "5년 장사하면서 건물주 4명이 바뀌는 사이 임대료는 2배 넘게 올랐다"면서 "힘들게 임대료 내고 장사하는 두 가게를, 다른 곳도 아닌 서민의 금융기관이라는 새마을금고가 사설 철거 용역들까지 동원해 내쫓았다"고 분개했다.

김씨는 "이렇게 두 번씩 쫓겨나면 제 아무리 돈 많은 사람도 빚 때문인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면서 "우리가 가회동에서 쫓겨나더라도 더는 가회동 임차상인들이 쫓겨나지 않는 세상을 같이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태그:#북촌, #젠트리피케이션, #새마을금고, #장명주우리옷, #맘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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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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