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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 오는 9월 28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의 적용 대상인 관가에는 요즘 비상이 걸렸다. 법 시행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태스크포스 팀을 만들고, 법률 요약집을 만들어 배부하고, 윤리의식과 청렴교육을 한다고 법석이다.

명절 선물로 활용되는 농수특산물 제조업체도 추석을 앞두고 걱정이 크다. 올 추석은 법 시행 전에 들어 있어서 상관없다지만, 선물가격 5만 원 상한선에 맞춘 세트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한우, 굴비 등 가격대가 높은 제품의 고민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법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농어촌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행정기관과 지방의회, 농수축산물 관계기관과 생산자단체를 중심으로 법의 적용 대상에서 농수축산물을 빼거나, 가격대를 조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법이 규정하는 선물의 범위에서 농수축산물과 그 가공품은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광 법성포의 바닷가에서 건조되고 있는 굴비. 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선물가격 상한제로 판로에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품목이다.
 영광 법성포의 바닷가에서 건조되고 있는 굴비. 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선물가격 상한제로 판로에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품목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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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모싯잎송편 생산 업체에서 모싯잎송편 빚기가 한창이다. 추석을 앞두고 주문이 밀려드는 품목이다.
 영광의 모싯잎송편 생산 업체에서 모싯잎송편 빚기가 한창이다. 추석을 앞두고 주문이 밀려드는 품목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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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그동안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 상당수가 부정·부패와 연결됐던 게 사실이다. 직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뇌물을 받거나 갖가지 비리에 연루돼 옷을 벗었다. 심지어 비리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그 결과 우리 국민들이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의 말을 쉽게 믿지 못하게 됐다. '김영란법'은 여기에 근거를 두고 태어났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농수특산물을 생산하는 농어업인들이 덩달아 피해를 입게 됐다. 별도의 대책 마련이 필요할 때다.

다시 청렴이 떠오르는 이유다. 조선시대 청백리(淸白吏)의 상징이 된 아곡 박수량과 지지당 송흠 선생을 만나러 전라남도 장성으로 간다. 아곡은 38년, 지지당은 51년 동안 고위 공직자이면서 정치인으로 살았지만 청빈했다. 뇌물은커녕 밥 한 그릇, 술 한 잔 얻어 마시지 않았다. 부당한 뒷거래도 하지 않았다.

'청백리'의 상징이 된 박수량의 백비. 직위와 업적은 커녕 이름도 새겨져 있지 않다.
 '청백리'의 상징이 된 박수량의 백비. 직위와 업적은 커녕 이름도 새겨져 있지 않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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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의 상징이 된 아곡 박수량 선생의 묘와 백비. 아곡의 태자리인 전남 장성군 황룡면에 있다.
 '청백리'의 상징이 된 아곡 박수량 선생의 묘와 백비. 아곡의 태자리인 전남 장성군 황룡면에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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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량(1491∼1554)은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에서 태어났다. 24살 때 과거에 급제한 뒤 관직에 나서 고부군수, 병조참지, 동부승지, 호조참판, 예조참판, 형조참판, 우참찬, 좌참찬, 호조판서 등을 지냈다. 그럼에도 겨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살았다.

아곡은 세상을 뜨면서도 "묘를 크게 쓰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 것"을 유언했다. 형편이 어려워 장례를 치를 비용도 없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명종이 장례비와 함께 비석으로 쓸 돌 하나를 하사했다. 그러고선 "어설픈 글로 비문(碑文)을 새기는 게 오히려 아곡의 생애에 누(累)가 될 수 있다"면서 "비문 없이 그대로 세우라"고 했다. 지금 청백리의 상징이 된 백비(白碑)다.

비석에는 고인의 직위와 업적은 물론 이름 한 글자도 새기지 않았다. 직사각 모양의 대리석 위에 비신을 올렸을 뿐이다. 그렇다고 대충 세워 놓지도 않았다. 잘 다듬어 놓았다. 이름 하나 남기지 않아서 더 귀하게 다가오는 비석이다. 묘비 주변도 늘 깔끔하게 단장돼 있어서 숙연해진다.

지지당 송흠의 관수정. 관직에서 물러난 지지당이 고향에 내려와 지은 정자다.
 지지당 송흠의 관수정. 관직에서 물러난 지지당이 고향에 내려와 지은 정자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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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당 송흠의 묘와 묘비. 주변에 잡초가 우거져 있다.
 지지당 송흠의 묘와 묘비. 주변에 잡초가 우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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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흠(1459∼1547)은 장성군 삼계면 주산리에서 태어났다. 34살에 급제해 나주목사, 승정원 승지, 담양부사, 전라도관찰사, 이조판서, 병조판서, 우참찬, 판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무려 51년 동안 관직생활을 했지만 처자가 굶주림을 면할 정도로 살았다.

지지당은 백성들을 내 처자처럼 사랑하며 모든 일을 정직하고 공평하게 처리했다. 재물도 탐내지 않았다. 벼슬을 하는 동안 청백리로 일곱 차례 선정됐다. 부모에 대한 효에도 극진해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벼슬을 그만두고 3년상을 지냈다. 백수(白壽)가 된 어머니가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하자, 77살의 고령에도 불구 관직을 그만두고 3년 동안 어머니의 병간호를 했다.

판중추부사를 끝으로 고향으로 내려온 지지당은 관수정(觀水亭)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맑은 물을 보며 나쁜 마음을 씻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높은 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말고, 아랫자리에 있어도 결코 문란하지 않으며, 절대 남과 다투지 않아야 한다'는 그의 생활철학이 묻어나는 누정이다.

지지당 송흠의 묘소로 가는 길. 잡목이 우거져 있어 입구를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지지당 송흠의 묘소로 가는 길. 잡목이 우거져 있어 입구를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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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당의 묘지 주변은 그의 생활철학과 달리 지금 문란하다. 잡풀과 잡목으로 우거져 있다. 마을에서 묘지로 가는 길의 입구도 이리저리 얽힌 작은 나무들로 인해 길목을 찾기 어렵다. 어디가 길이고 숲인지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그렇다고 청백리의 상징과 정신이 퇴색한 건 아니다. 잡초 우거진 숲에 잠든 그의 청빈한 삶은 지금도 또렷하게 살아있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법 적용 대상이 되는 공직자와 정치인, 언론인 등에게 꼭 한 번 찾아보도록 권할 만한 곳이다. 그리고 본받아야 할 아곡 박수량과 지지당 송흠의 삶이다.

말끔하게 단장돼 있는 아곡 박수량의 묘지. '청백리'를 찾는 후대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는 곳이다.
 말끔하게 단장돼 있는 아곡 박수량의 묘지. '청백리'를 찾는 후대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는 곳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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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수량백비, #지지당 송흠, #아곡 박수량, #김영란법, #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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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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