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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와 전국가맹점주협의회연석회의, 전국을살리기국민운동본부,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그리고 참여연대가 '나는 자영업자다' 공모를 띄웠습니다. 자영업자의 절절한 속사정, 자영업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주세요. [편집자말]
저는 글을 잘 쓰지 못합니다.  그래도 한번 써봅니다.

결혼 후 5년간 직장을 휴직하면서 육아에 전념하다가 다기 일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이와 경력 단절로 직장을 잡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아이는 아직 초등학교 입학 전이고 이래저래 직장의 문턱은 너무 높았지요. 남편의 수입으로 대출금에, 앞으로 들어갈 아이 교육비 등을 생각하며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남편과 합의 하에 점포 하나를 열고자 3개월을 밤낮으로 시장조사를 했습니다. 본사의 추천도 받아가면서 내 점포 하나 차려보고자 무던히 노력해 편의점을 하나 열었습니다.

당시 경쟁사였던 □사와의 계약을 추진했지만, 해당 프랜차이즈의 오픈 규정에 미치지 못하는 계약이 무산됐습니다. 부랴부랴 OOO 편의점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예상 매출은 80만 원이었습니다. 오픈 당시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 '그래, 경력단절 여성이 취직해서 100만~150만 원 받는다는데 이 조건이면 괜찮지 뭐' 하는 마음을 시작했습니다.

죽어라 일했습니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나 싶었습니다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죽어라 일만 했습니다.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죽어라 일만 했습니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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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6개월은 투자를 한다고 생각하고,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주말도 없이 일을 했습니다. 생각보다 재미 있었어요. 주변에 가로등도 없고 지나다니는 차도 없었지만, 원룸 단지 인근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희망을 갖고 죽어라 일했습니다. 그사이 어린 아들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내 점포의 간판 불빛으로 도로가 환해졌습니다. 또 지나가는 차도 많아지고 건물도 하나둘씩 올라가는 호재를 만났습니다. 편의점을 열면서 대출금도 조금씩 갚아나가고, 아이 학원비를 대고 가끔 외식도 즐기는 삶을 살게 됐습니다.

소소한 기쁨을 누리면서 5년 만기를 앞두고 재계약을 할 시점에 일이 터졌습니다. 경쟁사에서 재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자신들의 건물로 이전 입주하면서 계약하자고 수시로 찾아와 협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전시키고자 하는 곳은 턱없이 높은 임대료로 이름 난 곳이었씁니다. 편의점을 죽어라 운영해도 임대료만 내게 되는 형국이었습니다. 그래서 큰 마음을 먹고 현재 점포를 연 곳에서 재계약을 했습니다. 물론, 경쟁사의 편의점 개점 압박이 있었기에 재계약 조건도 예상했던 것에 비해 반토막이 난 상태였습니다. 그나마 지원금을 받고 재계약을 한 것을 위안 삼으면서 다시 한 번 발돋움을 꿈꿨습니다.

시궁창 인생의 시작

매출 향상과 재계약 지원금으로 대출금은 갚았지만, 결국 문 앞에 경쟁사 편의점과 제가 계약한 대기업의 마트가 문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시궁창 인생이 시작됐습니다.

경쟁사 편의점은 그렇다 쳤습니다. 그런데 같은 대기업의 마트 오픈은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해당 대기업은 '편의점과 마트는 법인체가 다르다'면서 오픈에 전혀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법을 모르는 저는 '그래, 노력하면 길이 보이겠지!' 하면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습니다.  버티기보다는 계약을 해지할 수 없으니 마이너스를 받아가면서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남편에게 말도 못하고 그냥 운영하고 있습니다.

'좋아지겠지.' '괜찮아지겠지.' 재계약하고 벌써 빚이 3000만 원으로 뛰었습니다. 1년에 1500만 원 정도씩 빚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계약 만료까지는 아직 3년이나 남았는데...

처음 대출을 받아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다시 빚을 낳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이 있기 전까지 저는 제가 '자영업자'인 줄 알았답니다. '내 점포니까 내 마음대로 융통성 있게 운영하면 잘 되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생기다 보니 본사라는 큰 바위가 경쟁점 오픈 만큼이나 무거운 짐이었네요.

엄청난 위약금에 지쳐 스스로 생을 포기했다는 기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돕니다. 그런 뉴스는 왜 이렇게 잘 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어려운 시국에 본사에 내는 로열티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여기에 진상 고객들의 갑질에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 신고를 밥 먹듯이 합니다. 동종업에 종사하는 경영주들과 대화하다 보면 '나는 누구지?'라는 질문을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하게 됩니다.

나는 경영주일까요? 나는 알바일까요? 나는…, 사람일까요?

경쟁사는 사지에서 가게를 열라고 협상해왔습니다. 이럴 거절하고 재계약했더니... 더 어이없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경쟁사는 사지에서 가게를 열라고 협상해왔습니다. 이럴 거절하고 재계약했더니... 더 어이없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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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선 배우자의 눈치 아닌 눈치를 보게 됩니다. 점포에서는 알바 눈치도 보게 됩니다. 클레임의 뜻도 모른 채 클레임을 거는 진상 고객의 눈치까지 봅니다. 이 진상 고객들은 때론 성적 농담을 서슴지 않습니다. "한 번만 더 하면 신고하겠다"라고 말하면 손까지 치켜 올리면서 머리를 때릴 것 같은 동작으로 위협을 가하기도 하더군요. 참 웃지 못할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제가 자영업자냐고요? 분명 서류를 보면 저는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자영업자, 사업자 등록증을 발부받은 자영업자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알바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부터 손을 써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자영업자입니다.

법이 개선되지 않고 최저생계도 책임져주지 않는 프랜차이즈 편의점. 점포 오픈과 관련한 법적 장치가 개선되지 않는 이상, 목숨을 포기하는 프랜차이즈 자영업자들의 수는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어디에도 프랜차이즈 편의점 자영업자를 위한 법률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기업들은 자영업자들이 어렵게 일궈놓은 상권에 숟가락, 아니 국자로 이득을 퍼먹고 있습니다.

우리 프랜차이즈 자영업자들은 앞으로 어떻게 이런 난관을 헤쳐나가야 하는 걸까요? 저는 지금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공모 '나는 자영업자다' 응모글입니다. 이 글을 쓴 이정숙님은 편의점 운영 7년 차 점주입니다.



태그:#자영업, #프랜차이즈,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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