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매몰된 재난을 다룬 영화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성훈 감독의 <터널>이다. <끝까지 간다>를 통해 관객들에게 끝없는 긴장을 유지하도록 만들었던 김성훈 감독이 이번에는 <터널>을 통해 대한민국의 무너진 안전을 제대로 다루었다.

 영화 <터널>은 126분의 시간을 지나 나름의 결말로 끝을 냈다. 하지만, <터널>이 닮은 세월호 참사는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결말을 내지 못했다. 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고 싶다. "잊지말자, 세월호에는 아직 사람이 있다"

영화 <터널>은 126분의 시간을 지나 나름의 결말로 끝을 냈다. 하지만, <터널>이 닮은 세월호 참사는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결말을 내지 못했다. 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고 싶다. "잊지말자, 세월호에는 아직 사람이 있다" ⓒ (주)쇼박스


처음에는 보기 무서웠고 반갑지 않았다. <터널>이 개봉함과 동시에 세월호 참사가 연상된다는 이야기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팠던 기억들이 다시 되살아날까 무서웠고 유가족들은 얼마나 더 괴로울까 걱정되었다. 영화를 보고 지난 참사를 떠올리게 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아프다고 했던 감독의 말처럼 재난과 관련된 영화가 상영되는 것은 (특히 인재와 관련된 영화) 수많은 억울한 유가족들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에서 너무 아픈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나서 잘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인물로 하정우라는 배우를 캐스팅한 것이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테러 라이브>를 1인극 수준으로 완벽하게 이끌었던 하정우는 <터널>에서도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면서 심각함과 웃음 사이에서 적절한 줄타기를 선보인다. 그를 통해 자연스럽게 터지는 실소는 재난 영화인 <터널>을 메세지와 웃음 둘다 챙기는 훌륭한 상업영화로 만들어낸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고 제대로 전달해낸다는 것,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강점이다.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정수에게 전화를 걸어 자극적인 소재만 찾아되거나 여기저기서 플래시를 터뜨리기 바쁜 언론의 모습은 기시감이 들 정도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언론은 학생들의 보험비를 계산하거나 유병언이 먹은 통닭의 종류를 분석하는 기사를 내보내는 등의 믿기 힘든 행동을 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정수에게 전화를 걸어 자극적인 소재만 찾아되거나 여기저기서 플래시를 터뜨리기 바쁜 언론의 모습은 기시감이 들 정도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언론은 학생들의 보험비를 계산하거나 유병언이 먹은 통닭의 종류를 분석하는 기사를 내보내는 등의 믿기 힘든 행동을 했다. ⓒ (주)쇼박스


김성훈 감독은 <터널>이 세월호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가 아니라고 했다. 원작이 세월호 참사 이전에 존재했다고 하니 감독의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있은 이후로 우리는 재난영화를 보면서 세월호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세월호와 상당히 닮았다. 정확히 말하면 대한민국의 반복되는 참사와 닮았다.

정수(하정우 분)은 뜬금 없이 무너진 터널에 갇히게 된다. 아무런 전조현상도 없다. 갑작스럽게 터널이 무너지고 정수는 갇힌다. 세월호 참사도 그랬다.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이라 믿고 떠난 수학여행의 길, 제주도에서 기다릴 행복한 삶을 꿈꾸던 가족 등은 뜬금 없이 침몰되는 세월호 안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 304명의 우주가 그렇게 사라졌다.

무너진 터널과 세월호 참사에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표면적으로 터널은 부실공사로 인해 생겼고 세월호는 오래된 배를 무리하게 증축하고 과적하는 과정에서 침몰하게 되었다. 구조를 방해한 잘못된 설계도는 적재된 화물량이 조작된 세월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둘 다 안전보다 돈을 중시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수많은 참사마다 반복되어 들려오는 이유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정수에게 전화를 걸어 자극적인 소재만 찾아되거나 여기저기서 플래시를 터뜨리기 바쁜 언론의 모습은 기시감이 들 정도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언론은 학생들의 보험비를 계산하거나 유병언이 먹은 통닭의 종류를 분석하는 기사를 내보내는 등의 믿기 힘든 행동을 했다.

정치인들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정수의 부인 세현(배두나 분)의 손을 잡고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인증을 하는 모습이나 구조 방법 브리핑에 집중하는 모습은 세월호에서도 그랬지만 참사때마다 반복되는 대한민국의 클리셰나 마찬가지다. 뒤늦게 나타나 막연하고 무책임한 지시만 내리는 장관(김해숙 분)의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공허한 발표는 세월호 참사 당시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대통령의 모습과 겹쳐진다. 결과는 어땠나. 최선을 다하겠다는 구조도, 진상규명도 제대로 된 것이 없이 끝났다. 유가족에게 세월호는 아직도 진행중이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대통령과 정치인들에게 세월호는 이미 끝난 일처럼 취급되고 있다. 세월호 이전의 참사도 마찬가지다. 삼풍백화점, 대구 지하철 참사, 지하철 스크린 도어 사고 등 많은 참사를 특별한 대책이나 변화 없이 지나쳐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소름 돋는 장면은 국민의 65%가 정수의 구조를 포기했다는 장면이다. 국민들은 이제는 지겹다며 세현에게 정수를 포기하는 것에 동의하도록 만든다. 단지 영화였다면 좋았을테지만, 우리는 이미 아이들이 죽은 이유를 알고 싶다는 유가족에게 지겹다고 그만하자는 사람들, 시체로 장사하지 말라는 사람들의 무관심과 오해의 폭력을 지켜보았다. 다들 조용하는데 너는 왜 시끄럽게 떠드냐는 식의 차가운 시선은 침묵을 종용하고 재난의 반복을 묵인한다.

<터널>은 신선하지 않고 독창적이지 못한 영화이다. 오히려 클리셰로 범벅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클리셰는 영화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클리셰다. 세월호와 닮은 이 영화는 대한민국에서 참사가 반복되는 이유로 명확하게 꼬집고 있다.

희망이 있다면 사람이 아닐까

 1명의 목숨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대경의 모습은 생명의 무게를 숫자로 가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게 한다.

1명의 목숨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대경의 모습은 생명의 무게를 숫자로 가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게 한다. ⓒ (주)쇼박스


세현에게 이제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들, 경제적인 피해규모를 따지며 도룡뇽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 등 무관심하고 사람의 생명보다 돈을 중시하는 풍토가 이 영화에는 잘 드러나있다. 또한, 자극적인 소재만 찾는 언론의 모습과 보이는 것만 중시하는 정치인들까지 등장하며 관객들이 탄식을 뱉도록 한다.

하정우의 열연으로 만들어지는 웃음에도 가려지지 않는 참혹한 상황들은 자꾸만 세월호와 다른 참사들을 떠올리게 하며 관객들을 안타깝게 만든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희망으로 뽑을 수 있는 한가지가 있다. 바로 사람이다.

65%의 국민들이 정수의 구조를 포기하자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책임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책임지지 않아도 될때 중요한 문제도 쉽게 결정하고는 한다.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정수의 생명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이익을 택하도록 만든 것이다.

아무도 정수의 목숨을 책임지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단 한명, 책임지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대경(오달수 분)이다. 모두가 정수를 포기한 상황에서도 그는 기다리라는 자신의 말을 책임지기 위해 끝까지 정수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한다. 1명의 목숨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그의 모습은 생명의 무게를 숫자로 가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게 한다.

정수의 모습도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언제 구조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수는 생명과도 같은 물을 다른 피해자인 미나(남지현 분)에게 나눠준다. 심지어 강아지인 탱이에게도 나눠준다. 비록 큰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의 행동은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결국, 사람이 희망이다. 무너진 안전 시스템 속에서 조금이나마 사람을 살리고자 했던 것은 바로 생명의 소중함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는 <터널>에서 연상되는 세월호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민간잠수사분들은 정부의 허술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구조하려고 했다. 또한, 구조의 희망이 사라진 이후에도 실종자들을 찾기 위해 계속 잠수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민간잠수사들은 부작용을 겪고 삶이 망가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명이라도 더 구조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아직 세월호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영화 <터널>은 126분의 시간을 지나 나름의 결말로 끝을 냈다. 하지만, <터널>이 닮은 세월호 참사는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결말을 내지 못했다. 진상규명을 위해 설치된 세월호 특조위는 늦은 시행령, 늦은 예산 배정 등으로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도 못한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이에 대한 관심보다 사드 배치, 건국절 논란 등으로 싸움하기에 바쁘다. 정부와 국회가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희망을 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사람이다. 세월호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고 믿는 사람들, 억울하게 죽은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함께하고 행동할 때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한마디를 하고 싶다.

"잊지말자. 세월호에는 아직 사람이 있다."

터널 하정우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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