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듯이, 누구나 가슴에 한때 사랑했던 존재가 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배우, 내가 사랑했던 노래, 내가 사랑했던 감독, 내가 사랑했던 드라마…. 그런가 하면 노래 한 곡, 또는 드라마(영화) 한 편 때문에 인생이 바뀐 분들도 있을 겁니다. 첫사랑만큼이나 우리를 설레게 했던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1782년에 작곡가 파이지엘로가 발표한 <세비야의 이발사>의 속편에 해당하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가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이른 전편 <세비야의 이발사>와 달리 백작의 바람둥이 행각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담아내고 있다. 이야기를 간략히 요약하면, 백작 부인의 하녀 수잔나(백작의 하인 피가로와 결혼을 앞둔)에게 흑심을 품은 백작이 피가로와 백작 부인, 수잔나의 계략에 빠져 결국 망신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계급적 권력을 이용해 제 욕심을 채우려 했던 백작을 풍자하고 비판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신분제도에 도전하는 정치적 의도가 엿보인다. 그 때문인지 오페라는 초연 당시 국왕과 귀족 계층을 분개하게 해 상연이 금지되기도 했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3막에서 편지의 이중창인 '저녁 바람 부드럽게(Che soave zeffiretto)'는 백작부인이 차후 수잔나로 변장해 남편을 정원으로 불러내기 위해 수잔나에게 편지를 받아쓰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백작부인이 부르는 대로 수잔나가 한 구절씩 따라 부르며 받아 적기에 가사가 두 번씩 반복된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선율의 이 여성 이중창은 듣기만 해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데, 영화 <쇼생크 탈출> (1994년 개봉, 2016년 재개봉)에 삽입되어 음악의 놀라운 힘을 보여주는 동시에 영화의 주제와 긴밀하게 얽힌다. 

인간의 정신적 자유와 희망을 노래하다

 '저녁 바람 부드럽게'라는 곡은 후에 영화 <쇼생크 탈출>에 삽입된다.

'저녁 바람 부드럽게'라는 곡은 후에 영화 <쇼생크 탈출>에 삽입된다. ⓒ 더픽쳐스


스티븐 킹의 소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원작의 내용을 충실하게 구현해 탄탄한 서사 구조와 극적 반전(이미 제목이 스포일러가 된 셈이지만)의 쾌감, 명확한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보기 드문 명작이다. 개봉 당시(1994년) 흥행에는 실패했으나 지난 20여 년간 대중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아온 이 영화는 지난 2월에 한국에서 재개봉되기도 했다.

몇 가지 정황 증거만으로 아내와 불륜남을 살인했다는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주인공 앤디(팀 로빈스)는 누가 봐도 감옥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기존 수감자인 레드(모건 프리먼, 영화 속 화자)의 시선에 포착된 앤디는 감옥 안의 다른 죄수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마치 감옥에 갇혀있는 게 아니라 잠시 산책을 나온 사람처럼 여유로운 태도와 조용한 분위기는, 영화 후반부에서 레드가 말하듯 너무도 찬란한 깃털을 가져서 새장 속에 갇힐 수 없는 새를 연상케 했다. 앤디는 그만큼 자유로운 인간이었다.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면서도 자신을 괴롭히는 보그스 패거리들에 맞서 끊임없이 저항하는 모습에서, 간수들의 세금 신고를 대신해 주며 죄수가 아닌 본래의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감옥 안 도서관을 확장하기 위해 몇 년 동안 주에 끊임없이 지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는 모습에서 우리는 앤디의 자유로운 정신을 읽어낼 수 있다. 감옥은 그에게 억압의 공간이었으나 그의 정신성을 무력화시키진 못했다. 이러한 앤디의 정신성이 가장 극대화된 장면이 바로 교도소 전체에 오페라(<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의 이중창인 '저녁 바람 부드럽게')가 울려 퍼지는 장면이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3막 중 편지의 이중창인 '저녁 바람 부드럽게(Che soave zeffiretto)'가 교도소 전체에 울려 퍼지고 죄수들은 음악을 통해 일순간이나마 자유로움을 맛본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3막 중 편지의 이중창인 '저녁 바람 부드럽게(Che soave zeffiretto)'가 교도소 전체에 울려 퍼지고 죄수들은 음악을 통해 일순간이나마 자유로움을 맛본다. ⓒ 더픽쳐스


앤디가 6년 동안 보낸 편지에 시달린 주 정부에서 도서관 보조 기금과 잡다한 물품을 보내왔고, 그중에 '피가로의 결혼' LP판을 찾아낸 앤디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교도소 전체에 이 아름다운 오페라가 울려 퍼지게 한다. 음악을 들은 감옥 안의 모든 죄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의 가사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지만 음악을 듣는 순간 그들은 이곳이 감옥이라는 사실도, 자신들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도 잊을 수 있었다. 이는 레드의 내레이션을 통해 잘 드러난다.

난 지금도 이탈리아 여자들이 뭐라고 노래했는지 모른다. 사실은 알고 싶지 않다. 모르는 채로 있는 게 나은 것도 있다. 난 그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가슴이 아프도록 아름다운 얘기였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 목소리는 이 회색 공간의 누구도 감히 꿈꾸지 못했던 하늘 위로 높이 솟아올랐다. 마치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우리가 갇힌 새장에 날아 들어와 그 벽을 무너뜨린 것 같았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감옥에 갇혀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굴종의 삶을 사는 죄수들에게 앤디는 음악을 통해 일순간이나마 인간으로서의 본질적인 갈망,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 것이다. 소장과 간수들이 달려와 방문을 두드리며 음악을 끄라고 소리치지만 앤디는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볼륨을 높인다. 이 장면은 아직도 볼 때마다 가슴 뭉클함과 동시에 통쾌함을 선사한다.

앤디의 자유로운 정신과 음악의 조응은 앞으로 벌어질 앤디의 활약상에 기대감을 싣는다. 편지의 이중창 '저녁 바람 부드럽게'의 내용이 백작을 속이기 위해 백작 부인과 하녀 수잔나가 계략을 꾸미는 내용을 담고 있듯이 앤디 역시 차후 자신을 불법적인 돈세탁의 수단으로 삼은 소장을 어떻게 속이고 감옥을 벗어날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결국 교도소 전체에 울려 퍼진 오페라는 감옥으로도 가둘 수 없는 인간의 정신적 자유를 체감하게 한 동시에 끈질기게 부여잡은 희망과 정신성으로 감옥 내의 모두를 속이고 구속과 억압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는 한 인간의 승리를 암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영화에서 감옥이라는 물리적 억압의 공간은 앤디로 대변되는 인간의 정신적인 자유를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장치였다. 이는 교도소 내에 음악을 튼 죄목으로 2주일간 독방에 갇혀있던 앤디가 음악은 자신 안에 존재하고, 그것은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는 거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이 영화는 음악을 통해 우리의 정신과 영혼의 자유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길듦'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50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하면서 철창 안의 감옥이 익숙해진 브룩스는 가석방 후 달라져 버린 바깥세상과 갑자기 찾아온 자유를 감당하지 못한 채 두려움을 안고 자살했다. 구속과 억압에 길든 그는 오랫동안 새장 같은 감옥에 갇혀있던 까닭에 자유의 날개를 펼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레드는 달랐다. 이전 가석방 심사에서 앵무새처럼 자신이 교화되었다고,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되었다고 반복해서 말해왔던 그는 앤디의 탈옥 후 가석방 심사에서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후회를 느끼지 않는 날이 없소. 그래야 한다고 당신이 강요했기 때문은 아니오. 옛날의 나를 돌아보지. 젊은 바보 녀석이 끔찍한 죄를 저지른 거야. 그놈과 말하고 싶어. 정신 차리라고 하고 싶어. 지금 현실을 말해주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지. 그 젊은 녀석은 오래전 없어지고 이 늙은 놈만 남았어. 그렇게 살 수밖에 없어. 교화라고? 그건 다 헛소리야. 자넨 부적격 도장이나 찍고 내 시간 그만 뺏어. 사실대로 말하자면... 난 상관 안 해."

가석방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인 레드에게 가석방 승인이 떨어진 건 꽤 역설적이다. 앤디로 인해 레드의 내면에 싹트기 시작한 자유에의 갈망이 그를 바깥세상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브룩스와 같은 방에 머물며 같은 일을 하던 레드는 브룩스와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40년 동안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허락받아야 했던 감옥 안의 생활에 그 또한 길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깥세상에서 '두려움 속에 사는 건 끔찍한 일'이라고 여기는 레드는 감옥 안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앤디와의 약속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기다리겠다는 앤디의 메시지를 발견한 레드는 자유와 희망을 안고 여행을 떠난다. 멕시코에 있는 '지후아타네호'로, 앤디가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

 멕시코 지후아타네호에서 만난 앤디와 레드.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이 장면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멕시코 지후아타네호에서 만난 앤디와 레드.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이 장면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 더픽쳐스


영화 말미 화면 가득 펼쳐진 모래사장과 태평양 푸른 바다의 물결은 아직도 기억 속에 선연하다.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시릴 만큼 감동을 자아낸다. 다소 몽환적인 이 풍경이 우리의 가슴을 적시는 건 영화가 그려내는 인간다움의 본질을 우리가 긍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우리는 많은 것들에 길들곤 한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여우와 왕자의 이야기를 통해 관계에서 '길듦'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지만, 이 영화에서 길든다는 건 우리가 뭔가를 스스로 선택하는 주체로서가 아닌, 정해진 규칙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객체로 전락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브룩스가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가 감옥에서 보낸 50년의 세월이 그를 수동적인 객체로밖에 살 수 없도록 길들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길듦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무엇에 길들어 있을까? 부모? 혹은 학교? 직장이나 사회? 감옥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나? 아마 대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를 통해 앤디가 들려주는 자유와 희망의 노래가 아직도 우리의 가슴을 파고드는 것은.

 마침내 감옥에서 탈출해 자유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앤디. 그는 지금도 우리에게 자유와 희망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마침내 감옥에서 탈출해 자유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앤디. 그는 지금도 우리에게 자유와 희망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 더픽쳐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에서.

덧붙이는 글 내가 사랑한 영화 <쇼생크탈출>
쇼생크 탈출 팀 로빈스 모건 프리먼 프랭크 다라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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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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