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듯이, 누구나 가슴에 한때 사랑했던 존재가 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배우, 내가 사랑했던 노래, 내가 사랑했던 감독, 내가 사랑했던 드라마…. 그런가 하면 노래 한 곡, 또는 드라마(영화) 한 편 때문에 인생이 바뀐 분들도 있을 겁니다. 첫사랑만큼이나 우리를 설레게 했던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1997년작 영화 <콘택트>. 앨리너 박사(조디 포스터)와 팔머 조스(매튜 매커너히)는 각가 과학과 종교를 대변한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1997년작 영화 <콘택트>. 앨리너 박사(조디 포스터)와 팔머 조스(매튜 매커너히)는 각가 과학과 종교를 대변한다. ⓒ 워너브라더스

인간은 끝없이 새로운 지식을 탐구한다. 지식의 원형은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인간이 더는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없게 했다. 자아를 인식한다는 것은 곧 자연에서 자신을 떼어놓고 생각한다는 것으로써, 바로 그 순간 자연과의 분리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떨어져 나온 인간은 부조화와 불확실성 속에서 불안에 빠진다.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철학, 종교, 과학이라 이름 붙인 지식이 쌓여나갔지만, 답은 없고 자연 상태와의 분리는 오히려 심화한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에서>의 유명한 오프닝 장면은 이를 형상화한다. 호모 에렉투스로 추정되는 유인원은 최초의 도구(로 상정한) 뼈 몽둥이를 하늘 높이 던져 올린다. 이 뼈 몽둥이가 우주 공간으로 날아들어 우주탐사선과 교차하는 장면은 인간의 지식 발달사가 모두 하나의 질문의 연장선에 있으며 우리는 아직도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인간은 애초에 답이 없는 질문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일까?

답은 있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지식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갈망과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이 사고(思考)에 의해서는 완전히 해결될 수 없다고 봤다. 오로지 타인과의 합일을 경험하는 것만으로 '나는 누구인가'는 질문에 답할 수 있으며, 합일의 방법은 두말할 것 없이 사랑이라고 말이다. 결국, 세상의 모든 지식은 저 높은 우주 공간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깊고 깊은 '나'와 내 '사랑'에 있다.

'나는 누구인가' 질문을 던지는 두 명의 구도자

 자스 신부는 진리 추구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있다.

자스 신부는 진리 추구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있다. ⓒ 워너브라더스


영화 <콘택트>는 인간이 던진 근원적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는 두 명의 '구도자'를 통해 그 질문을 대신한다. 먼저 천문학자인 앨리너 애로웨이 박사(조디 포스터)는 우주에서 오는 메시지를 포착하려는 욕망에 생을 바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녀는 진리탐구의 도구인 과학과 그 방법론을 신봉하고 그 분야에서 능력도 인정받는다. '신을 믿느냐?'는 질문에 '(과학적으로) 증명할 데이터가 없다.'고 대답할 정도다.

끝없이 과학적 진리를 추구한 그녀가 어느 날 외계로부터 전해진 전파를 가장 먼저 포착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과학적 발견'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미국 대통령의 과학 기술 고문인 데이비드 드럼린(톰 스커릿)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그녀를 '사막의 여사제'라고 불렀다.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성공할 거라는 기약도 없는 과학적 연구를 위해 뉴멕시코의 전파안테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앨리너를 조롱하기 위함이다.

우주 전파 수신에 대한 앨리너의 맹목적인 집착은 '과학적'이라는 표현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그녀는 자신을 낳고 죽은 어머니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는 미련과 천체 물리학자의 꿈을 심어주고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친 나머지 외계로부터 온 전파에 집착하게 된다. 뉴멕시코에서 우주 메시지를 수신하는 데 성공한 것은 과학적 지식 때문이라기보다 마치 신앙과도 같은 개인적 집착 때문이다.

결국, 우주를 향한 앨리너의 집착은 동시에 심연을 향한 천착이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를 낳아준 이들은 어디로 갔고 나는 그들을 따라갈 것인가. 인간이 유사 이래 던져온 근원적 질문에 그녀 또한 동참하는 것이다. 앨리너가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그녀는 마치 신의 발자취를 좇는 종교인과도 같은 구도자의 자세로 우주를 탐구하고 있었다.

 같은 진리를 추구하는 두 사람의 사랑은 답이 된다.

같은 진리를 추구하는 두 사람의 사랑은 답이 된다. ⓒ 워너브라더스


또 한 명의 구도자는 팔머 조스 신부(매튜 매커너히)다. 그는 인간의 진리보다 과학 자체만을 맹신하는 자들에 반대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주 공간을 향한 앨리너의 과학적 탐구심이 진리를 추구하는 자신의 길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신앙을 갖게 된 계기는 오히려 '비종교적'이다. 그는 "누워서 하늘을 보는데 무언가를 느꼈고, 생전 처음 죽는 것조차 두렵지 않았다. 그 느낌은 하느님이었다"고 고백한다.

조스 신부의 고백은 영적일지언정 어느 한 종교의 교리와 신을 모시는 인간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가 바라본 하늘은 무엇이건 채워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넓고 깨끗하다. 그 하늘에는 다른 종교와 교리는 물론, 철학과 과학마저도 들어찰 수 있다. '나는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는 가운데 각자의 이름으로 정립되어 온 서로 다른 지식이 그의 하늘 위에서는 하나가 될 수 있다. 조스 신부에게 '종교'란 인간이 끝없이 묻고 답을 구하는 자신만의 방법일 뿐 다른 모든 것을 억누를 만큼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이는 대통령의 종교 고문인 조스 신부가 우주탐사선 조종사를 선발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우주에서 전달된 메시지에는 우주탐사선의 설계도가 들어 있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탐사선을 타고 전파의 발원지인 베가성으로 갈 조종사를 선발하게 된다. 선발이 유력했던 앨리너는 면접 과정에서 조스 신부에게 "신을 믿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과학적 방법론을 맹신하는 앨리너는 "(신의 존재를)입증할 데이터가 없다."고 대답하고 선발에서 탈락한다.

조스 신부가 앨리너를 '기독교의 불신자'로 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종교를 믿는데, 그러니까 서로 다른 방법으로 '나는 누구인가'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앨리너가 과학의 잣대로 삶에 대한 타인의 질문을 묵살하는 것을 염려한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사고를 통해 하나의 답을 내릴 수 없다면 최대한 다양한 '가설'을 인정하는 게 조스 신부의 방식이다.

사랑은 무언의 답변을 받아 온 몸을 떠는 일이다

 그녀는 외계에서 보낸 전파에 생을 다해 집착한다.

그녀는 외계에서 보낸 전파에 생을 다해 집착한다. ⓒ 워너브라더스


영화가 과학과 종교의 해묵은 헤게모니 다툼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두 구도자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두 사람은 "(우주의 수백만 개의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겠죠"라는 조스 신부의 말과 함께 사랑에 빠진다. 천문학자의 야망을 드러낸 말이기도 하지만 밤하늘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느낀 신앙인의 가슴 뜨거운 신앙 고백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두 사람이 같은 해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들이 던진 질문에 답하는 방법은 결국 '사랑'하는 것이다. 조스 신부는 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느냐고 묻는 앨리너에게 "아버지를 사랑했소? 그러면 증명해 봐요"라고 말한다. 사랑은 내밀하고 개인적이며 내 존재 그 자체를 무언의 질문으로 던지고, 역시 존재 그 자체와도 같은 무언의 답변을 받아 온몸을 떠는 일이다. 그건 어떤 상황에서도 증명할 수는 없지만 결국에는 '내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일이다.

 베가성까지 닿을 최첨단 우주탐사선은 앨리너의 명상을 이끌어내기 위한 공간과도 같다.

베가성까지 닿을 최첨단 우주탐사선은 앨리너의 명상을 이끌어내기 위한 공간과도 같다. ⓒ 워너브라더스


우여곡절 끝에 우주탐사선에 탑승하여 베가성에 도착한 앨리너를 기다리는 것도 사랑이다. 베가성의 모습은 어렸을 때 아버지와 상상했던 '펜서 콜라'의 해변이다. 거기서 기다리는 '외계인'은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앨리너는 "다른 사람들도 이걸(베가성) 봐야 한다"고 말하지만, 외계인은 "수억 년 동안 이렇게 해 왔다, 집으로 돌아가, 그리고 계속 나아가라"고만 대답한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우주의 어떤 공간일까 아니면 그녀의 심연일까.

베가성까지 26광년의 거리를 탐사한 18시간은 그러나 지구에서 찰나의 시간이었다. 탐사선은 그저 바다로 떨어졌을 뿐이고 사람들은 아무도 앨리너가 경험한 것들을 보지 못했다. 깨어난 앨리너는 우주를 탐사했다고 주장하지만 아무런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한다. 게다가 세상은 그녀를 '사기꾼' 취급하며 청문회에 회부한다. 이제 그녀는 사랑과 신앙을 입증해야 하는 처지에 처한다.

과학적으로 보자면 자신의 경험이 실재가 아니었다고 철회할 수밖에 없는 처지지만, 앨리너는 '입장을 철회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 한 인간으로서 그것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주의 신비를 파헤치고 최첨단 지식의 경계를 늘려나가는 일들도 결국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것이며 그 야심 찬 작업은 '한 인간'의 내면에서만 가능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한 인간이 우주와 합일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베가성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베가성까지 가서 결국에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조우한 앨리너처럼 내 앞의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앨리너와 함께 청문회장을 나서던 조스 신부에게 기자가 "당신은 뭘 믿느냐?"고 묻는다. 조스 신부는 신앙인으로서는 물론이고 우주탐사선에 탑승하지 않은 사람으로서도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다. 신을 믿는 그가 대답한다.

"나는 그녀를 믿습니다."

조스 신부와 앨리너는 서로 사랑함으로써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얻게 된 것이다.

덧붙이는 글 내가 사랑한 영화 <콘택트>

이 기사는 영화 리뷰 블로그 <4인칭>(http://blog.naver.com/4thperson)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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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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