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듯이, 누구나 가슴에 한때 사랑했던 존재가 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배우, 내가 사랑했던 노래, 내가 사랑했던 감독, 내가 사랑했던 드라마…. 그런가 하면 노래 한 곡, 또는 드라마(영화) 한 편 때문에 인생이 바뀐 분들도 있을 겁니다. 첫사랑만큼이나 우리를 설레게 했던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너무 늦게 알았다. 오마이뉴스에서 이런 기사를 공모할 줄이야. 드라마 하면 할 이야기가 많다. 무엇을 선택하냐다. 경중을 따질 수가 없다. 그때그때 현실과 맞물려 나름 추억으로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이 귀에 걸리네 아주, 그렇게 좋냐?"

뉴스를 좋아하는 남편,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

 <다모>는 내 인생의 큰 위로였다.

<다모>는 내 인생의 큰 위로였다. ⓒ MBC


요즘 말로 어깨 깡패라 불리는 롱다리 배우가 열연하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내 표정이 볼만했는지, 하얀 런닝에 체크무늬 트렁크 팬티 차림의 숏다리 남편이 핀잔을 주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냥 냅둬."
"드라마를 보면 밥이 나오냐, 술이 나오냐?"

이럴 땐 얼른 TV 볼륨을 키워야 남편의 입이 조용해진다. 결혼 초부터 뉴스광인 남편과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는 다툼이 많았다. 신혼 초 집에 온 엄마와 일일드라마 보려고 기다리는데 장모님 왔다고 일찍 퇴근한 남편은 KBS 2TV 7시뉴스부터 SBS 8시뉴스, MBC 9시뉴스, YTN 10시 뉴스까지... 남편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었던 그때 일은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그래, 이번엔 당신이 도마에 좀 올라와야 겠네.'

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남편과 힘들었던 때 의지했던 드라마 <다모>를 선택하기로 마음 먹었다. 2003년, 그때는 마음으로나 외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아무 의욕이 없었다. 애 둘을 낳고 불어난 체중과 변한 외모, 늘 불안한 남편의 사업. 그래도 나는 무언가 해보겠다고 3살배기 둘째를 업고 복지센터 요리 수업을 들었다.

1년 정도의 시간을 들여 한식-양식-중식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그런 내가 기특했던지 그길로 계속 나가라며 선생님이 요리학원 강사로 나를 추천했다. 경력이 우선이었고 나이는 불문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걱정이 되었지만 남편이 도와준다면 가능하지 싶어 설레는 마음으로 말을 꺼냈다.

"사업에 전념해도 살아남을까 말까인데 그런 데 신경 쓰게 하지 마."

그동안에도 틈틈이 회계를 보아 회사가 많이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말이라도 예쁘게 하면 잘못되는지, 희망을 품었다 절벽에 선 느낌이었다. 냉전이 시작되었다. 아내가 애들도 잘 키워, 살림도 잘해, 남편 사업도 도와, 거기다 외모도 잘 가꿔, 자기 발전도 알아서 잘해... 완벽하길 바라면서 아내의 발전에 수고는 하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론 내가 다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외모는 빼야 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족했던 열정과 자신감 때문인 것을, 그땐 요리강사를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필요했고, 남편은 악당이 되어야 했다.

<다모>, 내 인생에 찾아온 선물

 <다모>는 "아프냐, 나도 아프다"란 대사로 유명하다.

<다모>는 "아프냐, 나도 아프다"란 대사로 유명하다. ⓒ MBC


"아프냐?  나도 아프다."

꽃잎 흩날리는 달밤 두 주인공이 주고받던 애틋한 눈빛과 가슴 저미는 저 대사. 남편은 집에 오든지 말든지, 저녁을 먹든지 말든지, 싸한 에너지 팍팍 풍기며 결코 뉴스에 채널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손에서 절대 놓지 않던 리모컨을 사수하다 보게 된 드라마가 <다모>였다. "꺄악~" 하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어쩜 저렇게 예쁜 말을, 가슴 따뜻해지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난 결코 들을 수 없는 말을….

그때 부터다, '폐인'이란 신조어에 당당히 일조하기 시작한 것이. 다음날부터 인터넷을 통해 드라마를 처음부터 다시 보는 것은 기본이요, MBC 홈페이지 100만 게시글 목표 풀가동, 인터넷 <다모> 카페 활동, 주제가 섭렵 등 조절가능한 시간은 모두 <다모>에 바쳤다.

어쩔 수 없는 태생의 한계, 벼랑으로 내모는 칼, 숨은 절벽인 줄 알면서도 묵묵히 오르는 주인공 황보윤(이서진 분)의 그 깊은 외로움, 양반에서 노비로 전락한 어린 채옥(하지원 분)의 두려움을 따뜻이 품어주던 그의 모습은 요즘 어깨 깡패 배우들이 보여주는 판타지와는 비교 불가능한 것이었다. 또 다른 주인공 장성백(김민준 분)의 강한 남자다움은 또 다른 판타지로 나를 위로했다.

여주인공 채옥의 주제곡 '단심가'에서 "나를 버리시는 게 하늘의 뜻이라도 원망하지 않아요"라는 대목처럼 숙명과도 같은 고난의 길을 가는 여자 채옥, 현실에서 불행한 나는 드라마 속 채옥이 되어 두남자에게 가슴을 데우며 살았다.

세 남녀의 엇갈린 운명, 당연한 듯한 삼각관계에서 벗어나 조선시대에 실제로 사는 듯한 젊은 남녀의 비극적인 삶을 그려낸 드라마 <다모>를 보며 폭풍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돌아본 일상은 드라마가 보여준 판타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잔뜩 쌓인 일거리, 사랑이 고픈 아들들, 악당이어야 할 남편은 아내의 위로가 필요한 외로운 남자였다.

그렇게 한 달여의 시간을 보내고 남편이 사들고 온 막걸리 한 병으로 냉전도 끝이 났다. 그때 요리 강사를 계속했더라면 지금쯤 내 모습은 어떨까 생각하곤 한다. 그때부터 흐른 시간 동안 그 길을 가기위해 거쳤을 법한 사건들을 추측하다보면 남편의 성격상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닐 것 같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 또한 있듯이 그동안 남편이 보여준 한결같은 책임감은 지금의 가정이 있게 한 가장 중요한 힘이기 때문이다.

비록 '어깨 깡패' 배우들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어깨를 가진 남편이지만 우리 가정을 짊어지고 있는 어깨는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다. 13년 전 힘들었던 그때, 남편 대신 위안이 되었던 드라마 <다모>. 지금도 그때 출연했던 배우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일부러 챙겨본다. 아무리 다른 역할로 살아도 그들은 영원히 내 길을 포기한 나를 위로해주던 황보윤이요, 장성백이요, 채옥이다.

덧붙이는 글 내가 사랑한 드라마 <다모>.
드라마 다모 황보윤 장성백 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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