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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응원해달라는 치기어린 투정이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지난 며칠 간 잠을 설칠 만큼 고민스러웠다. 부러 내색은 하지 않지만 동료교사들의 적이 불편해하는 시선에다, 얼마 전 어느 분으로부터는 "보수적인 교직 사회에서는 튀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진심어린 충고까지 받았다. 무엇보다도 "그래봐야 달라질 것 하나 없다"는 말이 깊은 상처로 남았다.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이하 학종)에 대해 이곳 오마이뉴스에 쓴 글과 몇몇 방송사와 나눈 인터뷰 때문에 벌어진 사달이다. 교사로서 내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면 될 일이었다. 여기저기서 "초임도 아니고 산전수전 다 겪어 알만한 중견 교사가 긁어 부스럼을 낸다"는 핀잔까지 듣는 중이다. 솔직히 이제와 조금 후회되기도 한다. 그냥 혼자 삭이고 모르는 체 할 걸.

한때 난 '학종 예찬론자'였다. 학종이 천편일률적인 문제풀이 훈련장으로 전락한 고등학교 교실을 되살리고, 다소 시간이 필요할지언정 다양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두루 인정받는 평가 시스템이 안착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수능이라는 획일적인 잣대로 아이들의 오만가지 재능을 줄 세우는 건 난센스라는 생각에서였다. 기실 아이들의 꿈과 끼는 결코 계량화g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 대안이 바로 학종이었다.

지난 한두 해 동안 학종만이 우리 교육의 살 길이라며 여기저기 설레발치고 다녔다. 시행된 지 20년도 넘은 수능은 이미 그 수명을 다했다고 여겼다. 영어는 못해도 토익 고득점이 가능하듯, 수능 역시 '요령'을 터득하는 시험으로 전락했다. 기출문제를 많이 풀어 눈에 익힐수록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보니, 전국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과서는 이내 EBS 문제집으로 대체돼버렸다. 수능은 이미 아이들의 대학수학능력을 가늠한다는 취지에서 완전히 벗어나있다.

학종은 그렇듯 '노회한' 수능의 완벽한 보완재이자 대체재로 받아들여졌다.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 교사들도, 학부모들도, 심지어 사교육의 입시 전문가들조차도 학종의 취지에 적극 공감하며 호응했다. 조변석개하는 우리나라 대학입시제도의 변화 속에 이처럼 환영을 받았던 전형 방식이 또 있었나 싶을 만큼, 학종에 거는 국민적 기대는 자못 컸다.

그러나 도입된 지 불과 3년 만에 "차라리 수능이 더 낫다"는 푸념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인식에다, 일반고 내에서도 최상위권 학생들만을 위한 전형이라며 손가락질을 받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강남 3구'까지 들먹이다보니 추측이 확신으로 변했다. 기대가 지나쳐 생긴 야박한 평가일 수도 있고, 섣부른 속단일 수도 있지만, 환영 일색이던 이들 대부분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가정의 경제적 수준과 학업성취도가 정확하게 비례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근래 들어 학종 결과를 두고 토끼눈을 뜨곤 있지만, 지금껏 수능 점수 역시 특목고, 자사고 출신이 월등히 높았다. 획일적이나마 내신 등급으로 일반계고와의 격차를 보정하지 않는다면, 예나 지금이나 명문대는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다만, 이를 완화해줄 거라 내심 기대했던 학종이 결과에서 수능과 별반 차이가 없다보니 좌절감이 클 수밖에 없다.

학종에 대한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불만을 들어보면 끝도 없다. 최상위권의 수상 경력을 채우기 위해 교내 경시대회를 남발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을 들러리 세운다는 것에서부터, 학교가 상위 20% 이내 아이들에게만 학종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해괴망측한 이야기까지 떠돈다. 남다른 재능도 일단 학업성적이 안 되면 '기록상' 인정받을 수 없다는 푸념에다, 수능이든 학종이든 결국 국영수가 열쇠라며 기대를 접었다는 반응까지 분노와 좌절이 한데 뒤섞여있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공식적으로 기록될 수 있는 거라면 '필요악'을 넘어 '절대선'이다. 경시대회 풍년이요, 동아리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또, 요즘처럼 봉사활동의 양과 질이 높았던 때는 없었다. 교사들이 '학종 대비 특수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지역 사회에 아이들의 다양한 적성과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도 아닐 텐데, 학교생활기록부에 담겨진 내용은 더없이 화려하고 풍성해졌다.

급기야 일부 학교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를 조작했다는 의혹에 휩싸이기까지 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명문대에 한 명이라도 더 진학시키기 위한 몸부림이 금도를 넘어버린 셈이 된다. 이른바 'SKY'와 의대, 치대 진학자 수가 명문고의 변함없는 기준인 탓이다. 늘 그래왔듯 대다수 아이들의 진학 실적은 '논외'다. 거칠게 말해서, 어쭙잖은 지방대 한 트럭분보다 서울대 한 명을 더 높게 친다.

교사들도 학종이 변질돼가는 상황에 대해 좌절하기는 마찬가지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우리 교육에 대한 환멸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고 토로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우리 교육에 대입시켜볼라치면 끝내 동화되거나 변질되고 만다는, 일종의 패배 의식이다. 애초 학종에 일말의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는 한 동료교사는 "우리 교육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영원한 블랙홀"이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시나브로 '소설책'이 돼가는 최상위권 아이들의 학교생활기록부 앞에서 교사들은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엔 '자기합리화'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영어 잘하는 아이가 수학도 잘하고, 음악도, 미술도, 운동도 다 잘하는 현실에서, 수능이든 학종이든 그들 위주로 가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를 삼았다간 우리 아이들만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고, 나아가 "교사들이 무슨 힘이 있느냐"며 자학하기도 한다.

그래서 글을 썼고, 방송 인터뷰에 기꺼이 응했다. 이를 두고 누구는 '용기'라고 추켜세웠고, 또 누구는 '만용'이라며 걱정스런 눈빛을 건넸다. 어찌 됐건 현직 교사가 학교 현장의 치부를 언론에 드러내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전 국민의 관심사인 대학입시제도의 파행적 운영을 지적하는 것은 그렇잖아도 불신이 팽배한 우리 교육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짓이라는 지적도 받았다.

당장 "근무하는 학교와 땀 흘려 학교생활기록부를 쓰고 있는 동료교사들에게 비수를 꽂는 '배신행위'로 여겨질 텐데 뒷감당을 어찌 하려느냐"며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이도 있었다. 학종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당장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광범위한 까닭이다. 흡사 무리가 줄지어 낭떠러지로 돌진하여 집단적으로 떨어져 죽는 레밍 쥐의 모양새라고나 할까.

인터뷰를 하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를 제외하곤 인터뷰를 흔쾌히 수락한 교사가 없다고 한다. 가명으로 모자이크 처리를 한다고 양해를 구해도 한사코 어렵다며 손사래를 쳤단다. 하나같이 학종이 변질됐다고 말하면서도, 자칫 자신이 지금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까 두렵기 때문이란다. 시청자들이 모든 학교의 공통된 문제로 받아들이기보다 해당 학교만의 문제로 여기기 십상이라는 우려에서다.

하루아침에 나는 '투사'가 돼있었다. 순식간에 입시를 코앞에 둔 제자들을 배려하지 않은 '나쁜 교사'가 됐고, '학종 예찬론자'에서 불과 한두 해만에 '학종 폐지론자'로 돌아선 '변절자'로 낙인찍혔다. 또, 자신의 주장을 공론화시킨답시고 본의 아니게 노심초사 학교생활기록부와 씨름하고 있는 수많은 동료교사들에게 무력감을 안기면서 스스로 조직의 '왕따'가 돼버렸다.

"'학종 열사' 선생님, 그럼 대안은 뭐죠?"

사실 난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 적어도 아직까진 학종보다 나은 제도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탱자가 돼 버린 귤의 제 맛을 부디 되돌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 하나 서울대 보내려는 노력의 반의반만이라도 의욕을 잃은 채 방황하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쓰고, 우리 학교 진학 실적 운운하기 전에 이웃 학교 아이의 재능과 성취에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아량이 있었으면 좋겠다. 다 같은 대한민국의 미래 꿈나무들 아닌가.

학교생활기록부라는 '소설책'을 들고 학교마다 아귀다툼하듯 서울대에 진학시킨 아이들의 미래가 궁금하다. 누구 말마따나, 과연 그들 엘리트 한 명이 만 명의 사람들을 먹여 살리게 될까. 정말이지 석차와 등급 등 계량화된 점수를 죄다 무시하고 날 것 그대로의 아이들을 만날 날을 꿈꾼다. 그러자고 학종이 고안된 것 아니겠는가. 부디 학벌구조라는 강고한 '벽' 앞에 학종이 '담쟁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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