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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검침원의 방문

17일 오후,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474국으로 시작되는 번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번호였다. 누구지?

"여보세요?"
"암사동 1OO-OO에 사시는 이희동씨죠?"
"네, 맞는데요.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한전 검침원입니다. 오늘 댁에 방문해서 전기계량기를 쟀는데 지난달과 비교해서 너무 많이 나온 것 같아 전화 드립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안 그래도 검침할 때가 됐다 싶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전기세가 평소보다 많이 나왔다며 이렇게 친절하게 전화까지 걸어주다니. 과연 얼마나 많이 썼기에 전화까지 한 걸까? 요 며칠 계속되는 열대야에 더위를 못 참고 에어컨을 틀고 잤는데 그것이 화근이 된 걸까? 어제, 오늘 인터넷을 보니 전기료 폭탄 때문에 여기저기서 난리던데 결국 나도 그 폭탄을 맞은 것인가?

다음 달은 얼마를 기록하게 될까요?
▲ 한국전력공사 사이버지점 홈페이지 다음 달은 얼마를 기록하게 될까요?
ⓒ 한국전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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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며칠 전 우리 부부는 혹시 하는 마음에 처음으로 집 전기계량기를 찾아 헤맸었다. 지금까지 얼마만큼의 전기를 썼는지도 모른 채 에어컨 돌리기가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전기요금 누진세는 상상 이상인데, 한전과 산업통상자원부는 가정용 전기요금은 죽어도 내리지 못하겠다고 하지, 청와대는 궁극적인 대책 없이 생색내기에 급급하지, 그러니 우선 전기 요금 폭탄을 안 맞으려면 내가 직접 움직여 대책을 강구하는 수밖에.

그런데 웬걸 전기계량기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앞집 전기계량기는 대문 옆 외벽에 붙어 행인도 쉽게 볼 수 있건만, 우리 집 전기계량기는 당최 보이지가 않았다. 전봇대에 붙어 있는 건가? 아니면 계량기가 따로 없이 한전에서 전산으로 확인하는 건가? 불안한 마음에 한전에다 전화를 해봤지만 엄청난 대기 시간에 질려 수화기 놓기가 일수였다.

다행히 전기계량기는 이후 아내에 의해 발견되었다. 전기계량기는 주위 집들과 달리 지하방 옆에 달려 있었고, 검침원은 따로 우리를 부르지 않고 창문만 열어 수치를 기록해 가는 듯 했다. 8월 10일 기준 340kw. 아직 한 달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지난달 308kw를 훌쩍 넘는 수준이었다. 얼추 계산을 해보니 5만원 돈이었지만 이후에 얼마나 올라갈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검침원이 뜬금없이 전화를 한 것이다. 이번 연휴에는 놀러가느라 집을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전기를 많이 썼다며 전화가 왔으니 놀랄 수밖에.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얼마나 나왔나요?"
"저번 달에는 308kw 쓰셨는데 이번에는 380kw 좀 넘게 쓰셨네요. 6만 원 훌쩍 넘겠는데요."

다행이었다. TV를 보니 30만 원 넘은 가게도 있던데 6~7만 원이라면 생각보다 많은 금액은 아니었다. 아이를 낳은 해 여름에는 8만 원 넘게도 나오지 않았던가. 워낙 더워서 조심스레 에어컨을 켰던 탓인지, 아이 셋 할인을 받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청와대발 20% 할인 덕분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선방한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슬슬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왜 이 더운 날씨에 우리가 이렇게 벌벌 떨면서 에어컨을 켜야 하는지. 요즘 사람들은 예전과 달리 은행 대신 마트로 피서를 간다고 하는데, 왜 그들은 그렇게 펑펑 쓸 수 있는 건지.

어디 그것뿐인가. 저번 주 어린이집에 다녀온 둘째가 갑자기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했다. 어린이집 에어컨이 고장 나서 너무 덥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고쳤을 거라며 주말이 지난 뒤 아이를 달래며 보냈더니 웬걸, 고장 난 에어컨을 아직 고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하루 뒤 고쳤다고는 했지만 의심스러웠다. 교육기관이라고 특별히 전기세가 감면되는 게 아니라지 않는가. 그러니 어린이집에서도 에어컨 트는 것이 부담이 되어 미필적 고의로 고장 난 에어컨을 방치했던 건 아닌지.

문제는 불평등이다

푹푹 찌는 더위에도 에어컨을 마음대로 틀지 못해 짜증내는 시민들. 혹자들은 1994년이 더 더웠다며 핀잔 비슷한 위로를 건네지만, 그것은 위로가 될 수 없다. 어쨌든 당시에는 지금과 비교하여 에어컨 보급률이 훨씬 낮은 수준이기에 더우면 더운 대로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서 견뎌내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1994년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교실에서 세숫대야에 물 떠놓고 발 담그며 수업했던 것을 아직 기억한다.

400kw를 넘을 것이냐 말 것이냐
▲ 전기요금표 400kw를 넘을 것이냐 말 것이냐
ⓒ 한국전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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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16년,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에어컨의 가구 보급률이 70%에 다다랐다. 이제 에어컨은 더 이상 부자들만 사용하는 전자기기가 아니다. 오히려 에어컨은 점점 아열대 기후로 변해가는 이 땅에서 필수적인 전자기기가 되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에어컨을 살벌한 전기세 때문에 틀지 못하고 있다. 좀 더 쾌적한 여름을 나기 위해 비싼 돈을 주고 산 에어컨을 전기세가 아까워 마음대로 틀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세워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열불이 날 수밖에.

만약 전기생산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기를 아껴야 하고, 그와 같은 맥락으로 전기세가 비쌀 수밖에 없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현재의 더위를 감수할 용의가 있다. 총전력량이 부족하게 되면 정부는 또 자연스레 원자력에너지 이야기를 하며 원전 확대를 주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전기세의 문제는 총전력량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을 화나게 하는 것은 불평등의 문제이다. 비록 한전은 지금과 같은 누진세가 저소득층을 보호하고 전력과소비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항변하지만 이는 주택용 전기요금에 한해서만 적용되는 이야기일 뿐, 산업용, 일반용 전기세에는 주택용과 달리 누진세도 적용되지 않고 있다. 1974년에 만들어진 정책이 40년 넘게 전기세 구조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 아내와 함께 성남 분당의 현대 백화점에 다녀온 아이들은 춥다며 빨리 나가자고 했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곳은 엄마들 사이에서도 여름에 추울 정도로 냉방을 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란다. 그래, 주택용 전기를 쓰는 서민들은 어떻게 하면 전기세를 아낄 수 있을까. 에어컨도 제대로 틀지 못한 채 여름마다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누군가는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틀어대는 이 불평등한 현실.

사진을 보며 무더위를 견뎌봅니다
▲ 시원했던 여름 계곡 사진을 보며 무더위를 견뎌봅니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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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와 같은 풍경은 지금까지 우리가 만들어온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항상 정부는 세제와 환율 등을 이용해 오랫동안 각 가정의 부를 빼앗아 대기업들에 분배해 왔다. 예컨대 지난 정부부터 시작된 법인세 감면 등은 정부의 재정적자를 야기해 담뱃값 인상과 같이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준 증세제도를 낳았고, 또한 수출을 주로 하는 대기업의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정부는 환율시장에도 과하게 개입하여 일반 시민들이 사용하는 제품들의 원가를 높여 놓기도 했다.

그런데도 해마다 발표되는 대기업의 영업이익에 자신의 일인 양 환호작약하는 사람들. 그들은 구조적으로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얼마나 많은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지 모른다. 단지 지금 자신이 평소보다 많이 내야 하는 전기세에 불만을 터트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정부가 근본적인 제도 변화 대신 한시적인 전기세 감면을 들고 나올 수밖에. 비는 피하고 가면 된다며 한전과 정부 등은 이 더위가 수그러지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이번 더위에서 비롯된 전기세 누진제 문제는 단순히 돈과 제도만의 문제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함께 고민되어야 하며 본질적으로 사회의 불평등과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밤에도 난 에어컨 대신 선풍기 하나에 의지하고 있다. 그나마 창밖의 귀뚜라미 소리가 이제 곧 여름이 물러날 것이라는 위안을 준다. 다들 무더위에 지치시지 말기를.


태그:#전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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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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