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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옆에 있는 알베르게에서 잠을 자는데 밤새 화물차들이 달리는 소음 때문에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식당으로 내려가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고 숙소를 나섰다. 도로를 건너 잠시 걸으면 성당이 있고 언덕을 오르니 이제 막 동쪽 하늘에 올라온 태양이 눈부시다. 조금 더 오르니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마을이 한눈에 들어 온다. 햇살을 받은 초목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오늘은 카르데뉴엘라까지 26Km를 걸을 계획이다. 언덕을 올라서니 아름다운 꽃들이 핀 숲길이다. 걷다가 예쁜 꽃이 보이면 사진을 찍는다. 순례자들은 무심히 걷다가 누군가 관심을 가지고 사진을 찍으면, 그들도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숲길을 걷다 보니 길옆에 고사리가 지천으로 올라오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고사리를 먹지 않는가 보다. 한국 같으면 남아나지 않을 텐데. 고사리를 한 주먹 꺾어 배낭에 넣었다. 알베르게에 취사 시설이 있으면 찌개를 끓이는 데 조금 넣으면 맛있을 것이다.

숲길을 지나 밀밭길을 잠시 걸으니 유적지 발굴지가 나오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조금 걸으니 소나무숲이 나왔다. 소나무숲 길은 폭이 40m 정도 된다. 산불이 났을 때 산불 저지 목적인 것 같다. 소나무숲 길은 1시간 30분 정도 걷는 동안 계속 이어진다. 곳곳에 쉼터가 있고 쉼터에는 독특한 모습으로 장식을 해 놓았다.

소나무숲에서 쉬고 있는데 며칠 전에 만났던 한국인 청년이 외국인 아가씨와 같이 걸어 오다가 우리 앞에서 쉬면서 간식을 먹는다. "오늘 어디까지 걸을 것인가요?"라고 물으니 브르고스까지 걷는다고 한다. 소나무숲을 지나 유채꽃밭과 밀밭길을 걷다 보니 산티아고까지 550Km 남았다는 표지가 있다. 오늘 11일차이니 1/3 걸은 셈이다.

소나무숲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으니 들판에 오래된 성당이 보인다.  마을은 없는데 성당의 규모는 매우 크고 보수 작업이 한창이다. 가이드북을 보니 이런 소개의 글이 있다.

'산 후안 성당은 밤과 낮이 같아지는 날에 태양빛이 수태고지 장면의 성모 마리아를 비추도록 설계되어 있다. 불임이었던 카스텔레의 여왕 이사벨이 1477년 이곳을 방문한 후 아이를 얻어 이 성당을 화려하게 증축해 주었다고 한다.' 

과연 내부는 화려했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마을 ⓒ 이홍로
소나무숲길 ⓒ 이홍로
후안 데 오르데카 성당 ⓒ 이홍로
성당 내부 모습 ⓒ 이홍로
닮고 싶은 목공예 할아버지와의 만남

산 후안 성당을 둘러 보고 성당 옆 바에서 커피와 빵을 먹고 다시 밀밭길을 걷는다.

친구와 나는 첫 직장인 충북 제천에서 만났다. 19살에 발령을 받아, 친구는 다른 친구와 자취를 하였고 나는 하숙을 하였다. 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못할 형편이었다. 친구와 나는 첫 직장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학업에 대한 열망이 있어 책을 놓지 못하였다. 목표 의식이 뚜렷하였던 친구는 군대에 다녀 온 후 서울로 전근하여 직장과 학업을 계속하였다. 나도 군대에 다녀오고 서울로 직장을 옮긴 후 직장과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보람도 있었지만, 고생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 뒤 친구는 원하는 부서에서 근무하며 정년을 하였고, 나는 전직하여 근무하다가 지난 2월에 정년 퇴임을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다시 20대로 돌아가면 멋진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청춘을 돌려 다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친구와 나는 다시 20대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20대가 너무 힘든 세월이어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언젠가 한 연예인이 자신도 20대에 너무 고생을 하여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한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노란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초원이 나왔고 그 아래 아름다운 마을이 나타났다.

이런 마을에서 살면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겠다 라고 생각되는 마을을 지난다. 마을을 벗어나려는 즈음에 작은 집의 입구에서 할아버지가 무엇을 만들고 있다. 걸음을 멈추고 가까이 가 보니 섬세한 목공예를 하고 계시다. 이 작은 집은 할아버지의 작업실이다. 내부를 구경해도 되는지 물으니 구경하라고 한다.

공방 안에는 할아버지의 멋진 작품들이 가득하였고 작품마다 이름이 있고 가격도 붙어 있다. 작품을 지적하며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물으니 1개월 걸렸다고 한다. 가격은 비싸지 않아 사고 싶은 작품도 있었지만, 순례길에 짐을 늘리는 것이 부담되어 구입하지는 않았다. 할아버지는 얼굴에 세상 근심은 없는 분 같아 보였다. 인사하고 나오며 노후에 저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내면 참 행복하겠다고 생각하였다.
노란꽃이 핀 순례길 ⓒ 이홍로
아름다운 순례길 ⓒ 이홍로
순례길에 만난 평화로운 마을 ⓒ 이홍로
아타푸에리카 마을의 할아버지 공방 ⓒ 이홍로
할아버지 공방의 작품들 - 판매도 한다. ⓒ 이홍로
밀밭과 아름다운 풍경 ⓒ 이홍로
십자가 언덕 1,070m고지이다. ⓒ 이홍로
기념 사진을 찍는 순례자들 ⓒ 이홍로
낯선 땅에서 발견한 태극기

할아버지 공방을 나와 원시 유적지 발굴 지역을 지나 언덕길을 힘들게 오른다. 오후의 태양은 뜨겁고 배낭도 어깨를 누른다.  땀을 흘리며 언덕에 올라서니 대형 십자가가 있다. 순례자들이 여기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두 부부가 기념 사진 촬영을 부탁하여 찍어 주었다. 이곳 고도가 1080m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니 멀리 큰 도시 부르고스가 보인다. 우린 부르고스 이전 작은 마을에서 묵을 예정이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다시 밀밭길을 걷는다.

우리 바로 앞에는 미국인 부녀가 걷고 있다. 며칠 전 알베르게에서 각국 순례자들이 장기자랑할 때 이 부녀는 기타를 치며 멋진 노래를 불러 인기가 좋았었다. 힘든 오후 시간인데 이 아가씨는 계속 노래를 부르며 걷는다. 그 모습과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조금 더 걸으니 왼편에 알베르게를 알리는 간판 그림이 있는데 각국의 국기를 그려 놓았다. 그 곳에 태극기도 보인다. 태극기를 보니 기분이 좋아지고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언덕을 돌아서니 작은 마을이 나나났다. 우리가 묵을 카르데뉴엘라 마을이다. 길가에 작은 바가 있어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알베르게를 물으니 바 바로 위에 작은 알베르게가 있다고 알려 준다. 침대 22개의 작은 알베르게인데 마을이 마치 우리의 시골 같은 분위기이다. 샤워를 하고 빨래까지 널은 후 마을 산책을 나섰다.  바로 위에 성당이 있고 그 옆에는 좀 더 시설이 좋은 알베르게도 있다. 순례길을 걸으며 자주 보던 반가운 얼굴도 이곳에 묵고 있다.
앞에 걷고 있는 미국인 부녀 - 아가씨는 노래를 부르며 걷고 있다. ⓒ 이홍로
순례길 옆 농가에 순례자 그림과 각국의 국기, 태극기를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 이홍로
우리가 묵은 카르데뉴엘라 마을의 성당 ⓒ 이홍로
우리가 묵은 알베르게- 침대가 22개인 작은 알베르게 ⓒ 이홍로
카르데뉴엘라 마을의 풍경 ⓒ 이홍로
카르데뉴엘라 마을의 농가. 텃밭일을 잠시 도와주었다. ⓒ 이홍로
잠시 산책을 하고 숙소에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아가씨 혼자 배낭을 메고 들어 온다. 지금 시간이 오후 5시. 보통 순례자들은 오후 2시 정도에 알베르게에 도착한다. "오늘 몇 키로 걸었나요?"물으니 "35Km 정도 걸었어요"라고 답한다. 참 대단하다. 이 아가씨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직장생활을 하다가 사표를 내고 재충전하는 마음으로 카미노를 걷는다고 한다. 발에는 온통 물집이 잡혀 있어 물집을 터트리고 반창고를 붙인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한다. 이런 것쯤은 가볍게 이겨내야 이 세상도 이겨낼 수 있다고.

오후 7시 바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도 해가 많이 남아 있다. 여긴 오후 8시 30분이 넘어야 해가 진다. 친구와 둘이 마을 산책을 나섰다. 도로 옆 잘 가꾸어진 집을 지나는데 주인 아저씨가 농장에서 일을 하고 들어 왔는지 작업복 차림이다. 자기집 꽃밭을 자랑하는 그에게 우리가 엄지 손가락을 올리며 아름답다고 하자 활짝 웃는다.

마을 골목길을 돌아서니 한 아저씨가 혼자서 텃밭을 가꾸고 있다. 스페인은 대부분의 농가들이 포도, 밀 농사를 짓는데 기계를 이용해 농사일을 한다. 집은 도로가에 있고 두 가구 또는 세 가구가 붙어 있어 공동 주택 형태이다. 한국의 농가들은 대부분 단독 주택인데 주택 안이나 옆에 텃밭이 있다. 스페인의 주택에는 텃밭이 거의 없다. 어쩌다 잘 가꾸어진 텃밭을 보면 고향을 보는 것처럼 반가웠다. 이들 텃밭에도 우리와 같이 고추, 파, 상추, 치커리 등을 심었다.

일을 하고 있는 아저씨에게 "올라" 하고 인사를 하니 그도 "올라"라고 인사를 받는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우리가 한 번 해봐도 되겠느냐고 물으니 좋다고 한다. 오랜만에 삽질을 해본다. 흙이 축축하고 찰져 생각 보다 힘이 든다. 그러나 금방 내려 놓기 미안하여 한동안 삽질을 했고, 친구가 삽을 이어 받아 삽질을 한다. 아저씨는 우리를 보며 잘 한다며 기분 좋게 웃는다. 고향 같은 마을, 작은 알베르게는 더 이상 순례자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다섯명이서 편안하게 잠을 잤다.
태그:#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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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취미가 있는데 주변의 아름다운 이야기나 산행기록 등을 기사화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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