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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사과 몇 알 썩었다고 상자째 버릴 순 없잖나."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밝혀내 보도한 <보스턴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팀, 그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스포트라이트>에 나온 대사다. 사건 실체를 캐묻는 기자에게 가톨릭 자선단체 이사가 사람 좋게 웃으면서 건네는 말이다. 아동 성추행을 저지른 신부들은 가톨릭 중 일부 '썩은 사과 몇 알'에 불과하니 덮고 넘어가자는 취지였다.

박성구 신부가 경기 가평 중증장애인시설에서 저지른 장애인 연금 횡령·인권침해 등 의혹을 취재하면서 이 대사가 자주 떠올랐다. 성직자가 저지르는 비리 유형과 이를 대하는 천주교의 태도, 시간이 흘러 결국 방치·은폐되고야 마는 양상이 영화 내용과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다. '의심 없는 믿음'을 강조하는 종교, 그 안에서 일어나는 비리란 얼마나 무서운가.

천주교 신부가 세운 경기도 가평의 한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인권침해 의혹이 제기됐다. 사진은 지난 3일 가족회의 당시 인근 경찰서 직원들이 출동한 모습.
 천주교 신부가 세운 경기도 가평의 한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인권침해 의혹이 제기됐다. 사진은 지난 3일 가족회의 당시 인근 경찰서 직원들이 출동한 모습.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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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4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난 박 신부(오른쪽)는 그러나 관련한 질문에 "그 사람들(해고된 직원들) 말은 모두 엉터리"라는 답으로 일축한 뒤 자리를 피했다.
 지난 7월14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난 박 신부(오른쪽)는 그러나 관련한 질문에 "그 사람들(해고된 직원들) 말은 모두 엉터리"라는 답으로 일축한 뒤 자리를 피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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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법인·정부, 박 신부 정황 알고 있었지만 책임 서로 미뤄

애당초, 박 신부 측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한꺼번에 해고된 직원 8명의 '내부고발'을 통해 시작된 취재였다. 내부고발이라고 해서 완전히 믿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신부님이나 되는 분이 그럴 리 없다, 근거를 가져오라"고 요구했고, 추가 자료를 보내오는 사이, 기자가 직접 시설에 가서 입소자 가족회의에 참관하며 상황을 지켜보기도 했다.

박 신부 자필 서명이 담긴 직원회의 일지, 내부 녹취록 등 해고 직원들이 가져온 자료는 의혹을 제기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 결과로 나온 게 7월 27일 첫 기사다. 박 신부 관련 의혹은 주로 ①부당 해고 ②장애인 연금 유용·국고보조금 횡령 ③장애인 인권 침해 ④입소자 가족들 기부금 강요 ⑤교회법 위반 등 다섯가지로 요약됐다.

보도 전, 시설 측에 박성구 신부 정식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담당자 S씨는 거절했다. 이들은 이어 서면으로 "연금 횡령·기부금 강요는 사실무근", "상한 닭 요리는 처음 듣는다"라는 등 답변했으나, 보도 후 재차 반론 요청서를 보내와 '인권 침해' 부분에 반박했다. 다른 의혹에도 일부 답했으나, 기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의 반론이었다.

[관련 기사]
"발작 장애인에 성수만 뿌려" 천주교 신부 '장애인 학대' 논란
"<오마이뉴스>, 서울시장, 염수정 추기경 다 감옥가야"
'장애인 연금 횡령' 의혹 신부, 과거 '65억 횡령' 해임

문제는 이 시설에 국고보조금을 지급하는 가평군청과 시설이 속한 사회복지법인(기쁜우리월드), 박 신부 소속 교구인 천주교 서울대교구 등 책임 있는 관계자들이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모두 박 신부 전횡 의혹을 알면서도, 서로 책임을 전가할 뿐 적절한 조치나 대응은 하지 않았다. 분산된 책임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사이 시설에 입소한 중증장애인들만 피해를 봤다. 지난 6월 중순 직접 실태 조사를 갔던 경기장애인인권센터 안은자 팀장도 "시설에서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인권센터 측은 "상황이 장기화할수록 입소자들에게 불이익으로 돌아가는 건 확실하다"며 당시 조사한 내용을 근거로 박 신부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박 신부의 전횡·횡령 의혹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박 신부는 과거 자신이 세운 사회복지법인에서도 65억 원가량의 회계부정·후원금 무단사용 등 위법을 해 서울시로부터 작년 6월 해임명령을 받았으며, 노인시설 입소자들에게 11억 5000만 원을 빌렸다가 갚지 않아 2014년 7월 법원에서 지급 명령을 받았다.

그럼에도 박성구 신부와 관련한 부정적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 둘 은폐됐다. 가장 큰 이유는 박 신부가 1976년 사제서품을 받은 '사제'라는 점이었다. 장애인 관련 사회복지법인을 세우는 등 1980년대부터 활동해온 덕도 있다. 수십여 개 복지시설을 세우는 등 약 40년간 장애인들과 함께했고, 이런 영향력을 고려해 천주교 측도 그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측근 관계자들은 모두 '종교적'인 이유로 입을 다물었다. 시설 입소자 가족 중 한 명은 "시설 운영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저도 천주교 신자라 신부님께 안 좋은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측도 "박 신부는 휴직 상태, 종교적인 내용이라 이유는 알려주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였다.

박 신부와 함께 10여 년간 일하다가 쫓겨났다는 한 수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박 신부의 의혹과 관련해 "제게도 빚보증을 서달라고 한 적이 있다, 아마 해고된 직원들 얘기가 맞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저희는 수도자다, 전화가 오면 다 답해드리고 할 수는 있지만 먼저 나서서 공론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박 신부는 본인이 발행인으로 표기된 <진실의 소리> 신문을 2014년 8월부터 인터넷(www.votnews.net)과 인쇄물로 펴내고 있다. 여기에는 본인이 받은 정직 제재의 부당성,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대한 항의, 본인의 65억 횡령 건 관련 결백함과 양심선언문 등이 실린다. 자기주장을 담을 매체를 따로 가진 셈이다.

박 신부는 본인이 발행인으로 표기된 <진실의 소리> 신문(사진)을 2014년 8월부터 온라인.인쇄물로 펴내고 있다. 본인 주장을 담을 매체가 따로 있는 셈이다.
 박 신부는 본인이 발행인으로 표기된 <진실의 소리> 신문(사진)을 2014년 8월부터 온라인.인쇄물로 펴내고 있다. 본인 주장을 담을 매체가 따로 있는 셈이다.
ⓒ 진실의소리신문 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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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구 신부 "<오마이뉴스>는 엉터리... 감옥에 가야"

가장 큰 문제는 박 신부의 대응이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기자의 전화를 피하거나 거부했고, 심지어는 기자와 만나서도 제대로 된 해명은 하지 않았다. 지난 10일 오후 박 신부와 만나 제기된 의혹들이 사실인지 묻자 그는 "홍보국장과 얘기하라"거나 "<오마이뉴스>는 엉터리, 감옥 들어가야 한다", "질문 안 받는다"라고 말한 뒤 자리를 피했다.

지난 9일 어렵게 전화를 받은 박 신부는 "<오마이뉴스> 기자"란 인사를 듣고는 당황한 듯 전화를 끊어버렸다. 한 번은 그마저도 제대로 끊지 않아서, 전화기 너머로 <오마이뉴스> 기사와 관련해 '대책 회의'하는 내용을 기자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나도 망신스럽다", "누가 우리 편 들어주겠나"라고 말하는 박 신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그저 실소가 나올 뿐이었다.

장애인 연금 횡령, 보조금 횡령 등 의혹은 증거에 의해 제기됐다. 해고 직원들이 들고나온 4월 25일 '직원회의' 일지 사진에는, 박성구 신부가 당시 회의에서 말한 내용과 함께 박 신부의 자필 사인이 담겨있다. "(사제) 직무정지 때문에 돈을 구할 길이 막힌 상태", "당장 5000만 원이 필요하니 장애인 수당·직원 퇴직적립금에서 빌려 빚을 갚겠다, 가평군청이 이를 문제 삼으면 시위를 통해 막아내겠다"란 내용이 그것이다.

해고된 직원들이 공개한 '직원회의 일지(사진)'에 따르면, 여기에는 "가평군청이 이를 문제 삼으면 (장애인)시위를 통해 막아내겠다"는 내용도 나온다.
 해고된 직원들이 공개한 '직원회의 일지(사진)'에 따르면, 여기에는 "가평군청이 이를 문제 삼으면 (장애인)시위를 통해 막아내겠다"는 내용도 나온다.
ⓒ 해고 직원 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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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신부에게 제기된 기부금 강요나 회계부정, 시설 이용자 인권 침해 의혹 등은 사실일 경우 모두 명백한 현행법 위반 사항이다. 잘못이 있다면 이를 인정하고 자성하는 것이 먼저일 테고, 사실이 아니라면 그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박 신부는 관련해 해명하거나, 문제를 고치려는 노력은 없어 보였다. 박 신부는 여전히 혐의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박 신부를 옹호하는 시설 직원들이 제각기 명예훼손 당했다며 기자와 언론사 대표를 고소했다. 시설 입소자·가족 피해를 우려해 기사에서 시설 이름이나 직원 실명을 공개·거론하지 않았으며, 이미 시설 측 서면 반론을 기사에 반영했는데도 말이다.

천주교 성직자는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 '치외법권'인가. "하나님의 일"이라고 주장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가. "보다시피 저도 1급 장애인이다, 성직자 탈을 쓴 신부가 장애인을 이용해 장사하는 걸 보고 참을 수 없어 제보했다"는 해고 직원의 말을 들으며, 취재에 응하는 박 신부 태도를 보며 신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천주교·법인 등 측근 관계자가 모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이를 방치하는 동안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간 기자의 연락을 거부하던 기쁜우리월드 법인의 대표이사는 심지어 최근 자신이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정지시켜 놓기도 했다.

루카복음 8:17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박성구 신부는 정말 일부의 '썩은 사과'에 불과할까. 박 신부의 눈을 가리거나 박 신부의 행동 자체를 외면하면서, 그가 제대로 된 길을 걷도록 말하지 않고 방관·방치하는 이들의 책임은 없는가. 성직자의 권력 남용은 범죄에 가까우며, 만약 신자들이 종교적 권위에 복종한다는 것을 알고 이를 악용하는 거라면 그 죄질은 더 나쁘다고 볼 수 있다. 

'썩은 사과'를 내버려 두면 결국 상자 속 사과는 모두 썩어간다. 그 조직 전체가 멍들게 된다는 의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결국 언론사가 천주교의 시스템과 함께, 90여명 신부의 아동 성추행 혐의를 보도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당시 이와 관련한 소송만 400여 건에 달했음에도, 교황청은 이를 함구했다고 한다.

문제가 있으면 밝히고, 법적 하자가 있으면 처벌을 받는 것이 순리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루카복음 8:17)"라는 성경 말씀도 있다. 기사가 보도된 뒤 한 독자는 "하느님께서는 박 신부가 운영한 중증장애인들 속에서 굶주리고 목말라 하고 있었다"는 댓글을 남겼다. 이제는 박성구 신부가, 기쁜우리월드 법인이, 천주교가 이에 답해야 할 때다.


태그:#박성구 신부, #장애인 인권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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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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