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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제2의 선동렬을 꿈꾸며 작은 손을 핸디캡이 아닌 무기로 만들겠다고 솜털이 채 가시지도 않은 나이에 얼음주머니와 훈장처럼 박힌 굳은살을 벗 삼아 야구선수의 꿈을 키우던 친구.

그 친구는 '괴물투수'란 별명과 함께 그 해 신인 최고 계약금을 받고 프로구단의 유니폼을 입었다. 그런 친구를 응원하기 위해 야구장을 찾은 날이면 친구를 향한 관중들의 입에 담기 민망한 욕설에 가슴 한 가득 생채기만 나서 돌아오기 일쑤였다.

시속 156km을 던지던 고교시절의 친구는 마음이 여리고 겁이 많았던 성격 탓에 과도한 관심과 질타를 감당해 내야 하는 프로구단에 적응하기 어려워 했다. 관중들의 야유와 욕을 오로지 맨몸으로 받아내며 점점 작아지던 친구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리고 슬럼프를 이겨내기 위해 아픈 어깨를 부여잡고 어금니를 깨물고 연습하던 친구의 모습도 기억한다.

지기 위해 마운드에 서는 투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승리를 거머쥔 선수만을 기억한다. 그리고 관중들에게 패배감을 맛보게 한 선수들에게 냉정한 시선을 보낸다. 그들이 숱한 날을 눈물과 함께 흘렸을 땀은 바라보지 못한다.

필자는 체육선생이다. 정확히 체육 전공자면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체육을 담당하는 스포츠강사이다. 누군가의 눈엔 비정규직 강사이지만 우리 아이들은 나를 '체육선생님'이라고 부른다.

1, 2년마다 학교를 배정받고 새로운 학교에서 수업을 시작하면 학생들 모습에서 항상 같은 현상을 본다. 경기를 할때면 이기는 것이 체육의 전부인 듯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승리를 향해 뛴다.

혹 그 승리에 민폐를 끼치는 누군가가 생기면 가차 없이 비난을 퍼부어 댄다. 이기든 지든 모두의 입에선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기분이 좋은 아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 모습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그런 아이들에게 나는 '킥런볼'이나 '킨볼'과 같이 모두가 함께 뛰어야 잘할 수 있는 운동을 하게 한다. 처음엔 오합지졸 엉망진창 욕설과 비난이 오가던 시합장은 시간이 갈수록 정리가 된다.

"이번 경기를 이기면 여러분의 인생이 바뀌나요?"

아이들은 침묵한다.

"그렇다면 만약 이번 시합을 통해 함께 가는 것을 배운다면 여러분들이 살아갈 날들에 도움이 될까요?"

조금은 어려운 질문이지만 아이들은 고민을 하다 이내 "예"라고 대답한다.

"자 그럼 이번 시합을 통해 함께 가는 것을 배워보겠습니다. 친구가 실수했을 때 그 친구 마음은 같은 팀에게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그때 야유와 비난을 퍼부으면 그 마음이 사라지고 원망이 가득 차 경기를 포기해버리죠. 그런데 격려와 응원을 더한다면 그 친구는 다시 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과연 그런지 한번 해볼까요? 지금부터 연두팀만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어색하게 아이들은 "괜찮아 친구야, 힘내!"를 외친다. 그리고 점점 목소리가 커진다. 자신의 외침에 확신을 가지며 "실수해도 괜찮아. 실패해도 괜찮아."라고.

11점차로 지던 연두팀은 큰 점수 차를 뛰어넘어 역전승을 했다. 아이들도 지켜보던 나도 놀랐지만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자신의 승리에 도취되어 혼자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던 아이들이 친구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함께 기쁨을 나누던 모습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경험을 통해 함께 가는 법을 배운다. 그것이 자연스러워졌을 땐 아이들에게 경기결과는 더 이상 중요한 것 이 아니다. 

그럴 때면 캐나다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준다.

"팀을 영어로 쓰면 Team입니다. Tim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팀이라는 영어에는 'I' 즉 '나'가 없습니다. 진짜 팀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아닌 우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보여준 모습이 참 반갑습니다."

이렇게 격려와 응원의 수업이 익숙해질 때면 다음으로 '배려'에 대해 가르친다.

필자는 체육의 우선순위를 승리가 아닌 '함께 흘리는 땀'에 둔다. 그래서 승자는 승리의 기쁨에 취하기 전에 패한 친구들에게 수고의 인사를 먼저 건네고 기쁨을 절제하는 것을 가르친다. 그리고 패한 친구는 승리한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건네게 한다.

그것을 몸에 익히고 나면 경기 후 승패도 내팀과 상대팀도 없어진다. 모두 함께 땀흘린 친구만 남아 서로의 어깨를 토닥여준다.

킨볼 경기가 한창인 초등학교 체육수업 풍경
 킨볼 경기가 한창인 초등학교 체육수업 풍경
ⓒ 김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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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대표로 시 육상대회에 나갔던 4학년 아이가 1등으로 달리기 예선을 통과하고 결승에서 6명 중 6위를 했던 일이 있었다. 다음날 등교를 한 그 아이는 풀이 죽어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수업시간 중 아이들이 "선생님 쟤 육상대회 나가서 꼴찌 했다면서요?"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때 반 아이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꼴찌 한 게 아니라 우리 학교 4학년 중 제일 잘 뛰는 학생이 대회에 출전해서 우리 시의 모든 초등학교 4학년 중에 6번째로 빨리 뛴거다"라고.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그 아이를 부러움과 존경이 교차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리는 흔히 스포츠경기를 보며 승과 패만을 바라본다. 하지만 패배가 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거짓 없는 땀방울을 흘린 선수들은 패배를 교훈삼아 다시금 뛸 수 있도록 신발 끈을 동여맨다.

리우올림픽의 열기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 지금 좋지 못한 경기력으로 팀 패배의 원흉이 되어버린 한 선수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살아온 인생의 절반이 운동선수였던 그 선수의 경기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텐데 다시 뛸 수 있는 의지까지 접어놓듯 무자비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지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서는 투수가 없듯이 지기 위해 올림픽에 도전하는 선수도 없다.
좋지 않은 결과로 누구보다 미안함과 고통 속에 있을 선수들에게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이길 바라지 않는다면 다시 뛸 수 있도록 힘찬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



태그:#리우올림픽, #격려,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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