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작가의 의도와 다른 작품이 태어날 때가 있다. 현실세계를 재료로 한 다큐멘터리에선 이런 경우가 빈번하다. 경계인으로 살아간 송두율 교수의 삶에서 그를 대하는 한국사회의 폭력성으로 초점이 옮겨간 <경계도시2>와 같은 작품이 유명한 사례다. 2003년 재독학자 송 교수의 방한 이후 벌어진 사태를 다룬 이 영화는 본래의 목적인 송 교수 개인의 삶에서 벗어나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경직성을 고발하는 작품이 됐다. 홍형숙 감독이 기획단계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며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기 때문이다.

촬영 도중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펑크 뮤지션과 동일본 대지진>이 제12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선보였다.

<펑크 뮤지션과 동일본 대지진>이 제12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선보였다. ⓒ 시마필름주식회사


지난 16일 폐막한 제12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경쟁부문인 '세계 음악영화의 흐름'에 출품된 <펑크 뮤지션과 동일본 대지진> 역시 그런 영화다. 환갑을 넘긴 일본의 펑크뮤지션 엔도 미치로가 자신의 삶을 영화로 제작하고자 했는데 촬영 도중 그만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그로부터 후쿠시마 원전 1~3호기의 전원이 멈추고 폭발 및 방사능 유출이 연달아 이어지며 엔도가 속한 록밴드 '더 스탈린'의 공연도 중단된다. 당연히 영화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나름 전설적인 명성을 가진 펑크락 밴드 더 스탈린의 리더 엔도 미치로는 후쿠시마 니혼마스 출신이다. 시골 출신으로 도시로 상경, 좌파적이고 급진적인 사상을 전파하는 전위적 음악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런 그가 2011년 환갑을 맞이해 전국투어에 나서기로 결심하고 전국의 팬들과 소통을 시작한다. 하지만 고향인 후쿠시마를 비롯해 동일본 지역을 돌던 중 대지진이 발생하며 공연을 할 수 없게 된다.

이후 카메라는 엔도의 고향인 후쿠시마부터 그의 삶을 뒤쫓기 시작한다. 그가 왜 고향을 떠나왔고 어머니와는 어떤 관계인지, 후쿠시마에 대한 감정은 어떤지 등이 엔도가 지인들과 나누는 대화 등을 통해 보여지는 것이다. 특히 대지진과 원전 폭발로 큰 피해를 입은 고향을 지켜보며 전쟁과 원자력 등에 대한 생각을 밝히는 부분이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엔도의 생각은 그저 생각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8월 15일 후쿠시마에서 원전피해와 관련한 일대 페스티벌을 기획한다. 고향인 후쿠시마가 입은 고통을 기억하고 승화시키려는 의도에서다. 1950년대에 태어나 전쟁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기억하는 그가 전쟁과 관련한 이야기조차 듣지 못하고 자란 일본의 젊은 세대와 교감하려는 의지가 곳곳에서 엿보인다.

외면한 것들을 다시 바라보다

 펑크락 밴드 '더 스탈린'의 리더 엔도 미치로. 카메라는 엔도의 고향인 후쿠시마부터 그의 삶을 뒤쫓기 시작한다.

펑크락 밴드 '더 스탈린'의 리더 엔도 미치로. 카메라는 엔도의 고향인 후쿠시마부터 그의 삶을 뒤쫓기 시작한다. ⓒ 시마필름주식회사


사회전복과 혁명 등 좌파적 메시지로 가득한 음악을 평생에 걸쳐 해오며 사회참여적 음악가로 불려온 엔도 미치로가 음악을 넘어 사회적 활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 계기가 후쿠시마의 고통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 스스로 어머니와 고향을 등지고 살아왔지만 자신의 삶 전체를 뒤흔든 사고를 맞이하고 평생에 걸쳐 외면한 것들을 다시금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후쿠시마와 어머니에 대한 그의 생각이 바다 건너 한국 관객들에게 얼마나 호소력있게 다가올지 알 수 없으나 원전이 남긴 피해가 한 음악가의 삶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음은 분명해 보인다.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한 촬영과 편집, 정밀한 기획 대신 사건에 따라 흘러가는 구성, 호불호가 심각하게 갈릴 것이 분명한 더 스탈린의 전위적인 무대 등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에 깊이 몰입하는 걸 어렵게 만든다. 다만 한 명의 사람으로서 엔도가 왜 이와 같은 변화를 겪게 되는지, 원전이 그의 삶에 남긴 고통이 어떠한지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음악과 영화가 함께하는 제천 국제 음악영화제가 고심해서 고른 경쟁부문 출품작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약간의 신뢰도 더해진다 하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펑크 뮤지션과 동일본 대지진 제12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더 스탈린 엔도 미치로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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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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