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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계백>의 의자왕(조재현 분).
 드라마 <계백>의 의자왕(조재현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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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의자왕은 집권 19년 동안 약 100개의 신라 성을 빼앗았다. 근초고왕이나 고구려 광개토태왕·장수태왕만은 못해도, 그 역시 자기 나라 영역을 크게 넓혀놓았다. 물론 전쟁은 나쁜 것이지만, 그가 그렇게 열심히 전쟁을 벌인 목적 중 하나는 일자리 창출이었다. 의자왕을 비롯해 옛날 군주들이 전쟁을 벌인 본질적 동기는 바로 그것이었다.

어느 나라든지 간에 옛날에는 전쟁이 빈발했다. 몇 년이 멀다 하고 전쟁이 벌어지는 때가 많았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영토가 한반도로 고착된 고려시대 중반 이전만 해도, 한민족 역시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옛날 사람들이라고 해서 전쟁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순수했고, 생명도 더 존중했다. 또 환경 친화적이었다. 그들의 인간성이 나빠서 전쟁이 자주 벌어졌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럼, 왜 그렇게 전쟁을 많이 했을까? 진짜 이유는 국가 운영의 필요성에 있었다. 어느 시대건 간에 국가는 세금 수입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영양분을 안정적으로 섭취해야 생명체가 유지될 수 있듯이, 국가 역시 조세를 안정적으로 거둬야만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백성과 영토의 규모를 항상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했다. 그것이 적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국가 운영에 적신호가 켜졌다. 유목국가가 아닌 농업국가의 관점으로 표현하면, 농민과 농토를 적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야 나라가 굴러갈 수 있었다.

농민 숫자가 그 이하로 내려갈 경우, 옛날 국가가 택할 수 있는 손쉬운 해법은 전쟁을 해서 외국 농민을 빼앗아 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외국 농민을 자국 농토에 배치해야 했다. 개인에게 거주·이전의 자유도 없고 국경을 넘을 기회도 없었던 고대에, 외국 농민을 유치하는 유일한 방법은 전쟁을 벌이는 길뿐이었다.

<논어> 계씨 편에서 공자는, 진정한 군주는 백성이 적은 것을 걱정하지 말고 백성들의 삶이 불평등한 것을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말이 나온 것은 옛날 군주들이 백성 숫자가 적은 것을 그만큼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 농민을 빼앗기 위한 전쟁이 빈발했던 것이다.

물론 전쟁을 벌이게 되면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침해하게 된다. 이 글에서 옛날 국가들의 전쟁을 경제나 국가 재정적 측면에서 조명한다고 해서, 전쟁의 부정적 측면까지 함께 미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음력으로 의자왕 2년 7월이었다. 양력으론 642년 8월이었다. 집권 2년차인 의자왕은 직접 군복을 입고 신라와의 전쟁에 나서, 불과 한 달 만에 40여 개의 신라 성을 점령했다. 그런 다음에 그는 장군 윤충을 시켜 신라 대야성까지 함락했다. 대야성은 지금의 경남 합천과 부분적으로 겹쳤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즉 백제 편에 따르면, 윤충이 대야성을 함락하자 의자왕은 대야성 주민 1천여 명을 사비성 서쪽, 즉 충남 부여 서쪽으로 옮겨놓았다. 이 1천여 명은 주로 농민이었다. 농민 1천여 명을 사비성 서쪽에 배치했다는 것은 그들을 그곳 농토에 배치했다는 뜻이다. 이것으로써, 의자왕이 윤충을 대야성에 보낸 의도가 드러난다. 사비성 서쪽의 노동력 부족을 타개할 목적으로 그렇게 했던 것이다.

일자리 증대 위해 전쟁 벌인 군주들

백제군의 전투. 서울시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백제군의 전투. 서울시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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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례는 다른 시대, 다른 왕들의 경우에도 자주 발견된다. 예컨대, 서기 302년 고구려 미천태왕이 중국 현도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그곳 주민 8천 명을 평양으로 옮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평양 쪽의 노동력 부족을 해소할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지금 살펴본 것은 농토보다 농민이 적은 경우다. 반대로, 농토가 농민보다 부족한 경우라면, 다시 말해 농민들이 일할 농토 즉 일자리가 부족한 경우라면, 국가는 농민 빼앗기가 아니라 농토 빼앗기 즉 일자리 확보를 위해 전쟁을 벌였다.

이런 경우, 국가는 새로 점령한 지역의 농민들에게 세금을 거두거나 아니면 그곳에 자국 농민들을 집단 이주시켰다. 자기 나라 농민들을 새로운 점령지로 이주시키는 것이 역사서에 자주 나오는 사민(徙民)정책이란 것이다.

새로 점령한 농토에도 기존의 외국 농민들이 있겠지만, 그 숫자는 전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A라는 외국 성을 지키는 병사들은 거의 다 그 지역 농민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A 성이 전투에 패배하면 그 지역 농민도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 새로 점령한 농토에서 세금을 신속히 거두는 방법은 자국 농민을 A로 사민시키는 것뿐이었다. 자국 농민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주고 조세를 거뒀던 것이다.

국가를 포함해 집단 간에 벌어지는 유혈투쟁은, 그 명분이 아무리 고상할지라도, 대부분은 경제력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다. 지금 국가들은 주로 무역을 통해 경제력을 증강시키지만, 고대 국가들은 위와 같이 농민이나 농경지를 빼앗는 방법으로 경제력을 증강시켰다. 옛날 왕들이 몇 년이 멀다 하고 열심히 전쟁을 벌인 것은 그들 나름대로는 경제 살리기의 일환이었다.

의자왕은 재위 19년 동안 신라와의 전쟁에서 약 100개의 성을 빼앗았다. 신라·당나라의 나당연합군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660년 이전에, 그는 그렇게 승승장구하며 백제 농토를 넓혀나갔다.

고대에는 인구밀도가 낮았기 때문에, 농토보다는 농민을 빼앗기 위한 전쟁이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의자왕의 시대에는 농토를 늘리기 위한 전쟁의 비중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사민 정책이 수반되는 정복전쟁이 많이 벌어진 사실에서 그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점은 그 시대 백제 농민들의 일자리가 많이 부족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백제 멸망에 책임이 있는 의자왕 같은 인물도 백성들의 일자리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녔는지를 보여준다. 나라를 잃기 전만 해도, 그는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을 벌인 군주였다.

의자왕을 포함한 옛날 왕들이 전쟁을 벌인 숨은 동기는 정권 안정과 세수 확보에 있었다. 그렇더라도 그것이 농민들의 고용 증대에 기여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의자왕처럼 나라를 못 지킨 군주도 이랬다면, 그렇지 않은 다른 군주들이 일자리 증대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의자왕이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를 본다면...

충남 부여 백제문화단지에 조성된 백제 궁궐.
 충남 부여 백제문화단지에 조성된 백제 궁궐.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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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이 등장한 이래,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특정 국가의 백성으로 강제 편입된다. 이때 개인의 의사는 존중되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는 자기 관할에서 출생한 개인에게 납세·병역·법률준수 등을 포함한 각종 의무를 강제적으로 부여한다. 그에 불응하면 형벌을 부과하고 생명을 빼앗기도 한다.

그래서 개인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국가에 의해 '찜'을 당하고, 자기 인생의 상당부분을 국가를 위해 살지 않으면 안 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기 인생의 일정 시간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득 활동의 10% 내지는 30%는 국가를 위해 해야 한다. 소득 활동과 상관없이 무언가를 구매할 때도 국가에 돈을 내야 한다.

이렇게, 개인은 좋든 싫든 국가의 사람이 되어 국가를 위해 살 수밖에 없다. 그것을 거부하면 개인의 안전과 목숨은 보전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국가가 개인의 기본 생계 정도는 책임져 주는 것이 마땅하다. 개인한테만 '나라를 위해 살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생계를 책임져주면서 그런 요구를 하는 게 당연하다.

이런 점을 보면, 의자왕을 포함한 고대 군주들이 일자리 창출을 위해 툭하면 전쟁을 벌인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백성들을 자기 사람들로 만들고 그들의 충성을 받자면 그 정도 위험은 당연히 감수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전쟁을 벌여 자국 및 상대국의 백성들을 상하게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특히 자국 백성의 몸이 상하는 것은 군주의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 글에서 강조하는 것은, 의자왕을 포함한 고대 군주들이 그런 점을 감수하면서까지 전쟁을 벌인 근본적인 동기는, 농민을 늘려 농토의 생산성을 높이거나 아니면 농토를 늘려 일자리를 증대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전쟁이라는 위험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를 통해서라도 나라 경제를 살리고자 했던 그들의 절박함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생산성을 높이고 일자리를 증대시킬 목적으로 전쟁까지 불사하는 절박한 분위기 속에서 나라를 통치했던 의자왕. 그런 의자왕이 2016년 대한민국을 본다면 한숨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너무 나태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 혈세에서 나온 지원금으로 내국인 고용을 늘릴 생각은 안 하고, 부동산을 사들이는 데 혈안이 되거나 아니면 해외 공장을 세워 남의 나라 고용만 늘려주는 한국 재벌들. 대한민국 정부는 그런 재벌들에게 일자리 증대를 부탁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목숨을 걸고 나서지 않고 재벌들에게 맡기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의무를 강요하면서도 국가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대한민국을 보면서 의자왕은 탄식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서민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지도 않으면서 서민들의 세금만 거둘 궁리를 하는 대한민국 정부를 보면서, 그는 '저 정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의자왕은 물론이고 어느 시대, 어느 군주도 그런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태그:#청년수당, #기본소득, #의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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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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