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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유일한 본분으로 일컬어지는 공부. 하지만 "공부만 하라"는 어른들의 질책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에 드러나거나 숨겨진 여러 곳에서 두각을 보이는 청소년들이 있고, 그리고 청소년에게 힘이 되어주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같은 고민에 속해 있는, 청소년인 필자가 직접 인터뷰합니다. 또, 청소년들이 모이고, 주최했던 행사나 모임을 취재합니다. 청소년 시민기자가 직접 발로 뛰고 집필하는 연재기획, <옆동네 1318>입니다. 

서울, 부산 등 대도시에서의 인지도는 꽤나 낮지만, 같은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반영함으로써 말로만 하는 개혁 대신 실제로 학교 현장의 개혁을 이끌어낸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최연소 당원'으로 이목을 끌었던, 최준호씨가 만든 청소년단체인 '중고생연대' 이야기입니다. 이번 차례에는 중고생연대의 대표 최준호씨를 비롯한, 회원 네 명을 인터뷰해봅니다.
- 기자 말

청소년들이 학교나 교육당국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학생회 일원이 되면 할 수 있는 대위원회라든가, 학교에 옴부즈맨 역할을 하는 편지함에 쪽지를 넣거나 하는 등의 활동, 영 아닌 일을 만나면 친구들끼리 모여서 '뒷담화'를 까는 것이 전부가 아닐까.

그런 청소년들의 의견을 반영한 단체가 있다. 바로 원주지역에서 처음 시작해 현재는 여러 지역에서 '지역밀착형 단체'로 커나가고 있는 중고생연대다. 강원지역 고등학교에서 이미 '강제야자'를 없앴고, 지금은 분실 시 책임 문제나 학생의 자유권 침해 등으로 꽤나 많은 논란을 겪고 있는 '휴대폰 수거'를 없애기 위해, '고등학교의 9시 등교'를 실현시키기 위해 꽤나 고군분투하고 있는 단체이다.

8월 15일 광복절, 대학로에서는 8.15 범국민대회가 있었다. 중고생연대에서도 꽤나 많은 회원들이 참석했다. 범국민대회가 열리기 직전 아침, 대표인 최준호씨와 부대표인 문준혁씨, 그리고 회원인 곽비초씨와 김가현씨를 인터뷰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한 껏 모인 중고생연대의 회원들, 왼쪽부터 김가현씨, 곽비초씨, 문준혁씨, 최준호씨.
 한 껏 모인 중고생연대의 회원들, 왼쪽부터 김가현씨, 곽비초씨, 문준혁씨, 최준호씨.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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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이 이끄는 중고생연대, 19세 넘으면 자격 없다

- 만나서 반갑다. 자기소개 한 마디씩 부탁드린다.

최준호: "강원도 춘천시에 거주하고 있는 19살 최준호이다. 지난 해에 원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지만, 학교 자체를 빨리 졸업한 덕분에 아직 미성년자다. 올해는 춘천에 새롭게 지부를 만들기 위해 춘천으로 이사를 와서 생활하고 있다."

문준혁: "경남 사천시에 거주하고 있는 17살 문준혁이다. 현재 중고생연대에서 부대표를 맡고 있다."

곽비초: "춘천 우석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중2이다. 중고생연대 춘천지부에 소속되어 있고, 연대에서는 최고위원을 맡고 있다."

김가현: "춘천의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다. 얼마 전에 중고생연대 춘천지부장으로 선출되어 1년간 활동하게 되었다."

- 중고생연대에 대해 잘 모르는 시민들이 많다. 중고생연대에 대해 연대 대표인 최준호 씨가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는가.

최준호: "중고생연대는 중고등학생들의 자주적인 행동을 통하여 교육체제와 사회문제를 개혁, 변혁해내고자 하는 중고등학생들의 단체이다. 2014년 8월 22일 출범하였고, 2016년 8월 현재는 연천, 춘천, 사천, 부산, 청주 등 5개 지역 정식 지부와 여러 지역의 준지부를 운영하고 있다. 총 120여명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교육제도를 전면 개혁하는 것, 중고등학생의 여가문화를 진흥하는 것,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중고등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고 권리를 신장하는 것을 단체 목표로 두고 있다. 이 중에서 교육체제에 대한 개혁은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주장하고 있는데, 학생인권의 침해와 여가 문화의 억압 등의 근본 원인 또한 입시 위주의 교육 체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우리는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의 교육제도 대신 중고생연대는 자체적인 교육제도 개혁을 제안하고 있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초중등교육 과정에서 학생의 적성을 찾아주는 과정을 가르치고,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학생이 찾게 된 적성만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게끔 하자는 것이다. 학생은 학생이 원하는 것만 배우면서도, 사회에 나가서 충분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단체는 대중단체를 지향하고 있고, 또 우리가 주체가 되어서 의견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부 개설도 공격적으로 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이다. 학생들 요구가 아닌, 그저 진보교육감들의 치적 쌓기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선 현장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악용하는 학생도 있고,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하는 지역 학생들의 절반 가까운 학생들은 아직도 학생인권조례라는 단어조차 들어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연대는 적어도, 중고생운동 만큼은 중고생이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출범부터 현재까지 결코 성인 회원을 허용하고 있지 않으며, 나도 성인이 되면 나가야 한다.(웃음) 역사상 모든 회원과 지도부는 전원 19세 이하였다. 중고생운동만큼은 중고등학생이 '주체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좌파정당이나 전교조가 배후? 성인 후원 바라지도 않아

- 공격적으로 활동했다면 성과가 하나쯤은 있을텐데.

최준호: "2014년 12월부터 2015년 7월까지 진행된 '강원지역 강제보충야자 철폐 투쟁'이 가장 큰 성과였다. 당시 강원지역에만 100여명의 회원들이 있었는데, 이 회원들이 뭉쳐서 강원 전 지역의 강제 보충과 강제 야간자율학습을 폐지하기 위한 투쟁에 돌입했었다. 서명운동과 실태조사, 기자회견, 캠페인 등을 벌이며 교육청을 설득하였으나, 교육청은 '우리 강원도에는 단 한 건의 강제 야자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내세웠었다.

그 때 도교육청 장학사가 중고생연대에 "법적으로 인정받는 단체도 아닌 주제에 어디서 교육청에 그런 요구를 하느냐" 등의 말을 했었는데, 이를 기점으로 매일 교육지원청 등의 기관 앞에서 1인시위를 펼쳤었다. 2015년 여름방학부터 강제보충야자가 철폐되지 않는다면 무기한 단식 농성과 수업 거부 등의 행동을 취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결국 서로 대화가 이어졌고, 중고생연대와 강원도교육청 간의 대화를 통해 2015년 여름방학부터 모든 강제보충야자를 철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후 상당수 강원도내 고등학교에서 강제보충야자가 사라졌으며, 일부 학교만이 교육청 지시를 거부한 채 강제보충야자를 이어가고 있는 상태이다."

- 사실 이런 활동에 좌파정당이나 전교조가 배후로 있다, 성인들이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는다 등의 이야기를 꽤나 듣는 것으로 안다.

최준호: "'뒤에 배후가 있다' '누군가가 이 단체를 이끌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오직 중고생으로만 이루어져있는데, 추진력이 상당하다고 해서 그렇게 의심하는 것 같다. 사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굉장히 감사하지만, 잘못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을 만나서 바로잡아보고 싶다.

사실 성인은 이 단체에 가입하지 못하고 후원만 가능하다. 성인 단체의 후원은 받지 않는다. 단체 설립 이후 성인이 모두 낸 금액을 따지고 보면 단 1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성인 후원은 바라지도 않고, 실제로 성인 단체에서 두어 번 정도 제안이 들어온 적이 있는데 단칼에 거절했다. 

중고생연대를 만들기 전에, 내가 개인적으로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 청소년위원회에 소속되었던 적이 있었다. 이를 근거로 몇몇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은데, 통합진보당 청소년 위원회 활동 당시에는, 오히려 통합진보당의 정책에 물들었다기보다는 우리 중고생연대가 청소년위원회의 추진 정책을 물들이지 않았나 싶다."

중고생연대는 2015년 4월 11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촉구 집회를 연 적이 있다.
 중고생연대는 2015년 4월 11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촉구 집회를 연 적이 있다.
ⓒ 중고생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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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할 때까지 호의적인 선생님 한 분도 없어

- 이런 연대 활동, 그리고 대외활동에 대해서 학교나 주변사람들이 반대하지는 않는가.

최준호: "중고생 연대가 재작년에 만들어졌을 때, 학교 측 반대가 많았다. 어떤 선생님은 '몇학년 몇 반 최준호를 왕따시켜라' 이런 말도 하신 적이 있는데, 그러든 말든 열심히 활동을 했고, 같은 학교 학생 중에 회원이 서른 명 넘게 생기니까 힘도 생기고, 선생님들도 이 친구들에게 함부로 대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졸업할 때까지 호의적이었던 선생님은 한 분도 안 계셨다. 학생들도 처음에는 안 좋은 활동이라 알았지만 활동 모습을 보여주니까 점점 진심이 통하더라.

부모님 반대도 심했다. 회원들에게 내가 당부하는 말이 있는데, '가족에게 굳이 활동내역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때부터 몰래 활동을 했는데, 중학교 2학년 때 집에 들켜버렸다. 아버지가 나에게 설득을 위해서 '가족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활동을 선택할 것이냐'라는 말을 했는데, 활동을 선택하겠다고 했더니 진짜 집에서 내쫓으셨다. 지금까지 자취생활을 하고 있다."

문준혁: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의 의견이 갈린다. 적극 지원해주는 선생님이 계신가 하면 이러지 말라고 하시는 선생님도 계신다. 우리 학교에 회원이 서른여 명 있어서 그런 것도 있다. 집에서도 부모님 의견이 갈린다. 어머니는 적극 지원을 하시지만, 아버지는 제발 조용히 살라고 하신다."

곽비초: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중고생연대 활동하는 것을 모르신다. 그런데 집에서 시위현장 뉴스를 볼 때마다 부모님이 '이런 거 하지 마라, 이런 거 하면 집에서 내쫓아버리겠다'고 하신다."

김가현: "학교에서는 공격적으로 활동을 하지 않아서 모르고, 집에서도 모르는데, 만약에 한다고 하면 집과의 관계가 미묘해지지 않을까 싶다."

사천지부에서 지난 7월 31일 열린 회원교육의 모습.
 사천지부에서 지난 7월 31일 열린 회원교육의 모습.
ⓒ 중고생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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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생이 고통스러울까 의문, 제도적이고 사회적인 문제 인식

- 그렇다면 조금 궁금한 것이 있다. 중고생연대에는 어떤 이유로 참가하여 어떻게 활동하게 되었고, 최준호씨는 어떻게 연대를 만들게 되었는가. 학생의 신분으로 사회에 어떻게든 '반기를 든다는 것'이 계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데.

최준호: "내가 열살 때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집회'라는 이름으로 정말 크게 촛불집회가 있었는데, 그 곳에 참가하면서부터 교육체제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 것 같다.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당시 집회 때 거리로 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그 곳에서 학교란 싫고 짜증나는 곳이 아니라, 여러 가지 제도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중학교에 입학을 해 보니 여러 교육체제의 문제들이 직접 저한테 다가왔다. 고입 준비를 위해 남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고, 공부를 못 하면 맞고, 두발규제도 당하는 것이 체감되기 시작했다. 이런 것들을 바꾸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몇 달 동안 혼자서 끙끙댔었다. 몇 달간 고민한 끝에 나온 결론은 '나 혼자서는 교육체제는커녕 학교 하나도 바꿀 수가 없다, 많은 학생들을 모아야만 힘이 생겨서 바꿀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을 모티프로 삼았다. 그래서 단체 이름은 전국학생노동조합, 이렇게 짓고 다짜고짜 회원을 모아보았다. 약 1년쯤 온갖 활동을 해봤는데, 노하우도 없고 아는것도 없어서 그런지 도저히 아무것도 안 되었다. 찾다보니 우리랑 비슷한 처지의 단체들이 꽤나 많았던 것을 눈치챘다. "이거 우리끼리 아무것도 안되더라, 우선은 우리끼리 뭉쳐보자" 이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선 우리끼리라도 합쳐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서 또 한 1년을 통합을 위한 협상을 했다. 단체가 한둘이 아니었으니 협상이 길었다. 2012년에 '전국민주청소년연합'이라는 한 100명 규모의 큰 단체를 만들어냈고, 운이 좋아서 초대 대표가 되었다. 그런데 이 단체도 큰 성과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열정적으로 무엇인가를 해보기도 하고, 잘 안되어서 사람들이 떠나 무너지기도 하고, 이런 과정을 또 2년을 거쳤다.

그렇게 4년을 거치다보니 어느 순간 자신감이 생기더라. "아, 이젠 내가 적어도 중고생운동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어느 순간 생겨나고, 이제 진짜 제대로 된, 단체다운 단체를 만들어보자는 결심이 생겼다. 4년간 몸으로 부딪히며 깨달은 것들과, 4년간 쌓인 인맥들을 총동원해서 2014년에 '중고생연대'를 만들었고, 그 결과는 꽤나 흡족한 것 같다."

"다 너희들 위한 것"이라 말하는 어른들, 다 자기 이익 위해 하는 행동

문준혁: "2015년 10월 말 즈음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나는 사학도를 꿈꾸고 있었기에 이 문제에 대해서 특히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학생으로써 국정화를 저지하기 위해 활동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중고생연대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다. 국정화 저지 활동을 계기로 중고생연대에 가입하게 되었고, 이후 자연스럽게 중고생연대가 메인으로 주장하는 교육제도의 문제나 학생인권에 대한 관심도 가지게 되었다.

이런 관심은 더욱 커져서 열정으로 변했고, 거주하고 있는 지역인 사천에 지부를 뿌리내리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친구들을 모아서 사천지부를 성공적으로 출범시켰고, 대표인 최준호씨가 빠른 시간 내에 성공적으로 지부를 만드시는 것을 보며 나를 부대표로 임명했다. 지금은 대표 선거에도 도전하려고 한다."

곽비초: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뉴스를 많이 보셨는데, 아무것도 모른 채 아버지가 보시는 뉴스를 따라서 보았다. 자연스럽게 정치라는 것에 관심이 가게 되었지만, 교육체제에 대해서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점점 고학년이 될수록 학교에 다니는 것이 힘들어졌다. 초등학교 4학년 쯤 되면서부터, 학교라는 공간이 저를 너무 지치게 했다.

중학교에 진학을 하고 나서는 더욱 더 답답했다. 두발규제, 복장규제 등으로 학생들의 자유를 빼앗았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는 언제나 "다 너희들을 위한 거야"라고 얘기하였지만, 막상 내가 바라보면 어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행동들이었다. 대한민국의 교육제도가 옳지 않다고 이야기하더라도 어른들은 '어린 것들이 뭘 알아!'라는 식으로만 대응을 하고, 학생인권이 무시당하는 상황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중고생연대의 홍보를 보게 되었고, '반드시 우리들의 목소리를 부당한 어른들의 목소리보다 더욱 크게 만들겠다'라는 오기와 열망이 생기면서 중고생연대에 가입을 하게 되었다. 가입하고 나서, 최준호 대표의 제안을 받아 최고위원에 출마하기까지 되었다. 고맙게도 회원분들이 나를 신뢰해주셔서 쉽게 당선이 될 수 있었다."

김가현: "페이스북을 보고 있었는데, 중고생연대가 페이스북에서 홍보를 하고 있는 모습을 접했다. 많은 학생들이 그렇듯 교육체제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학생이 많지 않은가. 홍보 포스터의 문구였던 '사회 이슈에 대한 다양한 캠페인, 교육제도 개혁과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활동'이라는 부분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보통의 동아리나 중고생모임이라면 그냥 토론하고, 세미나만 하고 스펙쌓기용으로 보여주기식 활동만 하고 끝나는 것이 보통인데, 중고생연대라는 단체는 실제로 사회 문제를 바꾸기 위해 거리로 나서서 활동을 한다는 것에 끌려 가입하게 되었다. 활동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만에 사회의 문제, 교육제도의 문제, 학교가 왜 생겨났는지 등 학교와 사회 어디에서도 정확히 알 수 없었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열정적으로 활동을 더 하고 싶었고, 그래서 선거를 통해 춘천지부장이 되었다."

중고생연대가 2015년 5월 10일 벌였던 강제보충야자 철폐를 위한 강원지역 중고등학생 기자회견.
 중고생연대가 2015년 5월 10일 벌였던 강제보충야자 철폐를 위한 강원지역 중고등학생 기자회견.
ⓒ 중고생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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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미쳤다'는 프레임, 활동할 때 외엔 평범한 삶

- 지금 계획하고 계신 활동이 궁금하다. 조금 뒤면 2학기 학사일정이 시작될텐데,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가.

최준호: "매 8월 선거를 하고 있다. 모든 선출직 임기가 1년 연임제이고, 성인이면 안된다는 조항이 있다. 북쪽 지부인 연천지부에서 회원끼리 선거를 시작해서 남쪽 사천지부에서 끝나는데, 모든 지부의 선거가 끝났고 사천지부의 선거만이 남아 있다. 선거가 끝나면 8월 중에 선출직 총회를 개최하여, 2학기 활동 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전국적으로는 각 지부의 상황에 맞는 활동을 하되, 11월 3일 학생의 날에는 연대 회원인 모든 학생들이 하나로 뭉쳐 집중된 활동을 하지 않을까 싶다."

문준혁: "사천지부가 있는 사천시쪽은 꽤나 보수적인 지역이다. 그래서 공개적인 사회운동을 하는 대신에, 지역사회에 기여하기 위하여 여러 봉사활동, 지역축제 보조 등을 할 계획이다."

김가현: "춘천은 9시 등교제에 대해 내부 토론을 하고, 외부에는 설문조사를 하려고 한다."

- 이런 청소년 활동을 하면 고정적인 프레임이 있다. '이 녀석은 정치에 미쳐 사는 사람이다', '학생이 하라는 학교생활은 안 하고 수업시간에 만날 빠져서 집회하러 간다'라는 프레임이 있는데, 한 분씩 이런 프레임에 대해 간단히 반박이 가능할까.

문준혁: "일단 정치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평범하게 집에서 축구 보면서 욕도 하고, 올림픽 오심보면서 심판한테 욕도 하고, 아이유를 정말 좋아해서 사천에서 부산까지 콘서트도 갔다왔다. 정말 활동할 때 외에는 평범하게 산다. 어느 집의 평범한 아들내미처럼 산다."

곽비초: "나도 겨울에는 농구와 배구에 빠져 살고, 여름에는 K리그와 프로야구 직관도 다닌다. 나도 스포츠에 미쳐서 산다. 스포츠 외에는 다른 취미가 거의 없다. 학교에서 배구선수로 활동하고 있는데, 초등학교 때는 대회도 나갔던 적이 있다."

최준호: "사실 대표로 활동하다 보면 시간이 정말 부족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살짝 다른 삶을 사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나도 시간을 내서 친구들과 맛집탐방도 다니고, 영화도 보러 다닌다. 같은 학교 친구들과는 정치 이야기를 해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예인 얘기, '무도' 이야기도 하는 평범한 청소년이다." 

김가현: "활동 안 할 때는 친구들과 영화도 보고, 지하상가에 옷도 사러 다니고, 노래방도 가고, 운동도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좋아해서, 여름에 수영장도 가고, 봄 가을에는 육상도 하고,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에 자주 간다."

지난 15일 열린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중고생연대
 지난 15일 열린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중고생연대
ⓒ 중고생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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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면 청소년 운동 뒤에서 조용히 돕고 싶어

- 앞으로의 개인적인 계획이 궁금하다. 이제 몇 년이 지나면 모두 단체를 떠나야 되지 않는가. 단체 내에서의 계획이 좋고, 향후 개인의 계획도 좋다.

문준혁: "원래의 꿈은 역사학자였는데, 중고생연대에 들어오고 나서 정치인으로 바뀌었다. 언제 또 꿈이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고3때까지는 중고생연대에서 활동하면서 제 꿈을 키우고 싶다."

최준호: "중1 때부터 쭉 해왔던 활동인데, 올 해가 지나면 이 활동들을 정리해야 한다. 대학생 운동에 다시 투신을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나는 어릴 때부터 청소년 운동에 투신했던 사람이 아니었는가. 대학생 운동을 하는 좋은 분들은 나 말고도 많이 있으니까, 앞으로는 청소년 운동을 뒤에서 조용히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곽비초: "나도 최종 목표는 정치인이다. 국내의 청소년 문제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청소년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김가현: "졸업할 때까지 중고생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꿈이 교사인데, 나중에 사회교사가 되었을 때 이런 연대가 남아있다면 추천해주지 않을까 싶다."

청소년운동의 한계점을 '성인의 개입'에 꼽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성인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성인의 의견이 개입되어 청소년만의 이야기를 망친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원천차단시킨 중고생연대의 이런 행보는 비단 청소년단체 뿐만 아니라, '외부개입' 논란을 겪고 있는 꽤나 많은 단체에서 참고할만한 모델이 아닐까.

그들이 바꿀 세상이 기대된다. 구성원이 바뀌고 바뀔지라도, 같은 '청소년'이 모이고 그들의 고민은 늘 비슷비슷하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옆동네 1318은 우리 사회의 '멋진 청소년'이라면 누구라도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제보는 trainholic@naver.com으로 부탁드립니다.



태그:#청소년, #학생운동, #중고생, #교육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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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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