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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에서 노예제도의 존폐 여부는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었다. 산업화된 북부에서는 노예제를 폐지의 대상으로 간주했고,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남부는 노예 대농장을 운영하는 지주들이 노예제를 찬성했다. 이들은 끊임없이 대립했고 협정과 타협으로 평화를 유지하려 했으나 링컨이 대통령이 된 이후 마침내 갈등은 폭발하고 만다.

남부가 북부의 섬터 요새를 공격하면서 시작된 남북전쟁은 1861년부터 1865년까지 지속되었다. 북부는 초토화 작전을 펼치며 북부보다 산업 기반이 미약한 남부의 약점을 찔렀고, 결국 남부는 항복하고 만다. 이로써 미국은 다시 하나의 나라로 뭉치게 되었고 노예제는 폐지되었다.

남부의 흑인들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면, 남부 흑인들은 정말 그들이 원하던 자유와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었을까? 백인들은 자신들의 노예였던 흑인들을 한 명의 사람으로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는 책이 바로 수전 캠벨 바톨레티의 <하얀 폭력 검은 저항>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남부에선 노예에 대한 폭력이 사라지지 않았다. 백인들은 과거 자신의 노예였던 이들이 버젓이 한 명의 시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하고, 땅을 일구는 모습을 곱게 볼 수 없었다. 이 책은 그런 인종 차별의 민낯을 그림과 글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 따르면, 남북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남부의 엘리트 계층은 인종 간 평등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다루던 흑인들이 어떻게 자신과 동일한 인간일 수 있는지 미심쩍어 했다.

그들은 감히 동등한 사람인 척 행동하는 흑인들을 보고 분노했으며 필요하다면 집단 폭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할 판사까지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름의 논리를 개발하곤 했다.

"그런 평등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수 없습니다." 1869년 조지아 주의 한 대법원 판사는 이렇게 선언했다. "만물의 하나님은 세상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천국에 있는 가장 크신 대천사로부터 지상의 가장 보잘것없는 미물인 파충류에 이르기까지, 도덕적 차이와 사회적 불평등이 엄연히 현존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본래의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해야만 합니다. -19p

남부에서 인종 차별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저자는 남부 흑인들의 암울한 현실을 그대로 묘사한다. 흑인을 위한 토지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백인들은 자신들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불법 행위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땅을 갖고 경제 주체가 되려 한 흑인, 흑인들을 교육하기 위해 북부에서 내려온 교사들, 법정에서 흑인 이웃의 피해를 증언한 남부 사람 모두 이들의 공격 대상이었다. 이들은 야밤에 가옥을 습격하여 사람을 끌어내 죽이거나 나무에 목을 매달았다.

이런 남부의 인종 차별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조직이 바로 KKK였다. 이 단체는 테네시 주 펄래스키 시의 여섯 명의 퇴역 군인에 의해 만들어진 백인 우월주의 단체였다. KKK는 'Ku Klux Klan'의 약자로, Ku Klux는 그리스어로 모임을 뜻하는 kyklos를 바꾼 것이며 Klan은 모임을 뜻하는 clan에서 유래한 말이다. 즉, '모임 모임'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단체였다.

이 이상한 이름의 단체는 초기에는 작은 규모였지만, 점점 남부 전역에서 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전쟁에서 패배하고 낙심하고 있던 사람들, 북부와의 전쟁에서 농장이 초토화된 지주들, 자신의 소유물을 잃은 상류층들, 흑인도 백인과 같은 존중받아야 할 인간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흑인들에 대한 공포를 부추기는 소문도 이를 거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흑인을 공격하고 흑인들의 토지에서 흑인들을 내쫓았다. 흑인들이 교회에 다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흑인 교회를 공격하기까지 했다.

남부 전역에 걸쳐 쿠 클럭스 클랜은 흑인 교회를 감시했고, 교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설교 내용을 소상하게 소굴에 보고했다. 플로리다 주 잭슨빌에서는 클랜 단원들이 여성으로 가장해 예배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는 교회에서 다소 떨어진 나무 뒤에 숨어 있다가 교회에 가는 흑인 신도들에게 노골적으로 총을 난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190p


흑인들은 이에 맞서 글을 배우고 참정권을 행사했다. 북부에서 내려온 교사들도 이들을 돕고 위협에 굴하지 않았다. 결국 KKK의 활동은 1871년 그랜트 대통령이 민권법에 서명하면서 형식적으로는 끝이 났다. 그러나 KKK는 1920년대에 회원수가 500만 명까지 늘어났고 718명 이상의 흑인을 살해했다. 오늘날에도 인종 차별은 아직도 미국의 뇌관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소요와 폭동이 사라지지 않았다.

저자는 이런 KKK의 활동과 사람들의 증언, 차별적인 태도를 묵묵히 묘사한다. 그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잔인한 폭력과 이를 정당화하는 위선적인 판사와 엘리트들의 논리를 가감없이 적어 내려간다. <하퍼스 위클리>를 비롯한 당시 신문에 연재되었던 다양한 풍자화와 미국 의회 도서관의 그림 자료를 통해 인종 차별의 양태를 확인할 수 있다.

링컨의 당선과 남북전쟁 승리로 흑인들에게 자유와 평등이 도래했다는 생각과는 달리, 이 책은 차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이고 있다. 나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이 동등하다는 생각을 굉장히 위험하고 버릇없는 것으로 규정하는 태도는 굳건했던 것이다. 차별적인 사상과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는 끈질기다. 법의 제정과 집행만으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책은 지금도 차별의 벽을 깨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언급하며 끝이 난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에는 새롭고 다양한 종류의 차별이 범람하고 있다. 차별당하고 차별하며 살아갈 사람들에게, 차별의 연대에 맞서 나아간 이들의 모습은 깊은 울림을 준다.


하얀 폭력 검은 저항 - KKK의 탄생과 흑인 민권 이야기

수전 캠벨 바톨레티 지음, 김충선 옮김, 오찬호 해제, 돌베개(2016)


태그:#인종 차별, #흑인, #백인, #KKK,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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