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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산 봉우리 아래 만들어진 자연부락, 상촌마을

필자의 외갓집 동네를 오르는 아내
▲ 상촌 마을 필자의 외갓집 동네를 오르는 아내
ⓒ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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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넘던 고갯길 이젠 아내와 함께 넘는다.

겨울이면 얼어붙은 손을 호호 입김으로 녹이고, 여름이면 땀이 온몸을 적시어 힘겹게 오르던 고갯길, 그때는 참으로 높고도 험한 길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넘었던 외갓집 가는 고갯마루 길을 이제는 아내와 함께 넘는다. 그때는 두 사람이 겨우 비켜갈 수 있는 산 고개 오솔길이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산불진화용 도로가 개설되어 자동차로 넘는다. 어머니와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서로 의지하고 오르던 길을 오늘은 아내와 함께 자동차로 편리하게 고갯마루에 올랐다.

어머니가 태어나 아버지와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은 경상남도 고성군 동해면 장좌리 상촌부락, 첩첩 산골 구절산에서 벋어 나온 철마산 아래 첫 동네이다. 구절산은 해발 565m로 한반도의 동남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진해만을 관망할 수 있고,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 거제도 주변 작은 섬들이 펼쳐져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로 섬과 다름없는 곳이다. 산을 감아 도는 일주도로는 전국에서 마라톤을 연습하기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 연습코스로 사용되기도 한다.

상촌마을은 해발 396m 철마산 봉우리 아래에 형성된 자연부락으로 정상이 뒷동산과 같은 곳이다. 철마산은 "산 정상에 철마(鐵馬)가 있는 산성(山城)있었다"고 한다. 나는 철마산이 동쪽으로 흘러내려 '속시개' 바다에 닿은 어촌 마을 동해초등학교를 다녔다.

당항포해전의 숨은 공신 기생 '월이'

속시개는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 고성 기생 '월이'의 기지로 당항포 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곳이다.

일본은 임진왜란 2년 전부터 비밀첩보원을 조선에 파견하여 해전에 대비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 남해안 바다의 지형을 소상히 기록하도록 했다. 첩보원은 남해안 바다를 둘러보고 고성 무기정이라는 요정(음식과 숙박 제공)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일본 첩보원을 접대하던 기생 월이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월이는 일본인이 만취해 잠든 사이 남해 바다를 기록한 지도에 동해면 앞 바다 속시개와 고성읍 남쪽에 있는 고성만 사이에 있는 육지를 바다로 연결된 것과 같이 선을 그려 넣었다. 월이가 바다의 지형을 바꾸어놓은 것을 알지 못한 첩보지도는 전쟁 지도로 만들어져 임진왜란 해전에 사용되었다.

왜군은 지도에 따라 동해면 속시개로 들어와 고성만으로 빠져나가려다 속시개 안에 갇히게 되었고, 독 안에 든 쥐꼴이 된 왜군은 전멸하게 된다. 월이의 구국애로 대승 이끈 임진왜란 당항포 전투가 바로 철마산 자락이 만들어낸 지형 덕분이기도 하다.

철마산에는 산성이 있었고, 철로 만든 말을 이용하여 화살의 방패와 시위로 사용하여 먼 곳에서 보면 마치 병마(兵馬)가 있는 것처럼 의병계(擬兵計)를 썼다고 전한다. 지금은 철마는 사라지고 없다. 대신 산 중턱에 석마가 있다.

철마는 임진왜란 때 왜군이 파괴했다고도 하고, 또 다른 이야기는 어느 야련공(冶鍊工)이 철마를 가져다가 농기구를 만들어 팔았는데 이것이 화가 되어 온 집안 식구가 중병으로 신음하게 되어 부득이 같은 모양의 석마를 산 중턱에 만들어 액화를 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 철마산 아래 내산리와 양촌리에는 가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고분군이 분포되어있다. 고분군을 볼 때 가야시대 때부터 철마산은 남해안의 군사 요충지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가을 소풍을 자주 간 곳

철마산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4~6학년 때 가을 소풍을 자주 가던 곳이다. 먹을 것이 풍부하지 못했던 시절 소풍 도시락이라 해도 특별한 것이 없었다. 밥과 김치에 장아찌가 전부였고, 소풍 때만 맛 볼 수 있는 특별한 간식이 있었다.

아무리 가난한 집안이라도 소풍을 갈 때는 사이다 한 병, 삶은 달걀 몇 개가 간식으로 더해진다. 이것이 당시 유일한 먹거리의 즐거움을 맛보게 했다.

소풍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철마산 아래 있는 외갓집에 들러 할머니하고 부르면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이 소풍을 왔길래 니가 왔나 했다" 하시며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할머니는 가을의 풍요로움을 한껏 담아주셨다.

특히 산촌에서 많이 재배되는 옥수수를 한 가득 자루에 넣어 등짐을 만들어 짊어지어 주셨다. 할머니는 어머니와 우리들이 맛있게 옥수수를 먹을 것을 생각하면 곡식을 축내는 것을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외할머니는 우리들은 지극히 사랑하셨다.

문명의 손길은 이곳 산골에도 미치고 있다. 필자가 외갓집 가는 날은 가파른 고갯길을 2차선 포장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건설장비와 대형 트럭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산골마을 상촌에서 외지로 나가는 길은 두 곳이다. 한 곳은 완만한 골짜기 물길 따라 이어지는 대장마을까지 5km 거리다. 그곳엔 동해면 순환도로가 있다. 옛날 사람들은 10리가 넘는 이 골짜기길을 걸어서 다녔다.

그렇지만 이제는 2차선 포장도로가 개설되어 군내 순환 버스가 하루에 두 번 왕래한다. 또 다른 길은 마을 뒤 철마산 고개를 넘어 면소지가 있는 장기마을로 연결되는 길이다. 이 길은 '까꼬막'(가파른 오르막)이 심하다.

지게로 물건을 운반하던 시절 완만한 십리길보다는 지름길인 고갯길을 다녔다. '까꼬막' 길이 2차선으로 포장되면 상촌마을은 양방향 자동차 통행이 자유로워진다.

엄마와 함께 외가에 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본다

고갯마루에 도착해 자동차에서 내린다. 올라온 길을 내려다본다. 산을 깎아 갈지(之)자 형태로 이어진 길은 운전대를 힘주어 잡지 않으면 도로를 벗어날 것처럼 구불구불하다. 얼마 전 여행을 다녀온 장가계 천문산 도로와 비슷한 느낌이다.

고갯마루는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잘려 내려 앉아 옛길이 아니다. 한 낮의 뜨거운 햇살을 피해 나무 그늘에서 바람을 맞는다.

바람은 어머니가 태어난 외갓집 골짜기에서 불어온다.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난다. 그리고 '까꼬막'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치며 찡해진다. 갑자기 가슴이 아려 오면서 옴 몸이 전류를 느끼다. 가슴이 멍멍 해진다.

"연수야 저 까꼬막 우찌 올라 가끼고. 니 힘들면 말해라. 내가 업어 주꺼마."
"엄마 무슨 소리 하노. 내가 엄마 업어 줄 나이가 되었는데."

서로를 위로하면서 고개를 넘어 엄마와 함께 외갓집에 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본다.

옆에서 아내가 말한다.

"멍하니 서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나 외갓집에 처음 와 보는데 이렇게 높은 산골인지 몰랐네, 이 높은 길을 어떻게 걸어 다녔나요."
"허 참 그때는 참으로 높고 험한 길이었는데, 그리고 혼자서는 무서워서 다니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네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너스레를 떨어본다.

오래전 험한 산골 마을, 이젠 그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자동차가 고개를 넘어 모서리 길을 돌아선다. 어린 시절 나를 반겨주던 외갓집 동네가 눈에 들어온다. 외갓집은 산 아래 첫 집이었는데 이제는 철거되어 염소를 키우는 목장이 되어있다. 외사촌 동생이 마을 안쪽으로 집을 옮겨가고, 목장을 만들어 염소를 방목하고 있다. 목장에 차를 멈추고 내렸다.

진해만이 눈에 들어오고, 거제도의 작은 섬들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와 경치 좋다. 보기보다는 다르다."

아내가 감탄한다.

"우리 이곳에 땅 사가지고 집 지읍시다."

이렇게 말했더니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먼 곳은 싫어요. 당신 좋으면 그렇게 하세요. 나는 별장 삼아 아이들하고 휴가나 한 번씩 즐기려 올 테니까."

외갓집 동네는 험하디 험한 산골 마을이이었는데 그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조용하고 아늑하다. 목장에서 서성이자 외사촌 동생이 저만치에서 마중을 나온다.

엄마와 함께 외갓집에 왔을 때는 외할머니, 외숙모가 마중을 나왔는데, 아내와 함께 외갓집에 오니 외사촌 동생이 마중을 나온다.


태그:#동행, #외갓집, #상촌, #고성군, #철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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