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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패치 CI
 디스패치 CI
ⓒ 디스패치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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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검색어에 웬일인지 '디스패치'가 떠 있었다. 또 뭔가가 터졌구나 싶었다. AOA 설현과 블락비 지코가 사귄단다. 디스패치가 데이트하는 장면을 찍었단다. 'SKT 광고를 찍고 걸그룹 대세로 안착한 설현까지 희생양이 됐구나' 하는 생각 정도만 있었는데 막상 기사를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커졌다.

설현은 그 작은 얼굴을 마스크와 모자로 가렸다. 트레이드마크인 긴 머리를 감추기 위해서인지(더운 날씨 때문일 수도 있다) 꽁꽁 동여매기도 했다. 움짤(움직이는 사진)을 보니 택시를 타고 지코 집에 내려서도 혹시나 누구에게 들킬까 봐, 아니면 디스패치 같은 파파라치 매체들에게 찍힐까 봐 부리나케 뛰었다. (관련 기사: [스타포착] "너는 나, 나는 너"…설현♡지코, 데이트 현장)
디스패치 보도 사진 속 설현이 뛰는 모습 "지코 만나러"라는 설명 글을 넣었다.
 디스패치 보도 사진 속 설현이 뛰는 모습 "지코 만나러"라는 설명 글을 넣었다.
ⓒ 디스패치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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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현이 뛰는 장면은 그야말로 '기묘하게' 다가왔다. 짠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디스패치가 파헤친 많은 열애설 기사를 보았지만 한쪽이 이렇게 있는 힘껏 달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디스패치가 그간 많은 여자아이돌을 '털어댔고', 올해만 해도 EXID 하니, f(x) 크리스탈 등이 제물이 됐으니 설현 역시 걱정을 안할 수가 없었을 거다. 더구나 대세 중의 대세가 아닌가. 얼마든지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하고 있었을 테다.

하지만 사랑은 숨길 수 없었다. 누구나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권리인데도 단지 얼굴과 이름이 더 알려진 유명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도 쉽게 '취재'(라는 말을 붙이기도 아깝다)의 대상이 된다는 게 냉혹하다고 느껴졌다.

"톱스타는 사생활 없다" 잔인한 디스패치

디스패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설현이 다급하게 움직이는 이유를. 본인들과 같은 파파라치 매체에게 포착되고 싶지 않다는 그 본능이 '전력질주'로 나타났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권리'를 앞세워가며 셔터를 눌렀다. 그러고 나선 전혀 발전이 없는 오글거리는 특유의 문체로, 당사자에게는 절박했을 어떤 순간들에 대해 썼다.

기사에는 '모자'와 '마스크', '빛의 속도', '빠른 발', '전력질주'라는 말이 아무런 조심성 없이 등장한다. 말이야 맞는 말이다. 최소한 그걸 유발한 게 당신들이라는 것쯤은 알아야 한다. 마치 자기 사정권에 있는 사람이 쩔쩔매는 것을 지켜보면서 킬킬대는 모습이 연상돼 소름이 끼쳤다.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디스패치는 악명 높다. 아예 털 게 없는 상대라면 모를까, 디스패치라면 얼마나 설현을 집요하고 끈질기게 따라다녔을지 안 봐도 뻔하다. 과거 소녀시대 같은 경우에는 멤버별로 전담팀을 만든 거 아니냐며 팬들이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비난 여론에도 디스패치는 당당하다. 타 연예매체들과 선을 그으며 스스로 차별화를 꾀하기까지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2년 전 소치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던 국가대표 피겨 선수 김연아의 열애설을 취재하고 나서 쓴 긴 입장문이다. <김연아, 김원중, 그리고 오해들>이라는 글에서 그들은 스스로 '신중'했다고 하고, "둘의 사랑이 왜곡 혹은 훼손되지 않기를 희망"했으며, 둘만의 사랑을 꼭 써야 했느냐는 지적에는 "이것이 우리의 일"이라며 "모르는 것, 궁금한 것, 이를 알리는 게 우리 직업"이라며 대단한(?) 직업관을 드러냈다.

디스패치가 2014년 3월에 김연아의 열애설을 취재하고 나서 쓴 입장문
 디스패치가 2014년 3월에 김연아의 열애설을 취재하고 나서 쓴 입장문
ⓒ 디스패치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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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패치는 한발 더 나아가, 톱스타라면 이런 취재를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생활 취재는 신중해야 한다"면서도 "대중의 관심으로 많은 것을 누리기" 때문에 파파라치 취재는 당연하며, 관심이 줄어든다면 취재할 이유도 없다는 거다. (관련 기사: 디스패치 "김연아는 톱스타, 이 정도는 감수해야", 김현정의 뉴스쇼 2014년 3월 11일 자 인터뷰)

디스패치의 해명을 간추리자면 이렇다. "우리는 사진과 취재를 통해 팩트에 근거한 기사를 썼을 뿐, 제대로 된 취재도 없이 자극적인 표현을 써 가며 하루에 수십 수백건 어뷰징 기사를 쓴 건 타 매체다. 열애설 여파가 커진 건 그들 탓이다. 우리는 첫날 단 4건만 보도했고 후속은 안 썼다"

여기에 "역대 가장 아름다운 커플"이었고 "공개연인이 되어 자유를 즐기기를 기대했다"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난 이 대목에서 기만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들쑤시지 않았으면 입방아 찧을 일도 없었다는 생각은 못 하는 것일까. 자신들의 정체성을 '연예 매체'라고 밝혔으면서 왜 큰 대회를 앞두고 훈련에 열심이었던, 데이트다운 데이트도 거의 없었다던 국가대표의 사사로운 생활에 취재력을 발휘했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주장은 "톱스타 아니면 건드리지 않는다. 사생활 영역은 보호해야 하지만 톱스타라면 상황이 다르다. 우리 취재 방식에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걸 호불호라고 표현한 것도 온당하지 않다고 본다. 본인들의 방향이 '지향'해야 할 방식인지, '지양'해야 할 방식인지를 기준으로 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은 알지만 열애 기사를 전할 때 팩트를 증명할 다른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는 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디스패치의 입장은 아마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단지 '대중의 관심을 받는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자연인으로서, 한 인격체로서 존중받지 못한 채 사생활이 강제로 파헤쳐져 난도질당할 것이다. 그때마다 디스패치는 '파파라치 매체로서의 불가피함'을 역설할 게 분명하다. 이런 취재 및 보도 방식을 비판하는 반응만큼이나, "(사진이나 정황 증거가 있으니까) 그래도 디스패치는 없는 소리는 안 하지"라며 그 엄청난 파파라치 실력을 치켜세우는 반응도 더 강해질 것 같아 우려스러울 뿐이다.


태그:#디스패치, #파파리치, #설현, #열애설, #연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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