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널>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 영화는 갑작스런 붕괴 사고로 터널에 고립된 한 남성의 사투와 그를 구하려는 조력자들의 노력을 그렸다.

영화 <터널>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 영화는 갑작스런 붕괴 사고로 터널에 고립된 한 남성의 사투와 그를 구하려는 조력자들의 모습을 그렸다. ⓒ 이선필


"도롱뇽이라뇨,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신 거 같은데 저 안에 사람이 있다고요!"

10일 개봉한 영화 <터널>에서 가장 울림을 주는 대사 중 하나다. 구조대장 대경(오달수 분)은 터널에 갇힌 한 사람을 구하느라 근방 다른 터널 공사가 지연되자 경제적 손해를 읊는 한 전문가를 일갈한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영화를 연출한 김성훈 감독 역시 꾸준히 말해왔다. "<터널>은 생명에 관한 영화"라고. 그는 "60억 명의 사람들 개개인이 다 하나의 우주인데 우린 그걸 종종 까먹고 살지 않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언론 시사 직후 여러 언론에서 <터널>과 세월호 사건의 연관성을 물었다. 당시 그는 그 관련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에둘러 다른 답변을 했다. 자동적이면서도 관습적인 연상 작용에 대한 거부감이었을까. 8일 김성훈 감독을 직접 만나 보다 자세한 얘기를 듣기로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영화는 평범한 가장이자 자동차 딜러인 정수(하정우 분)가 터널 붕괴로 그 안에 갇히면서 시작한다. 죽음의 공포에 직면한 정수와 그를 구하려는 구조대원들을 교차시키며 은연중에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 시스템의 민낯을 비춘다. 정수의 구조 여부와 관계없이 상황을 분석하는 국가의 방식에 분노할라 치면 적절한 유머로 비틀어 놓는다. 재난 영화의 탈을 썼지만 <터널>은 오히려 풍자 영화에 가까워 보인다.

 영화 <터널>의 포스터.

영화 <터널>의 포스터. 터널은 풍자 영화이다. 그것도 꽤 잘 만든. ⓒ 쇼박스


- 인물 간 분명한 대결 구도, 빠른 전개로 관객들을 휘감았던 <끝까지 간다>(2014) 이후 선보인 작품이다. 현실 시스템에 대한 고민과 일갈이 눈에 띈다. 2년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제 상황이나 생각이 바뀐 거 같진 않고 <끝까지 간다> 이후 어떤 갈증이 있었다. 그걸 채우는 작업을 한 거다. 그때 못 담은 이야기를 해보자는 건데 한 인물의 고난 극복기이자 철저한 대결 구도였던 게 <끝까지 간다>였다면, <터널>은 뭔가 더 확장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위기에 빠진 한 사람의 이야기가 세상을 향한 이야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 '단 한 명이 위기에 빠지는 이야기가 과연 흥행할 수 있을까' 업계에선 이런 말도 나왔는데 영화를 보고 잠시 동조한 거 반성하게 됐다. 돌아보면 전작도 그렇고 유독 한 사람 이야기에 집중한다. 단 한 명의 이야기여야 했던 구체적 이유가 있나?
"우선 거대한 재난은 개인적으로 맞이하고 싶지 않고, 뉴스에서도 보고 싶지 않잖나. 그 앞에 홀로 선 인물은 되게 두려울 것 같았다. 혼자 어두운 골목만 걸어도 무서운데 말이지. 물론 이야기적으로 한 사람이 등장하는 게 약할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두려움을 담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게 터널 안의 이야기고, 터널 밖 이야기에선 그를 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저울질하잖나. 단 한 명이라면 분명하게 가치를 저울질 하는 모습이 나올 거고, 세상이 인간을 어떻게 대하는지 분명히 드러날 거라고 봤다.

물론 영화는 재밌어야 한다. 나중에 제 영화관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대규모 상업영화에선 중요한 지침이다. 계몽영화 등도 필요하지만 상업영화는 1차적으로 재미라는 토양 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미는 없고, 메시지만 있다면? 굳이 영화로 만들 이유가 없지 않을까. 차라리 한 시간짜리 강연을 하는 게 낫지."

의도와 회피 사이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의 생각 일부를 김 감독에게 전했다. 언론 시사회장에서 한 기자는 세월호가 연상된다고 했고, JTBC <뉴스룸> 손석희도 같은 취지의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한 명쾌한 즉답은 없었다. 김성훈 감독은 "세월호 사건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답한 바 있고, <뉴스룸>에 출연한 하정우 역시 그 같이 말하면서도 "생명의 소중함을 다룬 영화고 그런 점에서 세월호 사건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도 있다"고 답했다.

당연하게 던진 질문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연상 작용 자체가 불편한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엄연히 존재했고, 현재진행형인 그 비극이 단순한 영화적 소재로 소비되고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영화가 이미 개봉한 이상 김성훈 감독은 이에 대해 할 말이 있었다.

 영화 <터널>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 영화는 갑작스런 붕괴 사고로 터널에 고립된 한 남성의 사투와 그를 구하려는 조력자들의 노력을 그렸다.

재난 상황 속에서의 유머. 김성훈 감독은 자칫 우울하고 무거울 수 있는 소재에 적절한 유머를 가미했다. 이를 위해 하정우는 계산된 연기보단 날 것의 모습을 표현했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도 끝까지 인간미를 잃지 않는 영화 속 이정수(하정우 분)의 모습은 오히려 더 큰 애잔함을 불러일으킨다. ⓒ 이선필


- 세월호 비극과의 연관성, 또 사건을 관장하고 통제하는 장관을 여성(김해숙 분)으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7월 초 영화 제작발표회 때 첫 질문이 그거였다. 예고편을 본 기자 분이 세월호 사건의 연관성을 물었는데 의도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언론 시사 이후 비슷한 질문엔 그 사건이 일어난 이 현실이 슬프다고만 답했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황하게 설명하면 오해가 생길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서 다시 물으신다면 굳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연관성을 의도했다면 (세월호 비극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을 오히려 피했을 거다. 영화에 투자한 쇼박스는 대기업이다. 완성본을 본 쇼박스 역시 피하려 하지 않았을까. 시나리오 검열도 했을 거다.

다행히도 검열은 없었다. 근데 영화를 만들면서 그 사건을 생각 안 했다면 그것도 거짓말이다. 2년 전 우린 엄청난 아픔을 겪었다. 그 아픔을 우리 모두가 갖고 있다. 영화 역시 현실을 기반으로 풍자했기에 어떤 유사성이 있는 거다. 다른 사건과 비교해도 유사하다. 성수대교 붕괴,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도 마찬가지다. 우린 그런 사건 영향 안에 있다. 오히려 없었던 일인 양 빼는 게 더 힘들지 않을까.

이만희 감독님의 <생명>(1969)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지금 개봉했다면 분명 사람들은 세월호 영화라고 할 거다. 영화는 무너진 광산에 갇힌 광부 이야기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터널>은 생명에 대한 이야기다. 비극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게 분명 있잖나. '네가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었어!'라고 하신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말하려 한 것이다."

- 더 명확하게 묻고자 한다. 여성 장관을 보면 곧 박근혜 대통령이 떠오르기도 한다. 명쾌하게 사건에 대처하지 않는 모습을 그린 것도 그렇다. 책임자를 여성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을 텐데.
"의도가 분명 있지. 솔직하게 그 과정을 말하면 시나리오 상 장관의 남녀 구분은 없었다. 가부장적 사회니까 장관 캐릭터라 하면 다들 남자를 떠올리실 거고 저 역시 그랬다. 그런데 배역을 하나씩 정하는데 여자가 너무 없는 거다. 그래서 누군가가 구조대원 중 하나를 여성으로 하자고 제안했는데 그건 아닌 거 같고, 장관을 여자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그건 좋아보였다. 동시에 우려했다. 누굴 은유하려는 건 아니지만 분명 최고 통수권자로 비유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때 했지.

오히려 아니라고 하는 게 거짓말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밀고 가는 게 영화에 득이라 생각했다. 김해숙 선생님만의 귀여움이 있다. 평생 그런 신념을 갖고 온 장관은 분명 밉상 캐릭터인데 김해숙 선생이 표현하니 귀여워 보이더라. 분명 누군가는 여성 장관으로 설정한 게 의도가 불순하다며 혼낼 수도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캐럭터의 귀염성을 포기할 순 없었다."

- 결국 감독은 한 사람과 이 사회를 같은 링 위에 올려놓고 결투를 붙인 셈이다.
"선택의 문제를 두고 같이 고민하자는 거다. 한 사람을 택할지 아니면 다수를 택할지. 건강한 사회일수록 문제를 고민하는 시간이 길다. 숙고하고 토론도 한다. 반면 덜 건강한 사회일수록 고민하지 않고 빨리 결정하는 것 같다. 난 건강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

 영화 <터널>의 한 장면.

영화는 터널 내부의 상황과 외부 상황을 교차시키며 생명을 대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태도를 꼬집는다. 직설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지점인데 김성훈 감독은 "원작 소설과는 다른 영화적 내용을 염두하며 각본을 썼다"고 밝혔다. ⓒ 쇼박스


늦은 나이에 선 출발점

김성훈 감독은 철저한 상업영화로 이 세상을 툭 건드리고 싶었던 걸로 보인다. <터널>의 구상 과정을 들어보면 어림짐작 할 수 있다. 처음 아이디어는 단순했다. 터널을 지나다가 환풍구가 떨어지는 장면을 생각했고, 그걸 그냥 소모시키기엔 아까우니 환풍구를 넘나드는 재난 영화로 발전시키게 된 것이다. 영화의 원작 소설인 소재원 작가의 <터널>을 이미 읽은 뒤였다. 김성훈 감독은 "소설을 보고 펑펑 울었는데 만약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그런 식으로 눈물이 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며 "사실 무서웠다, 초반엔 딜레마에 빠진 인물이라는 소재가 감당이 안 될 것 같았고, 연출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었다"고 고백했다.

- 그래서 회심의 카드가 하정우였나. 하정우라는 사람과 특유의 유머가 겹쳐지니 영화의 분위기 자체가 한층 경쾌해졌다.
"잔인한 현실을 가감 없이 들이대는 소재원 작가의 시선이 뛰어나고 공감도 간다. 하지만 영화는 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관객이 보게끔 하려면 유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다. 환풍구 아이디어 같은 게 떠오르며 지금의 이야기를 구상한 거다."

- 본래 터널 자체를 빌렸다가 촬영이 여의치 않아 직접 세트를 지었다고 들었다.
"그렇다. 예정됐던 터널 촬영이 취소되는 바람에 상당히 힘들었지만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새롭게 리모델링하면서 돈은 더 들었지만 그만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다."

- 하정우와 이름이 같다는 것(하정우의 본명이 김성훈이다 - 기자 주)도 재밌다. 그의 장점을 영화에 잘 살린 것 같다.
"물론 이름이 같아서 하정우씨가 출연을 결정한 건 아니지만 서로 간의 벽을 허무는 데 도움은 됐다. 이름이 같으니 언젠가는 같이 한 번은 작업하지 않을까 생각했다더라. 굉장히 유머가 있는 사람이다. 밤새 웃긴다. 천진하기도 하고. 현장에서 애드리브도 많은 편이었다. 매 장면 애드리브를 고민하더라. 집에서부터 준비했는지 순간 현장서 던진 건지 모르겠지만 계획된 것 이상의 날 것이 보일 때가 있더라. 날 것의 이미지는 그 어떤 정교한 디자인보다 아름답다. 물론 정교한 설정이 필요한 영화가 있지만 적어도 <터널>은 날 것이 필요했고, 하정우가 그걸 잘 발산했다."

 영화 <터널>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 영화는 갑작스런 붕괴 사고로 터널에 고립된 한 남성의 사투와 그를 구하려는 조력자들의 노력을 그렸다.

1971년생 서른의 나이로 뒤늦게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김성훈 감독은 장르적 감각과 이야기 구성력을 함께 갖춘 드문 인물이다. <터널> 이후 그의 구상이 사뭇 궁금해진다. ⓒ 이선필


서른이 넘어 시작한 영화 일이다. 마흔여섯에 두 번째 장편을 발표했다. 김성훈 감독은 "늦게 시작한 게 오히려 득이었다"며 "보다 힘을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감히 세상을 향해 자연인으로 직언을 날리는 것에는 조심스러웠지만 영화 감독으로서 적어도 그는 비겁함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다음은 <터널>을 통해 말하려 한 생명에 대한 예의의 정체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내 입장에서 세계와 이 사회를 논하긴 그렇고 IS 테러, 전쟁 등을 두고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라고들 하잖나. 그렇다. 사람이니까 그런 일을 하면 안 되는 거고, 그런 대우를 받으면 안 되는 거다. 우린 모두 지구상의 가치 있는 생명체다. 하지만 그걸 말하기 위해 <터널>을 시작한 건 아니다. <터널>을 하기로 했기에 그걸 말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이게 바로 <끝까지 간다>에 담지 못했던 확장성이다."


터널 김성훈 하정우 박근혜 세월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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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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