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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3시간 30분 동안 14개의 기사 출고. 기사 수만 본다면, 국가비상사태라도 난 꼴이다. 아니, 인터넷 포털 '어뷰징 기사'의 시대에 이것도 능력이면 능력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기엔 기사의 수는 물론 질적인 면에서까지도 심각하게 떨어지는 수준이다. 10일 인터넷과 SNS를 뒤덮은 '설현 열애' 관련 <헤럴드경제>의 양태가 딱 그렇다.

양상은 이렇다. 수년째 연예인 열애설 파파라치성 보도로 그 실력(?)과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는 <디스패치>. 그 <디스패치>가 1보를 쏘면, 포털 검색어 상위 순위를 오랜 시간 차지한다. 그 이후엔 연예매체는 물론 종합지·경제지 온라인 팀이 미친 듯이 '검색어 기사'를 쏟아낸다. 소위 '어뷰징'을 위해서다. 그리고 이 천박한 '먹고사니즘'의 연쇄 고리는 현재까지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언론의 품위'라는 건 좀 지켜야 하지 않을까. 여전히 일각에서 욕을 먹어도 당당하기 이를 데 없는 <디스패치>의 보도 행태는 차치하더라도, 이 검색어 장사에 달려드는 일부 매체들의 몰지각한 하이에나 근성은 자제하는 게 마땅해 보인다. 설현-지코 열애설에 달려든 것은 앞서 언급한 <헤럴드경제>다. 어느 정도였느냐고?

저열한 헤럴드경제의 헤드라인

헤럴드경제의 기사 제목은 설현에 대한 폭력에 가깝다
 헤럴드경제의 기사 제목은 설현에 대한 폭력에 가깝다
ⓒ 헤럴드경제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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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4시까지, 헤럴드경제는 설현-지코 관련 기사를 14건이나 쏟아냈다. 역시나 어뷰징에 정통한 <동아일보>가 7건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절대적인 승자일 수밖에 없다. <설현-지코, 5개월째 연애..'한강 데이트' 목격돼>와 <지코 설현, 몰래한 사랑?..소속사 "열애설 본인 확인 중">와 같이 <디스패치>의 1보 이후 이를 받아쓰거나 소속사에 확인하는 기본적인 기사로 끝냈다면 작금의 보도 행태 분위기상 별다른 문제가 안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관심은 이후 설현으로 옮겨갔다. <열애 확인 설현, 사과문 올렸던 그날도 지코와 데이트>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지난 5월 불거졌던 역사 인식 논란까지 재점화했다. 치졸하고 저열하다. 기사 전문을 봐도 이런 평가는 달라지지 않는다.

"걸그룹 'AOA' 멤버 설현이 '블락비' 지코와 열애설에 휩싸인 가운데 역사 논란 당시 사과문을 올린 당일 지코와 데이트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디스패치에 따르면 설현은 지난 5월 12일 지코와 함께 한강에서 데이트를 즐겼다. '역사 논란'으로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인스타그램에 사과문을 올린 날이었다.

이날 설현은 숙소에서 나와 지코가 모는 고급 세단에 올라타는 모습이 디스패치에 포착됐다. 앞서 설현은 온스타일 '채널 AOA'에서 역사 퀴즈를 풀던 중 안중근 의사를 알아보지 못하는 등의 행동으로 같은 그룹 멤버 지민과 함께 역사 논란에 휩싸였다. 설현은 논란에 대한 반성의 차원으로 SNS 활동을 중단하고 이후 쇼케이스 자리에서 "죄송하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디스패치는 지코와 AOA 설현이 지난 3월부터 약 5개월째 열애 중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설현이 각종 논란으로 힘들어 할 때 지코가 든든한 버팀목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헤럴드경제>는 저 짧은 기사 속에서, 더욱이 <디스패치>를 인용보도한 것을 알리면서도 "사과문 올렸던 그날도"라는 문장을 제목 속에 삽입하는 대담함을 선보인 셈이다. 물론 <디스패치> 역시 5월 12일이 설현이 역사 인식 논란에 대해 사과한 날임을 기사 속에 적시했다. 하지만 그 내용으로 제목을 뽑진 않았다(<디스패치>의 열애설 논조는 항상 '응원한다'로 일관한다).

여타 매체들과 비교하면 <헤럴드경제>의 이러한 저열한 행태는 더욱 더 도드라진다. 누군가는 1차 책임이 '5월 12'일을 적시한 <디스패치>에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정황을 놓고 봤을 때 <헤럴드경제>는 적어도 공범이기보다 더 질이 나쁜 2차 가해자에 가깝다.

넘쳐나는 남성적 꼰대질, 그만! 

맨스플레인은 이제 그만!
 맨스플레인은 이제 그만!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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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상대에게 슬픔을 위로받고자 만난 것까지 걸고넘어지는 일부 매체의 연예인을 향한 '꼰대질'은 이른바 '맨스플레인'(mansplain)에 가까워 보인다. 지금 당장 설현으로 기사 검색을 해 보시라. 데이트 의상부터 역사 인식 논란까지 '연애'를 놓고 배 놓아라 감 놓아라 하는 기사들의 내용이 한 마디로 가관이다. 

그것이 여성 연예인은 물론 특히나 어린 걸그룹 아이돌에 향한 시선이기에 그러하다. 유명인의 사생활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관전평을 내놓는 기사들이 질타를 받은 지는 오래됐다. 아니, 더 나아가 항상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쪽은 여성 연예인이었다. 설현과 지코 관련 기사 행태만 봐도 그러하다.

말이 좋아 '맨스플레인'으로 포장한 것이지, 이러한 남성적 시선은 한국은 물론 해외 언론들도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갈수록 한국 매체들의 남성적 관점과 이와 연관된 여성혐오적인 시선들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 더 문제일 것이다. <헤럴드경제>가 열애설 보도임에도 불구하고, <열애 확인 설현, 사과문 올렸던 그날도 지코와 데이트>와 같은 저열한 기사를 내보내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몸매로 도배가 된 설현의 광고를 그렇게 찬양하고 그 내용으로 어뷰징 장사를 했던 다수의 매체들이 지난 5월 불거진 역사 인식 논란에 차갑게 돌아섰던 것도 한 증거다. 과연 남성 아이돌이었다면? 아니 남성 유명인이었다면 과연 같은 반응이었을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반대의 목소리가 있어 왔다.

장수 프로그램인 <1박2일>이나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아는 형님>과 같은 다수의 '남성 예능'을 떠올려 보라. 우리는 얼마나 남성 출연자들의 지적 능력을 희화의 대상으로 삼아왔나. 이와 비교한다면, 설현과 지민의 역사 인식 논란은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가까웠다는 지적 역시 적지 않았다.

<헤럴드경제>의 기사는 결코 돌발 상황이 아니다. 자연스레 "그래도 된다"거나 "그럴 수 있다"는 인식 속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제발 이 20대 초반 커플의 연애에 이러저러한 '지적질'은 좀 적당히 해 두시라. 이러한 일부 매체들의 시선과 장삿속에 반기를 든 이가 바로 SNS 사진들로 한껏 저항(?)하고 있는 설리 아닌가. 빤히 보이는 어른들의 장삿속에 상처를 받는 것이 누구인지 되새길 때다.


태그:#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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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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