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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선안나 지음/ 도서출판 피플파워)은 청소년부터 읽을 수 있는 항일 민족 투사와 친일파 이야기다. 청소년 아동문학작가인 선안나씨는 2년에 걸친 자료 수집과 분석을 통해 14명의 인물을 골라냈다.

청소년부터 읽는 항일 독립투사와 친일파 이야기 <일제 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청소년부터 읽는 항일 독립투사와 친일파 이야기 <일제 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 도서출판 파워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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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7개의 장으로 이뤄진 책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직접 무장 투쟁을 한 투쟁가부터 교육, 언론, 경제, 문학, 군대, 여성 등에서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실을 잘 알 수 있도록 해준다.

항일 투쟁의 외길을 간 우당 이회영 일가와 을사오적의 한 사람으로 나라를 팔아 개인의 부귀영화를 산 이근택의 대비는 진정한 명문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2장 망해가는 나라의 부자들이 사는 법에서 보여주는 경제계 독립운동의 대부 안희재의 삶과 망국을 이용하여 땅 투기꾼으로 거부가 된 김갑순의 삶은 돈의 가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알게 한다.

영화 <암살> 때문에 이름이 알려진 만주의 세 손가락 여장군 남자현과 조선을 증오해 희대의 매국녀가 된 배정자의 삶은 인간의 길과 증오에 찬 한 여자의 길을 대비해 보여준다.

어두운 시대에 빛을 노래한 시인 이육사와 조선어 폐지에 앞장선 베스트셀러 저자 현영섭의 삶은 '칼보다 강한 펜'이 어떻게 민족의 빛과 희망이 되거나 민족의 정신을 말살하는 무기가 되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일제 강점기에 가장 많은 필화 사건으로 구속 되었던 언론인 안재홍과 황국신민화 정책에 앞장서 언론 재벌이 된 방응모의 이야기는 관의 나팔수로 전락한 조선일보의 작금의 행태까지 겹쳐져 씁쓸함을 더하게 만든다.

일제와 투쟁하고 독재 정권과 맞서다 의문사한 장준하와 독립군 토벌대 출신에서 전쟁 영웅으로 둔갑한 백선엽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 친일 독재가 이어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가장 관심을 끈 부분은 6장 개화기 여성 지도자의 두 얼굴에서 그려진 김활란과 김마리아의 삶이다.

여성 지도자가 별로 없던 시절 김활란 박사를  여성들의 롤 모델의 한 명처럼 여기던 때가 있었다. 그녀의 친일 부역 행위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가 대한민국 여성박사 1호이며 종합 대학으로 승격한 이화여자대학의 초대 총장이고 서울YWCA를 만든 교육자이자 계몽가로 알고 있을 것이다.

가난한 집안의 딸에서 기독교를 통해 배움의 기회를 얻은 김활란의 친일, 친미 독재 정부에서의 부역 행위는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1930년 대 초 독립운동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김활란은 교장 승진의 기회를 감지한 시기인 1935년 이후 적극적인 친일 행각에 나선다.

전시관변 단체의 주요 요직을 맡았고, 치마저고리 대신 자발적으로 학생들에게 일본식 교복을 입히고, 신사 참배 수용, 적극적 창씨개명, 징용 징병 정신대 강제 연행을 앞장서 환영하고 부추기는 글을 썼다.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 우리는 아름다운 웃음으로 즐겁게 내 아들이나 남편을 전장으로 보낼 각오를 가져야 한다..국가에 속한 내 남편이나 아들 또 내 생명이 국가에서 요구될 때 쓰인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책임을 다함으로써 진정한 황국신민으로서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생각하면 얼마나 황송한 일인지 알 수 없다.(< 신세대> 1942년 12월)


적극적인 친일 행각을 통해 권력을 누렸던 김활란의 삶은 해방 후에도 이어진다. 미군정은 일본에 적극적으로 부역한 자들이 미군도 잘 도와줄 것이라며 친일파들을 고위직에 그대로 고용했다.

미국 박사였던 김활란은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미군정청 한국교육위원회 위원이 되었고 YWCA를 재건해 이사장을 맡았으며 1946년 4월 이화여전을 종합대학으로 승격시킨 뒤 초대 총장에 취임한다.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친일파들이 여전히 기득권이 되어 사회 전반의 주요 분야를 장악하고 권력을 대물림한 것이다.

반면 교과서에서 스치듯 지나가며 배웠던 김마리아의 생애는 김활란의 삶과 극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김마리아는 자신이 지닌 모든 지성과 학문과 기득권을 조선의 독립과 종교적 신앙을 지켜내기 위해 아낌없이 내려놓고 고난의 길을 선택해 민족의 독립을 위해 평생 헌신했다.

'한시도 독립을 생각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는 김마리아는 1919년 도쿄 2. 8 독립선언문을 국내로 전달하기 위해 유학 시절에도 입지 않던 기모노를 입고 허리띠에 독립선언문을 숨겨 들여오는데 성공한다.

독립선언문을 몰래 복사하고 여성들을 모아 비밀회합을 가지며 3.1 독립 만세를 준비한 그녀는 3월 5일 서울역 광장서 만세를 부르던 중 잡혀 경무총감부로 끌려간다.

"도쿄 유학생들과 무슨 관계인가? 어떤 지령을 받았는지 당장 토설하지 못할까?"

일제는 김마리아를 구둣발로 짓밟고, 물과 고춧가루를 코에 넣고, 양손을 묶고 바늘로 찌르고 대나무 봉으로 머리를 집중적으로 때려 머리 밑을 함몰시켰다. 그것도 부족해 가슴과 성기를 인두불로 지지는 악행을 저질렀다. 김마리아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고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김마리아는 평생 심한 두통과 신경쇠약에 시달려야 했다. 인두불로 지짐을 당한 고문으로 저고리 앞섶이 짝짝이가 되는 것을 보고 양녀가 김마리아를  부둥켜안고 울었다는 대목에서 같은 여성으로 울컥함을 감추기 어렵다.

당시 조선 여성으로 누구보다 많이 배웠지만 개인의 출세와 권력을 탐하지 않았던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조선의 여성들을 일깨우고 연대하여 어찌하면 조선의 독립을 앞당길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데 썼다.

그녀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고난과 고통을 마다지 않았다. 일제에 저항하며 꿋꿋하게 신앙과 양심을 지킨 여성지도자 김마리아는 1943년 12월 13일 세상을 떠났고 시신은 그녀의 유언대로 화장하여 대동강에 뿌려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김마리아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일제 강점기 민중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선 사람들의 다른 선택을 조명해 보는 것은 현재의 자기 자신의 자리를 재점검하는데 꼭 필요한 요건이다. 과거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친일 부역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역사적 비극은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 역사 교과서 왜곡, 독재의 부활, 위안부 문제 졸속 협약, 사드 배치, 세월호에 대한 반성이나 사죄 진상 규명은커녕 진실을 덮기에 급급한 정부 이 모든 것이 친일 기득권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역사적 악의 순환고리를 끊어내는 일은 역사를 바로 알고 바른 시대 의식을 지녀 부끄럽지 않은 인간으로 살아가려는 다수 민중의 의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를 바로 보는 작은 길잡이가 될 청소년부터 읽는 항일투사와 친일파 이야기 <일제 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선안나 지음/ 도서출판 파워피플/ 15,000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 광복을 염원한 사람들, 기회를 좇은 사람들

선안나 지음, 피플파워(2016)


태그:#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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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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