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함께하는>의 이나연 감독 제18회 정동진독립영화제 '섹션01'에 초대된 <못, 함께하는>의 이나연 감독을 정동진독립영화제 둘째날인 6일에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못, 함께하는>은 관객들의 현장투표로 결정되는 섹션01의 '땡그랑동전상'을 수상할 정도로 많은 호응을 이끌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영화에 담은 그녀의 목소리를 직접 확인했다.

▲ <못, 함께하는>의 이나연 감독 제18회 정동진독립영화제 '섹션01'에 초대된 <못, 함께하는>의 이나연 감독을 정동진독립영화제 둘째날인 6일에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못, 함께하는>은 관객들의 현장투표로 결정되는 섹션01의 '땡그랑동전상'을 수상할 정도로 많은 호응을 이끌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영화에 담은 그녀의 목소리를 직접 확인했다. ⓒ 유지영


7년 전 부모의 이혼으로 서로 흩어진 가정. 세 자매는 서로 다른 보금자리에서 산다. 홀로 사는 큰 딸 나연(26), 아빠와 함께 사는 둘째 가연(25), 엄마와 살게 된 막내 호선(18)까지. 자의가 아니었지만 할 수 없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이들을 잇는 유일한 끈은 모바일 메신저의 단체 대화방뿐. 이들은 과연 주어진 삶에서 행복을 찾아낼 수 있을까.

제18회 정동진독립영화제 상영작인 <못, 함께 하는>은 이 궁금증을 안고 시작됐다. 감독이 바로 큰 딸 이나연이다. "정확히 사랑하고 싶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영화를 통해 고백한 그가 궁금했다. 세상과 타인을 비추기 마련인 카메라를 어떻게 자신과 자기 가족으로 향했던 건지. 그리고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안고 지난 6일 강릉 정동초등학교를 찾았다.

쉽지 않았던 시작 

소재만 놓고 보면 측은한 시선을 보내기 십상이다. "저 대학교 이번에 졸업해야 합니다. 관객상 꼭 받고 싶어요!"라고 패기 있게 외치는 이나연 감독의 모습을 보면서 그 시선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우리 세대에 그렇게 마냥 화목한 집안은 많이 없을 걸요?"라고 답할 때는 묘한 동지애를 느꼈다. 이 감독은 모든 비극의 주인공인 양 넘어져 있는 게 아니라 툭툭 털고 때로는 자기 손과 무릎에 난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묵묵히 걷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못, 함께 하는>을 보면 눈물보단 웃음이 더 많이 나온다. 가감 없이 카메라를 든 이나연 감독 역시 "우리 아빠는 말이 너무 많다"거나 "못을 대체 뺄 수가 없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영화 <못, 함께하는>의 한 장면.

영화 <못, 함께하는>의 한 장면. 주인공이기도 한 이나연 감독의 모습. 영화 제목에도 등장하는 '못'은 상당히 중요한 소재이며,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 이나연


- 대학교 과제라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말했지만, 그렇다 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화 하는 게 쉬운 결심은 아니었을 텐데.
"고등학생 때 우연히 영화를 만들 게 됐는데 스스로 보면 어떤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거나 그걸 재밌게 만드는 재주는 없는 편이었다. 살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으면 그걸 영화로 풀곤 했던 거 같다. 그간 만든 극영화도 자전적인데 날 좀 더 정확하게 보려고 하는 게 내겐 영화화 과정이다." 

- 담담하게 때론 재치 있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인상적이었다. 
"가족을 카메라로 담고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과정이 되게 괴로울 때가 있었다. 내 마음대로 가족의 삶을 까발리고, 들추고, 쑤시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에 카메라를 드는 게 괴로운 순간이 있었다. 계속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빠와 영상 통화하는 장면을 찍을 때 느꼈다. 매 순간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을까 의심했는데 물리적으론 떨어져 있지만 이미 같이 살고 있는 셈이었다.

영화가 담담하게 느껴진 건가? (웃음) 내 상처가 세상에서 가장 큰 게 아니라고 항상 생각한다. 감정적으로 그 상처를 전달하는 편이 아니라 일부러 자조하는 편이다. 웃어도 보고 다양하게 상처를 보려고 애쓰기도 한다. 어떤 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감정에 갇혀버리면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지 본질이 잘 안 보이는 거 같다."

- 가족 문제는 요즘 누구나 폭탄처럼 갖고 있는 거 같다. 영화를 보면 동생과 아빠에게 카메라를 쥐어주고 직접 찍게 한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맞다! 우리 가족 이야기도 상황은 조금 다를 수 있어도 결국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적 이야기라 생각했다. 개인적으론 주인공 시점만 드러나는 게 아닌 주변 인물의 시점이 비슷하게 드러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한 사람의 세계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동생과 아빠는 날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드린 거지."

가족이 펑펑 울었다

 영화 <못, 함께하는>의 한 장면.

영화 <못, 함께하는>의 한 장면. 과제로 시작한 작업이었지만, 그 끝은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 이나연


이나연 감독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시작은 그리 심각하진 않았다. 과제였고, 스스로 상처를 바라보려는 의지와 헤어진 아빠와 엄마에 대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한 마음이었다. 동생들과 아빠는 흔쾌히 촬영에 찬성했는데 올해 초 인디포럼,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그리고 정동진독립영화제 초청을 받으며 걱정도 들었단다. "혹시나 영화를 본 분들이 우리 가족을 좋지 않게 볼까봐" 두려웠던 것.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관객과의 대화를 거치며 사람들은 "솔직하게 만들어줘서 고맙다", "우리 가족을 돌아보게 됐다"는 등 응원의 마음을 보탰다.

- 작년 말에 완성해서 올해 여러 영화제에 출품한 건데, 아무래도 최초 관객은 아빠와 동생들이겠다.
"그렇다. 이 영화를 우리 가족은 펑펑 울면서 봤다. 아빠는 볼 때마다 우신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든 것에 항상 미안해 하신다. 이젠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아빠는 애교가 많으셔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하시는데 내가 너무 간지러워서 답을 잘 못하겠더라. '네 저도요' 하고 만다. 사실 이 영화를 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아빠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영화 안에서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 영화 공개 이후 가족들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나.
"가장 큰 변화는 엄마와 연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부터 갖고 있던 갈등이 물론 사라지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영화를 통해 가족과 소통하는 시작점은 된 거 같다. 소통을 이어가기 위해선 영화를 만들 때 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거 같다. 가족이 가장 어렵고, 빡세고 그런 거 같다(웃음)."

- 영화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자막이 기억난다. '정확하게 사랑하고 싶었다' 이게 곧 이 작품의 주제 아닌가. 결국 불가능하지만 그 사랑에 가까이 가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고.
"내가 한 말은 아니고 신형철 평론가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라는 책 첫 페이지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표현되지 못한 진실은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정확하게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고통을 느낀다'. 고통을 느낀다는 말이 되게 크게 다가왔다. 모든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그렇지 않나. 자신의 존재를 정확하게 사랑받지 못해 고통을 느끼는 것 같다.

영화에 '백만 송이 장미'라는 노래를 넣은 이유도 비슷하다.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줄 때 백만 송이 장미가 핀다는 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지만 말씀하신대로 불가능한 일이지 않나. 노래방에서 이걸 부를 때마다 항상 울컥한다(웃음). 엄마를 정확하게 사랑하고 싶지만 어려운 일이고, 이 다큐가 그 노력의 과정 중 하나였다."

<못, 함께하는>의 이나연 감독 제18회 정동진독립영화제 '섹션01'에 초대된 <못, 함께하는>의 이나연 감독을 정동진독립영화제 둘째날인 6일에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못, 함께하는>은 관객들의 현장투표로 결정되는 섹션01의 '땡그랑동전상'을 수상할 정도로 많은 호응을 이끌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영화에 담은 그녀의 목소리를 직접 확인했다.

▲ 가족이란? 이나연 감독은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을 줄곧 만들어 왔다. "앞으로도 평생 알아가는 과정이 될 것 같다"며 그는 "직면하는 고민을 피하지 않겠다"고 생각을 밝혔다. ⓒ 유지영


고민에 맞서는 자세

이나연 감독의 전작과 이번 영화, 그리고 이후 만든 작품이 모두 자신과 가족과 관련이 있다. <못, 함께 하는> 이후 촬영한 작품 역시 세 가족이 집을 구하러 다니며 겪는 사건을 그린 극영화다. 이처럼 가족이라는 소재가 그에게 평생 과제처럼 따라다닐 것 같다 하니 끄덕이며 수긍한다. "너무 빡세고, 외면하고도 싶은데 그럴 수 없는..."이라며 말끝을 흐리다가 이나연 감독은 이내 "여전히 모르고 앞으로도 잘 모를 거 같아서 계속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자신이 갖고 있는 고민을 마주하려는 자세 같다. 적어도 비겁해 보이진 않는다.
"근데 동시에 염증도 크다. 자전적인 걸 영화화 한다는 게 스스로를 좀 먹는 거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야기적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 부럽다. 뚝딱뚝딱 영화를 만들지 않나. 반면 난 내 인생에서 자극이 되곤 했던 걸 영화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서 고민 중이다. 여행을 가야 하나 이런 생각도 한다."

- 본인이 좋아하는 영화도 그 연장선상인가.
"맞다. 흥미로운 스토리가 있는 영화보단 감독만의 고민이 있고, 그걸 마주하려 애쓰는 작품을 애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안선경 감독님의 <파스카>를 정말 좋아한다. 정말 존경하는 분이다."

- 좀먹는다고 말했지만 동시에 영화를 즐기는 거 같기도 하다. 반면 비슷한 또래 중에서 한국에서 영화하기 힘들다며 포기하는 이들도 있는데.
"앞뒤 안 가리는 성격이라 그런가(웃음). 결혼을 하려 할 때 좋은 사람이라 생각이 들면 현실 조건이 어려워도 좋아하니까 맞춰서 같이 살 수 있듯이 영화도 내겐 그런 거 같다. 여건이나 조건을 생각하면 나 역시 (영화를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과정일 수 있다. 나중에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영화 일이 행복하고 내겐 매우 중요한 경험이라는 사실이다."

가족이야기에 다소 이야기가 무거워진 순간도 있었지만 시종일관 이나연 감독은 특유의 유쾌함을 뽐냈다. "저 말 참 못하죠?" 되물으면서도 그 어떤 질문에도 또박또박 소신을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참, 6일 정동진영화제에서 <못, 함께 하는>이 관객상인 '땡그랑 동전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한다. 하나하나 세어 보니 16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 모였다. "와하하! 쑥스러워 하는 것도 병이에요"라며 소감을 주저할 땐 영락없는 20대 청년이었다.

자신에게 솔직하고 겁도 나긴 하지만 피하지 않는 자세. 그의 영화들은 '정확히'도 그를 닮아 보였다.

<못, 함께하는>의 이나연 감독 제18회 정동진독립영화제 '섹션01'에 초대된 <못, 함께하는>의 이나연 감독을 정동진독립영화제 둘째날인 6일에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못, 함께하는>은 관객들의 현장투표로 결정되는 섹션01의 '땡그랑동전상'을 수상할 정도로 많은 호응을 이끌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영화에 담은 그녀의 목소리를 직접 확인했다.

이나연 감독은 현재 두 편의 극영화를 만들어 놓은 상태다. 본문 중 설명된 세 가족 이야기와 함께 고양이를 잃어버린 한 여성의 이야기도 갖고 있다. "당분간 쉬고 싶은 마음도 있다"며 차분하게 말했다. ⓒ 유지영



이나연 못 함께하는 정동진독립영화제 이혼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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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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