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포스터

▲ 덕혜옹주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허진호 감독이 권비영의 소설 <덕혜옹주>를 영화로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꼭 봐야겠다 생각했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 시대와 신분에 눌려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간 한 여성의 이야기가 감성이 뚝뚝 묻어 떨어지는 그의 카메라에 어떻게 담겼을지 궁금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에서 보인 그의 연출은 적어도 감성의 영역에서만큼은 수준이란 게 무엇인지를 입증했고 나는 그 수준을 믿었다. 그의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스크린을 통해 접하기 어려운 1920년대를 배경으로, 사극 연출이란 도전에 나선 점이 마음에 들었다.

손예진의 캐스팅은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증하는 듯했다. 20대 중반에 이미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한 그녀는 이후에도 한결같이 새로운 도전을 거듭해온 멋진 배우니까. 표현의 여지가 넓은 여성 캐릭터가 많지 않은 척박한 환경에서 손예진이 걸어온 행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저 너머로 향하는 도전자의 집념이 느껴진다. 그런 그녀의 선택이 허진호의 <덕혜옹주>였다는 것, 그 이상의 보증이란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막상 본 영화는 기대 이하였다. 기대 이하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크나큰 실망감이 영화를 보는 내내 온몸을 휘감았다. 기대했던 것은 단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고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만 곳곳에 튀어나와 보기에 거슬렸다. 주연을 맡은 손예진과 박해일이 시종일관 고군분투했지만 배우의 역량 만으로 영화 전체의 흐름을 바꾸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엔딩크레딧이 모두 오르고 상영관을 빠져나오면서 나는 <덕혜옹주>가 모든 면에서 실패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돌아오는 길에 찬찬히 생각했다. 무엇이 이 영화를 이토록 실망스러운 작품으로 만든 것일까, 어째서 이 영화는 재미있지 않은 데다 감동까지 없는 걸까. 한참을 생각하니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내가 찾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고민없이 틀을 따르는

덕혜옹주 공인인 덕혜옹주와 개인인 이덕혜로서의 삶이 충돌하는 모습을 좀 더 가까이서 그려낼 수는 없었을까?

▲ 덕혜옹주 공인인 덕혜옹주와 개인인 이덕혜로서의 삶이 충돌하는 모습을 좀 더 가까이서 그려낼 수는 없었을까? ⓒ 롯데엔터테인먼트


우선 이 영화는 한국 상업영화가 수차례 답습하며 일종의 공식처럼 굳어진 틀을 고민 없이 따르고 있다. 드라마와 멜로, 코미디와 액션 등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장르적 특성들을 기계적으로 버무린 것이다. 한 영화 가운데 다양한 장르적 재미를 가미하는 것이 다수 관객의 취향에 맞추는 검증된 방편이겠으나 그것도 주된 이야기가 힘을 발휘할 때의 이야기다.

영화의 주인공은 일본으로 끌려와 고국을 그리워하는 덕혜옹주다. 그녀는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왔지만 약속한 시일이 지나고서도 귀국이 거듭 미뤄지자 심란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곁에 의지할 사람이라곤 몸종 복순(라미란 분) 뿐, 외로움과 심란함 속에 하루하루 살아가던 그녀 곁에 믿음직한 사내 장한(박해일 분)이 나타난다.

이후 영화는 덕혜옹주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양한 장르적 형식으로 그려낸다. 때로는 액션영화 같고 때로는 멜로물 같으며 또 코미디와 정통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특별히 장르적 매력을 제대로 발휘했다고 할 만한 장면이 많지 않아 선택과 집중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주인공인 덕혜옹주는 대한제국 황녀로서의 삶과 개인으로서의 삶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인물이다. 영화는 그녀가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에 집중하거나 아니면 둘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택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시대상 가운데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하지만 영화 속 덕혜옹주는 독립운동 비슷한 행동을 했다가 개인으로서 느끼는 고통을 호소하기도 하고 우왕좌왕하다가는 마침내는 와르르 무너진다. 황실의 일원으로 나라가 처한 상황에 책임을 지겠다는 덕혜옹주와 어머니가 보고 싶고 장한과는 사랑을 하고픈 이덕혜 사이에서 영화가 어디에 주목해야 할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했다면 힘 있는 전기영화에 가까운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시대에 억눌린 개인을 그려 깊이 있는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민 없이 이 모두와 관련한 장면을 조금씩 삽입하고 있는 통에 영화는 이도 저도 아닌 잡탕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뒤바뀐 세상에 통용될 가치를 갖고 있는가

덕혜옹주 이도저도 아닌 드라마에 머무를 바에야 정통 액션활극으로 갔다면 어땠을까?

▲ 덕혜옹주 이도저도 아닌 드라마에 머무를 바에야 정통 액션활극으로 갔다면 어땠을까? ⓒ 롯데엔터테인먼트


하물며 대한제국 황실의 일원으로 나라가 처한 상황에 책임을 느끼는 덕혜옹주의 사고가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21세기 관객들에게 그대로 통용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작가의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덕혜옹주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뒤바뀐 세상에 어떤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성적 고려가 필요한 상황에서 감성에 의존하고 감성적인 드라마를 그려야 하는 순간에는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기를 반복하고 있어 도대체 하고픈 이야기가 무언지 어리둥절한 기분을 느끼는 관객이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이 같은 실패는 배우들의 캐스팅에서도 엿보인다. 영화는 백윤식을 고종으로, 윤제문을 친일파 한택수로, 라미란을 덕혜옹주의 몸종인 복순으로, 정상훈을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복동으로 기용했는데 이들은 안정된 연기력에도 각자 가진 이미지가 너무 강해 튀는 부분이 많다. 특히 복순과 복동의 경우엔 영화의 긴장을 푸는 코믹한 역할과 드라마의 전개에 필요한 조연으로서의 역할을 함께 맡고 있는데 두 가지 역할 사이에 괴리가 커 관객은 어느 하나에 몰입하기가 어렵다. 진지한 주연캐릭터의 곁에 코믹한 조연캐릭터를 함께 기용하는 기존 상업영화의 수법을 다른 고려 없이 그대로 따른 결과다.

영화는 전형적인 장치도 고민 없이 답습해 관객을 지루하게 한다. 관객은 고종이 등장하는 순간 그가 죽을 것을 알며 그가 죽고 난 뒤엔 주인공인 덕혜옹주가 어려움에 처할 것을 안다. 친일파인 한택수가 덕혜옹주를 괴롭힐 것이며 장한이 어려움을 감당하며 덕혜옹주를 도울 것을 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상을 깨는 전개가 이뤄지지 않고 가뜩이나 이미지가 강한 배우들이 자신의 이미지와 비슷한 역할을 맡아 나오는 통에 관객들은 시작부터 결말까지를 쉽사리 예상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덕혜옹주>는 선택과 집중에 실패한 데다 기존의 전형을 고민 없이 답습한 작품이다. 손예진과 박해일이 캐릭터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통해 감동적인 연기를 펼칠 때도 있지만 영화 전체를 구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단을 통한 문제의 해결 역시 그 미화된 진실은 논외로 쳐도 가뜩이나 단조로운 이야기를 더욱 실망스럽게 만드는 요소다. 허진호 감독의 연출력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차기작을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

덕혜옹주 이도저도 아닌 드라마에 머무를 바에야 장기인 멜로로 갔다면 어땠을까?

▲ 덕혜옹주 이도저도 아닌 드라마에 머무를 바에야 장기인 멜로로 갔다면 어땠을까? ⓒ 롯데엔터테인먼트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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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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