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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를 가지 못했다. 올해는 다른 일정이 있어 주어진 휴가를 미리 써버렸기 때문. 무더운 여름 내내 '사무실이 제일 시원'하다며 위로하고 있지만 역시 아쉽다. 해결할 수 없는 '아쉬운 마음'으로 슈테판 츠바이크의 <초조한 마음>을 꺼내들었다.

유태인으로서 2차대전을 겪어낸 작가의 유려함에 기대를 걸고,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라는 소개말에 기대감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마주한 작품은 당대 최고의 전기작가라는 츠바이크의 명성에 걸맞게, 이 또한 '예민함'으로 풀어낸 한 인물의 '비애감' 가득한 인생이었다. 휴가를 가지 못한 아쉬움이 이런 아슬아슬한 '사랑' 이야기로 해결이 될까? 의심스럽지만, 서문부터 끌어당기는 이야기의 매력이 심상치 않다.

'나는 내 삶에서 도망치고 싶어 전쟁터에 나갔던 것 뿐이오.'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오스트리아. 당시 빈을 중심으로 한 오스트리아는, 시민권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계'와 봉건제에 기반한 '오래된 세계'가 명징하게 부딪히며 발생한 '에너지'로 충만했던 '세계의 중심'이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초조한 마음>
 슈테판 츠바이크의 <초조한 마음>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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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 말단 장교였던 젊은 주인공(호프밀러 소위)이, 지역 유지의 성에서 누리는 '호사'에 취해있던 시간을 지나며 느끼게 된 많은 감정들은 츠바이크의 도움을 얻어 '예민하게' 기술된다. 한 페이지도 쉽게 넘기지 못할 만큼 힘 있는 글이다.

여기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있다. '귀족'인 줄 알고 만난 장사치로 인해, 다른 가난한 군인들과는 다르다는 '우월감'을 가진 젊은 장교와 그저 지역 유지일 뿐인 장사치의 딸 에디트가 그 주인공이다. 사실 이 장사치가 장교를 '열렬하게' 환대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장애를 가진 딸이 장교를 좋아했기 때문.

그러나 결국 장교가 느낀 우쭐함은 초조함으로 변했고, 장애를 가진 여인의 사랑을 알게 된 후에는 '두려움'이 되었다. 도망칠 것을 결심한 장교는 '공교롭게도' 세계대전에 휘말렸으며, 그의 마음을 알아챈 에디트는 '삶'을 버린다.

의도하지 않았던 일련의 사건은 그를 더욱 더 위험한 전장으로 내몰았고, 결국 훈장까지 받은 훌륭한 장교가 되었으나, 그를 끝까지 물고 늘어진 '죄책감'은 그의 삶이 지녀야 할 '자유'를 빼앗아 버렸다.

이런!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이야기로 가득한 이 비극은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읽어내리는 한 단어 한 단어에서 얼음판이 갈라지는 듯한 불안함이 느껴진다. 그는 그저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의 마음을 거부한 것 뿐인데 말이다.

"연민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인 나약하고 감상적인 연민은 그저 남의 불행에서 느끼는 충격과 부끄러움으로부터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초조한 마음에 불과합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는 것이 아닌 남의 고통으로부터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방어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연민이란 감상적이지 않은 창조적인 연민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힘이 닿는 한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견디며 모든 것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연민을 말합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갈 수 있는 사람만이, 비참한 최후까지 함께 갈 수 있는 끈기있는 사람만이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 p.236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으나 등장인물들의 날카로운 감정이 쉽게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나는, 우리는, 이 사회는 과연 인간의 '연민'에 대해 고민을 하고는 있는가? 마음이 무겁다. 나에게는 이 글이 '남녀'의 것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연민'이라는 것은 '인간'에게만 허락되는 감정이라고 하지 않았나? 소설이 공을 들여 묘사하는, 인류 최초의 세계전쟁과 함께 끝나버린 '엇나간' 연민이 더욱 더 무겁게 다가와버린 이유도, 에디트의 죽음과 함께 '인간'의 마음까지 끝나버린 것만 같아서였다.

인간의 '연민'은 성역할에 갇히는 것도 인종에 갇히는 것도 아닌, 인간 본연의 감정이다.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지닌 인간에 대한 '연민'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를 허용하였고, 받아들이도록 '제도화' 하였다. 하지만 종종 그 연민은 인간의 약점인 '불통'과 만나, 세상의 수많은 갈등을 낳았다. 인류는 갈등을 해결하는 노력을 반복해 왔고, 그것이 인간 세계의 '역사'였다.

하지만, 21세기 우리가 집중하는 것은 달성해야 하는 '결과' 그 자체이지, 다가가기 위해 애를 쓰는 '과정'은 아닌 듯하다. 조직의 '성과'를 위한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것에는 능하지만, 그 방법을 실행하는 주체가 '인간'임은 종종 잊어버린 듯하다. 목적은 명료해졌으나, 서로의 감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할 방법은 찾을 수가 없다.

나에게 '소통 부재의 시대'는 '낭만'이 사라진 시대와 동질감을 준다. 과연 인간은 '소통'이 없이 서로간의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인간에 대한 고민없이, 인간에 대한 '연민'없이 풀어낼 수 있는가? 스스로 목숨을 버린 에디트의 선택은, 이미 모두에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불가능하다고, 나에게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감정'이라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이라는 영화가 있다. 얼마 전에는 영화에 대한 아트북이 나왔을 정도로 '미술적인 장면'의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감독 웨스 앤더슨이 준비한 배경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우며, 스타들이 즐비한 캐스팅은 화려하다. 영화의 배경이 세계 대전 한복판의 유럽 어딘가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이었는지, 이 소설의 장면을 상상할 때면 자연스럽게 이 영화와 겹쳐졌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화려한 옷을 멋지게 차려입은 채, 과장된 예의와 격식으로 서로를 대한다. 전쟁의 혼란 중에도 마을에서 가장 좋은 케이크를 주문하고, 훌륭한 서비스에 예의바르게 감사할 줄 안다. 전장의 한가운데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해치는 것에 고민하고 주저한다. 그것이 그때까지 인간이 살아왔던 세상이었을 것이다. 모든 과정을 넘어가는 것에 고민하는 그들은 인간적이고, '낭만적'이다. 이 영화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지나치게 낭만적인 것!

나는 깜짝 놀랐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지금 어떤 약속을 해주면 나는 책임을 면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어차피 에디트가 바라는 일은 이루어질 수 없지 않은가! 그녀가 즉각적으로 치료될 리는 없었다. 몇 년은 더 걸릴 수도 있었다. 콘도어는 너무 멀리 내다보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 당장은 에디트를 진정시키고 위로해주라고 했다. 그렇다면 잠시라도 그녀에게 희망을 주고 행복하게 해 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물론 에디트가 치료되고 나면...... 그렇게 되면 제가 직접 선생님을 찾아갈 겁니다." - p.393

짐작하겠지만, 이 약속은 그녀가 죽음을 택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혹시라도 당신의 사랑은 어떤 모습인가? 지금 당장의 '위험'을 모면하려는 임기 응변은 아닌가? 나는 종종 어른들의, 지도자들의 '고백'이 임기응변으로 들린다. 티브이에서 보이는 그네들에게선 염치는커녕 뻔뻔함만 가득하다. 시대가 바뀌었다.

물론, 인정해야 한다. 지금의 시대는 더 이상 인간의 감정을 얘기하며 '예민'하게 주저할 여유가 없다. 다만, '여유없음'이라는 변명으로, 진정한 '연민', 책임을 지니고 희생을 허락할 수 있는 '연민'을 포기한 대신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책에서 주인공을 평생 동안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죄책감'이 지금 우리 사회에는 남아 있는가?

나는 1막이 끝나고 조명이 채 켜지지도 전에 고개를 숙인 채 재빨리 통로를 지나 밖으로 나왔다. 아주 신속하게 빠져나왔기 때문에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나는 양심이 기억하는 한 그 어떤 죄도 잊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463

우리는 인간이 오로지 인간에게 집중했던 '낭만'의 시대를 넘어왔다. '사랑'이라는 고귀한 이름이 아니더라도, 서로에 대한 '연민'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 부모는 아이를 죽이고, 연인은 서로를 해하고, 국가는 국민을 방패삼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나긋나긋한 둘 사이의 '연민'은 차치하고라도, '희생'을 결심하는 '올바른 연민'은 바라지도 않는데, 우리는 인간으로서 당연해야 할 고민마저 사치스럽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과연, 무엇을 위해서인가? 양심이나 희생을 얘기하는 인간은 상처받지 않은 채 이 삶을 견뎌낼 수 있을까? 차라리 양심으로 괴로움을 느껴 전쟁터로 도망친 소설의 주인공이 부럽다면 이를 어찌하나.

유려한 묘사로 가득한 달콤한 사랑의 이야기일 것이라 기대했던 소설은 전혀 예상을 벗어났지만, 인간 감정의 예민함을 매개로 전달되는 '연민'의 감정은, 지금 당신의 옆을 지키는 누군가에게 더 따뜻한 위안을 느끼게 할 것이 분명하다.

뜨거운 여름의 어딘가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그의 용기에, 함께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용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츠바이크의 문장이 전하는 날카로움과 서늘함은 덤이다. 여름이니까!

책정보: <초조한 마음> 슈테판 츠바이크 저/이유정 역, 문학과지성사 (2013)


초조한 마음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유정 옮김, 문학과지성사(2013)


태그:#오늘날의 책읽기, #초조한 마음, #슈테판 츠바이크, #연민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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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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