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들의 섬> 김정근 감독. 개봉을 3주 앞두고 홍대 근처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림자들의 섬> 김정근 감독. 개봉을 3주 앞두고 홍대 근처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 이영광


2014년 제40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받아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자들의 섬>이 오는 25일 개봉한다. <그림자들의 섬>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애환을 담은 영화다. 그들이 처음 어떻게 입사했고 어떤 부푼 꿈을 갖고 일하기 시작했으며, 열악한 처우를 바꾸기 위해서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개봉을 3주 앞두고 홍대 근처 카페에서 <그림자들의 섬>을 연출한 김정근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김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제40회 서울독립영화제에 대상을 받아 화제가 됐던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자들의 섬>이 개봉을 3주 정도 앞두고 있는데 느낌이 어떠신가요?
"2014년 말에 편집을 완료했으니 만든 지는 꽤 됐어요. 개봉을 결정했을 때 사실 실감이 잘 안 났고 '그냥 개봉한다'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개봉 일정이 다가오니 설레기도 해요. 요즘 조선소 대량해고 문제가 거론되고 있잖아요. 좀 더 나아가 그런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어요."

- 개봉은 왜 늦어진 거죠?
"사회적으로 '노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를 찾다 보니, 개봉 시기가 늦춰진 점이 있어요. 개봉 비용에 대한 고민이 든 것도 사실이에요. 더 많은 극장에서 <그림자들의 섬>을 보여드리기 위해 소셜펀딩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인 비용은 영화 배급비용으로 전액 사용될 예정입니다. 8일까지 진행됩니다."

- 펀딩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소셜펀치(socialfunch.org)'라고 진보적 사안을 다루거나, 시민사회 단체가 사업을 벌일 때 이용하는 펀딩 사이트가 있어요. 거기 가시면 메인 페이지에 저희 영화를 펀딩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어요. 만원부터 힘닿는 데까지 하실 수 있어요."

-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60% 됐어요. 사실 반 넘기기도 쉽지 않았어요. 1500만 원이 목표인데 900만 원 정도 모였거든요.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 많이 해주셨으면 합니다."

- <그림자들의 섬>의 어떤 영화인가요?
"조선소 노동자들은 배를 만든다고 하지 않고 '짓는다'고 해요. 땅 위의 모든 기술이 집약되어 있어요. 게다가 동력도 들어가고 아파트를 짓는 것처럼 쌓아 올리잖아요. 배는 출항 후 회항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을 사람들이 먹고사는 공간이기도 하죠. 그런 거대한 배를 30년 정도 지어왔던 노동자들의 애환이 담긴 영화예요. 이 사람들이 처음 어떻게 입사했고, 어떤 부푼 꿈을 갖고 일하기 시작했으며 열악한 처우를 바꾸기 위해서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보여줘요. 노동운동사로 보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한국 경제를 떠받쳐온 중공업 노동자들이 보는 80년대부터 현재의 이르기까지를 다룬 영화, 한국 사회 노동에 대한 영화로 보셔도 될 것 같아요."

- 한진 중공업 노동자들의 삶을 다루셨잖아요. 어떻게 기획하시게 되었어요?
"제 전작이 2011년에 있었던 희망버스에 관한 영화인 <버스를 타라>예요. <버스를 타라>는 희망버스의 시작부터, 김진숙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을 마치고 해피엔딩처럼 크레인 아래로 내려온 순간, 다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재능'이나 '쌍차' 같은 다른 사업장에 연대하러 가는 모습까지 사건의 추이를 쫓는 형식을 다룬 영화예요."

물론 감동적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보여주지 못하고 단발적으로 다뤘다는 고민을 했어요. 이 사람들이 크레인 위에 올라가거나 맨바닥에서 잠을 청하며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 희망버스 이후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타워즈> 시리즈도 프리퀄 방식으로 돌아가잖아요. 그처럼 <그림자들의 섬>도 한진중공업의 30년 전부터, 희망버스 이후까지 다뤘어요."

- 그럼 2011년의 한진중공업을 희망버스 당시에 알게 되었나요?
"아니요. 한진중공업은 한때 부산에서는 꽤 건실하기로 유명한 사업장이었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어릴 적에 한진중공업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기도 했죠. 2003년 김주익 지회장이 129일 동안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셨거든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는데, 당시 제가 장례행사에 참석했거든요.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모습과 김진숙 지도위원의 장대한 연설이 기억에 남았고 혹시나 다시 한 번 이런 사태가 생긴다면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이 생겼던 것 같아요. 한진중공업은 2003년부터 마음 한쪽에 미안함으로 꾸준하게 남아 있던 사업장이에요."

- 영화 내용이 주로 인터뷰잖아요.
"사실 인터뷰를 많이 보여줄 것인지, 아니면 현장의 상황을 중심으로 보여줄 것인지 갈등이 많았어요. 햇수로 5년을 촬영한 현장이라서 촬영분량도 상당해 고민이 많았어요. 끝내 인터뷰로 방향을 바꾼 이유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사실 우리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가진 사람, 높은 사람의 이야기를 항상 듣잖아요. 반대로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는 말이죠. 이 사람들이 어떻게 회사에 입사했고 어떤 바람으로 투쟁을 함께했고 지금 남은 사람들 마음의 풍경은 어떤지를 들여다보는 게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양한 나이와 다양한 위치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어요."

"세상을 바꾸는 게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정근 감독 "<그림자들의 섬>은 30년 한국 노동사를 재구성한 영화입니다"

김정근 감독 "<그림자들의 섬>은 30년 한국 노동사를 재구성한 영화입니다" ⓒ 이영광


- 취재하시면서 느끼는 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신문, 방송에서 보면 노동자들은 붉은 띠를 두르고 "투쟁"을 외치는 특별한 사람들로 비치는 경우가 많아요. 언어가 아예 다른 사람들로 느껴지기도 하죠. 근데 곁에서 조금만 함께 지내면 그냥 동네 형이에요. 아주 평범한 옆집 형들. 영화를 보면 그런 무서운 언어를 사용하는 시점은 중반 이후예요.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지막에 나와요. 촬영 현장에서나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좌절감이나 패배감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올 노동자들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내내 짠했던 것 같아요."

- 힘든 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림자들의 섬>은 오랜 기간 촬영을 하고 30년 한국 노동사를 재구성한 영화예요. 정보를 배열하고 순차를 매기고, 어떻게 관객이 이해할 수 있게 압축적으로 보여줄지 (고민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어요.

그리고 영화 말미에 강서형(한진중공업 최강서)이 돌아가셨죠. 2012년 18대 대선이 끝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첫 노동자였어요. 빈소에 문재인 후보도 오셨거든요. 강서형은 그 전날도 저와 소주 마시고 라면도 먹었어요. 근데 다음날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있는데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블랙아웃처럼 그 순간 머리가 하얘졌어요. '한번 손을 잡거나 술을 마신 형님이 없어지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란 생각이 들었죠. 심지어 그 현장을 촬영해야 했잖아요. 사태가 정리되고 편집한다고 앉아서 그걸 보는 기분. 매 순간 울며 편집할 수밖에 없는 어떤 괴로움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그걸 반드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왜냐면 우리가 이걸 기억해야 하니까요."

-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노동자의 죽음을 자살이나 개인의 죽음으로만 매도해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최근에 부산에서 기관사 한 분이 자살하셨어요. 부산에서 31년 만에 처음 있는 자살사고라는데 회사는 기관사 개인의 문제로 몰고 가고 동료들은 이 사람이 느꼈을 공황장애, 심리적 불안감 그리고 수면 부족 등 노동환경을 자살의 이유로 이야기하거든요. 앞서 서울 기관사들의 자살은 노동환경이 자살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명 났었어요. 노동자의 자살이라는 게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영화에서 나오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한진중공업 사측은 더 심하게 노동조합을 압박하고 있거든요. 이런 상황이 올 줄 강서형은 뻔히 알았던 거죠. 그냥 타살이라 말하는 게 아니라 이 타살을 둘러싼 환경이 어떠했는가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 한진중공업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된 게 2011년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올라갔을 때였어요. 그 이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현재는 어떤가요?
"현재 한진 중공업은 조선업 경기가 안 좋은 관계로 여전히 정리해고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데 다행히 당장 정리해고를 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에요. 왜냐면 다른 여타의 조선소와 달리 한진은 '자율협약'이라는 형태로 정리가 된 상황이거든요. 하지만 적막하고 폭풍전야 같은 분위기기는 해요. 얼마 전 사무직들에 한해 희망퇴직을 받았거든요. 말로만 희망퇴직이지 실은 압박으로 희망퇴직을 쓰게 해서 일부가 나갔어요. 영화에 복수노조가 나오긴 하지만 기업노조가 만들어진 이후 7:3 정도에서 민주노조가 3 정도로 줄었습니다. 교섭권이나 발언권이 많이 줄어든 상태라서 민주노조 안에 소외감이나 박탈감이 있죠. 근데 이분들은 1~3년 싸운 분들이 아니므로 잘하실 거라고 믿어요."

- 제목인 <그림자들의 섬>은 어떤 의미인가요?
"중공업은 우리 경제 30~40년을 떠받친 업종이거든요. 이들이 일군 성장지표는 높은데 노동자들이 마치 높은 성장지표의 그림자처럼 있어서 그런 의미로 '그림자'를 썼고, 섬이라는 건 그 사람들이 여전히 고립된 것 같아서 제목을 <그림자들의 섬>으로 지었어요. 그리고 얄팍하기는 한데 영도가 한자로 映(그림자 영)에 島(섬 도)자예요. 직역에서 따온 게 있어요."

-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지금 노동 현실이 되게 안 좋잖아요. 구의역 사건이나 삼성 서비스 센터 기사분의 추락사, 조선업 구조조정 문제까지 점점 세상이 좋아진다는 믿음이 흐려지는 것 같아요. 최저임금 440원 인상으로 환원되는 게 노동환경의 현실인데 반추해보면 우린 승리의 역사가 있거든요.

한진중공업에서 87년에 쥐똥 나온 도시락을 엎으면서 세운 민주노조와 그 민주노조를 시작으로 작업환경을 바꾼 경험들. 이 영화를 보시고 다시 한 번 지금 여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어떤 실마리를 찾으시면 좋겠어요. 여전히 어렵겠지만, '불가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마음을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려요.
"쑥스럽지만 영화가 개봉될 수 있도록 소셜펀딩을 부탁드려요. 많이 보러 오시고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이 영화를 시작으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지를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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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근 그림자들의 섬 한진중공업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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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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