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SNS상에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아래 <매드 맥스>)가 화제가 된 일이 있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영화가, 개봉한 지 한 해가 넘었음에도 다시 화제가 된 것이 기쁠 수도 있었겠지만, 이번 경우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바로 이 영화가 다시 호출된 이유 때문이었다. 최근 메갈리아 논쟁을 놓고 갑론을박을 오가던 도중, 일군의 남성들이 '<매드 맥스>야 말로 진정한 페미니즘 영화다'라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성인 맥스와 여성 캐릭터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힘을 합쳐 악에 대항하니 이야말로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냐는 것이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오는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매드 맥스>를 이야기하며 페미니즘을 빼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린다는 '진정한' 페미니즘이 여성과 남성의 화합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분석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굳이 설명하자면 이 영화는 여성들의 투쟁을 그리고 있기에 페미니즘적이며, 맥스는 그 투쟁에 공감하고 동참했다는 점에서 개성을 가지는 인물이지 여성 캐릭터들과 '사이 좋게' 지낸 것이 특징인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가장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이 같은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자신을 맥스와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글쎄. 굳이 작금의 현실을 영화에 대입해서 설명하자면, 그 주장을 했던 사람들은 결코 맥스의 위치에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캐릭터에 더 가까울까.

그 남자들이 '맥스'도 '임모탄'도 아닌 이유

 영화 속 퓨리오사와 맥스. 퓨리오사와 맥스의 연대하는 걸 보고 혹자들은 '진정한' 페미니즘 영화라고 칭한다. <매드 맥스>가 페미니즘 영화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그 이유가 과연 이것때문일까?

영화 속 퓨리오사와 맥스. 퓨리오사와 맥스의 연대하는 걸 보고 혹자들은 '진정한' 페미니즘 영화라고 칭한다. <매드 맥스>가 페미니즘 영화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그 이유가 과연 이것때문일까?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이야기에 앞서 이 영화의 악당이라 할 임모탄을 살펴보자. 그는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되는 시타델의 통치자다. 말이 좋아 통치자이지 사실은 굉장히 가부장적인 독재자에 가깝다. 그는 사막화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물을 독점하며, 이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을 숭배하도록 만든다.

거기에 그는 측근에 오직 자신과 혈연으로 연결된 사람들만을 두며, 이들이 자신의 권력을 보조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의 자식들에게 임모탄의 권력이 승계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이를 위해 그는 여성들을 가두어 두고 계속해서 자신의 아이를 낳도록 만든다. 말하자면 여성을 권력 승계의 도구이자 아이 낳는 기계처럼 사용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권력을 영속화하기 위해 자원과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한다. 이쯤 되면 가부장적 권력의 화신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그렇다면 '<매드 맥스>는 진정한 페미니즘 영화'를 주장한 남성들이 임모탄과 같은 사람들일까?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가부장적 통제를 통해 강한 사회적 권력을 가지는 계층은 한정적이다. 애초에 임모탄의 권력은 자원의 불균등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자원은커녕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힘든 사람들이 대부분인 사회에서 '무수한 임모탄들'의 존재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권력자들은 목소리를 내고 체제의 정당성을 입증할 필요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미 가지고 있고 쓸 수 있으며 위협받지 않는 권력이라면, 무엇하러 권력의 대상에게 그것의 정당성을 설득하겠는가. 가령 영화 속에서 임모탄이 하는 대사를 살펴보자. 영화 내내 그는 딱 이 이야기만 한다. '내 소유물들 어디 있어!'

한국 사회의 '워보이'들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한 장면. 대부분의 남자는 임모탄이나 맥스가 아니라 워보이들이다.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한 장면. 대부분의 남자는 임모탄이나 맥스가 아니라 워보이들이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그래서 강산이 수십 번이 변해도, 이건희 같은 사람이 '메갈리아 티셔츠 논쟁' 같은 주제에 대해 입을 열 일은 없을 것이다. 뭣 하러 굳이 진흙탕에 빠지려고 하겠는가, 이미 그러지 않아도 자신의 고결한(?) 삶은 너무도 안전한데. 오히려 지배 체제와 다르게 행동하고 말하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그 사람들에게 '지금의 현실은 너무나 옳은데 너희가 시끄럽게 해서 문제야'라고 외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바로 그 체제가 무너지면 자신의 정체성이 매우 초라해질 사람들이다. 비유하자면 권력의 주변부에서 열심히 빵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사람들 정도가 아닐까.

<매드 맥스>의 등장인물 중 그런 캐릭터는 누가 있을까. 바로 임모탄의 충실한 신봉자 워보이들이다. 사실 임모탄의 지배 아래에서 이들이 처한 현실도 개차반이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이들은 그 체제 덕분에 적어도 완벽한 외부인 맥스나 아이 낳는 기계 브리더들보다는 더 나은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는다. 한 마디로 기성 체제가 유지된다면 더 얻을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잃을 것도 없는 존재들이다.

가부장적 사회 내의 대부분의 남성이 이렇다. 딱히 가부장제가 이들에게 해주는 것도 없고, 이들이 가부장 노릇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체제의 유지만으로, 여성들이 물건마냥 시도 때도 없이 대상화되고 조용히 있을 것을 강요받는 것만으로, 이 남성들은 딱 그만큼의 권력을 가지고 간다. 그런데 그런 여성들이 갑자기 봉기해 자신을 비판한다? 이들에겐 세상에 그것만큼 괘씸한 일이 있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영화 속에는 흥미로운 장면 하나가 등장한다. 바로 워보이들 중 하나인 눅스가 퓨리오사 일행과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이다. 격렬한 전투 중에 눅스는 스플렌디드에게 임모탄의 지배가 정당하다고 설득한다. 그는 임모탄의 체제가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항해 스플렌디드는, 임모탄이 그와 브리더들을 총알받이와 아이 낳는 기계로 사용했다고 반박한다.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에 따랐을 뿐, 자신은 비난받을 대상이 아니라는 눅스의 말은, 한국 사회의 워보이들이 공감하는 주장일 것이다. 스플렌디드는 여기에 통쾌한 일갈을 날린다.

"그럼 세상을 망친 게 누구지?"

당신이 '맥스'라면, 진정으로 해야 할 일

 영화 속 퓨리오사 일행들. 이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영화 속 퓨리오사 일행들. 이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마지막으로 '진정한 페미니즘'에 목을 매는 남자들이 동일시 한 '맥스'를 살펴보자. 당연한 이야기지만 과묵한 조력자 맥스와 이 남자들 사이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먼저 이들은 맥스와 달리 하나, 일단 말이 너무 많다. 둘, (자기는 진정한 페미니즘을 안다고 하지만) 여성들이 처한 사회적 조건이 나아지는 데 도움이 안 된다. 그리고 가장 큰 차이가 있다. 맥스는 퓨리오사 일행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분노에 공감하고 함께 싸운다는 것이다. 맥스는 먼저 듣고, 그녀들이 하는 싸움의 정당성을 발견하고, 그리고 연대한다. 연대는 무조건적인 화합과 다르다. 만약 영화 속 맥스가 지금 메갈리아에 분노하는 남성들과 같은 인물이라면, 그는 퓨리오사 일행을 마주치자마자 '날 미워하지 마!'라고 징징거리며 모래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녔어야 했을 것이다.

사실 맥스의 이런 선택은 그가 처한 조건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 맥스는 시타델의 외부인이다. 그래서 그는 거리를 두고 체제를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편견 없이 퓨리오사 일행 그리고 부발리니족들을 바라보고 연대하는 것이 가능하다. 만약에 자신들의 주장처럼 정말 맥스처럼 살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길 조언한다. 우선 일단 말을 하지 마라. 그리고 여성들의 말을 들어라. 왜 분노했고, 분노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서.

어렵겠지만 이 과정에서 평소 스스로가 가졌던 여성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개입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시끄럽고 불편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이 여성들이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요구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군말 없이 힘을 실어줘라. 그게 영화 속 맥스가 했던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필규 시민기자가 한국여성의전화 소식지 <베틀>에 실었던 글 '한국 사회의 워보이들에게'를 수정·보완한 글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매드 맥스 페미니즘 여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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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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