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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에 눈이 부시도록 강한 햇빛이 바닥을 친다. 수십 억 개로 부서진 햇빛 조각들이 사방으로 튄다. 시간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한 달 평균 두 번 기고하던 글을 한 달에 한 번 겨우 쓴다.

그나마 독촉이 없으면 건너뛰기도 했다. 문제의 시작은 지난 2월 중순, '그린우이'라는 환경 관련 협회를 만든 뒤부터였다. 전환을 위해서 5회에서는 인터뷰하러 나갈 시간도 없이 바쁜 이 때, 남의 얘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써보자.

'그린우이(Green'Houilles)'는 녹색의 Green과 파리 서쪽에 있는 도시 우이(Houilles)를 조합한 이름이다. 협회 이름을 대면 프랑스인들이 다들 한 번씩 웃는데, 언뜻 '그르누이(grenouille)', 개구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개구리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환경에서만 발견할 수 있어 기후변화의 지표가 되는 동물. 우리 모두 개구리가 되도록 하자, 개구리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삶은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e, 비전상실증후군)을 떠올림으로써 기후변화에 대해 즉각 대응하자는 의미도 있다.

그린우이 창설회원 그린우이 창설 후 첫번째 공식 회의가 끝난 뒤, 우리 협회의 상징인 개구리 인형을 들고 기념 촬영.
▲ 그린우이 창설회원 그린우이 창설 후 첫번째 공식 회의가 끝난 뒤, 우리 협회의 상징인 개구리 인형을 들고 기념 촬영.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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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중에도 농약 성분 검출

순환경제, 책임 있는 소비, 지속 가능하고 사회적인 발전를 취지로 한 그린우이 협회의 등록을 마친 바로 다음 날,  우리는 매우 개구리다운 행동을 취했다. 도시 내 제초제 사용을 멈춰달라는 서한을 공동으로 작성해 시청 우편함에 집어 넣었다.

인도와 차도 변에 자라는 잡초를 제거한다는 이유로 시에서는 지난 수년간 글리포세이트가 주원료인 제초제를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뿌려왔으며, 어린이 및 시민들의 통행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경고나 보호조치 없이 뿌려왔었다.

글리포세이트는 세계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제초제로, 2급 발암물질로 분류되어 있고, 장기간에 걸쳐 환경에 피해를 주는 독성 물질이다.

제초제, 살충제, 농약 등 이들 독성 물질의 피해는 금방 보이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된 뒤에 나타난다. 농약을 많이 뿌리는 지역 남성의 정자 수가 현저하게 줄거나 정자의 운동이 약해지고, 더 무섭게는 아기가 태어났을 때, 아이의 신체나 성장에서 비이상적인 현상이 가시화되기도 한다.

제초제를 논밭에만 들이붓는 게 아니라 이렇듯 도시에서도 살포하고 있으니 농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는 지하수가 없고, 공기 중에도 떠돌아다니는 농약 성분이 검출되기도 한다.

도시 내에서 제초제를 살포할 경우, 실행 24시간 전에 안내문을 설치해야 하며, 날이 덥거나 시속 20km 이상의 바람이 불거나 몇 시간 내로 비가 오리라 예상되면 살포하면 안 되고, 하수구로부터 최소한 5m 떨어져야 하며, 살포 후 최소한 6시간 동안 보행자들의 통행을 금지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조항이 있다.

제초제 통에 쓰인 안내 문구에 의하면 1년에 1회 사용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에서는 2회, 3회까지도 뿌려왔으며, 위에 적힌 조항 중 여러 사항을 지키지 않았다.

6주가 지났을 무렵, 답신을 받았다. 시민들에게 경고하지 않은 이유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걱정할까 봐서였다고 했다. 그리고 2017년 1월 1일부터 농업지역을 제외한 프랑스 전국 도시에서 제초제 사용이 금지되는데, 시에서도 그에 맞춰 대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 

제초제와 하수구 제초제 살포시 준수사항을 어긴 증거로 찍어둔 사진 중 하나. 제초제와 하수구의 거리는 최소한 5m 이상이어야 하는데, 제초제 때문에 노랗게 타버린 잡초가 하수구로부터 불과 50cm도 안 떨어졌다. 이곳은 게다가 만 3세~5세까지의 어린이들이 다니는 유치원 앞이다.
▲ 제초제와 하수구 제초제 살포시 준수사항을 어긴 증거로 찍어둔 사진 중 하나. 제초제와 하수구의 거리는 최소한 5m 이상이어야 하는데, 제초제 때문에 노랗게 타버린 잡초가 하수구로부터 불과 50cm도 안 떨어졌다. 이곳은 게다가 만 3세~5세까지의 어린이들이 다니는 유치원 앞이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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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정확히 고장나는 전자제품들, 왜?

길거리에서 제초제 뿌리는 장면이 포착되면 증거 사진을 찍어두고, 회원들로 하여금 시에 계속 청원서를 쓰도록 했다. 이렇게 무제초제 캠페인을 비공식적으로 계속 진행하는 동시에 대중을 위한 공식행사로 리페어 카페를 차근차근 준비했다.

리페어 카페(Repair Café)는 고장 난 물건을 버리지 말고 고쳐서 다시 쓰자는 취지로 2009년 10월 18일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일명 협동 수선센터 같은 것이다. 고치는 걸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들이 자원봉사로 나서고 버리기 전에 한 번 고쳐보자는 사람들이 만난다. 어쩌다 리페어 카페에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일까?

요즘 나오는 전자 전기 제품들은 수명이 짧아 보증기간이 끝나면 쉽게 고장 나고, 수리비보다 새 모델을 사는 게 더 저렴한 경우가 태반이다. 비싼 돈 주고 고치느니 새 물건을 사라고 회유하는 것도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다.

2012년 6월 1일 프랑스 2 TV채널에 방영된 'Cash Investigation'에 따르면 2008년에 출시된 삼성 LCD TV는 평균 수명이 3년 반이다(아래 동영상 참조. 평균 수명 '3년반'이란 말은 11분 30초에 나온다). 'Cash Investigation'는 '콘덴서의 원래 수명이 15년이고, 열이 나기 때문에 환기가 잘되도록 회로를 설치해야 하는데 삼성에서는 이들 콘덴서를 한데 모아놓아 발열이 나는 걸 방치함으로써 수명을 단축했다'고 보도했다. 

 론알프스, 부르곤뉴, 브르타뉴, 파카 등 프랑스 네 지역에서 콘덴서 때문에 고장나는 TV를 조사해 본 결과. 2012년 6월 1일, 프랑스 2TV에 방영된 "Cash Investigation" 중 13분45초에서 화면 캡처.
 론알프스, 부르곤뉴, 브르타뉴, 파카 등 프랑스 네 지역에서 콘덴서 때문에 고장나는 TV를 조사해 본 결과. 2012년 6월 1일, 프랑스 2TV에 방영된 "Cash Investigation" 중 13분45초에서 화면 캡처.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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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수리점에 가면 점원은 교육받은 대로 답한다.

"이거 통째로 갈아야 해서 수리비가 300유로 들어요. 그러느니 신제품 사는 게 낫습니다."

하지만 콘덴서를 교체하는 데 드는 돈은 단 21유로! 뿐만 아니다. iPhone 4, iPhone 5S도 18개월이 지나면 배터리 수명이 줄어든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신기술 신제품을 사려고 줄을 서서 아낌없이 주머니를 털 테니까.

리페어 카페 우리 협회에서 개최한 첫번째 리페어 카페.
▲ 리페어 카페 우리 협회에서 개최한 첫번째 리페어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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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하러 왔다가 자원봉사자로 변신하는 사람들

리페어 카페가 수리점과 다른 점은 무료/유료의 차이가 아니다. 물건을 맡기고 며칠 후에 다시 찾으러 오는 수리점과 다르게 리페어 카페는 수리하는 동안 옆에 앉아서 어떻게 고치나 들여다보고 배우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는 등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이 생긴다.

사람들과 그냥 만나고 얘기하는 게 좋아서 오는 이들도 있고, 그 분위기가 좋아서 몇 시간씩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집에서 혼자 고치는 것보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좋아 고장 난 물건을 들고 와 리페어 카페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고치는 이들도 있고, 옆에서 수선하는 걸 들여다보며 훈수를 들다가 아예 그 자리에 퍼질러 앉아서 자원봉사 수선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수리를 의뢰하러 왔다가 '나도 다른 이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에 자원봉사 수선인으로 지원하는 경우도 있고, 전기/전자/기계 등 지식 분야가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협동해서 작은 믹서 하나를 고치려고 자그마치 한 시간 동안 끙끙대며 마침내 고쳐내는 쾌거도 있다.

리페어 카페를 운영하면서 보면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것은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라 3이라는 걸 발견한다. 그런 아름다운 모습이 다시 보고 싶어서 다음 리페어 카페를 준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1회 리페어 카페가 열리던 날, 개구리의 잔칫날답게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장대비에도 불구하고 개장부터 폐장까지 끊임없이 인파가 밀려들어 4시간 동안 장장 60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한 마디로 대박이었다.

47개의 수선문의가 접수된 가운데 수선 자원봉사자들이 쉴 틈도 없이 고쳐 쓰레기가 될 뻔했던 총 24개, 총 28.6kg의 물건들이 제2의 생명을 부여받아 주인의 품에 안겼다. 협회 설립 초기에 불가피한 지출이 많아서 80유로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런 행사를 만들어 줘서 고맙다며 감사해 하는 방문자들이 총 83유로의 기부금을 내준 덕분에 하루 만에 적자를 만회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적자와 기부금 액수가 귀신같이 비슷한 것도 신기했고, '아, 이제 적자를 면했구나'하는 안도감, 사람들이 감사하다고 인사해올 때의 보람, 느꺼움이란 이루 형용할 수가 없었다.

로빌루와 새 협회 그린우이와 리페어 카페 소개가 마을 신문 5월호에 나갔다.
▲ 로빌루와 새 협회 그린우이와 리페어 카페 소개가 마을 신문 5월호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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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에르 데 지블린 그린우이 협회와 리페어 카페가 소개된 지방 신문, 쿠리에르 데 지블린.
▲ 쿠리에르 데 지블린 그린우이 협회와 리페어 카페가 소개된 지방 신문, 쿠리에르 데 지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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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페어 카페를 치루고 난 뒤, 지역 쓰레기 처리장에서 인터뷰를 나왔다.
 리페어 카페를 치루고 난 뒤, 지역 쓰레기 처리장에서 인터뷰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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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우이 창설과 리페어 카페로 마을 신문, 지방 신문, 쓰레기 소각장 소식지 등 지난 5개월 동안 받은 인터뷰만 세 번, 기사는 총 네 번 나갔다. 협회원도 초기 10명에서 현재 30명으로 늘었다. 나는 협회 회장으로 이런저런 회의에 불려다니고 프로젝트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날 뿐만 아니라 협회 활동의 프로그래밍과 커뮤니케이션을 총괄하고 있다.

아이디어는 내가 먼저 많이 내지만 결정은 반드시 공동으로 정한다. 피에르 라비가 창설한 콜리브리 운동(Colibris, 생태적, 휴머니스트적 협동조합)을 바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다수결의 원칙이 아닌 전원이 찬성하거나 동의하는 선에서 결정을 내린다.

피에르 라비 우리의 정신적 지주인 피에르 라비가 옆동네에 컨페런스로 왔을 때, 그린우이 회원들과 함께 찾아갔다. 그 날 400석의 영화관이 만석이었다.
▲ 피에르 라비 우리의 정신적 지주인 피에르 라비가 옆동네에 컨페런스로 왔을 때, 그린우이 회원들과 함께 찾아갔다. 그 날 400석의 영화관이 만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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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리페어 카페가 대성공을 거둔 뒤, 6월 초에 우리가 감히 요청해도 만나줄까 말까 한 시에서 만나자는 요청이 들어왔다. 환경담당 시의원께서 5월부터 운동경기장을 제외한 시 전체 인도 및 차도에 제초제를 안 쓰기로 결정했노라고 말했을 때, 나는 감격해서 환성을 질렀다.

애초에 무제초제 운동을 지지해달라고 주변 관련 협회에 도움을 청했지만 시에 밉보일까봐 두려워 아무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던 터라 우리의 승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값지고 감격적이었다.

시에서는 이렇게 결정을 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하면 주민들에게 무제초제를 홍보할 수 있을 지 궁리 중이라면서 우리 협회에 협조를 구해왔다. 5개월박이 그린우이는 스콜피언의 '윈드 오브 체인지'처럼 인구 3만3천인 도시에 녹색 전환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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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주가를 날리던 2008년, 서버에 대한 보이콧으로 티스토리로 이주. '에꼴로'란 닉넴으로 활동하던 파워트위터러. 친환경, 유기농, 대안적인 삶, 지속가능한 사회에 관한 기사를 수 년 째 여러 온오프 매체에 기고. 사람만나고 사진찍고 글쓰고 영화보고 노래하길 즐기는 한량.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좀 진작 할껄!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