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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율성이라는 이름이 가장 많이 이야기된 것은 2014년 7월 시진핑 주석이 서울대에서 한 연설을 통해서다. 시진핑은 수천년 동안 지속된 한중 교류사에서 위대한 인물을 이야기하다가 최치원, 진린, 김구 등과 더불어 정율성을 이야기했다. 그 전에 정율성은 독립운동사를 공부하거나, 중국과 관련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금기처럼 이야기되던 인물이다.

 중국의 별이 된 조선의 독립군 <정율성>은 광주사람 정율성을 온전히 되살려 놓았다.
 중국의 별이 된 조선의 독립군 <정율성>은 광주사람 정율성을 온전히 되살려 놓았다.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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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정율성을 온전히 되살린 인물 다큐인 <정율성>(부제: 중국의 별이 된 조선의 독립군)이 출간됐다. 그 역할은 그간 맛깔스러운 야구 이야기와 장기려, 이회영의 다큐를 썼던 김은식 작가가 맡았다. 작가는 장율성의 생을 씨줄로 삼고, 한중 근대사를 날줄로 삼아, 그의 삶을 제대로 그려 놓았다.

정율성은 이 땅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뒤인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형제는 물론이고 조카들까지도 대부분 독립운동에 투신한 가족 환경을 갖고 있었다.

그 역시 자존을 중시하던 광주 숭일학교나 전주 신흥중학교를 다니면서 일제와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체감했다. 19살이던 1933년 남매들이 이미 건너간 중국으로 길을 향한다.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에게는 중국의 어느 전장에서 전사한 형 충록이 쓰던 만돌린과 바이올린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악기를 챙긴 것은 등 너머로 배운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가족들이 알았던 이유다.

중국으로 건너간 정율성은 세 형들과 마찬가지로 독립군이 되기 위해 1933년 9월 16일 난징에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학한다. 이곳은 의열단으로 중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던 김원봉이 이끌던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공부를 하는 반면, 김원봉의 추천으로 상하이에 있는 러시아 음악인 크레노바에게서 음악을 배우는 특별한 기회를 갖는다.

이후 이어지는 정율성의 길은 다양하지만 독자들은 그를 통해 위대한 당시 독립운동가들을 하나하나 만날 수 있는 기쁨을 맛본다. 그의 매형인 독립운동가 박건웅은 물론이고, 김구, 김규식, 김산, 김성숙, 무정, 양림, 윤세주, 주덕해는 물론이고 당대 중국을 만든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주더 등 걸출한 인물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김산을 다룬 님 웨일즈의 <아리랑>이나 김성숙을 다룬 정찬주의 <조선에서 온 붉은 승려>를 읽을 때의 느낌과 같다.

정율성은 이미 교착상태에 빠진 김원봉의 의열단을 뒤로 하고 1936년 9월에 옌안행을 감행한다. 이곳에서 정율성은 그의 음악적 자질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2년 후 당대 최고의 유행가라 할 수 있는 <연안송>을 만들어, 모든 지도자들의 주목을 받고 만나기도 한다. 국공합작 이후에는 옌안과 타이항산 팔로군 본부를 오가다가 그의 가장 유명작인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하는데, 이 노래는 이후 <중국인민해방군가>가 되어 하루에도 수천 번씩 불리는 중국 군대의 첫 번째 노래가 된다.

음악적인 성취는 이뤘지만 정율성은 중국이라는 공간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그가 깊이 따르던 김산이 스파이 혐의로 샨베이 고원에서 즉결 처분되어 시신조차 찾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심리적 고통은 컸다. 그런 가운데 당대 가장 주목받던 여성 당원이었던 딩쉐송과 사랑에 빠지는 운명이 찾아온다.

딩쉐송은 저우라이의 양딸로 주더 등 당시 혁명원로들에게 가장 귀여움을 받는 재원이었다. 둘의 사랑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주변의 격려와 무정 장군 등의 후원으로 결실을 맺고, 둘은 죽는 날까지 함께 한다. 특히 딩쉐송은 중국 최초의 여성대사를 지내는 등 여성계의 대표적인 인물이었고, 1996년에는 정율성의 고향인 광주를 방문하기도 했다.

정율성에게도 해방 후는 혼돈의 시간이었다. 처음으로 건너가 활동을 했지만, 점차 김일성 주도의 정부에서 자신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다. 더욱이 한국말을 못하는 부인 딩쉐송으로 인해 고민하다가 한국전쟁 직전에 중국행을 결심한다. 김일성으로서도 중국에서 유명한 인물인 정율성을 두는 것보다는 중국으로 보내는 게 유리한 것이 뻔했다.

한국전쟁의 격랑이 지나자, 그에게는 대약진이나 문화대혁명 등이 다가온다. 마오쩌둥은 자신에게 충고하는 펑더화이 등을 추출하고, 독재적 경향을 보인다. 정율성이 이런 마오쩌둥에게 좋은 평가를 내릴 리 없고, 그 화살은 고스란히 그에게도 다가온다. 이 시기 그는 대외활동보다는 중국 전역의 음악을 수집해 전통음악은 물론이고, 동요 등으로 만들어 중국 음악을 한단계 발전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한다.

중국의 큰별들이 대부분 떨어지는 1976년은 정율성이라는 큰 별이 떨어진 해이기도 하다. 그해 주더, 저우언라이에 이어 마오쩌둥이 차례로 사망한다. 그리고 12월 7일에는 정율성이 갑작스런 뇌일혈로 사망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정율성의 삶과 중국 내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 시절 님웨일즈·김산의 <아리랑>을 읽을 때 만나던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삶이나 역사적 사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한국 다큐멘터리스트들이 중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우리 선조의 길을 더듬는 것은 쉽지 않다. 워낙에 광대한 지역과 공산당과 국민당의 복잡한 정치적 흐름 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은식은 이 책에서 그런 복잡한 상황을 거의 완벽하게 짚어냈다. 이회영의 전기를 썼다는 점에서 이해를 하지만 이 정도로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 놀랍다.

이 점이 인물 다큐멘터리스트로서 김은식을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계기였다. 우리는 당대 저명한 인물 다큐멘터리스트를 갖고 있다. 여전히 활동하는 김삼웅 선생을 비롯해 이원규 작가가 그분들이다.

이분들은 수십년 동안 다양한 경험과 자료를 축적해 역사 속 인물을 복원시켜 놓았다. 김구, 신채호 등 익히 알려진 이들도 있지만 김창숙, 이회영, 장준하, 김원봉, 김산 등도 이런 과정을 통해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김은식이 다시 이런 앞선 세대를 잇는 새로운 근대 인물 다큐멘터리스트로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


정율성 - 중국의 별이 된 조선의 독립군

김은식 지음, 이상(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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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 시민소통담당관. 저서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5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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