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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보따리를 왼쪽 겨드랑이 밑에서 시작해 오른쪽 어깨 위로 둘러 질끈 동여매고 뛰어가면 양은도시락 속 젓가락이 짜그락 짜그락 노래를 한다. 필통 속 연필들도 춤을 추면서 장단을 맞춘다. 길가 무밭에서 파란 무 하나를 쑥 뽑아서 뱅뱅 돌려 가며 겉껍질을 앞니로 깎아 내고 한입 슥 베어 물면 맛이 들큰매콤하다. 목마름이 가신다.

가을 무가 제철 무

무와 배추의 여러 모습들
▲ 무와 배추 무와 배추의 여러 모습들
ⓒ 전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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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마치고 산등성이를 넘어 집으로 돌아가던 어린 학생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에게 이르지 말라고 다짐을 받고는 먹다 남은 무청과 무 뿌리를 눈에 띄지 않을 곳으로 던진다. 무 껍질은 고무신 끝으로 흙을 끌어 모아 덮는다. 여학생들은 그사이 허리에 동여맨 책 보따리를 풀고 정자나무 아래서 개미나 작은 벌레들을 가지고 놀거나 소꿉놀이를 한다. 1970년대 가을날의 전형적인 시골 풍경이다.

이런 풍경을 만드는 무밭은 무더위가 여우 꼬랑지만큼 남아 있는 8월에 조성한다. 8월 중에서도 처서가 있는 말일 근처에 무를 심는다. 8월 초 입추 무렵에 심는 배추보다 한 절기(15일)가 늦다. 참깨나 옥수수를 수확하고 잠시 비어 있던 땅에 가을 작물을 심는 것이다. 이보다 일찍 심으면 날이 뜨겁고 습기가 많아서 병해가 심하다. 며칠 상간에도 기후가 달라지는 때라서 늦으면 생육이 더디고 이르면 병해충 피해를 입는다. 입추와 처서는 배추와 무의 날이라 해도 될 정도다.

그래서 입추 무렵의 풍속으로 '기청제(祈晴祭)'가 있다. 기우제(祈雨祭)와 반대다. 입추 무렵은 배추도 심지만 벼가 한창 여무는 시기라서 비가 내리는 것을 가장 큰 재앙으로 여겼다. 비가 내리지 않고 맑은 날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하늘에 제를 올리는 것이다.

요즘도 무는 다른 작물과 달리 골을 만들어 줄뿌림으로 직파를 한다. 직파를 하는 이유는 무를 옮겨 심으면 잔뿌리가 많이 생겨서 상품 가치가 떨어지고 섬유질이 질겨져서 먹기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배추도 줄뿌림 직파를 했다. 비닐이나 포트가 없어서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옮겨 심는 이중 일을 하기에는 노동력이 부족했고, 솎아 내서 알맞은 간격을 만들다 보면 절로 반찬거리가 생겨서다.

봄, 여름, 가을 언제든 심는 무들이 있지만 가을무가 제철 무다. 박세당의 <색경>(1676)에 보면 봄 무는 2월에 파종해 4월에 거두고, 여름 무는 4월에 파종하고 가을무는 7월에 파종한다고 되어 있다. 물론 음력이다. 이처럼 철마다 무를 심었으나 가을무를 제철 무라 하는 것은 가을무만이 채종을 하기 때문이다. 씨앗을 받는 일은 농사의 기본이었다.

배추와 마찬가지로 무도 장일성(長日性) 식물이라 낮의 길이가 길어져 일조 시간이 12시간이나 14시간은 되어야 꽃눈을 형성한다. 겨울을 나고 이듬해 초여름에야 씨앗을 받는 이유다.

장다리 위에 피는 꽃 그리고 씨앗

가을 무를 뽑아서 겨우내 묻어뒀던 농부는 해동이 되면 꺼내서 밭에다 다시 심는다. 그 위를 짚으로 덮어 주면 봄기운이 돌면서 싹이 나고 잎이 무성해진다. 곧이어 장다리(꽃줄기)를 쭉 밀어 올리는데 낮이 많이 길어진 6월에 접어들면 하얀 꽃을 피우고 씨가 맺힌다. 무건 배추건 꽃대가 생기면 맛도 떨어지고 먹을 때 질감도 나쁘기 때문에 봄에 심는 무는 자칫하면 꽃을 피울 수 있어 신경 써서 키워야 한다.

배추씨는 좀 더 정교한 과정을 거쳐 받을 수 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홍만선의 <산림경제>에는 개성배추의 채종법이 자세히 나온다. 이보다 수십 년 앞선 시기에 <홍길동전>을 쓴 허균이 편찬한 <한정록>에도 배추 채종법이 실려 있다.

먼저, 배추를 뽑아서 위쪽 잎을 삼각형으로 자른 다음 잔뿌리들을 없앤다. 그러고는 배수가 잘되는 곳에 깊이 60~75cm, 폭 90cm 정도인 구덩이를 파서 짚을 깐 뒤 배추를 넣고 짚과 흙으로 덮는다. 적어도 12월 상순에는 해야 하는데 너무 이르면 썩을 수도 있다. 그래서 묻기 전에 2~3일 볕에 말린다.

이듬해 봄에 이를 꺼내 심으면 5월이나 6월 상순에 하얀 배추꽃이 핀다. 무와 같이 배추도 장다리가 쭉 뻗어 올라오고 나서 그 위에 꽃이 달린다. 나비와 벌이 날아들고 가루받이가 이루어지면 장다리의 가슴살이 두꺼워진다. 하지 무렵에 씨를 받으면 된다.

요즘은 토종 배추 농가도 이렇게 씨를 받지는 않는다. 온난화 탓인지 남쪽 지역이 아니어도 밭 뒤쪽 구석이나 양지바른 쪽의 배추 몇 포기를 뽑지 않고 짚으로 덮어만 뒀다가 봄에 걷어 내면 봄동으로 자라서 씨를 받을 수 있다.

직파는 씨앗이 많이 들어서 요즘 그렇게 하려면 씨앗 값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농부들이 씨받이를 중요하게 여긴 이유를 종자값이 아까워서라거나 그때는 종묘상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인위적으로 육종되어 거래되는 씨앗은 당장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만 지나치게 강조해서 발달시킨 것들이라 자연의 관점에서는 기형이라 하겠다.

토종 씨앗 자가 채종은 땅과 사람과 작물 간의 조화를 이루는 농사라고 봐야 한다. 배추꽃과 무꽃을 구경할 수 없는 우리 농촌을 그래서 기형이라고 하면 억지일까? 기형 씨앗과 기형 농산물은 기형 음식을 만든다. 종내에는 기형 인간을. 최근에 논란이 되는 GMO(유전자조작농산물)는 그 정점에 있다고 하겠다.

재를 뿌리다가 DDT에서 농약으로

무 배추 밭에 가루약 치기
▲ 무 배추 무 배추 밭에 가루약 치기
ⓒ 전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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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중기부터 재배되었다는 배추는 벌레가 새싹 때부터 갉아 먹기 시작한다. 1년에 3~4회 생겨나는 배추벌레는 무에도 극성을 부리는 벼룩잎벌레, 진딧물과 함께 가장 골칫거리다. 식성이 왕성해 잎이 나기가 무섭게 잎맥을 갉아 먹는데, 배춧잎이 금세 잠자리 날개처럼 변한다.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는지 말의 머리뼈를 밭가에 걸었다거나 배추벌레 허물을 매달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알에서 5~6일이면 깨어나는 배추벌레 애벌레는 알껍데기에서 몸이 다 빠져나오기도 전에 잎사귀를 갉아 먹어 대니 그 식성을 알 수가 있다. 배추벌레는 2mm에서 3cm까지 자라면서 20일 가까이 오로지 먹기만 한다. 이른 새벽부터 이슬을 뒤집어쓰는 것도 개의치 않고 먹어 대다가 한낮에는 잎사귀 뒤에 숨어 쉰다. 그래서 아침에 벌레 잡기가 좋다.

옛날에는 배추나 무 씨앗을 넣고 나서 바로 재를 뿌렸다. 애벌레가 생겨난 뒤에도 재를 뿌렸는데 농가에서 그 유명한 디디티(DDT)를 뿌리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후반부터다. 지금은 맹독성 위험물질로 분류되어 생산이 금지되었지만 디디티를 삼베자루에 넣고 막대기로 툭툭 치면서 뿌리다 보면 공기 속으로 날리는 것은 코로 들이마시기도 했다. 동네에 누가 한 부대 사 오면 사람들이 우 몰려가서 나눠 샀다.

해양생물학자인 레이첼 카슨이 1962년에 살충제 문제를 다룬 <침묵의 봄>을 내면서, 농약 제조업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모함과 비난을 쏟아냈지만, 디디티는 끝내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농약들이 무와 배추의 씨앗에도 소독이라는 이름으로 뿌려지는 실정이다. 다른 농작물도 그렇지만 병해충과 농약은 종자 개량과 인위적인 시설농사하고 완전히 직결된다.

1938년 즈음에 우리나라에도 대도시 중심으로 종자업자들의 모임이 생겨나는데 실제 시골에 배추씨를 팔러 다니는 장사치는 1960년대 후반에야 등장한다. 씨앗을 사고판다는 개념이 없었던 농부들이 돈 주고 산 배추나 무의 씨앗을 심어 보고는 다들 환호했다. 배추 포기가 엄청 큰 데다 무도 굵고 길었다. 수확량이 늘어난 것은 당연했다. 속이 차서 노랗고 맛도 고소한 배추도 등장했다. 이때 디디티도 등장한다.

철이 없어진 무와 배추

김장하는 어머니 곁에 얼쩡대는 아이들은 배추 뿌리를 얻어먹기 위해서였다. 오래전 기억 속에나 들어 있는 추억이다. 톡톡 부러지는 식감의 배추 뿌리는 알큰하면서 달큰한 맛이 났다. 큰 덩치의 배추를 키워 내자면 뿌리가 실해야 할 테지만 쥐꼬리만 한 게 현실이다. 품종 개량 때문이다.

최근에는 뿌리배추가 등장했다. 당근만 한 뿌리가 달린 배추다. 옛 배추와 다른 점은 포기가 큰 데다 뿌리까지 달린다는 것이다. 역시 품종 개량 때문이다.

요즘엔 김장을 하더라도 10포기, 20포기를 넘지 않는다. 옛날에는 어느 집이건 김장을 두세 접은 했다. 한 접이 100포기니까 지금보다 20~30배나 더 많이 김장을 했다는 결론이다. 제철 (저장)음식만 먹었기 때문이다.

철을 잊은 무와 배추가 비닐하우스에서 사시사철 자라고 있다. 벼 유전자 조작을 성공리에 마친 농촌진흥청은 얼마 전에는 배추에 이어 무의 유전체 해독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DNA 염기서열을 다 풀었기 때문에 품종 개량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진행될 듯하다. 그러나 유전자를 '정보'로만 보지 않고 '생명'으로 대하는 토종씨앗 자연재배 농부들이 늘어나고 있어 두렵지 않다. 토종 자연재배 매대가 생협매장에도 생기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살림의 월간지 <살림이야기> 8월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배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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