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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궈웨이 작가. 오른쪽 작품 '무제12'(2014)은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라 할만하다. 왼쪽은 '무제13'(2015)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궈웨이 작가. 오른쪽 작품 '무제12'(2014)은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라 할만하다. 왼쪽은 '무제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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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는 중국 4대 명문 중 하나인 쓰촨(사천) 미술학원(四川美術學院) 출신인 작가 궈웨이(郭伟, Guo Wei, 1960~) 전을 8월 14일까지 연다. 국내 첫 전시로 높이가 3m나 되는 작품 등 28점의 회화가 소개된다. 그의 작품은 샌프란시스 코모마(1999)와 퐁피두센터(2014) 등에도 소장돼 있다.

학고재는 2013년 상하이에 갤러리를 연 이후 2014년 5월에 '티엔리밍' 개인전, 2014년 9월에 '마류밍' 개인전, 2015년 11월에 '당대수묵'전 등 중국미술을 꾸준히 소개해왔다.

[관련기사] http://omn.kr/8cbc

최근 미술시장 동향을 보니 그럴만하다. 미술시장전문지인 <아트프라이스(ART PRICE)>지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2016년 전반기(1월-6월) 세계미술시장에서 20%나 성장한 중국이 점유율 35.5%를 차지해 26.8%를 차지한 미국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제한된 표현의 자유 극복하기

궈웨이 I '무제6'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50×120cm 2014. 작가는 아무것도 하기 싶지 않다는 듯 핏기 없고 멍 때린 이 사람의 표정을 통해 인간내면의 심리상태를 임펙트 하게 그려냈다
 궈웨이 I '무제6'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50×120cm 2014. 작가는 아무것도 하기 싶지 않다는 듯 핏기 없고 멍 때린 이 사람의 표정을 통해 인간내면의 심리상태를 임펙트 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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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이번에 우리에게 소개되는 '궈웨이' 작가, 그는 80년대 미술학원 선배인 '허두어링(何多苓 1948-)'의 영향으로 경직된 사실화 풍이었으나 90년대 중국이 산업화 속 황량한 도시 속 몸살을 앓는 사람들에 주목하면서 그들의 무감각하고 우울한 정서를 표면화시켰다. 그들의 감정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의 붓질은 격렬한 속도를 낼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가 아니다. 최근 <아트리뷰> 지가 선정한 현대미술파워1위에 올라있는 '아이웨이웨이(1957~)'. 그는 세계적 명성에도 중국당국의 비위를 거슬러 자국에서 감금되었다가 외국으로 추방된 사례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내심 자기검증도 없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내면의 심정을 분출시키는 인물화를 꾸준히 그려왔다. '자신의 감정을 아는 게 삶의 전부'라는 말도 있고, 철학자 '스피노자'는 17세기에 이미 48개 '감정론'을 집필했지만 사실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건 결코 예술이라 할 수 없다.

'85신사조미술운동'의 태동

궈웨이 I '무제9'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50×120cm 2015. 대중이 좋아하는 화풍은 아니지만 그 분위기가 매혹적이다
 궈웨이 I '무제9'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50×120cm 2015. 대중이 좋아하는 화풍은 아니지만 그 분위기가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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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화풍 뒤에는 사회적 배경이 있다. 작가가 대학을 다니던 1985년 중국전역에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면서 새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게 바로 '85신사조미술운동'이다. 1977년 문화혁명이 끝나고 10여년 주류였던 프로파간다 중심의 '마오쩌둥 양식에 대한 회의를 느껴 '예술의 자유'를 외쳤던 젊은 청년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쓰촨미술학원에는 이 운동의 핵심역할을 하는 '뤄중리(羅中立 1948~)'가 있었다. 그가 그린 '아버지(父親)'라는 초대형작품은 문화혁명이 쓸고 간 후 상처를 보여준 그의 대표작으로 당시 중국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감정과 생각을 힘 있게 전달하려고 작품사이즈를 최대로 키웠다. 여기서 기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처음엔 눈빛 등을 디테일하게 그렸으나 시대에 대한 반성과 역사적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 수정했다. 그랬더니 심오함이 담은 모호한 눈빛, 세상풍파를 포용한 느낌,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어우러져 작품의 표정이 되살아났다"

궈웨이 I '밤(night)2'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20×100cm 2014. 이 작가는 인물화뿐 아니라 풍경화에서도 어두운 색조가 주류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신령하다
 궈웨이 I '밤(night)2'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20×100cm 2014. 이 작가는 인물화뿐 아니라 풍경화에서도 어두운 색조가 주류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신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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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중국은 1985년 이전과 이후로 즉 전통적 방식과 혁신적 방식으로 나뉜다고 할까. 1985년 신사조미술운동은 또한 1989년 베이징 중국미술관에서 열린 '중국전위예술(China Avant-Garde)'전과도 맥이 통한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살롱(관전) 풍의 아카데미즘과 거기서 독립적인 인상파와 구별이 되었듯 그런 경우와 유사점이 보인다.

이번 전시에 서문을 쓴 '문정희' 타이완 국립대교수는 20세기 세계미술사적으로 볼 때 '85신사조미술운동'이 인간본성의 무의식을 탐구한 'F. 베이컨'이나 고통 받는 인간을 그린 '신구상주의'나 미니멀리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독일의 '신표현주의'나 폐기물 등을 활용해 충격적 리얼리티를 추구한 프랑스의 '누보레알리즘' 등과 닮았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그는 또 궈웨이 그림기법에 대해서도 '그리다'의 경계를 넘어 '바르다'의 기법을 더하고 또 이 두  테크닉을 하나로 합쳐 더 큰 시너지효과를 낸다고 말한다. 작가에게는 이런 결합방식이 사람들 심경을 화폭에 옮기는 데 긴요한 착안점으로 본 것 같다.

중국미술의 신조류와 '상흔미술'

궈웨이 I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20×85cm 2013. 어둡고 칙칙한 색을 바탕으로 뭉개진 듯 불분명한 인물화를 그렸는데 상흔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역시나 웃음기는 찾아볼 수 없다
 궈웨이 I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20×85cm 2013. 어둡고 칙칙한 색을 바탕으로 뭉개진 듯 불분명한 인물화를 그렸는데 상흔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역시나 웃음기는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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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중국의 신사조화풍의 미술은 삶에서 겪는 상처를 받은 입장에서 그렸다고 해서 '상흔미술'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웃을 때마저도 억눌린 정서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그 칙칙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일관되게 그림의 전체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이 작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웃음도 많고 너무나 명랑한데 아이러니다.

기존미술에 익숙한 관객의 눈에서 볼 때는 이런 화풍은 그림같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해방감을 주었을 것이다. 하여간 이런 경향은 중국미술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자 인류보편주의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낳은 결과임에 틀림없다.

중국미술평론가 '천츠위(陳池瑜)'는 이 '상흔미술'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사실 1979년 전후에 만들어진 '상흔미술'은 '상흔(傷痕)문학'에서 기원했다고 볼 수 있다. 하여간 문학과 미술은 긴밀한 관련성이 있다. 이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의 삶에 주목하는 것이며 그 중요한 가치는 리얼리즘을 현실이나 이념에 대한 '찬가' 내지 '높고 크고 완전한(高大全)'것으로만 표현하려 했던 허구적 기호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점이다"

관객을 외면하는 듯한 묘한 화풍

궈웨이 I '근육(Muscle)'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50×120cm 2014. 근육질 남성의 뒷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궈웨이 I '근육(Muscle)'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50×120cm 2014. 근육질 남성의 뒷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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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작가의 작품에 대해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 한두 점 더 살펴보자.

2014년 위 작품 '근육'은 참 분위기가 묘하다. 의도적으로 근육형 남성의 위풍당당함은 축소시키고 조롱을 받는 자의 볼품없는 모습으로 정면도 아니고 뒷면으로 포착해 무기력하게 묘사했는데 이는 결국 궈웨이 작가의 반영웅주의적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하긴 그가 그린 사자그림을 봐도 동물의 왕이라는 사자의 위세는 거기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확실히 기존의 회화방식과는 정반대로 가고있다. 뒷모습에서 오히려 한 사람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진정한 실존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궈웨이 I '무제14'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300×220cm 2015. 이 여인은 얼굴에 스스로 상처를 낸 사람처럼 보인다.
 궈웨이 I '무제14'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300×220cm 2015. 이 여인은 얼굴에 스스로 상처를 낸 사람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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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흥미로운 건 2015년 작품 '무제14'이다. 여기 소녀는 파란 바디페인팅으로 얼굴을 덮고 머리에는 하얀 히잡(hijab) 같은 걸 쓰고 있다. 어찌 보면 성모마리아처럼 신비해 보이나 히잡의 두께만큼이나 그 속마음에 뭔가를 꼭꼭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작가가 역시 여기서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외양의 꾸밈보다는 내면의 상흔이리라.

이런 작품이 미완성품처럼 보이는 건 완벽한 작품으로서 결과를 추구하기보다는 그 과정을 보여주면서 수시로 변화는 인물의 심적 상태에 더 관심을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를 보면 판화를 전공한 작가답게 오린 종이로 얼굴을 덮는 방식이나 앤디워홀이 주특기인 실크스크린으로 찍는 공판화방식이나 특히 낡은 필름을 인화한 느낌을 주어 과거의 기억과 현대의 감각이 뒤섞어 그만의 독창적 화풍을 내는데 능수능란하다.

상흔미술은 다른 말로 '사천(쓰촨)미술'이라고도 한다. 이 미술이 상당한 지역성을 가지는 것은 예로부터 사천이 시성 '두보'를 배출하는 등 중국문화예술의 본고장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예향으로 불리는 광주와 비슷한 상징성을 가진 곳이다.

이 사천미술은 중국당국으로부터 탄압을 많이 받았단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민중미술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번 전시를 위해 오랫동안 탐구해온 '우정우' 학고재갤러리 실장에게 상흔미술과 민중미술의 다른 점이 뭔가 물었더니 "민중미술이 '강력한 저항'에 초점을 맞췄다면 상흔미술은 '아픈 상처'에 초점을 두었다"라고 설명한다.

'우정우' 학고재갤러리 실장이 궈웨이 인물화(연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정우' 학고재갤러리 실장이 궈웨이 인물화(연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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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작가와 나눈 아주 짧은 대화를 소개하면서 그의 전시 글을 맺고자 한다.

나의 첫 질문은 "회화가 지금 21세기에는 미술의 주류가 아니라 한 장르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을 물으니 답이 엉뚱하다. "나는 미술보다 회화를 더 좋아한다." 이 말속에 그가 얼마나 회화에 애착을 가지고 회화의 가능성을 크게 보는지 알 수 있었다. 내게는 이게 "난 낡은 미술보다 새로운 회화를 더 좋아한다"라는 말로 들린다.

나의 두 번째 질문은 "그림 속 인물이 마치 서양인처럼 보인다"고 하니까 그는 "이것은 중국인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람을 그린 것이다"라고 풀어서 말한다. 사람의 감정을 그리기에 그런 면에서 전 세계가 똑같기에 그의 인물화에는 국적이 없나 보다.

그리고 중국작가로서 한국미술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궁금해 "혹시 한국작가 중에 아는 작가가 있는지"를 무심결에 물었더니 역시 예상된 답이 나온다. "내가 아는 작가는 백남준 뿐이고 그리고 이름을 잘 모르는데 물방울로 그리는 작가는 안다"고 답한다.

물방울 작가라면 '김창열' 화백을 말하는 것이고, '이우환'조차도 모르니 한국미술에 대해 거의 모른다고 봐야 하고, 아예 한국미술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이 말을 들으니 "우리미술의 세계화는 아직도 갈 길이 멀고 과제가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덧붙이는 글 | [학고재] 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50번지 02)720-1524 www.hakgojae.com



태그:#궈웨이(郭? GUO WEI), #'상흔미술', #'사천(쓰촨)미술', #'85신사조미술운동', #뤄중리(羅中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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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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