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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에서 부푼 꿈을 안고 시작했던 짜장면집은 2년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관광객들 휭하니 왔다 가면 그만인 마라도에선 단골이 없어서 힘든 거라며 육지 어디에서든 문만 열면 대박일 거라던 기대감은 불과 몇 달 만에 무너져 내렸었다.

인공조미료의 세상이 너무도 견고해서 그렇기도 했지만, 돈 없는 서민의 주머니를 '삥 뜯는' 금융자본주의의 거미줄에 제대로 걸려든 것이 더 큰 원인이었다. 우리 부부가 하루 10시간 이상씩 일해서 번 돈은 임대료와 빚잔치로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 그러나 상처투성이 몸으로도 치유와 재기를 할 수 있으리라는 꿈을 또 꿀 수 있었던 것은 자연주의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세상이 자연주의의 가치를 알아주는 때가 언젠가 꼭 오리라 믿었고, 드디어 기회가 왔다. 당시 우리나라 음식문화에 큰 균열을 일으키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먹거리X파일' 방송팀은 일주일 전에 전문가들과 동행해서 품평을 끝냈고, 폐업 하루 전날 들이닥쳤다. 예상을 전혀 안 한 건 아니지만, 그 프로그램의 촬영 방식대로 기습적으로 들이닥쳐서 꽤나 당황했었다. X파일팀으로선 문 닫기 전에 무조건 촬영을 강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먹거리X파일>에서 '착한 식당'으로 선정된 장면
 <먹거리X파일>에서 '착한 식당'으로 선정된 장면
ⓒ 류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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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은 대표적인 조미료 음식이다. 조미료로 시작해서 조미료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 방송에서 조미료 쓰지 않는 짜장면집을 찾는다는 계획은 무모했다고 할 정도다. 거기다 발암물질로 대두된 캐러멜색소까지 쓰지 않은 짜장면은 상상조차 힘든 지경이니, 어렵게 찾아낸 '착한 식당'을 놓칠 수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우리가 완전히 폐업을 하는 게 아니라, 가게를 옮긴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방송팀은 제주도에서 다시 가게를 열었을 때 재촬영을 한다는 조건을 걸고 촬영 허락을 구했다. '착한 식당' 인증패도 그때 전달하겠다는 약속을 하고서 말이다.

'먹거리X파일'의 효과는 상당히 컸다

방송에서 가게를 접는다는 인터뷰를 하는 남편
 방송에서 가게를 접는다는 인터뷰를 하는 남편
ⓒ 류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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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짜장면'이 방송되던 날, 우리는 제주도에 있었다. TV도 없었고, 인터넷도 안 되던 집이라 본방송을 보지 못했는데, 방송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화가 걸려오거나 블로그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칭찬과 놀라움과 격려의 말들이 쏟아졌다. 결정적으로 가게가 망한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 크게 두드린 모양이었다. 가슴이 아프다는 분들, 눈물을 흘렸다는 분들, 반드시 성공할 날이 올 거라고 용기를 주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제주도에서 다시 문을 열면 꼭 찾아오겠다는 분들도 많았다.

방송팀이 한 달만이라도 일찍 찾아와 주었더라면 우리는 그 자리에서 방송의 후광을 누리고 있었을 것이었다. 지지리 복도 없다는 원망도 컸지만, 제주도에서 다시 시작하면 이번엔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희망도 커져 갔다.  

제주도 재오픈을 소개하는 이영돈 피디
 제주도 재오픈을 소개하는 이영돈 피디
ⓒ 류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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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들뜬 일주일이 흐르고,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엔 평택 단골의 전화였다. 단골은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줬다. 바로 전날, 또 다른 '착한 식당'이 방영되었는데, 이번엔 짬뽕편이었단다. 그런데 짬뽕과 함께 나온 짜장면도 우리 짜장면과 똑같아 보이고, 반찬으로 나오는 무절임조차 똑같아 보였다고 했다.

우리 음식의 특징을 너무 잘 알고 애정을 가진 그 단골은 이건 우연일 수가 없다면서 얼른 방송을 보라고 했다.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어 마음을 졸이며 인터넷으로 방송을 보는데, 정말이지 믿고 싶지 않은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이 심사를 하러 찾아간 장면에서는 주인공의 얼굴이 블러(흐림) 처리되어 나오는데도 누군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만큼 친근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는 우리 가게에서 열 달 동안 주방일을 했던 직원이었다.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는 느낌이 바로 그러했을 것이다.

주방직원의 개업... 소식 알리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나중에 이리저리 퍼즐조각을 맞춰 본 결과, 대략의 사정은 이러했다. 그는 폐업 두어 달 전에 일을 그만뒀고, 한 달 정도 준비를 해서 인접한 다른 지역에서 중식당을 차렸다. 그리고 개업 한 달 만에 같은 프로그램 촬영을 하였다. 우리와 동시 촬영을 한 것이었다. 우리는 '착한 짜장면'으로, 그는 '착한 짬뽕'으로.

단골손님의 정확한 '제보'에도 불구하고 그 직원이 그 '착한 짬뽕' 사장일 거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또 있었다. 우리 가게 촬영을 끝내고 피디가 보강 촬영을 위해 집으로 한 번 더 찾아왔었는데, 그때 그 직원 이야기가 나왔다. X파일 PD는 모두 열두 명인데, 그중 다른 PD가 '착한 짬뽕'을 찾기 위해 취재를 하던 중, 우리 가게에서 음식을 배웠다는 직원을 만났고, 그가 일산 어디쯤에 가게를 열었다더라며 전해줬다.

그때만 해도 그가 '착한 짬뽕'의 주인공인 될 거라는 얘기는 전혀 없었다. 우리 역시 돈을 벌려면 조미료 안 넣기가 어려울 거라며, 개업하면 연락준다던 그 직원의 약속을 떠올리며 적잖이 섭섭해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었다.

그랬던 그가 전혀 다른 지역에서 우리와 거의 똑같은 음식을 만들어 팔고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개업 소식을 알리지 못한 이유다. 물론 음식을 누군가에게 배워서 모방한다고 해서 잘못이라 할 수 없고, 모방한다고 맛이 똑같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음식에도 특허권이 있고, 그것은 음식의 독창성이 인정될 때 주어진다. 조미료를 안 넣는다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나, 톳을 넣어서 만드는 면발이나 캐러멜색소가 없는 춘장, 인공조미료를 대신할 맛을 천연재료로 내기 위한 레시피 등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결과물은 아주 간단하고 쉬워 보여서 그게 뭐 대단한 거냐 싶은 것도 수많은 시간 공들여 만들고 버리고를 반복한 것일 수 있다. 또한 애초에 기존의 것과 다른 것을 만들어 내려는 아이디어 자체가 중요하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이 모든 것을 스스로 개발했다고?

그럼에도 그 방송에서는 그 모든 것이 스스로 개발한 것으로 포장돼 있었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조차 말문을 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기분을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즉각적으로 분노하며 그를 비난하지 못한 것은 그가 우리와 아주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는 횟집과 일식집에서 일을 배우다 우리 가게에서 처음으로 중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조미료 쓰지 않는 식당 음식이 신기해서 배우러 오긴 했어도 왜 굳이 그래야 하는지 받아들이는 데는 10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는 성실했고, 실력도 곧잘 늘었으며, 자연주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특히 나는 그를 많이 신뢰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내가 공부한 내용을 전해주면서 오래 함께 일할 수 있기를 바랐다.

가게를 접어야 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도 그는 우리와 함께하겠다고 했다. 제주에 같이 내려가서 같이 고생하며 자연주의 음식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냉랭해졌다. 방송 이후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그는 우리가 하는 말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 우리는 제주에 내려가려던 계획을 일관되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얼마간 헤매고 있었다. 남편은 무일푼으로 가서 뭘 할 수 있겠느냐면서 돈을 좀 벌어서 내려가자고 했다. 평택에서 한 2년 조그만 횟집을 해보자고도 했다. 그래서 한때는 횟집도 알아보러 다녔는데, 그 직원은 그런 우리의 모습에 실망이 컸다고 했다. 우리는 그를 설득하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그는 일을 그만뒀다. 그때가 횟집을 완전히 포기하고 제주도로 내려가기로 확정을 짓기 전인지 후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역시 그의 싸늘한 태도에 마음이 상해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가 일을 그만두었을 무렵에 이미 자기 가게를 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 역시 방송 이후에 알았다. 우리의 거래처 정보를 가지고 나가 똑같은 면과 춘장으로 똑같은 짜장면을 만들고 있었다. 방송은 아이템을 굳이 짜장면과 짬뽕으로 나누어 '착한 식당'을 물색 중이었고, 그의 가게는 어떻게 알려졌는지 몰라도 개업 한 달 만에 촬영을 했다.

그는 방송에서 전에 다니던 식당에서 조미료를 너무 많이 써서 싫었다고, 그래서 조미료 없는 음식 개발을 했다고 말했다. 우리 부부는 '멘붕'에 빠졌다. 나는 우리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그러자마자 발칵 뒤집혔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분노했다. 먹거리X파일 누리집에도 비판글이 빗발쳤다.

'스승'이 졸지에 '제자'가 될 뻔한 사연

그리고 하루 만에 X파일팀에서 전화가 왔다. 이영돈 PD가 직접 나서서 사과했다. 그리고 곧이어 그 친구에게서도 사과 전화가 왔다. 내용은 이랬다. 촬영 당시 방송팀은 우리와 그 친구와의 관계를 알고 있었고, 그 친구는 우리에게 배웠노라고 분명히 말을 했지만, 편집이 된 채 방송이 나갔다. 이영돈 PD도 같은 말을 했고, 편집 과정에서 실수로 누락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필름을 수정해서 재방송을 하겠다고 했다. 석연치 않은 해명이었지만, 우리는 어쨌거나 사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그 이후 더 알게 된 진짜 사실은 이랬다. 짜장면편과 짬뽕편을 같은 시기에 촬영했는데,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도 어느 것이 먼저 방송될지 정해지지 않았단다. 그 상태에서 짬뽕편에 우리 가게 이름을 밝히면 전후 관계가 성립이 안 되기 때문에 뺐다고 했다. 실수로 누락된 게 아니고 일부러 삭제했다는 얘기다. 그러고는 짬뽕편을 촬영한 PD가 일찍 편집을 끝내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수정을 못했다고 했다. 

이 해명이 더 황당했다. 짬뽕편이 짜장면편보다 먼저 방송될 수도 있었다는 얘기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그 친구를 모방했거나 배운 셈이 될 판이었다. 무슨 방송이 이리 주먹구구식인지 모르겠다. 서로 다른 PD가 서로 다른 촬영을 한다지만, 팀장 PD도 있고, 책임 PD도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한 프로그램 안에서 너 따로 나 따로 식의 방송이 가능한가? 그들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결국 지금까지도 진짜 내막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른다.

앉은 채로 10kg가 빠지다... 바싹 말라갔다

재방송에서는 그 친구가 우리 가게에서 일하며 배웠다는 부분이 삽입됐다. 누락된 부분을 끼워 넣은 게 아니라, 그 부분만 다시 촬영을 해서 넣었음이 분명해 보였다. 재방송 이후에도 여론은 잦아들지 않았다. 이영돈 PD가 다음 본방송 때 공개 사과를 했고, 최소 개업 1년이 넘은 식당만 선정한다는 규정을 공지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가게를 접고 제주도를 떠돌고 있었고, 그 친구의 가게에는 손님이 물밀듯이 밀려들어 한두 시간 기다려야 할 만큼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상황이라 사람들은 더 분개했다. 문제는 방송이 아니라 그 친구의 부도덕한 창업이었던 것이다. 우리 역시 방송을 상대로 더 이상 따지고 싶지 않았다. 실수였든 의도였든 형식적으로라도 바로잡으려는 의지를 보여줬기 때문이기도 했고, 방송사를 상대로 싸울 자신도 없었다. 우리를 괴롭히던 것 역시 그 친구의 문제적 창업이었다. 

나는 그후 한 달 동안, 앉은 채로 10kg이 빠졌다. 남편은 생활비라도 아껴 보자고 막노동을 다녔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남편 도시락 싸주고, 딸아이 도시락 싸서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 가게자리 알아보는 것이 일상이던 무렵이었다. 당시 음식문화의 혁명을 일으킬 것처럼 온 나라를 뒤흔들던 그 대단한 방송 덕을 눈곱만큼도 못 보고 시골구석에 처박혀 있는 우리를 사람들은 너무나 측은해했다.

때때로 우리 자신도 지지리 궁상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한 달에 겨우 이틀 쉬면서 오만 가지 걱정을 붙들고 하루 10시간 이상 일을 하던 때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그러다 그 방송 이후 나는 온종일 혼자 인터넷을 들여다보며 배신감과 모멸감과 분노와 슬픔에 휩싸여 있었다. 잠도 하루 3시간 남짓, 밥도 한 끼밖에 먹지 못한 채 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덧글] 이 이야기는 다음 회로 이어진다. 혹시라도 오해가 생길까 봐 밝혀두는데, 4년이나 지난 분란을 다시 꺼내는 것은 그것이 그저 우리의 살아온 이야기 때문이지 다른 의도가 있어서는 아니다. 이야기의 디테일을 위해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더듬게 되는 것이지 지금에 와서 시시비비를 다시 따지거나 그를 비판하기 위함도 아니다. 다만 우리의 이야기에 그가 등장할 뿐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경제매거진 <이코노믹리뷰>에도 함께 실립니다. 이 이야기는 2012년에 일어난 일이며, 현재 '마라도에서온자장면집'은 평택이 아니라 제주도 화순에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노란자장면, #착한식당, #자연주의식당, #NOMSG, #N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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