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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서운산(경기 안성)에 올랐다. 산 초입에 들어서니, 계곡물에 발 담그는 사람들과 수영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텐트에 앉아서 수박을 까먹는 사람들과 고스톱을 치는 사람들도 보인다.

초입을 지나 등산로에 진입했다. 아무래도 날씨가 수상하다. 뭐라도 막 쏟아질 듯하다. 항상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아니라 빗님이 와주신다.

"우두두두둑…."

초입에서 만난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비상이 걸렸나보다. 마치 한국전쟁이 터져 발길을 동동 구르는 피난민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때, 물놀이를 하던 한 아이의 소리가 들린다.

서운산 정상에서 아내와 함께 찍었다. 비온 뒤에 산이라 구름위 산처럼 보인다. 서운산이란 이름에서 머무를 서, 구름 운 등이니 구름이 머무는 산답다. 아내와 나는 일주일에 1~2회는 등산을 한다.
▲ 서운산 정상 서운산 정상에서 아내와 함께 찍었다. 비온 뒤에 산이라 구름위 산처럼 보인다. 서운산이란 이름에서 머무를 서, 구름 운 등이니 구름이 머무는 산답다. 아내와 나는 일주일에 1~2회는 등산을 한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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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비와. 어떡해."

아내와 나는 멀찌감치 들려오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대화에 돌입했다. 비가 오면 자기가 알아서 하면 된다는 둥. 요즘 아이들은 문제해결 능력이 부족하다는 둥. 문제가 생기면 어쩔 줄을 모른다는 둥. 비가와도 수영하면 재밌는데, 그걸 모른다는 둥. 어른들 지시가 없으면, 숨 쉬는 것도 물어보고 할 거라는 둥. 이게 다 어른들의 잘못이라는 둥. 뭐 이런 이야기다.

잠시 후, 북한군의 습격이 아닌 소나기의 습격에 적응했는지, 피신했는지 소리가 잦아든다.

나는 갑작스러운 비지만, 알고 있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걷는다. 반면 아내는 비를 좀 피하자고 한다. 아내 말을 들으면 자다가 떡이 생긴다했으니 들을 수밖에.

"여보! 이 비 시원하지 않아. 어렸을 때 기억도 나고. 하하하."

비를 좀 더 맞자는 철없는(?) 남편의 요구에, 아내는 "당신은 비가 좋아서 좋겠다"는 엄마 투의 눈빛을 보내온다.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아내와 내가 서 있으니, 두 사람이 그 아래에 모여든다. 중년 남성 두 사람이다.

"야, 이거 우짜지. 우비를 입어야 하나"

두 사람은 배낭에서 우비를 꺼내 입는다. 한남성은 노란 우비, 한남성은 파란 우비다. 배낭을 맨 채로 우비를 입으니 쉽지가 않다. 낑낑대며 힘들게 우비를 입는 순간, 급기야 파란 우비를 입던 남성이 사고를 친다. 우비의 겨드랑이를 찢어 잡수신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며 두 사람은 우비를 챙겨 입는다.

"이렇게 애써서 입었는데, 설마 조금 가다다 비가 그치는 건 아니것지?"

이런 광경을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아내와 나는 우리 둘만의 눈빛을 보내며 웃었다. 차마 소리 내어 웃지는 못하고, 소리 죽여 웃었다.

그들이 완전무장을 하고, 안식처를 떠났다. 아내와 나는 그분들은 보내면서, 부디 소원대로 되시라며 또 웃었다. 그 소원은 '가다가 중간에 비가 그치는 것'일까. 아니면 '계속 비가 오는 것'일까. 하하하하.

아내와 나는 비가 조금 잦아지자, 다시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조금을 가니, 한 가족이 내려온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 한 명. 남편은 비를 그대로 맞고, 자녀와 아내는 비를 맞지 않으려고 점퍼로 덮고 내려온다. 그들이 우리 앞을 스쳐지나간다. 이때, 그 집 남편의 말이 우리 등 뒤에서 들린다.

"여보. 이 비 참 시원하다. 시원해."

이 말을 듣는 순간, 웃음폭탄이 터진 건 나와 아내다. 그냥 우리는 서로를 보며 한참을 웃었다. "우리 집 남자나 남의 집 남자나 철없는 건 똑같다"는 말을 서로 공유하면서 말이다.

뒤를 잠시 돌아다보니, 그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들의 길을 간다. 자신들의 말, 특히 남편의 말 한마디가 우리를 얼마나 웃게 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잘가는 그들의 등을 보면서, 아내와 나는 또 웃었다. 올라가다가 보니 비가 좀 잦아든다. 아내가 말한다.

"여보. 그 아저씨들은 지금쯤 우비를 입었을까. 벗었을까. 호호호호"

아내와 나는 또 웃음보가 터졌다. "그 참 우리를 걱정시키는 양반들일세"라는 나의 말에 공감웃음이 이어진다. 아내는 "그러게 말이다"며 웃음바다에 빠져든다. 웃음이 웃음을 부르고, 웃음이 웃음을 낳으니, 비가 오는 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산의 소리가 된다.

맑은 날이면 서운산 정상에서 안성시내가 다 보인다. 하지만, 오늘은 구름도시처럼 아련하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날씨마다 다르니, 하늘따라 세상을 보는 시선일 달라지는 구나. 하하하하
▲ 산 아래 맑은 날이면 서운산 정상에서 안성시내가 다 보인다. 하지만, 오늘은 구름도시처럼 아련하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날씨마다 다르니, 하늘따라 세상을 보는 시선일 달라지는 구나. 하하하하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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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가 보니 또 하나 신기한 걸 발견한다. 평소 산행을 하면, 마주치는 사람끼리 인사를 잘 하지 않는다. 하는 사람만 하지, 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이 날은 달랐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아하. 사람들이 이 소나기에 무사한 동료들을 보니 반가웠던 모양이다. 아무 사고 없이 산행한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아는 듯했다. 비를 뚫고 살아 돌아온 동료를 맞이하는 느낌이랄까. 

아내와 나는 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또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소나기는 웃음소나기인가보다. 적어도 아내와 나에겐 말이다. 아내와 나는 '이것이 현대판 <소나기>(황순원의 소설) 에피소드라며 또 웃었다.


태그:#서운산, #등산, #소나기, #부부,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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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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