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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아(메갈)와 미러링, 최근 온라인을 달구고 있는 키워드다.

지금 나는 내가 설 공정한 포지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지금의 논쟁이 김자연의 만원짜리 티셔츠 한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허나 내가 생각하는 시작은 김자연이 아니다. 사실은 '강남역 10번 출구'에서부터 여기까지 왔다고 보아야 한다. 어디까지나 시작점은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일어난 한 여성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살인자의 선택규칙(Selection Rule)은 동서고금 다르지 않다. 대상은 자신보다 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특정의 누군가를 죽이기로 한 사람은 결코 마동석을 목표물로 삼지 않는다. 여성의 대상화는 가장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여성혐오의 예다. 여성이라는 존재를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대상화함으로써 상대적 우월함을 얻는다. 강남역 여성을 살해한 살인자는 이미 대상화된 여성상을 지니고 있었고 그것을 선택에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안타까운 죽음에 많은 여성들이 마음으로 슬퍼하고 공감했다. 강남역 10번 출구는 추모의 장소가 되었고, 살면서 끊임없이 일상적 대상화를 경험해온 여성들은 스스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꽃과 같은 수많은 포스트잇이 강남역을 채웠다. 여성들은 발언대를 만들어 일상에서 느꼈던 불편함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듣고 느끼고 공감하기 시작했다.

넥슨 성우 교체 사태를 촉발시킨 메갈리아4의 티셔츠.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넥슨 성우 교체 사태를 촉발시킨 메갈리아4의 티셔츠.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 메갈리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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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즈음부터 남성들의 불편함이 시작되었다. 여성의 죽음으로부터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문제제기가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넥슨 김자연 성우의 교체에서부터 현재까지 일어나는 상황과 같다. 김자연의 티셔츠는 분명 여성을 대상화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음에도, 강남역에서 이유없이 여성을 살해한 범인의 선택규칙에 여성의 대상화가 내재되어 있었음에도, 남성들은 여성의 대상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메갈과의 관련성을 입증하고 메갈을 욕하고 메갈의 문제를 찾아 공유하는데에 온 에너지를 쏟는다.

메갈을 공격하는 일이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예의를 넘어 내 페이스북에 남자 고추 사진을 올려준 후배의 제보를 보았다. 일부러 박가분의 글을 퍼다준 동아리 선배의 글도 읽었다. 미러링의 과격한 행동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데에 당연히 동의한다. 그 자료 앞에서 그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일은 아주 쉬운 일이다. 그것을 판단하는 데엔 딱히 많은 논리도 공부도 필요하지 않다. 무릎반사로 사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배운 남성이건 못배운 남성이건 여성혐오의 문제엔 무릎조차 쓰지 않는다. 이것은 공정하지 않다.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 때부터 가장 많은 에너지와 팩트 체크 및 반박에 조직적으로 힘써온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일베다. 그런데 남성들은 일베에 대한 문제제기를 잠시 멈췄다. 나름 일베와 치열하게 싸워왔다던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조차 메갈 부수기에 열중한다. 남성들은 하나의 언어, 하나의 논리로 뭉쳤다. 거대하고 기적적인 남성연대다. '여성혐오 문제를 말하지 말고 모든 힘을 메갈에 집중하자' 라는 일관된 움직임이다. 이처럼 거대한 연대가 우연이건 아니건 이 흐름은 공정하지 않다.

나는 이 흐름에 편승하지 않을 자유가 있고 바로 지금 이 순간 여성혐오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설 공정한 포지션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남성이 나서서 여성혐오 문제에 에너지를 써주길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의 상황은 여성이 여성혐오 이야기를 하다간 메갈리안으로 의심받기 딱 좋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이제 막 여성혐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준비가 되었는데, 여성혐오 문제의 가해자인 남성사회로부터 메갈인지 아닌지 검열을 받아야 한다. 더구나 일상적 대상화는 현재진행형이다. 불편함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여차하면 메갈로 낙인찍힌다. 이 얼마나 부당한가.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일어난 한 여성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제기는 7월 말 현재 어디에 있는가. 이 두달간 남성들은 이 문제에 대해 무엇을 했는가. 여성혐오의 문제는 남성들의 자기성찰의 영역임에도 우리의 문제를 직시하긴커녕 여성들의 발언대를 남성의 고함으로 가득 채웠다.

그렇기에 남성들의 메갈 때려잡기는 비겁하다. 정당한 여성의 문제제기가 묻힐 정도로 거대하고 시끄럽고 떠들썩하다. 현재 남성들의 온 힘은 "너희들 불편한 건 잘 모르겠고 난 메갈을 때려잡아야겠어"에 집중되어 있다. 나는 이렇게 비겁하고 거대한 포지션을 본 적이 없다. 여성들이 느끼는 나의 문제는 외면하고 여성의 일부를 때려잡는 그 포지션은 내가 생각하는 공정한 포지션이 아니다. 따라서 난 여기에 서겠다.


태그:#메갈, #여성혐오, #강남역, #미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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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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