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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당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영화동 사진전’
 이당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영화동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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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원도심권의 시간과 공간을 조망하는 사진전(7월 9일~8월 31일)이 열리고 있다. 전시 장소는 군산시 영화동 이당미술관(옛 영화목욕탕)과 인근 거리 일대. 감독은 군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신석호 작가가 맡았다. 주제는 한국 근대사에서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운 역사를 지닌 동네 이름에서 모티브를 얻어 <영화동 사진전>으로 정했다 한다.

영화동(永和洞)은 군산 개항(1899) 전까지 옥구군 북면(구영리, 내영리, 강변리 일부)에 속한 아늑한 어촌이었다. 1910년 신설된 군산부(群山府)에 편입된다. 광복 후(1949) 군산시 영화동으로 개칭된다. 1973년 중앙로 1가동 담당 법정동이 된다. 이후 1998년부터 중미동 관할을 받다가 2008년 2월 월명동 담당 법정동으로 개편되어 오늘에 이른다.

군산 개항 이후, 영화동은 일제에 의해 조성된 격자형 도로망(본정통, 전주통, 대화정, 욱정, 명치정과 이를 가르는 1조통~9조통)의 중심지가 된다. 1920년대까지 군산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였던 것. 채만식은 소설 <탁류>에서 군산 공원 아랫동네(금동), 월명산 아래 주택단지(월명동) 등과 함께 문화도시 모습을 갖춘 지역으로 묘사한다. 1924년 기록에 따르면 당시 땅값도 본정통(해망로)과 함께 군산에서 가장 비싼 지역이었다.

해방 후 미군 거리로 변모·· 고은 시인, 이매방 명인과도 인연 깊어

신석호 감독 작 ‘영화동 거리(street)’
 신석호 감독 작 ‘영화동 거리(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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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화동은 일본인 상가 밀집지역으로 탄압과 수탈의 1번지 역할을 하였다. 하오리(羽織) 차림의 일본인과 게다짝 소리가 요란했던 거리는 광복(1945) 후 미군과 양공주가 활보하는 거리로 변모한다. 미군 전용 바(서양식 술집) 4~5곳과 게임오락실, 나이트클럽 등을 갖춘 관광호텔이 있었다. 외항선이 드나드는 내항과 인접한 지역이어서 양담배 커피 등 외국 문물이 들어오는 창구 기능도 하였다.

1991년 11월 12일 치 <경향신문>은 군산시 영화동 춘구상회(잡화점)에서 100달러짜리 위조지폐 18장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한다. 잡화상 주인 정 여인(48)에 따르면 20대 남자가 가게에 들어와 청량음료를 마시고 한화로 바꿔달라고 건넨 미화 100달러짜리 18장이 은행에 조회한 결과 정교하게 전자복사된 위조지폐였다는 것. 해방 이후 영화동에는 외제품을 취급하는 가게가 수두룩했다.

대표적인 가게가 50~70년대 호황을 누리던 삼중상회(잡화점). 그곳에서는 양담배를 비롯해 미제통조림, 미제커피, 미제비누, 미제휴지 등을 숨겨놓고 팔았다. 달러도 사고팔았다. 미군과 양공주들이 자주 들락거렸고, 가게에 들어가면 국산품만 보이는데도 양키 냄새가 가득했다. 미군 관련 사건·사고도 잦았다. 가끔 경찰에서 기습 단속을 펼쳐 시내를 온통 떠들썩하게 하기도 하였다.

군산중학교를 중퇴한 고은 시인은 극장 변사, 엿장수 등을 하다가 작파하고 군산 미군 항만사령부 운수과 검수원으로 들어간다. 그의 업무는 기차 화물칸을 확인하고 번호표를 써넣는 일이었다. 그는 영화동에 있는 단독주택 2층에서 하숙하면서 출퇴근하였다. 고은은 영화동에 살면서 자살과 밀항을 시도했다가 운명적으로 실패한다. 그리고 그해 북중학교 미술·영어 담당 교사로 특채된다.

영화동은 무형문화재 이매방(1927~2015) 명인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전남 목포 출신으로 1950년대 초 영화동 미군댄스홀을 빌려 무용연구소를 개설한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셋. 그는 승무, 살풀이춤, 검무, 한량무, 태평무 등을 가르쳤다. 이매방의 인생 전환은 영화동에서 이뤄진다. 그의 춤을 눈여겨봤던 신정균(신익희 선생 딸)씨가 서울로 불러 무용학원을 차리도록 주선해준 것. 이매방 명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군산 생활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하였다. 

허름한 창고와 담벼락도 전시 공간으로 활용

옛날 쌀 창고 벽에 내걸린 작품들
 옛날 쌀 창고 벽에 내걸린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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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동은 월명동과 더불어 군산 근대문화역사 지구의 주요 축으로 주목받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은 도시 확장 탓으로 변두리로 밀려난 느낌을 준다. 이당미술관은 지난해 5월 버려진 목욕탕을 개보수해서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신석호 작가는 "영화동의 특수성과 그 이후 삶의 보편성에 주목해 '동네 이름'을 앞세운 사진전을 기획했다."라고 전한다.

신 감독은 군산 아트레지던시 디렉터(2010~2011)를 거치는 등 지역 기반 예술프로젝트를 다수 기획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번 전시는 지역적 삶의 특수성에 기반을 긍정적 요소를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여러 도시에서 경쟁적으로 진행되는 지역연구나 도시 재생에서 예술가의 시선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기획 취지를 밝힌다.

"사진-예술작업은 기록이자 해석의 작업이죠. 공간은 주체와 타자가 조우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역사와 현실이 부딪치거나 어그러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매체의 특성과 공간의 조건으로부터 시작됐어요. 작가들 작업은 거리와 공간의 퇴적된 층위에 주목하거나 거리와 함께 한 시대를 살아온 인물들에 관심을 가진 것,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변화의 와중에 있는 공간에 대한 사회적 탐색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번 작업에 참여한 작가는 신 감독 포함하며 10명이다. 도시의 지역적 특수성에 기반을 둔 작업을 펼쳐온 사진작가 5명(김영경, 양지영, 전영석, 김성윤, 최창재 등)과 영상미디어 실험작가 정상용, 그리고 경희사이버대 민경배 교수, 서울대 대학원 박애란, 군산지역 영상창작단 큐오브이 등이 초청작가로 참여했다. 출품작은 모두 70여 점. 허름한 창고와 담벼락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어 거리 자체가 이채롭게 느껴진다.

아래는 신석호 감독이 메일로 보내온 전시회 참여 작가들의 작품 설명을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해서 옮겨 적었다.

김성윤 작 ‘군산의 시간과 공간’
 김성윤 작 ‘군산의 시간과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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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의 '군산의 시간과 공간(space and time in gunsan)'은 색채 분리(color-separation)라는 인화를 통해 시간의 축적 혹은 소멸 속에서 형성된 공간의 의미를 해석하고자 하였다.

박애란이 관심 가진 '군산-영화동 사람들(modern people)'은 이 거리와 세월을 같이한 공간과 올드맨들을 포착한 것으로 흑백으로 인화한 사진의 질감은 마치 소설이나 오래된 영화 속 한 장면의 스틸-컷을 떠올리는 이미지로 그 앞뒤의 많은 얘기를 상상하게 한다.

정상용 작 ‘영화시장 사람들-3’
 정상용 작 ‘영화시장 사람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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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지점에서 정상용의 '영화동 시간-교차(time-across)'는 영화동 시장(市場) 풍경을 시간을 두고 촬영한 영상에서 추출한 여러 이미지를 중첩함으로써 시간의 축적 속에 드러나는 시장과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양지영 작 ‘영화동 파사드-1’
 양지영 작 ‘영화동 파사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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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영은 영화동 거리와 공간작업의 측면에서 건물의 외관을 기록한 '영화동 파사드'와 거리 풍경을 담은 '풍경의 숨'이라는 두 버전으로 작업을 진행하였다.

'영화동 파사드'는 외래적 근대도시로 형성된 영화동이 여러 역사적 과정 안에서 변모되어 드러나는 건물-거리의 생활기록부 같은 작업이다. 풍경의 숨은 거리 경관과 풍경에 대한 감각적 작업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업은 한편으로 도시에 대한 기록적 가치를 가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비물질적 시선으로 경관들을 사유한다. 도시와 거리 이미지를 감각적 시선으로 작업했다는 점에서 김영경의 작업도 궤를 같이한다.

김영경은 군산이라는 도시의 역사 사회적 맥락에서 현상하는 무거운 주제보다는 자연적 감각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영화동의 시각적 대상들과 조우한다. 김영경의 '영화동 혹은 파라다이스' 시리즈는 가벼움, 경쾌함, 익숙함 등이 혼재한 다채로운 감정의 층위에서 더욱 발랄하고 경쾌한 이미지들로 영화동-군산을 읽어간다.

반면 최창재는 군산 입구에서 만나는 현대식 고층아파트 단지와 헐하고 낡은 구도심의 창고 내부를 촬영한 사진들로 시선을 대비시킨다. 이러한 대비는 도시의 생성과 쇠퇴의 유기적 과정에서 한 때 번성했을 대형 창고의 허름한 내부는 현재 치솟아 올라간 고층아파트의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준다.

민경배 작 ‘그저 지나간다 3’
 민경배 작 ‘그저 지나간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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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사회학자이자 사진가로서 작업하고 있는 민경배의 사진은 '그저 지나간다' 시리즈로 현상한다. 그저 지나간다, 시리즈 사진은 정비된 경관과 삶의 실재가 어긋나거나 여행자의 덤덤한 발걸음과 낡은 거리가 미끄러지는 이미지들은 사회학적 관점으로 포착한 것들로 근대문화 도시 군산과 대비되는 근대성 혹은 근대적 삶 같은 것들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전영석은 군산 도시 이해를 식민지 근대역사와는 좀 다른 결에서 작업하였다. 그의 작업은 바다를 끼고 살아온 일상의 생산과 산업의 현장을 기록한 '군산 광경(gunsan scope)'이라는 제목으로 현상한다. 특히 금암동 째보선창에 위치한 선박 수리공장(철공소)과 기술자들을 기록하고 포착한 사진들은 군산의 식민지 근대뿐만이 아니라 산업 근대라는 도시의 다른 페이지를 채운다.

전시실 작품을 설명하는 신석호 작가
 전시실 작품을 설명하는 신석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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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이자 작가로 참여한 신석호의 '영화동 유령-밤(ghost-night)'은 영화동 골목의 밤 풍경을 담았다. 영화동 골목의 밤 풍경은 대낮의 상기된 모습과는 다른 적막하거나 소소한 모습으로 이 거리의 다른 속살 같은 것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회 작가들은 전반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에 있는 군산-영화동 모습 속에서 변화하는 것과 남겨진 것들이 혼재된 상황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 찾아야 할 것은 아마도 낡은 근대의 이미지가 고급스러운 근대 이미지로 탈바꿈하는 것이 아니라, 부침의 역사적 과정에 끊임없이 비주체 비존재로 내몰려 왔던 트라우마를 걷어낼 삶의 실재들일 것이다.

짧은 시간에 목표를 내재화하거나 되새김질할 여지도 없이 진행하였다. 그래도 작가들 시선 속에서 몇몇 실마리는 찾았다고 본다. 바쁜 일정에도 참여해 준 작가들과 이 작업을 위해 도움을 준 영화동 주민들, 미술관 관계자들, 이진원 군산문화원장님께 감사드린다. 전시회는 8월 31일까지 진행된다. 많은 격려와 관람 바란다.

덧붙임: 미술관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 월·화요일은 휴관이다. 자세한 문의는 영화동 이당미술관(063-446-5903)으로 하면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와 매거진군산 8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영화동 사진전, #군산시, #이당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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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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