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tvN <굿와이프>의 포스터, 원작 미드 <굿와이프>의 포스터 이미지.

(왼쪽부터) tvN <굿와이프>의 포스터, 원작 미드 <굿와이프>의 포스터 이미지. ⓒ tvN, CBS


'과거 자신을 짝사랑했다던 직장 상사와 키스를 하고 난 후 귀가해 소원한 관계였던 남편과 섹스를 하는 여자 변호사.'

지난 23일 방송된 tvN <굿와이프>의 마지막 회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막장이 아닌) 파격적인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이건 미국 CBS의 원작 드라마에서 고스란히 가져 온 '똑같은' 장면이다. <굿와이프>는 잘 알려진 대로, 7시즌까지 방영된 동명의 미국 드라마의 한국판이다. 기본 설정은 이렇다.  

"승승장구하던 검사 남편 이태준(유지태 분)이 정치 스캔들과 부정부패로 구속되자 결혼 이후 일을 그만두었던 아내 김혜경(전도연 분)이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변호사로 복귀하면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법정 수사 드라마."

6화의 결정적 장면을 부연하면, 자신을 돕고 아끼는 로펌 대표 서중원(윤계상 분)과 사무실에서 애틋한 눈길을  주고받던 김혜경이 키스를 하고 난 뒤, 복잡한 심경을 뒤로 하고 귀가해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남편과 즉각적으로 격정적인 잠자리를 가진다, 정도 될 것이다. 방송 직후 이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6화의 마지막을 꽤나 길게 설명한 이유가 있다. 결코 선정적이라거나 파격적이라서가 아니다. 이 장면이야말로 원작 <굿와이프>가 지닌 매력과 장점을 효과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명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리메이크판인 '한드'는 겨우 6회가 되어서야 그 '미드'의 매력을 이해하고 따라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좀 더 깊게 들어가 보자.

수작 '미드' 리메이크가 걷는 험난한 여정

 미국에서 7시즌까지 끌고 가면서 훌륭한 퀄리티를 유지했던 원작. 리메이크 드라마가 잘 되기 위해서는 기본 설정에 충실해야 한다.

미국에서 7시즌까지 끌고 가면서 훌륭한 퀄리티를 유지했던 원작. 리메이크 드라마가 잘 되기 위해서는 기본 설정에 충실해야 한다. ⓒ tvN


업소 여성과 관계를 가진 것도 모자라 범죄 혐의로 구속된 잘 나가는 검사 남편을 대신해 십 수년 만에 생계형 변호사로 직업 전선에 뛰어든 전업 주부 김혜경. 이 강력한 설정이야말로 <굿와이프>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요체다.

이러한 바탕 위에 '미드' <굿와이프>는 7시즌을 통해 법정극과 수사극, 가족 드라마가 절묘하게 균형감을 이루며 긴장과 재미, 의미를 모두 잡은 수작 드라마로 남을 수 있었다. 이 안에서 찾아 볼 수 있는 핵심 키워드만 해도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고 다채롭고, 무엇보다 깊이가 있다. 조금 길어도 부디 따라 잡으시길.

자, 그러니까 원작의 알리샤('한드'의 김혜경)와 로펌 록하드 앤 가드너, 그의 가정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변호사와 법조인의 직업윤리, 법정과 법체계의 정면과 이면, 법정 공방과 사건 수사의 긴장감, 알리샤가 맡게 되는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미국의) 정치·사회·경제·문화·종교 등등의 이슈들, 정치와 법조의 긴밀한 밀착, 복잡다단할 수밖에 없는 부부관계와 가족 간의 관계, 불륜과 로맨스를 포함한 애정과 애증의 드라마 등등.

매회 개별 에피소드들과 별개로 알리샤와 그의 주변 인물들의 관계들이 발전·진화하면서 펼쳐지는 중심 서사들은 때로는 진중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다뤄진다. 그러면서도 세심하고 절묘한 이야기 구조와 편집, 전체의 리듬감이 때때로 감탄을 자아낼 만큼 유려하게 펼쳐진다. 판사부터 범인, 조·단역들까지 안배한 캐스팅과 연기 또한 완성도에 복무하는 주요 요소다.

미드 <굿와이프>의 찬양만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다만, 여느 드라마보다 제작진의 지적인 영민함이야말로 다채로운 소재와 코드를 한데 묶을 수 있었던 핵심이란 얘기다. 무턱대고 한국의 제작진들에게 원작을 뛰어 넘으란 요구를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분명히 있다. 바로 6화와 같이, 원작의 기본 설정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 말이다.

'K-감성'과 '전도연', 그만 매달려라

 드라마 <굿와이프>의 한 장면. '한국적' 변형을 최소화하는 것이 이 드라마가 생존할 길이다.

드라마 <굿와이프>의 한 장면. '한국적' 변형을 최소화하는 것이 이 드라마가 생존할 길이다. ⓒ tvN


김혜경은 이태준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정치·부패 스캔들도 모자라 업소 여성과의 잠자리 화면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기자회견의 옆자리에까지 서야 했다. 그리고는 생계를 위해 연수원 이후 15년 만에 변호사로 일을 하고 있다. 가정을 지키던 전업주부가 서중원의 도움과 자신만의 공감능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일에서 초보 변호사에서 유명세와 능력을 모두 갖춘 변호사로 거듭나게 된다.

이 김혜경이 맞부딪쳐야 하는 난제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변호사로 자리 잡기도 어려운데 남편은 계속 골치를 썩이고, 아이들도 키워야 하며, 동료이자 상사는 점점 남자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변호사이자, 아내면서, 엄마이자 며느리인 김혜경의 심리적 난처함을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납득시키느냐와 동시에 직업인으로서의 성장을 어떻게 그려내느냐, 이를 위해 개별 에피소드와 전체 전개, 캐릭터의 감정선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결국 <굿와이프>의 성공의 열쇠일 것이다.

하지만 리메이크작은 어쩔 수 없이 이 '납득'의 열쇠를 주구장창 '한국화'에서 찾았다. 당연하고 또 반드시 수반돼야 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 현지화를 이른바 'K-감성'에서만 매달려서는 답이 없다. 훨씬 더 감정 표현이 크고 극적이며 이성보단 감성에 호소하는 한국 드라마의 전형적인(그리고 끝내 버릴 수 없는) 특성들 말이다.

원작의 초반 설정은 미국에서 조차 '강력'하고 '자극'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걸 상쇄한 것은 설정에 비해 훨씬 더 냉정하고 지적인 만듦새였다. 전개와 캐릭터 묘사를 포함 '쿨'하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예컨대, 김혜경의 고민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6화의 마지막 부분이 대표적이다. '동료와 키스하고 막바로 남편과 잠자리를 갖는 기혼여성'이란 표현은 자극적일 수 있지만, 그런 행동을 하기까지 캐릭터가 지닌 고민과 행동의 결과물은 실로 복잡다단할 수밖에 없다. 아내이자 엄마이기에 더더욱.

그런 고민을 세련된 촬영과 편집 등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때, 다시 말해 원작의 그 '쿨'한 감성을 성공적으로 가져올 수 있을 때 <굿와이프>가 지닌 본연의 매력도 살아 날 수 있을 것이다. 명배우 전도연의 연기에 화제가 집중되는 것도 아직 이 리메이크작이 제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원작 1시즌의 전개보다 훨씬 더 빠르고 압축적인 전개를 보여주고 있는 <굿와이프>. 기본 설정과 에피소드가 빼어난 만큼, 한국적인 상황에 맞게 가져올 케이스와 에피소드들은 여전히 차고 넘친다. 그 만큼 앞으로 <굿와이프>만의 매력을 자랑할 만한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얘기다.

16부작인 만큼 남은 10화, 부디 그 정치적으로나 작품 내적으로 '쿨'한 정서를 잃지 말고 밀어 붙이시길. 그래야만 향후 미국 드라마의 리메이크가 대개의 일본 드라마의 리메이크가 그랬던 것 처럼 원작 정서의 잘못된 수용과 한국적 변형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굿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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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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