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리얼리티 프로그램 <인생게임 상속자>와 월간잉여 최서윤 편집장의 <수저게임>

SBS 리얼리티 프로그램 <인생게임 상속자>와 월간잉여 최서윤 편집장의 <수저게임> ⓒ SBS, 수저게임


지난 17일과 24일 2회에 걸쳐 방송된 SBS 파일럿 프로그램 <인생게임-상속자>가 논란에 휩싸였다. 이 프로그램이 독립 잡지 <월간 잉여> 최서윤 편집장이 만든 '수저게임'을 모티브로 기획됐음에도 원작 관련 내용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씨가 만든 '수저게임'은 보드게임이다. 현실 세계에서 금수저-흙수저 되는 일이 노력이 아닌 운이듯, '수저게임'에서도 카드를 뽑는 '우연 행위'로 금수저-흙수저가 결정된다. 금수저 플레이어는 부동산 세 채와 유동 칩 10개를, 흙수저 플레이어는 유동 칩 10개만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한다. 흙수저 플레이어는 금수저 플레이어에게 임대료를 내야 하고, 법안 발의나 투표, 랜덤 카드 등을 통해 게임 규칙을 바꿀 수 있다.

이 같은 '수저게임'의 룰은 <인생게임-상속자>의 '인생게임'과 기본 룰이 유사하다. 배경이 다른 9명의 청년이 숟가락을 뽑아 금수저(상속자)-집사-정규직-비정규직으로 계급을 나눈다. 금수저를 뽑은 상속자는 집사를 선택하고, 물가와 집세를 결정한다. 선거를 통해 새로운 상속자를 선출하기도 하고, 각종 미션을 통해 코인을 벌 기회도 얻는다.

<인생게임-상속자> 모티브된 '수저게임'

 <인생게임-상속자>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SBS <인생게임-상속자>는 현실의 계급문제를 적나라하게 반영한 포맷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 SBS


최씨는 지난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6월 <상속자>를 기획·제작한 PD를 만났다, PD는 '수저게임'의 룰과 리뷰를 읽으며 프로그램 기획에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최씨는 당시 PD가 '방송의 세부 규칙은 수저게임과 다를 것이고, 이런 경우 로열티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방송국의 관행'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전하며, 로열티 대신 프로그램 말미에 수저게임이 모티브가 됐음을 알리고, '도움을 준 최서윤씨에게 감사를 표합니다'는 문구를 넣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적었다. 하지만 방송에는 이 같은 문구가 없었으며, "최소한만 요구했는데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무성의하게 느껴졌다, 인격이 모독당한 느낌"이라고 글 게재 이유를 밝혔다.

<인생게임-상속자> 최태환 CP는 "당초 1회로 기획됐던 프로그램이 2회로 나뉘면서 1회에는 최씨의 이름을 미처 삽입하지 못했다, 사과 후 2회 엔딩 스크롤에 넣었지만, 본방송과 다시보기의 엔딩 편집이 달라 최씨가 다시보기로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최씨도 <오마이스타>와의 전화통화에서 "IPTV, 인터넷 다시보기, 다운로드 등을 통해 확인되지 않아 아예 처리되지 않은 줄 알았지만, 본방송에는 표기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이후 김규형 PD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좋은 의도로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셨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해하고 글을 삭제했다"고 말했다.

결국 최씨와 SBS의 갈등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둘 사이에 온도차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최씨의 요구는 <상속자>를 본 이들이라면 이 프로그램이 '수저게임'을 모티브로 했음을 알 수 있을 정도의 자막 처리였지만, 제작진이 말한 자막은 엔딩 스크롤을 통한 단순 '언급'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는 엔딩 자막을 꼼꼼하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이 같은 논란이 없었다면 시청자 대다수는 <인생게임-상속자>의 모티브가 '수저게임'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늘어나는 아이디어 차용 기획

 예능 프로그램의 모티브가 된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과 움쓰양의 '멍때리기 대회' 포스터.

예능 프로그램의 모티브가 된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과 움쓰양의 '멍때리기 대회' 포스터. ⓒ 무비꼴라주, 움쓰양


최근 개인의 아이디어가 방송 아이템으로 차용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설 특집으로 방송된 MBC <톡하는대로>는 온라인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서 화제가 된 닉네임 배드맨의 '아바타 게임'을 모티브로 제작됐고,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동명의 독립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의 콘셉트를 차용해 제작됐다.

논란을 빚은 프로그램도 있다. 지난해 예술가 그룹 전기호 프로젝트는 당시 KBS 2TV 추석특집 파일럿 예능으로 방송된 <전무후무 전현무쇼>의 코너 '전현무상무념쇼'가 자신들의 예술 퍼포먼스 '멍 때리기 대회'를 표절했다고 항의했다. 당시 '멍 때리기 대회'를 기획·개최한 '전기호 프로젝트' 멤버 웁쓰양(가명)은 "녹화에 앞서 <전현무쇼> 작가가 '멍 때리기 대회' 콘셉트를 방송에 사용하겠다고 문의해왔지만 거절 의사를 전달했다"면서 그럼에도 이를 방송에 내보낸 것은 "분명한 표절"이라고 밝혔다.

논란이 일자 <전무후무 전현무쇼> 이동훈 PD는 "'전현무상무념쇼'는 예능에서 많이 사용된 '웃음 참기'를 모티브로 한 코너로, '멍 때리기 대회'에서 사용한 심박 측정, 투표를 통한 탈락자 선정 등의 룰을 프로그램에 이용하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멍 때리기 대회'에서 사용된 장치들을 배제하고 방송을 제작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웁쓰양과 이동훈 PD의 '조건 차이'는 로열티, 즉 아이디어 사용료다.

제작 현장에 있는 PD들은 개인 창작자들의 아이디어를 차용한다 해도 금전 비용을 거의 지급하지 않는다. 관행이라는 점도 있지만, 개인 창작자의 아이디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해도 구성과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원작의 기여도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 금액 책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없다. 당사자간에 협의가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수저게임'의 경우도 최씨와 제작진은 '자막 언급'으로 협의를 마쳤다. 하지만 최씨는 금전적 보상 대신 자막을 요구한만큼 더 확실한 언급을 기대했고, 제작진은 '양해' 차원으로 인식해 엔딩 스크롤 정도로 받아들였다. 협의는 했으되 서로 이해가 달랐다.

"아이디어는 저작권 보호 대상 아냐"..."법률 아닌 윤리·도덕 문제"

 영화 <올드보이>와 원작 만화 <올드보이>의 유사성은 어린 시절 자신도 모르고 저지른 잘못으로 감금된 주인공이라는 점 정도다.

영화 <올드보이>와 원작 만화 <올드보이>의 유사성은 어린 시절 자신도 모르고 저지른 잘못으로 감금된 주인공이라는 점 정도다. ⓒ 대원씨아이(주), 쇼이스트


영화 <올드보이>는 동명의 원작 만화를 기반으로 했다. 하지만 실상 두 작품의 공통점은 이유도 모른 채 15년(원작 10년)을 갇혀 있던 주인공, 갇힌 원인이 유년시절 타인에게 준 상처 때문이라는 것 정도다. 실상 영화 <올드보이>를 명작으로 만든 많은 디테일들은 원작에는 없는, 박찬욱 감독의 창작이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원작의 판권을 구입했다. 소설 <핑거스미스>가 원작인 최근작 <아가씨>도 마찬가지다. 이 차이는 거장 감독의 판권과 저작권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책임감이라는 부분도 있지만, 만화나 소설과 달리 아이디어는 저작권법에 보호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저작권상담팀 김기홍 주임은 "아이디어는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어문, 음악, 연극, 미술, 건축, 사진, 영상, 도형, 컴퓨터 프로그램 등으로 게임의 룰이나 대회 등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 주임은 "아이디어의 권리를 인정받으려면 저작권이 아닌, 특허 등록 등을 통해 산업재산권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상 자신의 아이디어를 일일이 특허 등록해두지 않으면, 원작자로서 보호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MBC 교양국 책임 프로듀서를 지낸 권문혁 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이는 법률문제가 아닌, 공영적 성격을 가진 지상파 방송국의 윤리적, 도덕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방송을 통해 언급되면 홍보 효과가 크기 때문에 '광고비 안 받고 광고 해주는데...'라고 생각하는 현업 PD들도 많다"면서 "광고가 목적인 PPL과 타인의 아이디어 사용은 엄연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 기획은 작은 아이디어에서부터 시작된다"면서 "아이디어는 방송 기획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이디어 차용은 방송국 필요에 의한 것이므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야 하고, 최소한 양해를 구한 뒤 고지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이같은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각 방송국이 자체 매뉴얼을 만드는 등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속자 인생게임 수저게임 표절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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