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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민주화 과정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늘 언급되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 있다.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그 중에서도 나는 5·18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다. 광주시민들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신군부에 맞선 민주화 운동이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공수부대와 전차까지 투입한 신군부에 의해 무참히 진압 당했으나, 5·18의 의지는 6월 민주항쟁의 초석으로 자리를 잡았고 마침내 이 나라가 민주화를 이룩하는 승리를 낳았다.

초등학생이었던 2000년 초반, 나는 유난히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알게 된 5·18 민주화 운동은 내게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겨줬다.

그런데 이러한 민주화운동을 무장폭동 및 북한군 특수부대가 일으킨 것이라고 왜곡을 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지만원을 비롯한 극우인사들을 시작으로, 일간베스트 등의 극우 사이트에서 본격적으로 허위사실 및 왜곡을 유포한 것이다.

그렇기에 지난 7월 22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5·18왜곡 행위 처벌을 위한 법률 개정 국민 토론회'가 열렸다. 지만원을 비롯한 극우인사들과 일간베스트(일베)와 같은 극우 사이트의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하와 왜곡이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나도 우연히 국회회관에서 홍보포스터를 보고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다. 참석하면서 굉장히 기대했다. 지만원과 일베의 도를 넘는 역사왜곡, 희생자들과 유공자, 유족들 모욕에 대한 비판, 정의구현을 실현시킬 어떤 강력한 처벌이 나올지, 민주화운동 당시에 계셨던 분들의 생생한 증언도 기대했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독일 출신 토마스 잔트퀼러 교수의 독일의 '혐오발언에 대한 사법적 처벌사례'에 상당히 흥미를 느꼈고,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재승 교수가 언급한 미국과 유럽각국의 '나치청산사례'에도 흥미를 느꼈다.

그렇지만 예상했던 것과 달리 토론회는 나의 기대감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토론회가 끝난 후에 나는 상당히 실망했다. 오히려 굉장히 기분이 매우 불쾌해졌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초청된 토론자 중에서 어느 분이 말씀하신 어떤 발언 때문이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이 토론회가 야3당이 아닌, 새누리당 내지 극우단체가 주최하는 것으로 착각할 뻔 했다. 그만큼 그 발언은 굉장히 불쾌했다. 왜 그런지 지금부터 밝히고자 한다.

현행 법률 체계에서 처벌이 가능? 지만원은 무죄!

초청된 여러 교수님들의 발표가 끝나고 휴식시간을 거친 뒤, 각계의 의견과 발언을 알아보기 위한 토론이 시작됐다. 토론이라고는 하지만, 시간관계상 방청객들이 직접 토론에 참여할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방청객들은 미리 초청된 인사들이 토론하는 것을 지켜봤다.

대체로 '표현의 자유'와 '왜곡'에 대한 것들로 나뉘었다. 그러던 중, 어느 토론자는 "형사처벌도 좀 과합니다"라고 발언했다. 그러더니 "현행 법률 체계에서도 처벌이 가능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나는 여기서 굉장히 어이가 없었다. 현행 법률 체계에서도 처벌이 가능하다면, 지만원과 일베의 폄하와 왜곡을 비롯한 만행이 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올까?

그 토론자 말씀대로라면 왜곡 행위에 대해서 이미 해결이 됐었어야 한다. 그리고 처벌을 받은 자가 부지기수여야 한다. 그러나 왜곡 행위는 과거인 1980년부터 현재인 2016년까지 계속 이어져 내려오며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5·18을 앞장서서 왜곡한 지만원은 '무죄'를 받았다. 형사처벌을 받은 '운이 좋지 못한' 일베유저들도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해당 토론자는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5·18에 대한 왜곡을 넘어서는 활동을 통해 자정작용을 하면 됩니다"라고 정리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했음에도, 지만원과 일베는 더 악랄하고 교묘하게 왜곡행위를 하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얼마나 더, 5·18유족들이 그러한 만행을 꾹 참고 살아야 한다는 걸까. 이미 상처를 입을 때로 입은 유족들에게 그러한 발언은 참으로 잔인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 발언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저는 이런 법안이 없었으면 좋겠어요.""옳소!"

토론자들의 토론이 거의 끝나고, 끝으로 각자의 발언을 정리할 시간이 왔다. 각자 자신의 생각을 간결하게 정리하여 말했고, 앞서 언급한 토론자의 차례가 왔다. 그 토론자는 이렇게 말했다.

"5·18왜곡 행위에 대한 처벌 법안은 약자를 억압할 수가 있습니다. 극우인사와 일베는 자신들을 약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5·18왜곡 행위에 대한 처벌 법안이 약자에 대한 억압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어떻게 '정상적인 약자'가 5·18에 대한 왜곡행위를 한다고 생각한 걸까? 그리고 극우인사들과 일베가 스스로를 약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또 왜 언급을 하는 걸까?

오히려 약자는 지금까지 핍박받고 희생당한 가족들을 모욕당한 유공자들과 그 유족들이다. 5·18왜곡 행위에 대한 처벌 법안은 결코 약자들을 억압하기 위한 법안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를 입을 대로 입은 유족들을, '진짜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법안이다.

그런데 그 토론자는 '진짜 약자'인 유공자들과 유족들을 눈앞에 두고, '가짜 약자'들을 억압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한 것이다. 그렇게 말한 뒤, 마지막으로 그 토론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이런 법안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옳소!"

어디선가 호응하는 환호성이 토론회장에서 크게 들렸다. 5·18 유공자들과 그 유족들은 일제히 그 우렁찬 환호성이 나는 방향을 쳐다봤다. 깜짝 놀란 나 역시도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과연 누가 법안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발언에 환호성을 내질렀을까. 바로 좀 전에 토론회장에서 지만원의 왜곡 행위를 옹호한, 극우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남성이었다.

결국 그 토론자의 주장은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극우단체가 환호성을 지를 만큼 매우 잘못된 주장인 것이 '바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5·18 유공자들과 유족들을 배려하지 않은 토론회

극우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환호성을 내지르자, 지금까지 조용히 계시던 유공자들과 유족 분들은 그 남성에게 항의를 했다. 어느 할머니께서는 사진을 내보이면서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때릴 수가 있어!"라고 울먹이시기까지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더는 화를 참지 못하고 항의를 했음에도 그 남성은 매우 뻔뻔하게 화까지 냈다. 이런 상황에서 토론회 측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어이없게도 그 남성 뿐만이 아니라, 그에게 항의하는 유족들에게도 조용히 하라고 소리까지 내질렀다. 문제를 일으킨 남성의 망언에 제대로 된 반박도 하지 않고, "저런 사람을 상대하면 똑같은 사람이 됩니다"라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그런 마인드가 극우단체와 일베가 지금까지 날뛰게 한 것임을 이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해당 남성이 퇴장한 뒤에도 유공자와 유족들의 분노는 바로 가라앉지 못했다. 가족을 잃은 듯한 할머니는 사진을 내보이면서 "어떻게 사람을 이 지경으로 때릴 수가 있어!"라며 울먹이셨고, 계엄군에게 피해를 당한 듯한 어느 할아버지는 일어나서 소매를 걷고 상처를 내보이면서 절규하셨다. 이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표출했다.

그런데, 과연 5·18유공자들과 유족들이 단순히 망언을 한 그 남성에 의해서만 이렇게 분노했을까? 그 자리에 있던 나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옳은 일을 했음에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거나, 스스로 불편한 몸이 된 것도 모자라서 오랜 세월동안 유공자들과 유족들은 '빨갱이'라는 핍박을 받아왔다.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극우단체와 일베에 의해서 5·18희생자들은 '홍어택배', '남한에 침투한 북괴군'이라는 왜곡과 조롱을 당했다. 1980년부터 2016년까지, 36년간 유공자들과 유족들이 겪었을 상처의 깊이와 무게는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무거울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토론회에서는 그런 상처를 어루만지고 이해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극우단체 남성이 환호성을 지를만한 주장까지 했다. 참다못한 그들이 극우단체 남성에게 항의를 하자, 5·18유공자와 유족들에게까지 조용히 하라고 한 토론회의 행태. 과연 누가 이 부당한 처사에 분노를 표출하지 않을까?

거기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방청객들의 적극적인 토론개입도 막았다. 그래서는 안 된다. 장본인들을 앞에 두고 자신들끼리만 '옳다. 그르다.' 왈가불가하는 것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배재한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졸속협상과 뭐가 다를까? 그래서 나는 토론회의 주최 측인 5·18역사왜곡대책위원회와 야3당에게 다음과 같이 권하고 싶다.

"토론회를 정기적으로 여러 번 주최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시간을 넉넉히 잡아서 5·18유공자들과 유족들과 방청객들이 토론에 참여하도록 해주십시오. 토론회는 유공자들과 유족들의 상처를 보살펴야지, 각계인사들의 '지식자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유공자들과 유족들에게 논리를 떠나서, '인간적인 예의'를 갖추어 주십시오."


태그:#고충열, #5.18광주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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