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재가 한화 마운드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한화는 27일 오후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 리그 SK와의 홈경기에서 선발 장민재가 5.2이닝 4피안타 3탈삼진 2볼넷 무실점의 역투를 펼친 데 힘입어 8-0 영봉승을 거뒀다.

한화로서는 귀중한 1승이었다. 윤규진, 송은범 등 토종 선발자원들이 연이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데다 전날에는 외국인 투수 서캠프가 6이닝 5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며 선발진에 대한 부담이 커진 상황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고심 끝에 SK전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던 장민재 카드를 꺼내들었다.

장민재는 올 시즌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전천후 계투로 활약하고 있다. 이날 경기전까지 총 35경기에 출전해 3승 3패 1홀드 평균자책점 4.38을 기록 중이었던 장민재는 자신의 올시즌 7번째 선발등판 경기에서 눈부신 역투를 펼치며 시즌 4승을 달성했다. 자책점도 4.08까지 낮췄다.

특이하게도 올 시즌 장민재가 거둔 4승 중 무려 3승(1승은 넥센)이 SK에게 따낸 것이다. 장민재는 SK전에서만 4경기에 등판하여 23이닝간 단 3자책점만을 내주며 탈삼진 14개를  뽑아내는 등 천적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 정도면 SK 전용 스페셜리스트라고 할만하다.

'SK 킬러' 장민재, 선발 등판 기록이 더 좋다

 12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6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 경기. 1회말 교체 투입된 한화 장민재가 역투하고 있다. 2016.7.12

지난 12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6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 경기. 1회말 교체 투입된 한화 장민재가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재 한화 마운드에서 장민재의 1순위 보직은 롱릴리프다. 선발이 일찍 무너졌을 때 대신 투입되어 긴 이닝을 소화할 수도 있고 체력과 회복력도 현재 한화 투수진 가운데 가장 뛰어나 다용도로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민재의 선발 고정 가능성은 이전에도 거론되었지만 김성근 감독이 주저한 것은 팀내에 그를 대체할 스윙맨 자원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장민재는 불펜보다 선발로 뛰었을 때 기록이 더 좋았다. 장민재는 불펜에서 출격한 29경기에서 1승 1패 1홀드 평균자책점 4.41(49이닝 24자책점)을 기록했지만, 선발로 뛴 7경기에서는 3승 2패 평균자책점 3.58(32.2이닝 13자책점)으로 훨씬 준수하다.

선발로 나선 시즌 초반 경기(5월12일 NC전 4이닝 2실점, 5월 25일 넥센전 2.1이닝 2실점)에서는 다소 주춤했지만 이후로는 선발로 나올 때마다 평균 이상의 활약은 해줬다. 특히 선발투수로서 어느 정도 휴식일이 보장될 때마다 투구 내용도 더 좋아졌다. SK전 이외에도 몇 경기 더 검증은 필요하겠지만 이쯤되면 '불펜 마당쇠'로만 돌리기에는 조금 아까운 기록이다.

지난해 4경기에서 4이닝 등판에 그쳤던 장민재는 올해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81.2이닝을 소화하고 있다. 2011년 기록한 자신의 한 시즌 최다인 87.2이닝을 가뿐히 경신할 것으로 보이며 100이닝 돌파도 시간 문제다. 20대 중반의 젊은 투수라고는 하지만 갑작스런 이닝 폭증에 불규칙한 등판에 따른 후유증이 조금씩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올 시즌만 볼 것이 아니라 선수 본인이나 한화 마운드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장민재의 선발육성은 충분히 검토해볼 만한 카드다.

재미있는 점은 한화 마운드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오히려 새로운 선발투수들이 하나씩 탄생한다는 사실이다. 한화는 몇 년째 토종선발 부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선발로테이션에서 꾸준히 중용된 투수는 FA로 영입한 송은범 정도에 불과하다.

지난해 안영명이나 올해의 윤규진은 당초 불펜 요원으로 시즌을 시작했다가 대체 선발로 전업하여 자리를 잡은 케이스들이다. 비시즌부터 구단의 체계적인 육성과 기획으로 키우려고 했던 선발 자원은 단 한명도 성공하지 못한 반면, 어쩔 수 없이 땜빵으로 세운 선발들이 한화 마운드의 구세주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땜방 선발들의 선전, 한화가 웃을 수만 없는 이유

김성근 감독은 개막 이후 줄곧 '투수가 없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선수층이 얇은 KBO에서 부족한 투수진으로 144경기 대장정 소화가 어렵다는 이야기도 했다. 하지만 한화는 사실 다른 팀에 비하면 선수 자원이 부족한 팀이 결코 아니었다. 불펜 중심의 야구를 선호하는 김 감독의 성향상 장기적인 선발투수 육성에 대한 노력과 인내심이 부족했던 것에 더 가깝다.

좋은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 모든 구단이 동일한 조건에서  장기레이스를 치러야한다면 그 상황에 맞춰 선발투수들을 꾸준히 육성하고 준비하는 것도 감독의 당연한 임무다. 외국인 선수와 FA 투자에 성공한 두산이나, 내부 육성으로 전력 유출을 극복한 넥센 등이 좋은 예다. 그에 비하여 당장의 1승에만 연연하며 매 경기 투수들을 보직 구분이나 휴식일 개념도 없이 마구잡이로 몰아넣으면서 '선수가 없다'거나 '경기수가 많다'고 투정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윤규진이나 장민재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투입한 대체 선발들이 팀을 여러 번 위기에서 구해낸 장면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한화의 투수 활용법과 잣대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한화는 후반기 분발하며 5강싸 움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 올 시즌 엄청난 투자로 끌어올린 전력을 감안하면 상위권에서 경쟁하고 있어야 할 팀이다.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 한화엔 아직도 투수들이 있다. 주어진 자원을 가지고 얼마나 정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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