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윤을 만나러 가는 설렘

오윤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아침밥도 거르고 집을 나섰다. 기차 시간에 쫓겼기 때문이다. 아침 8시 기차이니 집에서 30분 전에는 나가야 한다. 편남영 형과 약속이 되어 있었다. 오윤 작품을 본 뒤 점심 식사를 하기로. 형은 북악정에 가서 냉면을 먹자며 음식점과 메뉴까지 미리 정했다.

종로구 평창동, 부촌 중 하나로 알고 있는 그곳에 다수의 갤러리가 자리잡고 있었다. 오윤 기념전은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었다. 갤러리 1, 2층 전관을 오윤이, 아니 오윤 작품이 점령(?)하고 있었다. 방을 구분하여 판화, 소조, 드로잉 순이다. 작품들이 각각 봐 달라는 듯 손짓하고 있었다.

오윤 30주기 회고전에 다녀왔다. 바쁜 시간을 틈 내 편남영 형이 함께 해 주어 고마웠다.
▲ 오윤 30주기 회고전에서(필자와 편남영 형) 오윤 30주기 회고전에 다녀왔다. 바쁜 시간을 틈 내 편남영 형이 함께 해 주어 고마웠다.
ⓒ 이명재

관련사진보기


​오윤은 불혹의 나이를 막 넘긴, 우리 나이로 마흔 하나에 세상을 떴다. 1986년 7월이었다. 민중 미술 하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사람을 나는 알고 지낸다. 그러나 오윤은 생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민중 미술의 개척자, 조선과 현대 판화를 이은 작가, 미술과 사회의 관계를 작품으로 말해 준 사람!

미술평론가이자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오윤을 '민중 미술의 전설'이라고까지 말했다. 이런 작가를 만나러 가는데 설레지 않겠는가. 예술의 사회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람이 하는 게 예술이요, 사회는 그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는 단위이다. 이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다.

예술의 사회성과 민중의 중요성

예술의 사회성을 강조하는 예술가들은 사회 구성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민중을 소재로 그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의 예술 중 문학에서는 이 문제가 비교적 일찍 제기 되었지만 그 외 장르에서는 굼뜨기 그지없었다. 미술에선 오윤이 1980년대 중반에 판화를 발판으로 하여 사회성의 징검다리를 놓지 않았나 싶다.

오윤의 '북춤', 그의 판화 소재는 바로 우리 주위에 있는 민중이다(사진=네오룩닷컴).
▲ 오윤의 북춤 오윤의 '북춤', 그의 판화 소재는 바로 우리 주위에 있는 민중이다(사진=네오룩닷컴).
ⓒ 오윤

관련사진보기


오윤 판화의 소재는 대부분 민중이다. 세상을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선남선녀(善男善女)의 사람들. 희소성의 가치는 경제학에서만 통용되는 게 아니다. 우리들 삶의 전 부분에 그대로 적용된다. 흔한 것엔 관심이 덜 가는 것, 하지만 오윤은 이 땅의 다수인 그 흔한 민중에게서 강하고 중요한 힘을 발견했다. 역사를 끌어가는 힘!

경제 발전의 뒤에서 힘들어하는 노동자,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산업화 속에서 고통당하는 농민들을 이야기한다. 그런 환경 아래에서도 오순도순 가족의 따뜻함을 강조하고,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평화로운 자연을 내비친다. 그의 미술 주제는 우리 이웃이고 더 좁히면 바로 우리 가족이다.

자연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혜택을 부여한다. 자본이 접근하기 전에는. 바람과 햇빛 그리고 조국을 아름답게 수놓은 산하! 이 복을 누리는 것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민중의 특성은 삶의 조건에 의해 쉬이 규정된다. 외모와 행위 등 사람에게서 곧잘 드러난다. 민중 지향적인 미술을 한 오윤이 인물에 집착한 이유이다.

민중미술의 전설 오윤, 그의 작품의 민중성

오윤 30주기 회고전에는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드로잉, 조소, 걸개그림, 유화, 판화… . 이 중 단연 압권(壓卷)은 판화이다. 드로잉 작품은 습작의 성격이 강하고 조소 작품도 비슷하다. 판화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천착한 장르다. 그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판화에 집중했을까.

오윤 판화 '사상체질도'. 판화는 다량 보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술의 대중화 측면에서유라헌 장르이다.
▲ 오윤의 사상체질도 오윤 판화 '사상체질도'. 판화는 다량 보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술의 대중화 측면에서유라헌 장르이다.
ⓒ 이명재

관련사진보기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다. 먼저 판화는 민중성을 드러내기에 좋은 분야다.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다. 후칠을 하여 다색 판화가 없지 않으나 기본은 흑백 구도이다. 어떤 때는 굵게 또 어떤 때는 얇게, 선의 특성을 살려 표현하는 미술이 판화이다. 여기서 강직한 힘이 나온다. 오윤의 판화를 힘과 등치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 대중성을 들 수 있다.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미술은 소수 지배층의 전유물이었다. 작품을 그리는 사람도,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도 그랬다. 오윤의 민중 미술은 이것을 깨는 데서 출발한다. 판화는 예술의 특수성을 거부한다. 동일한 작품을 찍어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판화보다 더 대중적인 미술은 없다.

세 번째, 대중성을 위해서 차용한 다양한 방식을 들 수 있다. 만화와 광고 포스터는 대중과 가까운 대상들이다. 오윤은 판화에 글자를 넣는 만화의 구도를 차용함으로써 대중의 눈을 쉬이 붙든다. 또한 몇 편 안 되는 유화에서는 광고 포스터 양식을 빌려서까지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무분별하게 수입되는 서구 자본주의의 폐해를 알리며 대중을 계도하는 역할까지 한다. 그는 미술을 철저하게 민중을 위해 존재할 때 가치 있다고 보았다.

우리 주위의 소박한 것들이 작품의 소재

전시된 작품을 보면서 오윤이 관심 둔 영역을 생각해 보았다. 관심 영역이 작품 소재와 쉬이 연결된다. 춤, 도깨비와 호랑이, 가족, 노동 등. 보통 사람 우리의 이야기, 민속의 주제이면서 그 속에서 역동적 힘을 발산하는 것들이 오윤 판화의 소재가 된다.

오윤 판화 '도깨비', 판화에 글자를 넣어 만화 형식을 빌림으로써 사람들이 쉽게 작품에 다가오도록 했다(사진=네오룩닷컴).
▲ 오윤의 도깨비 오윤 판화 '도깨비', 판화에 글자를 넣어 만화 형식을 빌림으로써 사람들이 쉽게 작품에 다가오도록 했다(사진=네오룩닷컴).
ⓒ 오윤

관련사진보기


춤은 민중의 삶에서 뺄 수 없는 장르이다. 서러움과 아픔을 이겨내는 승화의 몸짓이다. 도깨비와 호랑이는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것들이다. 민중의 관념을 지배하고 있는 대상물이다. 오윤은 가족과 이웃 등 우리 일상 삶의 동반자들을 친근하게 새기면서도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자본에 희생을 강요받는 노동자의 고통에도 동지적 따뜻함을 감추지 않는다.

오윤의 작품, 직설이 아닌 우회적인 방법

오윤을 민중미술 주창자로 이야기하면서도 예술적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선 과격성을 발견할 수 없다. 선동 선전의 작품이 아니라 칼끝에서 빚어지는 노동자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마음을 붙든다. 예술이 인간의 의식을 잠재워서도 안 되지만, 권력과 자본을 직설적으로 후벼 파는 것이어서도 안 된다.

오윤의 '천렵', 우리의 일상적 삶을 가감 없이 표현함으로 민중미술의 과격성을 덜어냈다.
▲ 오윤의 천렵 오윤의 '천렵', 우리의 일상적 삶을 가감 없이 표현함으로 민중미술의 과격성을 덜어냈다.
ⓒ 이명재

관련사진보기


오윤은 직설이 아닌 우회적인 방법으로 사회에 저항의 목소리를 던진다. 누구에게나 깊이 생각한 후에 행동하게 만든다. 그의 작품은 어떤 이에겐 감동으로 공감하게 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참회함으로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게 만든다. 우리의 척박한 판화 시장 풍토 속에서 오윤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이것을 말해 준다.

이번 회고전엔 250점의 오윤 작품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비록 습작품이라고 하나 드로잉에서 솟구치는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윤이 세상을 뜬 지 30년이 되었지만, 이 사회는 세월의 흐름과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 그가 이 세상을 하직했을 때는 전두환 정권 때였을 것이다. 그때와 비교할 때 지금 얼마나 달라졌는가.

오윤 생전 판화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그는 지금 작품으로 우리에게 말을 해 온다?.(사진=가나아트센터)
▲ 판화 작업하는 생전의 오윤 오윤 생전 판화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그는 지금 작품으로 우리에게 말을 해 온다?.(사진=가나아트센터)
ⓒ 오윤

관련사진보기


오윤을 만나보자 그리고 '나'를 점검함

오윤이 살아있다면 지금 어떤 목소리로 예술을 말할까. 정치와 경제가 제 몫을 해 내지 못할 때 미술의 역할은?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윤 30주기 회고전은 8월 7일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시간을 내서 오윤을 만나본다면 삶의 그림표가 새롭게 그려질 수도 있다. 정말이다.


태그:#오윤 판화, #30주기 회고전, #예술의 사회성, #가나아트센터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