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 <부산행>은 개봉한 지 일주일만에 600만 명의 관객과 만났다. 연상호 감독의 전작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관객이 2만 명도 들지 못했고 그 다음 장편 영화 <사이비>는 2만 명을 조금 넘었다. 실사영화이고 여름철 블록버스터물이라지만 상당히 대조적인 흥행 성적이다. 연상호 감독이 '실사 영화를 연출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관객들을 좀 더 많이 만나고 싶어서"였다. <부산행>은 결과적으로 그 의도에 꼭 맞는 작품이 됐다.

<부산행>의 프리퀄이라 볼 수 있는 <서울역>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연상호 감독은 "<서울역> 때문에 <부산행>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마 곧 개봉할 <서울역>을 보면 <부산행>을 선택한 연상호 감독의 의도가 더 분명하게 드러날지 모른다.

"다음에도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오는 영화를 할 수 있을까"라고 말하면서도 "이 성취에 함몰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연상호 감독. 그는 "영화를 오래하고 싶다"고 했다. <부산행>이라는 성취와 그의 전작 <돼지의 왕>과 <사이비>와의 연관성과 개봉을 앞둔 <서울역>에 대한 연상호 감독의 생각이 궁금했다. 지난 26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연 감독을 만났다.

상업 영화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부산행>이 나왔다

'부산행' 연상호 감독, 좀비대왕 등극? 영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26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처음부터 <부산행>을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거기에는 애니메이션 시장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관객과 흥행에 대한 연상호 감독의 개인적인 고민이 있었다. ⓒ 이정민


- <부산행>으로서도 그렇지만 연상호 감독 개인으로서도 굉장한 성공이다. 장편 영화 세 편 중 2편이 칸 영화제에 초청됐고 첫 번째 실사영화 <부산행>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조금 우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기분이 어떤가.
"맞다. 우쭐하다. 그리고 좋다. 좋기도 하고…. 초반에 너무 달려버리니까 다음에는 또 이런 것을 경험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있다."

- '이런 영화를 또 할 수 있을까'라는 의미인가?
"결과가 이 정도까지 나오는 영화를 하는 건 쉽지 않다."

- 첫 실사영화로 블록버스터를 선택했는데 전작들에 비해 규모가 커서 두렵지 않았나.
"그렇지는 않았다. 독립영화를 오래 하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블록버스터를 하면 어떨지 궁금했고 독립영화 감독이 큰 영화를 하는 게 그리 이상한 문제는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여러모로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 호기심이나 개척자 정신 같은 건가? 
"처음부터 그렇게 거창한 마음가짐이었던 건 아니다. 사실 <서울역>(곧 개봉할 연상호 감독의 또 다른 애니메이션.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됐고 <부산행>의 프리퀄이 되는 작품) 때문에 시작한 것 같다. 독립영화에 대해 한계를 느끼고 있던 찰나였다."

- 어떤 한계 말인가?
"관객에 대한 한계. 독립영화인 데다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마이너의 마이너 영화인 상황이었다. 물론 전작이 해외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긴 했지만 흥행에선 처참했다. <서울역>이라는 장르영화(좀비)를 택한 것도 나름대로 상업적인 선택을 한 거다."

- 좀비영화랑 상업적인 선택에는 어떤 연관성도 없을 것 같은데?
"<사이비>보다는 낫지 않나. (웃음) '장르성'을 강화시켜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작을 하는 과정에서 보니 <서울역>이 <사이비>랑 비슷한 정도의 개봉 수준, 그 정도의 관객 밖에 못 만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그래서 <부산행>을 고려했나.
"맞다. 예산을 좀 크게 갖고 <서울역>을 실사영화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했다. 같은 내용으로 2편의 영화를 만드는 건 의미가 없다고 여겼고, 다른 콘셉트의 영화를 만들어 두 편의 영화를 패키지로 가보자고 이야기가 나왔다. <서울역> 때문에 <부산행>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 사실상 <서울역>과 <부산행>은 연결되는 작품일 텐데, 이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
"<서울역>과 <부산행>에 중요하게 잡혀있는 '코드'들이 있다. '집'이 여러 방식으로 나온다. 분산 투자로서, 가정으로서, 그리고 <부산행>에도 등장하지만 노숙자라는 집이 없는 사람들의 세계까지. 이런 집과 가족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나온다."

- 이유가 있나?
"<부산행>과 <서울역>은 공통적으로 비극적인 세계관을 딛고 있다. 국가는 개인을 보호해줄 수 없고 개인을 보호해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 단위가 가족이다. 두 영화는 그런 콘셉트로 진행됐다."

- 더 많은 관객을 만나기 위해 <부산행>을 만들었다고 말했는데 그러면 지금 흥행에 만족하나?
"지금? 만족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어떻게 되나. (웃음) 초반에 이렇게까지 나올 거라고는 예상 못 했다. 관객이 50만 명만 들어도 좋겠다고 말했었다."

<돼지의 왕> <사이비> 그리고 <부산행>이라는 레일 위에서

 영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26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며 작품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돼지의 왕>과 <사이비> 그리고 <부산행>으로 이어지는 연상호 감독의 인장. 그는 "일단 신경쓰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관련성은 적지 않아 보였다. ⓒ 이정민


'부산행' 연상호 감독, 좀비대왕 등극? 영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26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26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제작발표회랑 기자회견에서 "<부산행>은 나의 세 번째 장편 영화다"라는 점을 굉장히 강조하더라. 전작에 비해 예산이 많이 투자된 영화지만 부담감을 갖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고 <부산행> 역시 블록버스터물이지만 '연상호 세계관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둘 다 포함된다. 전작과 <부산행>은 규모나 흥행 면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 성취는 함몰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영화를 좀 오래하고 싶어서. 하지만 <돼지의 왕>과 <사이비>를 만들던 연상호의 삶도 분명 만족스러웠다. 오히려 <부산행>보다 더 만족스러웠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 어떤 점에서 그런가?
"우선 작업을 계속 할 수 있고, 생활적으로도 문제가 없고, 같이 일하는 사람이랑 먹고살 수도 있고. 그런 점에 크게 불만이 없었다. 다만 작업은 계속할 수 있는데, 애니메이션을 계속 하면 상업적인 측면에서 저변을 넓히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걸 어떻게 뚫어낼 수 있을까. 분명 영화 산업은 상업적인 성공이 작지 않다. 그 기회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부산행>이 잘 된다고 해도 애니메이션 <서울역>의 마케팅비가 엄청 뛴다거나 그러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서울역>도 영향을 좀 받지 않을까."

- '연상호 세계관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라는 점에도 역시 동의했다. 전작과 <부산행>을 어떻게 묶어낼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만드는 영화마다 자기 인장을 찍어야 한다고 말하던데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영화감독으로서 나이가 그리 많지 않고 내 색깔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직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다양한 장르나 다양한 사이즈의 영화를 경험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인장을 신경 쓰면서 작품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내 필모그래피 중에 가장 이질적인 작품은 <사랑의 단백질>(2008)일 거다."

- '전작과 비교해 신파가 너무 심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의 이전 작품들도 그렇게까지 신파에서 멀리 떨어져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부산행>이 신파고 그래서 내가 변했다는 사람들은 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인 것 같다. 내 작품에는 늘 신파가 있었다. <부산행>이 전작들과 비교도 안 되게 잘 되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부산행>에서 지적받은 문제들은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 때도 늘 작품 속에 존재했다."

- 신파에 대한 부분 말인가?
"아니, 신파라고 이야기가 안 나왔을 뿐이지 <돼지의 왕> 때도 '왜 영화의 주제를 캐릭터의 입을 빌려 연출을 하느냐, 이렇게 직접적으로 감정이 과잉인 상태에서 연출을 하느냐'는 이야기는 늘 있었다. 상업 영화와 연결돼 그 점이 커 보이는 거지. 원래 내가 연출하는 방식 자체가 세련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직접적인 방식을 택해왔던 사람이다. 전작과 연출적인 면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 사실 <돼지의 왕>에서도 "힘을 가지려면 우리는 악해져야 해" 같은 대사가 굉장히 직접적이다. 이런 (직접적인) 연출을 좋아하나?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다. 직접적이고 선언적인 이야기가 좋았다고. 물론 그런 점이 싫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촌스럽다고. 호불호는 늘 갈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 본다."

- 또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보자면 '국가폭력'에 대한 부분이 영화 내내 굉장히 많이 드러난다.
"<부산행>에 그렇게 많이 넣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이미 그 부분은 <서울역>에 많이 들어가 있어 <부산행>에서 한 번 더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봤다. 오히려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따로 있다. 좀비라는 낯선 소재를 사용할 때 관객들이 사는 사회가 영화 속 사람들이 사는 세계와 다르다고 느끼면 안 될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보편적인 사회에 대한 인식을 영화 속에 집어넣고자 했다. 기본적으로 사회 구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불신."

- 한편, 여성 캐릭터가 너무 주변적인 인물로 나온다는 비판도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성 캐릭터가 액션을 하지 않기 때문인가? 싶었다. 여기서 성경(정유미 분)이나 수안(김수안 분), 진희(안소희 분)까지 대단히 적극적이다. 육체적으로 떨어질 뿐이지 다른 사람을 구한다든가 하는 면에서 가장 적극적인 인물이 성경인데다 석우(공유 분)와 용석(김의성 분)의 싸움에 뛰어들기도 한다. 수안도 마찬가지다. 수안은 좋은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기도 하고, 아빠를 기차 위로 끌어올리려 한다. 마지막 신도 수안이 구출됐다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구원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단지 여자가 주인공이 아닐 뿐이지 할머니들까지 포함해서 대부분의 여성 캐릭터가 적극적이다.

"밀집된 공간에 공포를 느낀다"

 영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26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며 작품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군중극. 연상호 감독은 처음에 소규모의 실사 영화를 생각했다. 초기 기획이 이만큼 커졌다. ⓒ 이정민


- 영화를 촬영하면서 '이 신은 참 계획한대로 잘 나왔다' 했던 부분이 있나?
"좀비가 기차에 매달리는 장면이 있다. 시나리오에 원래 없던 장면인데 필요하겠더라. 그래서 스케치를 따로 해서 영화에 넣었다."

- 그 부분에서 흥미로움과 동시에 공포를 느낀 관객들이 있더라. 그렇다면 연상호 감독이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공포를 구현한 장면이 있을까.
"오프닝에서 좀비 떼들이 기차 안을 꽉 채우고 달려오지 않나. 이제 사용되지 않는 새마을 기차에서 기술팀이랑 테스트신을 한 번 찍었다. 지금은 CG를 넣은 상태지만 촬영할 당시에는 CG도 없었는데 무섭더라. 영화는 스크린이랑 객석이 떨어져있으니 무섭지 않은데 거기 있으면 무섭다. 또 좀비로 분한 수많은 사람들이 내는 소리에 '헉 소리' 났다. 또 그런 게 무섭다. 주말에 홍대 전철역. 거기 사람들이 엄청 많지 않나. 가본 적 있나?"

- 가본 적 있다. 사람이 밀집된 장소를 싫어하는 건가?
"너무 무섭고 가기가 싫다. 막 쏟아져 나오는 그 이미지가 싫다. 생각보다 기차라는 공간이 주는 효과가 괜찮더라. 좀비가 인간에 대한 은유이자 인간과 별다를 바 없는 존재에 대한 은유이지 않나. 미쟝센적으로 기차라는 공간이 좀비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 '밀폐된 공간이 주는 공포'라는 측면은 전작과도 연관성이 있겠다. '학교'(<돼지의 왕>)라든지 '수몰 예정 지역(<사이비>)' 같은 곳들.
"한정된 공간의 군상극. 그 군상극이라는 개념에서 가장 어울리는 영화가 <부산행>이 아니었나 싶다.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는 화자가 분명히 있는데 <부산행>에도 석우가 있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전작에 비해 군상극에 잘 어울리지 않나.

- 또 다른 좀비 영화 <월드워Z>와 비교했을 때 좁은 공간을 다루고 있는 것도 그렇고 군중극이라는 측면에서도 많이 다르다.
"<월드워Z>와 비슷한 건 거의 없다. 좀비라는 소재 빼고는 완전 다른 영화다. 처음 <부산행>을 기획했을 때 사이즈가 크지 않았다. 기획 단계에서는 <열두 명의 성난 사람들>(1957)이나 <미스트>(2007) 같은 군중극을 만들고 싶었다. 닫힌 공간에서 여러 캐릭터를 다루는 이야기를. 그런데 작게 가는 것보다 사이즈를 키워 액션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게 낫겠다는 제작사의 요청이 있었다. 원래는 더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룰 생각이었다.

- 기차보다 더 좁은 공간 말인가?
"<부산행>은 이야기가 진행되며 밖으로도 나가지 않나. 그런 게 없이 한 칸 혹은 두 칸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를 생각했다."

- 앞으로 연상호 감독의 영화는 어떤 주제에 좀 더 천착을 할 생각인가?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고민이 있다. 사회적인 이슈를 어떻게 하면 많은 대중에게 전달할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런."

- 실사 영화를 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일단 다음 작품은 실사영화를 하게 될 것 같다."

'부산행' 연상호 감독, 좀비대왕 등극? 영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26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곧 <서울역>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서울역> 다음으로 우리는 연상호 감독의 두 번째 실사 영화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 이정민



부산행 연상호 좀비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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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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