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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중구에 있는 한중문화관의 학예연구사 오연주씨는 사진작가 최용백(53)의 작품 <백령도>를 보고 200년 전 조선 후기 천재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을 불러들였다. 특히 정선의 작품 중 '박연폭'이 떠올랐다. 먹과 여백의 대비를 한껏 살린 겸재의 그림이 오늘날 최용백한테서 현대적 예술매체인 사진으로 재탄생했다는 게 오 학예사의 해설이다.

지난 20일부터 8월 8일까지 한중문화관 1층 갤러리에서 사진초대전으로 최용백의 '묵묵(墨墨)한 섬, 백령도'가 열리고 있다. 전시회 첫날 이 갤러리에서 최용백 작가를 만났다. 범상치 않은 예술가적 기행(奇行)도 서슴지 않는 그는 여전히 청춘이었고, 그와의 대화는 푸르렀다.

묵묵(墨墨)한 섬, 백령도

여성이 누워있는 모습 같기도, 와불 같기도, 어머니의 품 같기도 한 사진 옆에 서 있는 최용백 사진작가.
 여성이 누워있는 모습 같기도, 와불 같기도, 어머니의 품 같기도 한 사진 옆에 서 있는 최용백 사진작가.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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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주 학예사가 제 작품을 보고 '강렬한 흑백 대비가 충격'이라고 표현했어요. 사진을 모두 역광(逆光)으로 찍어 실루엣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섬·바다·생명·동굴·바위·내륙 등, 섹션 여섯 개로 구분을 지었습니다. 대신, 작품마다 제목과 설명을 달지 않았는데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는 뜻이죠."

오 학예사는 '백령도의 자연이 압도하는 느낌을, 그 태초의 모습을, 묵묵히 묵묵(墨墨)한 섬으로 상상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는데, 이 초대전의 제목도 오 학예사가 지었다.

최 작가는 조선시대 중기 의병장 출신의 이대기가 백령도로 귀양을 와 백령도를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표현한 글이 본인 작품들의 모티브라고 했다. 이번에 전시한 작품들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작업한 것들이다. '백령도, 평화를 품다'라는 제목으로 2013년 12월 부평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전시한 바 있고, 최근에는 지난달 서울 인사동 가나인사이트센터에서 같은 제목으로 전시했다. 이번 초대전은 오 학예사의 추천으로 열렸다.

이기우 인천재능대 총장은 최 작가의 전시회 추천사에서 '프랑스어로 어머니(mere)에는 바다(mer)가 들어가 있다. 한자어인 바다(海)에는 어머니(母)란 의미가 내포돼 있다. 섬을 품고 있는 바다의 어원이 어머니라면, 섬은 바다가 잉태한 생명이 아닐까. 끊임없이 출렁이며 만들어낸 생명의 결정체가 바로 섬일 것이다'라고 했다.

"저도 백령도와 바다를 찍으면서 어머니의 품을 느꼈어요. 사진을 찍을 때도 느끼지만 미처 느끼지 못하다가 사진을 고르면서 느끼기도 합니다. 이 사진이 그래요. 새벽에 일출을 찍으러 어렵게 배를 섭외한 적이 있어요. 동북쪽에서 해가 뜰 때 두무진을 찍었죠. 나중에 사진을 고르는데 여성이 누워있는 모습 같기도, 와불(누워 있는 불상) 같기도, 어머니의 품 같기도 하더라고요. 인사동에서 전시할 때 비구니들이 이 사진 앞에서 합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몇 개 중 하나입니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백령도를 컬러사진으로 담고 싶은 유혹도 없지 않았을 텐데, 흑백사진을 고집한 이유가 있었을까?

"백령도를 찍은 사진작가들이 있어요. 대부분 철조망이나 지뢰 등을 컬러사진으로 찍었는데, 그들과 다른 시선으로 접근했습니다. 백령도를 원시적인 평화의 섬으로 표현하려고 했고, 먹물의 검은색을 이용해 흑백사진으로 작업했습니다."

서울에서 전시할 때 있었던 일이다. 화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여성이 최 작가의 어느 작품 앞에서 5분간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다른 곳에 갔다가 30분 후 다시 와 그 작품을 보더니 또 하염없이 울었다. 최 작가에게 작품을 설명해달라고도 했다. '바닷물이 넘칠 듯 말 듯 한 사진이 어두운 곳과 밝은 하늘의 색깔이 대비되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연상돼 눈물이 나지 않았을까'라고 최 작가는 추측했다.

사진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을 화가라고 소개한 여성이 이 사진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최 작가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연상돼 눈물이 났을 거라고 추측했다.
 자신을 화가라고 소개한 여성이 이 사진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최 작가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연상돼 눈물이 났을 거라고 추측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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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서 태어난 최 작가는 1987년 인천으로 이사 왔다. 20대 때 다른 직업이 있었지만 취미로 사진을 찍었는데 첫 시작이 셀프 포트레이트(Self portrait, 자화상) 누드 작업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셀프 누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몇 명 없어요.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찍었는데 '사진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 나를 다뤄야겠다고 마음먹었죠. 1993년 작품 공모전에서 처음 상을 탄 것도 셀프 누드 사진이었어요. 계기요? 유명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기록을 남기잖아요. 저는 그렇지 않으니까 스스로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6년간 내가 변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0여 년간 셀프 누드 사진을 찍은 작가는 우리나라에 없어요. 이런 작품은 일관성·창작성·예술성·지속성이 필요합니다. 시인 고은이 30여년간 만인보(萬人譜)를 써 왔듯이 제 누드 사진이 그 세월입니다. 조만간 전시회를 할 계획입니다."

최 작가는 '명소(名所)와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셀프 누드를 많이 찍었다. 제주도의 용두암이나 성산일출봉, 천지연폭포 뿐만 아니라 백령도에서도 누드를 찍었다. 에피소드가 많을 듯했다.

"백령도는 군사지역이라 군인이 많아요. 바닷가에서 셀프 누드 사진 작업을 하는데 망원경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군인이 내가 자살하려는 사람으로 보였는지 절 잡더라고요. '카메라가 바다에 빠져서 옷을 벗었다'고 둘러대 풀려났지만요. 관광 명소에서는 CCTV 카메라에 찍혀 불려가기도 하고요. 공공장소에서 혐오감을 주면 법에 저촉되지만 창작을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문제될 게 없죠. 저는 사람들이 없을 때, 남들이 접근하기 힘든 장소에서 많이 찍었습니다."

20대 때는 맨몸에 검은색을 칠한 후 흰색 종이에 전신을 눌러 찍기도 했다. 기록으로 남기려는 의도였다. 그 후과로 며칠간 몸에 두드러기가 나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출사(出寫)나 행사로 지역 출장이 잦은 그는 숙소로 여관이나 모텔을 많이 이용했다. 수년간 숙소 안에서 누드 사진을 찍은 그는 숙소나 자신의 변천사를 볼 수 있는 게 또 하나의 귀중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내 누드가 30년이 다 돼 가는데 젊은 나와 나이든 나 모두 혐오감을 주지 않고 아름답습니다. 저는 셀프 누드 사진을 찍지만 모델로 활동하기도 합니다."

재해석과 기록을 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한반도 형상의 사진. 인천이 위치하는 곳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생명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이번 전시회 자료집의 표지에 실렸다.
 한반도 형상의 사진. 인천이 위치하는 곳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생명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이번 전시회 자료집의 표지에 실렸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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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부터 취미로 사진을 찍었지만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사진공부는 늦깎이로 시작했다.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야간으로 인천재능대 사진영상미디어과를 졸업한 최 작가는 이왕 내디딘 걸음, 좀 더 깊이 있는 공부하고자 가천대(옛 경원대) 포토그라피 석사과정까지 졸업했다.

자신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라고 부르는 최 작가는 80% 이상 다큐 작업을 한다. 그는 '다큐 작업은 재해석과 기록의 두 가지 기능으로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다'고 했다.

남들이 즐겨 찍지 않는 하천이나 동물, 야생화 등을 찍어 인천녹색연합과 '인천생태-자연의 함성'·'인천대공원 동물원, 동물가족'·'인천하천-하천을 살아있다' 등을 책으로 묶기도 한 그는 1999년 인천녹색연합으로부터 환경공로패를 받았다.

그의 또 다른 관심사는 '인천의 변모'다. '인천, 어제와 오늘'이라는 주제로, '사진으로 보는 인천교육 반세기'라는 주제로도 사진을 묶어 책을 출간하고 전시회를 했다. 동구 화도진도서관에 100년 전 일본인들이 찍은 인천 사진이 있다. 최 작가는 동일한 장소, 다른 시간에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를 했다. 인천에는 50년이나 100년이 넘은 학교가 꽤 많은데 예전 사진과 지금 학교건물을 비교하며 역사를 느끼기도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인천이 변모하는 모습을 계속 찍고 있습니다. 예전에 부평에 살았을 때는 부평 모습을 담은 사진집을 내기도 했고, 남동구로 이사 와서는 소래포구를 찍었어요. 소래철교가 변하는 모습을 21년간 찍어 전시회를 하고 책도 냈습니다. 사진을 찍으러 멀리 갈 필요가 없어요.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게 살아있는 피사체입니다. 그들이 나한테 가르치고 교훈을 줘요. 세상은 모두 변한다는 것을요. 나조차도."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최용백, #묵묵한 섬, #백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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