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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출간된 살만 루슈디의 책 <악마의 시>는 여러모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이 논란이 된 지점 중 하나는 저자가 이슬람을 모욕했다는 것이었다. 이 책은 원리주의 무슬림들로부터 '이슬람을 희화화했고 무함마드의 부인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출간 이후 이 책은 논란의 중심에 섰고 이슬람 국가로부터 성토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년 뒤인 1989년, 당시 이란의 지도자였던 루홀라 호메이니는 루슈디의 책을 불경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저자의 처형을 명령했다. 거기에 이 책을 번역한 사람들의 목숨에도 현상금이 걸렸다.

물론 작가의 행동을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이에 대해 사회적인 논쟁을 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루홀라 호메이니는 다른 행동을 취했다. 작가의 목숨을 빼앗고 그의 펜대를 꺾으려 했다. 작가는 살아남았지만, 그 과정에서 <악마의 시>를 번역하고 출판했던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문제의 '예스컷 운동'

 넥슨이 성우 교체 사유로 든 김자연 성우의 트윗
 넥슨이 성우 교체 사유로 든 김자연 성우의 트윗
ⓒ 김자연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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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비극이 꼭 루슈디의 사례만 있을까. 최근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현재 논란이 되고있는 '예스컷' 운동이다. 운동이 전개된 상황은 이렇다. 최근 성우 김자연씨는 페이스북 페이지 '메갈리아4'가 페이스북 코리아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티셔츠를 입고 사진을 찍어 SNS에 게시했다. 이에 넥슨은 게임 '클로저스'에서 김자연씨가 녹음한 작업물을 삭제하고 새로운 성우의 목소리로 대체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 같은 조치는 많은 창작자들의 공분을 샀고, 다수의 웹툰 작가들이 김자연씨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 과정에서 몇몇 작가들이 자신의 입장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반응했고, 사람들은 이를 '독자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작품에 대한 별점 테러나 웹툰 사이트의 '탈퇴 인증'도 이어졌다.

그다음 등장한 것이 바로 문제의 '예스컷 운동'이다. 때마침 방송통신위원회가 새로운 웹툰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했고, 디씨인사이드 웹툰 갤러리의 한 사용자가 방통위에 '규제 증설'을 요청하는 민원을 넣자고 제안한 것이다. 해당 게시글은 150여 개가 넘는 추천을 받았으며, 예스컷 운동은 다른 커뮤니티로도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현재는 민원까지는 넣지 않되, 웹툰 규제 증설에 맞서지 않겠다는 입장도 나오는 상황이다.

'예스컷 운동'의 문제적 동기

 문제가 된 '예스컷 운동'의 시작
 문제가 된 '예스컷 운동'의 시작
ⓒ DC인사이드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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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예스컷 운동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운동의 동기를 살펴보자. 이들은 해당 작가들이 메갈리아를 옹호하고 독자들을 멸시한다고 운동의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애초에 메갈리아4 계정이 페이스북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데엔 배경이 있다. 페이스북 측은 메갈리아4의 이전 계정들이 '편파적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모조리 삭제했다. 하지만 '김치녀'와 같은 여성 혐오적 페이지는 그대로 남겨뒀다.

즉 여성 혐오적인 페이지는 방조하지만, 메갈리아4 페이지는 삭제하는 페이스북코리아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소송을 시작한 것이다. 또한 김자연 성우는 자신이 딱히 메갈리아에서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소지니(misogyny, 여성 혐오)에 대응하는 웹사이트 정도로 생각한다는 입장을 남긴 바 있다.

때문에 김자연씨를 지지하는 웹툰 작가들의 선언과 넥슨에 대한 비판이 곧 웹사이트 '메갈리아'에 대한 옹호라고 볼 수 없다. 메갈리아4가 웹사이트 메갈리아에서 파생되어 나오긴 했지만, 메갈리아4가 곧 메갈리아라고 하긴 힘들다. 웹사이트(메갈리아)가 페이스북 계정 (메갈리아4)운영에 관여하지 않는 데다, 성격도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김자연씨가 입은 티셔츠도 메갈리아4 계정의 소송을 돕기 위해 판매한 것이지 메갈리아 자체를 후원하기 위해 판 물건도 아니었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웹툰 작가들이 애초에 비판적 목소리를 낸 이유는 넥슨이 창작자 개인의 사회적 의사 표명을 이유로 그 사람의 창작물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즉 창작자에 대한 부당한 처사가 넥슨을 비판하는 핵심이다. 실제로 몇몇 작가들은 자신은 김자연씨를 지지하지만 메갈리아에 대해선 다소 비판적이라는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웹툰 작가들이 독자를 멸시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많은 작가들이 입장을 발표한 이후 SNS를 통해 비판적인 의견을 전달받았고 이 와중에 날 선 공방을 주고받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작가가 하나의 사안을 놓고 독자들과 의견을 달리하고, 비판을 주고받은 것이 곧 '독자 멸시'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작가들이 작가로서, 그리고 상대방을 독자의 위치에 놓고 그 사람을 비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그 작가들이 '독자'로서 상대방의 위치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한 바가 있는가. 거기에 해당 작가들이 전체 독자를 대상으로 날 선 비판을 던진 것도 아니다.

'예스컷 운동'이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예스컷 운동'에 대한 설명 중 일부. 정부의 웹툰 규제를 환영하며, 규제로부터 창작자를 보호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예스컷 운동'에 대한 설명 중 일부. 정부의 웹툰 규제를 환영하며, 규제로부터 창작자를 보호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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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운동의 방식이다. 예스컷 운동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웹툰 규제를 증설하도록 민원을 넣거나 혹은 규제 증설을 방조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전혀 상식적인 운동 방식이 아니다.

가령, (전혀 사실과 다르지만) 작가들의 발언이 정말 사회적 문제가 될 만한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가장 당연한 반응은 이 '발언'을 비판하고 자신의 생각을 공론화하는 것이다. 조금 더 양보하자면, 견해 차이를 이유로 작가의 작품을 더 이상 소비하지 않거나 이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식의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반응이 납득 가능한 이유는, 이것이 웹툰 작가의 '발언'에 대한 대응이지 발언한 사람이 '웹툰 작가'이기에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스컷 운동은 정부 규제를 통해 작가의 창작 환경이 낙후되는 것을 부추기거나 방조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창작자의 작품 활동을 저해하는 방식으로 운동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정부 규제의 힘을 빌려 작가의 펜대를 잘라 버리겠다는 것인데, 이는 '나의 의견을 무시하다니, 밥줄을 끊어버리겠다'는 식의 저열한 협박이다. 전혀 작가의 의견에 대한 건강한 비판으로 들리지 않는다.

물론 창작자 개인에 대한 저항이 전혀 없는 일은 아니다. 일례로 칸 영화제는 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히틀러를 이해한다'는 발언을 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 외교 용어로 기피 인물이라는 의미)로 지정하며 그의 영화제 행사 출입을 금지한 일이 있다. 하지만 현재 웹툰 작가들이 보인 반응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발언과 달리 상식적인 비판에 불과하며, 칸 영화제마저도 감독의 영화제 공식 행사 출입을 금지했을 뿐 그가 영화를 제대로 만들 수 없도록 만들겠다고 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정리하자면 지금의 예스컷 운동은 동기의 측면에서도 방식의 측면에서도 아무런 합리성을 갖추지 못했다. 웹툰 작가들의 전반적인 창작 환경을, 그것도 정부의 힘을 빌려 규제하겠다는 발상은 매우 유해하다. 이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살만 루슈디를 죽여 그의 펜대를 부러트리겠다는 루훌라 호메이니의 발상과 근본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흥미로운 것은 예스컷 운동의 로고가 가위로 펜대를 자르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틀렸다. 잘려야 할 것은 작가의 펜대가 아니다. 잘려야 할 것은 이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옹졸함과 저열함, 그리고 비합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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